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Chapter 1. 회귀물의 주인공(2)
[도착 예정 시간 8 : 16 PM]
시현은 급히 차를 몰아 삼아대병원을 향했다.
“왜 이렇게 막히는 거야?”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마음은 급한데 아까부터 자꾸 교차로를 통과하기 직전에 신호가 바뀌고 있다.
그것도 번번이.
차를 버리고 달려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괜찮을까?’
화상으로 바이탈이 흔들릴 정도라면 분명 위독한 상황일 터.
마지막으로 보았던 김석용과 수간호사의 얼굴이 아른거렸다.
‘혹시 개폐장치 때문에?’
화염에 휩싸인 병동에 갇혀 비명을 지르는 사람들의 모습이 자꾸만 떠올랐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현기증이 일었다.
아무리 숨을 깊게 들이마셔도 숨을 쉬는 것 같지 않은 느낌.
공황장애 환자들이 진료실에서 말하던 증상 그대로였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는 느낌이 들 때쯤 녹색등이 켜졌다.
“저거 뭐야? 어…… 어?”
신호를 받아 직진하려는데, 반대편 차로에서 화물차 한 대가 중앙선을 넘어 이쪽으로 돌진하고 있었다.
빵. 빵. 빠아아아앙.
연거푸 경적을 울려댔으나 화물차는 경로를 바꾸지 않고 그대로 달려왔다.
‘피해야 해.’
시현은 즉시 악셀을 끝까지 밟으며 핸들을 왼쪽으로 확 꺾었다.
계기판의 RPM이 마구 치솟았다.
잘하면 정면충돌은 피할 수 있는 상황.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다음 순간 화물차도 방향을 틀어 이쪽으로 돌진하기 시작했다.
마치 먹이를 노리는 맹수와도 같은 움직임이었다.
‘이건 못 피해.’
시현은 반사적으로 핸들을 꼭 쥐고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잠시 뒤 화물차의 육중한 차체가 시현이 탄 세단의 보닛을 집어삼켰다.
* * *
“으윽.”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구겨진 보닛이 시야를 덮었고 매캐한 탄내가 진동했다.
에어백이 화약으로 터진다는 건 사실인 모양이었다.
‘나가야 해.’
좁아질 대로 좁아진 운전석.
어떻게든 빠져나오려 발버둥 쳤으나 다리가 끼었는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바닥을 딛는 감각이 없……어?’
어디 한군데 크게 부려졌어도 이상할 것이 없는 상황인데 아까부터 통증이 느껴지지 않는다.
‘척수손상인가?’
발가락과 발목은 물론 무릎 관절까지 전혀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시현의 등 뒤로 식은땀이 흘렀다.
하지만 움직이지 않는 몸과는 반대로 생각의 흐름은 그 어느 때 보다 기민했다.
‘병변 레벨은 L3(허리뼈 3번 위치) 정도…… 의식을 잃어서는 안 돼.’
일단 무리하게 탈출하려는 시도부터 중단하기로 했다.
섣불리 몸부림치다가는 남아있는 신경마저 손상될 수 있었다.
똑똑똑똑.
“여보소! 괜찮응교? 대답 좀 해 보이소!”
국방색 패딩 차림의 중년 남성이 너덜너덜해진 차 유리를 두드리며 소리쳤다.
트럭 운전기사였다.
“먼저 119에 신고부터…… 그리고 삼아대병원 응급실에 연락해주세요.”
“예! 알았심더!”
그의 말에 연신 고개를 끄덕이는 트럭 운전기사.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지만 일단 의사 전달은 된 것 같았다.
시현의 눈이 크게 떠진 것은 바로 그다음이었다.
트럭 운전기사가 차를 버리고 도망치듯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 것.
‘어, 어디로 가는 거야?’
경찰? 아니면 119?
도움을 청해야 했다.
시현은 조수석 끝에 걸쳐 있는 핸드폰을 향해 죽을힘을 다해 손을 뻗었다.
찌릿.
하지만 곧바로 찾아온 극심한 두통.
문자 그대로 머리가 깨질 것 같았다.
- 안 오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어차피 지금 조사 중이라…….
불현듯 출발하기 전 자신을 만류하던 후배의 말이 떠올랐다.
- 부디 조심하십시오. ……선생님도 위험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 면담에서 자신에게 조심하라고 신신당부하던 환자의 모습도.
‘어쩌다가 일이 이렇게…….’
딩동!
다음 순간, 환청인지 실제 감각인지 알 수 없는 알림음이 귓가를 맴돌았다.
운전대를 쥔 손아귀에 힘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끼며 시현은 점차 의식을 잃어갔다.
* * *
“헉헉.”
어두운 방 안.
