엔딩
요리사가 바쁘게 움직였다. 고기를 다져 햄버거 패티를 만들고, 빵이 없어 고기를 빵 모양으로 자르고, 양상추처럼 얇게 슬라이스한 고기가 튀겨지고.
치이익-
뜨겁게 달궈진 프라이팬에 고기가 올라가는 소리. 빗소리처럼 고기가 튀겨지는 소리.
곧 고기가 익는 냄새가 맛있게 풍겼고, 조사원들은 이연우를 슬쩍 보았다.
“연우야. 그냥 처리하고 나가는 게 맞지 않냐?”
이연우가 요리사에게 잠깐 시선을 던지더니, 들으라는 듯 큰 목소리로 말했다.
“햄버거가 마음에 안 들면 처리할 겁니다.”
사실, 이미 처리하기로 마음먹었다. 딱 봐도 사람 죽이는 이상개체인데, 굳이 살려둘 이유가 없다.
이건 그저 좋은 자리를 망친 괴물을 괴롭히는, 아니, 생존기구의 대표로서 살인 이상개체를 정의롭게 응징하는 것에 불과했다.
그 자신감 충만한 목소리는 조사원들에게 안심을 주었고, 요리사에게는 압박이 되었다.
요리사가 칼 든 손을 벌벌 떨다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어디서 저런 괴물이 와서.’
잔뜩 주눅 들고 겁먹었다. 그 기색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어깨는 웅크려졌고, 손은 떨리고 있었다.
그쯤에서 유지유도 마음을 놓고, 공기를 듬뿍 들이마셨다. 고기가 구워지는 그 냄새. 저절로 배가 고파지는 냄새.
“냄새는 진짜 좋네요. 하긴 고기는 구우면 맛이 없을 수 없죠.”
꼬르륵, 배가 허기 때문에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정작 유지유보다 눈치가 빠른 다른 사람들은 표정이 어두웠다. 저 식재료가 무엇이겠나.
주방에 걸려 있는 사람을 보던 최재민이 언제 장난쳤냐는 듯 주먹을 꽉 쥐었다. 그가 속삭였다.
“저거 진짜 사람이에요.”
“우욱.”
고기의 정체를 눈치챈 유지유가 입을 막고 헛구역질을 했다. 방금까지 냄새를 좋다고 여겼던 자신이 끔찍하다. 한순간에 고기 굽는 냄새가 지독한 악취로 변했다.
“완성됐습니다!”
그동안 최고의 실력을 발휘한 요리사가 서둘러 고기, 아니, 햄버거를 들고 왔다. 바쁜 몸짓, 지저분한 접시에 햄버거 모양으로 쌓은 고기가 불안하게 흔들렸다.
요리사가 침을 꿀꺽 삼켰다.
“선생님. 고기 버거입니다. 아무래도 평범한 버거는 많이 드셔보셨을 테니, 저만의 특별한….”
조사원들은 신경 쓰지도 않고 이연우에게만 설명하던 요리사가 말을 멈췄다.
햄버거를 내려보는 이연우의 기색이 심상치 않았다. 한 손에 확률의 실타래를 쥐고, 이 버거를 먹었을 때 일어날 가능성을 감지하던 이연우가 짙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상한 문제는 없어. 없는데.’
사람으로 만들었다. 끔찍한 일이었다.
최재민은 햄버거 위로 선명하게 떠오른 부모의 이름을 보고는 끝내 토악질을 했다.
이연우가 눈을 감았다. 작은 중얼거림이 흘러나왔다.
“회사가 평범한 세상을 원하는 것도 이해가 가.”
이딴 이상개체가 사방에서 툭툭 튀어나오는데. 당연히 이딴 것은 애초에 존재할 수도 없는 세상을 원할 만도 했다.
하지만 사람이 모두 멸망주의자는 아니듯, 이상개체도 못된 놈들만 있지는 않았다. 이연우는 옛날에 보았던 끼인 남자를 떠올렸다.
모이면 오류를 일으키는 NPC. 그는 사람을 위해 스스로 죽었다. 본의 아니게 괴롭힌 축복 받은 아이는 아이에 불과했고, 보호본능을 일으키는 아기도 아기일 뿐이었다.
편견이란 색안경을 쓰기에는 이연우가 겪고 만난 것들이 많다. 이연우가 눈을 뜨고 슬슬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거 드실 분 없죠? 나갑시다.”
