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딩
‘집으로.’
실타래를 붙잡기 무섭게 이연우가 보는 세상이 변했다. 취업 후 처음 내려가는 집이었다. 추억이 떠오르는 어린 시절의 냄새가 났으며, 조금도 변하지 않은 듯한 집이 보였다.
나물 따위를 말리는 거실, 시골집의 스테레오 타입 같은 것.
하지만 향수에 젖을 시간도 없다.
안방 안에서 끙끙 앓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연우는 허겁지겁 뛰어 문을 벌컥 열었다.
“엄마!”
“죽는다, 죽어.”
다리에 깁스를 하고 이불 위에 누워있던 이연우의 엄마가 머리만 살짝 들었다. 그 주름진 눈이 커졌다. 오랜만에 보는 아들이 그곳에 있었다.
“내가 죽을 때가 됐나. 왜 헛것이 보이지.”
집 나간 아들놈이 이렇게 갑자기 집에 내려올 리가 없는데. 그럴 애가 아닌데.
‘저승사자인가?’
엄마가 얼른 주변에 둔 물컵을 집어 들었다. 당장이라도 던질 듯 손이 뒤로 당겨졌다.
이연우는 의사의 손길이 닿은 깁스와 약봉지 따위를 보다가, 조금 마음을 놓으며 엄마 옆에 주저앉았다.
“어쩌다 다쳤어.”
“진짜 연우니?”
“그럼 진짜지 가짜….”
가짜가 올 수도 있지. 무슨 도플갱어 같은 거나 기억을 구현하는 이상개체가 나타날 수도 있고, 적대집단이 6레벨의 가족을 인질로 잡으려고 할 수 있지 않나.
이연우는 혼자 생각을 하고는, 얼른 말을 돌렸다.
“뭐에 다친 거야?”
“멧돼지에 치였지 뭐니. 재빠르게 피해서 그나마 다리 하나로 끝났지. 살았으면 됐다. 걱정하지 마. 그보다 너는 무슨 일로 여까지 내려왔다냐.”
“아. 멧돼지.”
이연우는 그제야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렸다.
자신이 어린 시절을 보냈던 시골 마을. 야생과의 전쟁이 벌어지던 전장.
갱단을 형성한 들개 무리는 피에 굶주려 길거리를 떠돌았다. 멧돼지나 고라니 따위의 산적은 호시탐탐 농부의 작물을 도적질하기 위해 습격을 나왔으며, 수풀 속에는 암살자처럼 은신한 뱀이 도사렸다.
그뿐인가.
하늘에서는 까치와 참새는 물론 매 같은 맹금류가 빙빙 돌며 먹잇감을 찾았고, 지상에서는 시체청소부들이 시체가 생기기만을 기다렸으며, 지하에서는 두더지와 드렁허리 따위가 대지를 뒤집었다.
그것들 전부가 농부의 적이었다. 삶이란 시체 위에 형성된 것임을 어린 시절부터 체감했다.
‘원래 이런 동네였지.’
이연우가 어색하게 웃었다.
심심하면 사람 죽었다는 소식도 꽤 들려왔던 걸로 기억했다.
저기 옆집 아저씨가 버섯 가챠에 실패해 독버섯을 먹고 죽었다, 저기 뒷집 노인이 들개 무리와의 장렬한 전투 끝에 사망했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학생이 술 먹고 오토바이 몰다가 하천 아래로 머리부터 떨어졌다….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다이나믹한 시골의 삶.
‘어쩌면 생존본능 덕분에 죽지 않고 살아남은 게 아닐까?’
그렇게 이연우가 생존본능이 처음부터 깨어 있었을 가능성을 점치고 있자니, 엄마가 이불을 걷어내며 몸을 일으켰다.
“애가 일하더니 신수는 훤해졌는데 왜 이렇게 말랐다니. 밥은 먹었니?”
“아. 먹었지.”
엄마의 정을 이연우는 단호하게 거부했다. 그보다 중요한 일이 있었다.
“아빠는?”
“그 양반 일은 물어보지도 마라. 자연인 하겠다고 저기 산에 집 짓고 들어간 인간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게 뭐야.”
투덜거린 엄마가 목발을 짚으며 절뚝절뚝 방을 나갔다. 이연우의 거부는 거부한다. 무슨 일로 내려왔는지는 몰라도 과일이라도 깎아 먹일 생각이다.
이연우가 서둘러 엄마를 쫓아갔다.
“아냐! 나 아빠도 한번 보고 올게. 조금 있다가 아예 저녁 먹을게.”
“안 돼. 저기 김 씨랑 박 씨가 멧돼지 사냥하러 올라갔어. 다른 동네 사냥꾼도 올라갔으니까, 괜히 서성대다가 총 맞지 말고 집에 있어.”