시현은 깊은숨을 몰아쉬며 몸을 일으켰다.
삐비비비- 삐비비비-
어디서 들어본 듯한 익숙한 알람이었다.
‘여긴?’
깨어난 장소가 대수겠는가.
그 사고를 당하고도 죽지는 않은 것 같으니 일단은 다행이었다.
심지어 다리도 정상적으로 움직였다.
시현은 황급히 시각부터 확인했다.
[6:00 AM]
다행의 연속이었다.
크게 다친 줄 알았던 몸은 정상이었고 시험시간까지 여유도 있다.
후우.
절로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잠깐만.’
하지만 그 호흡이 끝나기도 전에 시현은 그대로 굳어버렸다.
정지화면인 양.
핸드폰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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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 - Day ]
20XX 년 3월 2일 오전 6:00 날씨 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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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땅히 전문의 시험 당일이었어야 할 오늘은
4년 전의 그 날.
정신과 레지던트 1년 차 첫 근무일로 바뀌어있었다.
“핸드폰이…… 왜 이래?”
띠띠띠띠 띠리링.
황당함이 채 가시기도 전에 누군가 도어락을 열고 들어왔다.
“시현아, 일어나야지. 첫날부터 지각할 거냐?”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시현의 윗년차 김석용이었다.
“서, 선생님!”
김원기가 장난 전화라도 했던 것일까.
화재로 중환자실에 누워 사경을 헤맨다던 사람치고는 너무 건강해 보였다.
“많이 다치신 거 아니죠? 괜찮으세요? 근데 여길 어떻게?”
시현은 김석용의 양 팔을 붙든 채 말을 이어갔다.
“시, 시현아?”
“네?”
“잠이 덜 깬 거야 술이 덜 깬 거야? 어제 얼마나 마셨어?”
김석용이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시현을 바라보았다.
“…….”
“그리고 다치긴 누가 다쳐? 아직도 여기가 인턴 숙소인 줄 알아?”
김석용의 얼굴이 미묘하게 젊어 보였다.
당직 때 즐겨 입던 하늘색 수술복과 검은색 크록스까지.
레지던트 시절 그 모습 그대로였다.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보니 너무도 익숙한 풍경이었다.
2층 침대.
철재 캐비닛.
그리고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삼아대병원 본관 건물.
시현이 일이년차 내내 살다시피 한 곳.
정신과 의국(醫局)이었다.
‘내가 왜 여기에?’
열린 방문에는 정신과가 정신건강의학과로 개명하기 전에 쓰던 ‘정신과 의국’ 사인이 걸려있다.
‘어젯밤에 여기서 잠든 건가?’
분명 병원으로 돌아오는 길에 큰 사고를 당했는데 상처 하나 없이 멀쩡한 상태로 숙소에서 깨어났다.
게다가 불과 몇 시간 전까지도 모든 수련 과정을 마치고 전문의 시험을 앞두고 있었는데 눈을 떠보니 갑자기 1년차 레지던트가 되어버렸다.
“선생님 그런데 제가 왜 여기에…….”
“잠깐만. 얘가 오리엔테이션(Orientation 시간, 장소, 사람에 대한 감각)이 떨어져 있네. 어디 아픈 데 없어?”
김석용이 급 걱정스러운 말투로 물었다.
“속이 좀 안 좋아요. 목 뒤도 뻣뻣하고 두통도 약간…….”
시현이 얼굴을 찡그린 채 윗배를 쓰다듬었다.
“혹시 열나니? 어지러운 건 없고?”
오심, 두통, 경부 강직 그리고 지남력 저하까지.
가볍게 볼 상태가 아니라는 판단이 김석용의 뇌리를 스쳤다.
그저 비몽사몽한 상태라고 보기에는 시현의 모습이 평소와 달라도 너무 달랐다.
그는 즉시 펜라이트로 시현의 동공반응을 살폈다.
눈앞에 불빛이 비치거나 말거나 시현은 이 상황을 어떻게든 이해해보려 애쓰고 있었다.
‘꿈인 건가? 그것 말고는 달리 설명할 방법이…….’
한참 만에 시현은 뭔가 깨달았다는 듯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상황인지 이해했습니다. 제가 왜 여기 있는 건지도요.”
“그럼! 1년차가 당연히 의국에 있어야지! 이제 정신이 좀…….”
“프로이트가 말했죠. 꿈은 무의식에 이르는 왕도라고.”
시현이 눈을 빛내며 김석용을 바라보았다.
“실은 어제 큰 사고가 있었습니다. 하지에 감각이 없었으니 어쩌면 다시 걷지 못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너 지금 서 있잖아. 무슨 소리야?”