드르륵-
의자 끌리는 소리가 요란하게 났다. 기분이 나쁜 조사원은 거의 내동댕이치다시피 의자를 밀어내며 일어났다. 잠깐잠깐 적의 가득한 눈이 요리사를 노려보았다.
요리사가 서둘러 이연우를 쫓아갔지만, 늦었다.
“선생님! 맛이라도 보시고-”
“….”
조사원을 먼저 내보낸 이연우가 무미건조하게 요리사를 보았다. 그리고, 주먹을 쥐었다.
‘처음부터 저게 존재하지 않았을 가능성.’
얇은 실타래 하나가 손아귀에 잡혔다. 그걸로 끝이었다. 요리사와 그 고깃집은 존재를 부정당했다. 존재가 지워졌다.
더 이상 이연우를 위협할 사고는 존재하지 않았다. 상상의 영역인 7레벨이 아니고서야 귀찮게 만들 뿐.
“사람의 생명을 위협하는 개체는 죽어야지.”
중얼거리며 바깥으로 나가니, 핼쑥한 안색의 조사원들이 주저앉고, 배를 문지르고, 침을 퉷퉷 뱉고 있었다.
그들이 이상개체의 공간으로 이동 당했을 뿐이라 원래 있던 고깃집은 현실에 멀쩡히 존재해 고기 냄새를 흩뿌렸고, 그 냄새는 조사원들에게 심리적 고통을 선사한다.
코를 가린 반장이 말했다.
“연우야. 회식은 무리다. 뭘 먹을 수가 없어.”
다른 조사원들도 창백하게 질린 얼굴을 연달아 끄덕였다. 입맛이 뚝 떨어졌다.
이연우는 무심코 손을 뻗었다.
‘입맛이 돌아올 가능성…. 음. 이건 좀 아니야.’
그건 좀, 비인간적이지 않나. 잠시 이런저런 생각을 돌리던 이연우가 머리를 긁적였다.
“나중에 사무실에서 고기나 구워 먹을까요? 아무래도 어디 나가봤자 사고만 겪을 것 같은데요.”
안 그래도 사건사고 마주치기 쉬운 조사원들이 특별한 날을 기념하여 모이는 자리. 이번 환송회처럼 대뜸 이상개체를 마주할 확률이 높았다.
“고기는 아니야. 차라리 다른 거 시켜 먹자고.”
“당분간 고기는 보지도 못하겠어요.”
그렇게 조사원들은 이연우의 의견에 동의하였고, 그들은 그 자리에서 헤어졌다.
***
시간이 흐른다.
이연우는 바쁘게 움직였다. 계속 수정되는 조약을 확인하고, 생존기구를 창설하기 위해, 그리고 집단에 필요한 자원을 얻기 위해 고민하고.
집단이 유지되려면 당연히 돈이 필요했고, 이연우는 정당한 방법으로 돈을 얻기로 했다.
다른 것도 아니고, 이상異常과 인류의 공동 생존을 추구하는 생존기구이니 편법이 아니라 그에 걸맞은 방법이 필요하다.
“아무래도 주사위로 돈을 만드는 것보다는 후원받는 게 깔끔하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생존기구에 후원 좀 해주십시오. 정기적으로요.”
다시 열린 회의.
이연우는 허공의 화면을 보며 당당하게 요구했다. 자신이 내놓은 보상이 얼마나 많은데, 자신도 받는 게 있어야지.
당연히 사람들은 찬성했다. 후원금을 목줄 삼아 이연우를 통제하겠다는 생각은 아니었다. 괜히 그런 짓 하면 터진다.
애초에 이연우가 원하면 단어 그대로 돈이 복사가 될 텐데.
기분이 좋은 회장이 말했다.
- 투자 좋죠. 어떤 형식으로 하실 겁니까?
큰돈이 움직이는 일이다. 당연히 그 방식도 많았고, 많은 만큼 복잡했다.
이연우는 그런 거 모른다는 말이었다. 이연우가 눈을 깜빡였다. 그냥 돈 보내주면 끝 아닌가? 뭐가 더 필요한가?
이사가 떨떠름하게 물었다.
- 그, 생존기구? 조직되긴 했나?
“아뇨. 그것도 물어보려고 했는데. 뭘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사들과 회장이 입을 다물었다. 남의 일에 휘말린 기분. 머리가 지끈거렸다. 이연우는 6레벨이지만, 생존기구를 진정 정상급 집단으로 보아야 하나 의문이 들었다.
물론 답은 하나였다. 6레벨이 있는데. 그냥 폐가 하나에 혼자 들어가서 나는 집단이라고 선언해도 인정해야지.