해수 사냥 중 오발 사고는 드물지 않았다. 실제로 이 동네에도 총 맞은 사람이 있었고.
물론 이연우가 고작 엽총에 다치지는 않겠지만, 그걸 밝히기는 좀 그랬다.
평범한 농부로서 살아온 부모님에게 갑자기 이상개체니 괴물이니 하는 현실을 굳이 알려드릴 필요가 없다.
‘그러면 지금 가능성이….’
이연우는 한 손을 등 뒤로 돌려 감췄다. 그 손 위로 실타래가 일렁였다. 자신의 가족이 사망할 가능성을 감지한다.
사망이 일어날 가능성만 대충 확인한 이연우가 안도의 한숨을 푹 쉬었다.
‘큰 문제는 없네. 밥이나 먹자.’
과일을 꺼내는 엄마를 향해, 이연우가 외쳤다.
“엄마 나 밥 먹을래.”
“늦었어. 과일 이거 곯아서 썩기 전에 먹어야 해. 과일로 배 채우렴.”
부엌으로 들어간 엄마는 과일 상태를 확인하고는, 냉혹하게 말했다.
***
멍든 사과와 까맣게 물들어 물렁해진 바나나 따위가 접시에 올라왔다. 며칠만 더 두면 어디 트랩에나 미끼로 써야 할 수준으로 상할 것이다.
이연우는 마지못해 과일을 입으로 넣었다. 맛이 없었다. 아니, 사실 과일은 먹을 만했지만 엄마의 잔소리 때문에 입맛이 없었다.
엄마는 오랜만에 내려온 자식에게 걱정을 담아 잔소리를 끝도 없이 쏟아냈다.
“그래서 도대체 무슨 일을 하는 거니? 명절에도 일하지를 않나, 돈을 많이 받지를 않나. 그거 위험한 일 아니니?”
이연우가 단편적으로 흘린 정보에서 위험의 편린을 감지하고 걱정하였으며.
“만나는 사람은 있니? 여기 살던 네 또래들은 다 결혼했다는데.”
명절 단골 질문들이 멈춤 없이 흘러나오기도 했다.
이연우의 안색이 까맣게 죽었다. 그는 우적우적 사과를 씹으며 눈을 질끈 감았다. 생존기구의 대표, 이상세계의 6레벨. 이렇게 잔소리에 굴복해야 하는가?
이연우가 주머니에 손을 쑤셔 넣었다. 손아귀에 확률의 실타래가 잡혔고, 이연우는 가능성을 구현했다.
‘후유증이나 문제 없이 잘 회복될 가능성.’
아무리 그래도 자신이 애초에 태어나지 않았다고 인식하게 만들거나, 기억이나 정신을 조작할 수는 없지 않나.
평범한 수준에서 축복을 내린 이연우가 슬그머니 말을 돌렸다.
“직장 그만뒀어.”
“그래, 잘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수상했어. 아예 내려올 생각이니?”
이상하게 좋아진 몸 상태에 엄마가 방긋 웃으며 말했다.
“농사나 이어받아라. 먹고살 돈은 충분히 벌어.”
“내가 무슨 농사를 안다고.”
“얘가 뭘 모르네. 요즘 시대가 어느 때인데. 그거 다 용병 쓰면 돼.”
과학 기술 같은 것보다 유서 깊은 농법. 땅만 제공하고 사람을 부린다. 트랙터도 필요할 때만 대여할 수 있었으며, 농업에 종사할 사람도 고용해서 쓸 수 있었다.
잘 모르는 게 있으면 대충 동네 사람한테 물어봐도 되고, 남들 하는 거 눈치껏 따라 하면 되었다.
“인건비 생각해도 생계에 문제는 없어.”
“됐어. 이미 다음 직장 생각해둔 게 있어.”
이연우가 얼른 고개를 내저었다. 농사는 무슨. 농사를 한다 치면 저기 녹색협회처럼 괴상한 이상개체를 만들어 팔겠지.
‘그것도 재밌으려나?’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하나 먹으면 하루치 칼로리와 영양분을 모두 섭취하는 과일이나 재생력을 올려주는 풀떼기나 정신력을 도핑하는 찻잎이나.
생존기구다우면서도 집단의 수입원으로 괜찮지 않을까?
그렇게 잡담을 나누다 보니, 저녁이 되었다.
정말로 과일만 배터지게 먹은 이연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슬슬 아빠를 찾아가기 전에 만날 사람들이 있었다.
“그, 뭐지. 최근에 귀농한 사람들 있어?”
“있지. 불쌍한 젊은이들 있는데, 어휴. 텃세 때문에 이만저만 고생하는 게 아니야.”