김석용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건 아마도 다쳐서 장애가 생긴 걸 부정하는 마음이 꿈에 반영된 것이겠지요.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시작해보라고……. 선생님이 이렇게 건강한 모습으로 나타나신 것도 같은 맥락일 겁니다. 의식에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불안을 억압하는 방어기제죠. 그건 아마도 죄책감을 줄이기 위해서…….”
“시, 시현아? 지금 무슨…… 뭐? 억압? 방어기제?”
“그래도 다행인 게 꿈을 꾸고 있다는 건 그래도 제가 아직 살아있다는 뜻이잖아요? 정확히는 REM 수면 단계에 있다는 것이고, neuronal activity가 각성시와 거의 비슷한 수준이라는 의미니까요.”
“…….”
그러거나 말거나 시현은 중얼거리며 설명을 이어나갔다.
비록 꿈속이지만 지금 상황을 최대한 정리해보고 싶었다.
띠띠띠띠 띠리링.
그러는 사이 또 한 사람이 방으로 들어왔다.
“일찍 나오셨네요? 시현이도 일어났어?”
4년간 같이 일했던 동기 황진호였다.
“동기인 진호가 나타났다는 건 아무래도 인정욕구와 경쟁에 대한 압박감을 의미하는 게 아닐까 싶은데…….”
“선생님, 얘 왜 이래요?”
황진호, 정확히는 시현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황진호의 이미지가 말했다.
“마침 잘 왔다. 시현이 Brain CT 찍어봐야 할 것 같아. 부축해서 바로 응급실로 가자.”
“예? 어제까지 멀쩡하던 애가 왜…….”
“지금 하나도 안 멀쩡해! 서둘러! 어서!”
“…….”
시현은 어리둥절했지만 달리 할 말을 찾지 못했다.
더 깊게 생각할 겨를도 없이, 시현은 두 사람에게 끌려가다시피 하여 의국을 나섰다.
* * *
“어? 저희 정신과 환자 없는데?”
응급실 차지 간호사가 아침 댓바람에 무슨 일이냐는 표정으로 물었다.
“접수 좀 해주세요. 천시현 선생이요.”
“천쌤이 왜? 아! 그저께 인턴 마지막 날이라고 너무 달린 거 맞죠? 우리 취객 안 받는 거 아시면서 여기 데려오시면 어떡해요?”
차지 간호사가 놀리듯 말했다.
“그런 거 아닙니다. 응급으로 Brain CT 촬영해야 할 것 같은데, 조영제 쓸 거니까 NS 500cc 18 게이지로 잡아주세요. Sample(채혈)도 같이 해주시고요.”
김석용이 스테이션에 앉아 처방을 입력하며 말했다.
장난기라고는 하나도 없는 진지한 표정이었다.
“어머! 천쌤 진짜 어디 아픈 거예요? 바로 준비할게요.”
액팅 간호사가 잽싸게 수액 세트가 담긴 트레이를 가지고 왔다.
“아, 아야!”
왼 팔뚝을 파고드는 주삿바늘.
한 방울 한 방울 혈관을 타고 들어가는 노말 셀라인.
채혈한 피를 보라, 빨강 그리고 노랑색 튜브에 나눠 담는 간호사의 익숙한 손놀림까지.
더없이 생생한 감각이었다.
“바로 가자. CT실 지금 비었단다.”
김석용이 촬영실에 전화를 걸어 바로 brain CT를 찍을 수 있도록 준비해뒀다.
“제가 데리고 다녀올게요. 진호는 올라가서 회진 준비해.”
“네! 선생님!”
황진호가 병동으로 올라가자 김석용이 시현에게 휠체어를 권했다.
“여기 앉아.”
“괜찮습니다. 걸어서 갈 수 있습니다.”
“안 괜찮아 보이니까 어서 타! 사진 빨리 찍어야 해!”
딱히 마다할 명분도 없었기에 시현은 순순히 휠체어에 올랐다.
응급실을 나와서 일 층 로비를 지나 지하에 있는 촬영실까지.
김석용의 발걸음에서 다급함이 느껴졌다.
출근하던 직원들이 발걸음을 멈추고 그들을 바라보았다.
지금은 병원을 그만둔 몇몇 직원들의 얼굴도 눈에 들어왔다.
‘쓸데없이 디테일하네. 분명 꿈인데.’
“결과는 일단 병동으로 올라가서 확인하자. 우리도 회진 준비해야지.”
일사천리로 검사를 마치고 김석용이 말했다.
“일단 휠체어 타고 있어. 조영제 때문에 어지러울 수 있으니까 수액도 달고 있고.”
“아, 네…….”
선배 레지던트가 손수 밀어주는 휠체어를 타고.
시현의 첫 출근은 그렇게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