결국 그들은 적절한 방안을 찾았다.
- 회사에서 사람 보내주겠네.
- 클럽도 돕겠습니다.
사람을 보내서 집단 창설을 돕는다.
반대로 협회장과 숭배자는 멍하니 눈만 깜빡였다. 그들도 조직으로서 어설프기는 마찬가지였다. 거의 동아리 수준이다.
어찌 되었든 이연우는 환하게 웃었다.
“도와주시면 감사할 뿐이죠.”
그래, 머리 쓰는 일을 자신이 굳이 할 필요가 없다. 전문가한테 맡기면 되지 않나. 자신은 6레벨로서 존재하기만 하면 될 뿐이었다.
생존기구 문제로 잠시 대화를 나누다가, 그들이 머리를 툭툭 쳤다.
- 이야기가 이상한 곳으로 흘렀군. 그보다, 중소집단과 차원 통로 문제를 이야기해야지.
새로운 질서가 만들어졌다.
당연히 불협화음이 있을 수밖에 없다. 사람 납치해 기계 인간으로 개조하는 신스 다이나믹스, 멸망주의자의 잔당, 다른 속내를 품었을 수많은 중소집단들.
회장이 눈살을 찌푸렸다.
- 그런 것들 하나하나한테 황금을 쓰기에는 아깝습니다.
- 내가 부탁할까?
재미없다는 표정을 짓고 머리를 흔들던 협회장이 말하자, 이사들이 고개를 저었다.
- 일단 조약 체결되면 공문 돌리고, 그 후에 반응 봐서 대응하도록 하지. 그보다는 마법사들이 문제야. 차원 통로 만들고 유지하는 일에 관심이 없어.
회사가 진출할 이차원. 그 통로는 마법사에게 하청을 맡기고, 마법사가 유지보수하기로 계획했다. 관리 및 감시는 모든 집단이 나서고.
회사도 충분히 할 수 있지만, 그건 견제당했다.
극단적으로 회사가 이차원에서 평범한 핵폭탄, 평범한 핵배낭, 이딴 무기를 만들어서 건너올까 걱정되어서.
- 마법사는 나도 좀 알지.
숭배자가 나섰다. 요즘 평범한 세상에서 일상을 누렸다더니, 안색이 아주 좋다.
마법사의 분파나 마찬가지인 흑마법사의 대표가 웃었다.
- 평범한 공간 하나 제공해.
- …그걸로 되나?
의심스러운 반응들이 돌아온다.
마법사가 어디 평범한 인간인가. 차원을 여행하는 방랑자. 배알이 꼴리면 폭탄 던지고 튀는 테러리스트. 온건한 마법사도 귀찮으면 다 버리고 도주한다.
도주의 달인인 마법사는 차원 통로 같은 일에 진득하게 붙어 있을 인간들이 아니다.
하지만 숭배자는 슬쩍 웃으며 손을 허공에 들었다. 손가락을 빙빙 돌려가며 마법진 같은 것을 그렸다.
- 마법사들은 발견과 개척과 모험에 미쳤지. 그들의 마법이 평범한 공간에서 안 통한다는 건, 그만큼 그들의 마법으로 방문할 수 없는 차원이 있다는 뜻이야.
평범한 공간처럼 마법을 배척하는 차원이 있다면, 당연히 발견해야 하지 않겠나.
평범한 공간에도 통할 마법을 개발하기 위해서라도 그들은 협력할 것이었다.
물론 스승 위치의 마법사만 개발과 연구에 집중하고 그 아래 제자들이 노동하겠지만, 마법사의 위계질서가 그런 것이었다. 스승은 지옥 끝까지라도 찾아가 제자를 잡아 오는 인간들이다.
스승의 추적을 피해 달아날 수 있는 마법사야말로 제자를 벗어난 정식 마법사였다.
이사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 그러면 마법사 쪽에 연락 넣어보지. 오늘 의논할 일은 끝이군.
그렇게 회의가 마무리되었다.
이연우가 기지개를 쭉 켰다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사원들과 송별회는 마쳤지만, 아직 짐을 옮기지는 않았다.
생존기구가 그럴듯하게 자리를 잡기 전에는 이사할 생각이 없었다.
심심한 마음에 이연우는 조사반 사무실로 찾아갔고.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다. 최재민이 이연우의 머리 위를 보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형. 부모님 부상 상태라는데. 형도 알아요?”
“…뭐?”
이연우는 더 생각할 겨를도 없이 실타래를 잡아채, 공간을 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