엄마가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시골 텃세에 고통받는 젊은이들이 불쌍한 표정이다.
이연우가 지나가듯 물었다.
“근처에 살아?”
“저기 담벼락에 이장이 비료 포대 쌓아둔 집.”
분명 회사에서 이연우의 부모를 보호하기 위해 파견한 직원일 터. 이연우가 집을 나섰다.
***
뭐로 만들었는지 냄새나는 비료 포대가 벽을 따라 잔뜩 쌓여 있다. 안쪽에는 2층 건물과 마당이 펼쳐져 있었고, 잡초가 무성했다.
이연우는 얼기설기 만들어진 철창문 앞에서 안쪽을 엿보다가 목소리를 높였다.
“계십니까!”
잠시 뒤, 안쪽 건물에서 젊은 사람이 나왔다. 다크 서클이 내려온 남자는 고약한 비료 냄새 때문에 코를 막으며, 스트레스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농촌의 광인은 질리게 겪었다. 또 무슨 일인지 호기심이 들기보다는 진저리가 쳐졌다.
“또 뭔 일-”
신경질적으로 철문을 연 남자의 몸짓이 멈췄다. 이연우의 얼굴을 못 알아볼 리가 없다.
순간 아찔한 충격이 스쳤다.
‘망했다!’
이연우의 어머니가 멧돼지에 치였다. 그걸 예방하지 못했다고 따지러 온 것이 분명하다. 다른 누구도 아닌, 6레벨이자 우호집단의 수장이 말이다.
“죄송합니다. 저희 측 경호가 면밀하지 못한 탓에-”
반사적으로 머리부터 숙인다. 하지만 이연우는 그런 남자의 머리를 붙잡아 막은 뒤 안으로 밀어 넣었다.
“멧돼지 일은 괜찮습니다. 원래 그런 일은 가끔 일어나서. 그보다 시골까지 내려와서 고생하십니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남자가 거듭 손을 내저어도, 이연우는 안타까웠다.
정예요원의 가족을 비밀리에 경호하는 회사의 엘리트. 괜히 시골로 파견되어 고통을 겪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든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실타래를 쥐어 대충 행운의 축복을 약하게 준 이연우는 인사도 마쳤겠다 그만 돌아가려고 했지만, 남자가 얼른 이연우의 옷소매를 잡아챘다.
“그, 이연우 님. 이번 사고에 수상한 점이 있어 저희 쪽 요원이 산을 수색하고 있습니다.”
“…수상한 점이요?”
이연우의 움직임이 멈췄다. 단순한 사고면 신경 쓸 것이 아니다. 하지만 자신을 노린 음모라면….
이연우의 눈에 기이한 빛이 서렸고, 남자는 침을 꿀꺽 삼켰다.
“지금이 멧돼지가 내려오는 시기는 아닙니다. 하지만 멧돼지만이 아니라 여러 산짐승이 도망치듯 산에서 내려왔습니다.”
“산에 무슨 일이 있다?”
“아무래도 수상하죠. 일단 이연우 님 아버님 근처에 파견한 요원이 우선 산을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이연우가 고개를 돌렸다. 어스름한 어둠이 내리는 저녁. 이연우의 시선이 어둠에 잠긴 산을 보았다.
그 손에 꿈틀거리는 확률의 실타래가 잡혔다. 이전처럼 대강 부모님의 생존 여부만 확인하는 것이 아니다. 관련된 확률의 실타래를 전부 세세하게 뜯어보았다.
그것만으로는 부족해 때로는 지식을 얻을 가능성을 구현하기도 했으며, 천리안이나 과거시 같은 것도 섞었다.
전능한 힘으로 전지를 어설프게 따라 한 이연우의 눈동자가 쉴 새 없이 움직이며 허공을 더듬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이연우의 표정이 이상해졌다.
“마법사?”
뭔, 사람 하나가 산속에 어설프게 이차원의 문을 열었다. 마법사라고 하기에는, 우연히 얻은 마법서로 흉내만 내다가 일으킨 사고.
남자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마법사가 엮였습니까?”
“그런 건 아닌데, 어쨌든 비슷합니다. 제가 나서겠습니다. 빨리 처리하는 게 좋겠네요.”
이연우가 보았던 과거, 아마추어 마법사가 공터를 고깃덩이로 만들었다. 그 문은 지금도 열려 있다. 미래에서는 점차 침식이 번져 산이 온통 고깃덩이로 변했다.
‘아. 왜 또 사고야.’
이연우가 신경질적으로 주먹을 쥐고 이동했다.
스승도 없이 마법서만 보고 독학한 아마추어 마법사. 납치해서, 아니, 체포해서 회사에 넘겨야겠다. 차원 통로나 관리하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