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 죄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길이 끝난 곳에서 마차가 멈췄다.
나무 한 그루 없는 메마른 황야. 뙤약볕을 막을 그늘도 없이, 지상의 모든 존재가 열기에 신음한다. 흙더미마저 더위에 지쳐 일렁이는 날숨을 내뿜는 광야에서 우뚝 선 표지판이 이 길의 끝을 선언하고 있었다.
두 경관은 표지판을 보고 그들이 제대로 찾아왔음을, 또 다음 작업에 착수해야 함을 깨달았다.
경관들이 갈라졌다. 한 명이 표지판에 다가가는 동안, 다른 한 명은 허리춤에 매달린 강철 삼단봉을 만지작거리며 차량 뒤편으로 향했다.
차량 뒤편으로 향한 경관은 잔뜩 긴장한 채, 그의 유일한 무장인 강철봉을 한 손에 꼬나쥐었다. 손바닥에 난 땀 때문에 강철봉이 자꾸 미끄러졌지만 그것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호송용 차량은 보통 범죄자를 호송하는 데 쓰이며, 군국의 법을 어기는 간 큰 인간들은 빈틈을 보일 때마다 반항하기 마련이었다. 지금까지 경관은 그런 범죄자에게 강철봉의 호된 맛을 보여주었고 그 효과에 상당히 만족하고 있었다.
그러나 오늘, 그는 어깨에 견장을 단 뒤 처음으로 이 강철봉이 부족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무저갱의 감옥 탄탈로스. 사회에 결코 섞일 수 없는 흉악범들만 가둔 곳이며, 사람이 들어가기만 하고 나간 적은 없다는 전설적인 땅.
거기 갇힌 죄수들을 알기 위해서는 신문기사보다 역사 교과서에서 찾는 게 더 빠르다고 전해지며, 강대한 군사력을 자랑하는 군국조차 그들을 죽이지 못하고 가두었다고 한다. 전투력이 나라와 비견되는 괴물이, 짐승의 왕이, 홀로 군대를 무찔렀다는 전사가 평범한 주민처럼 돌아다닌다는 죄악의 땅.
오늘 그들이 데려온 것은, 바로 그 탄탈로스에 갇힐 범죄자였다.
'젠장, 분명 초범이라 들었는데, 도대체 어떤 흉악한 범죄를 저질렀기에 곧바로 탄탈로스로 송치된 거야?'
나 역시 그의 생각에 열렬히 동의했다. 도대체 무슨 죄를 지었다고 별다른 재판도 없이 바로 탄탈로스에 보낼까? 이토록 무해하고 건전한 사람을 말이다. 분명 중대한 착오가 있는 게 분명했다.
경관은 길게 심호흡을 하고는 강철봉으로 뒷문을 쾅쾅 두들겼다.
"두들겨 맞기 싫으면 문에서 떨어져!"
군국이 범죄자를 대하는 방식은 버려야 할 폭발물을 대하는 것과 비슷하다. 극도의 주의를 기울이며 포장지로 꽁꽁 싸맨다는 점에서.
아무리 사소한 죄를 지은 잡범이라도 사지구속에 두건까지 씌우는 게 기본이며, 경관의 재량에 따라 재갈을 물리거나 구속복까지 입힌다.
호송할 사람이 탄탈로스에 수감될 범죄자란 사실을 전달받은 경관은 자신이 아는 최대한의 구속장치를 해뒀다. 안대, 두건, 재갈과 구속복까지. 보통 사람이라면 호흡 곤란으로 사망해도 이상하지 않을 조치였다.
그리고 나는 보통 사람이었기에 실제로 호흡이 곤란했다. 살려 줘.
생명에게는 필수적인, 허파의 운동조차 자유롭지 않은 죄수를 상대로도 경관은 긴장을 풀지 않았다.
상대에게 상식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누구도 아니고, 그 악명 높은 탄탈로스에 수감될 범죄자가 아닌가.
그처럼 말단 경관에게 일을 맡긴 걸 보면 위험도가 높은 범죄자는 아니겠지만, 그래도 경계를 소홀히 할 수는 없었다. 의무가 아니라, 그 자신의 목숨을 위해서.
뭐, 사실 소홀히 해도 상관없었을 것이다.
나는 구속복은커녕 제대로 묶은 밧줄조차 해제할 능력이 없었으니까.
"연다!"
빌어먹을 경관은 빈틈을 보이지 않았다. 경관은 뒷문의 문을 연 뒤 빠른 걸음으로 물러났다. 온 몸에 힘을 가득 준 채, 강철봉을 꼬나쥐고 범죄자를 겨냥했다.
뒷문이 열리고, 저주받을 흉악범이 다시 한번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처음과 똑같이 여전히 구속복 속에 갇힌 채로, 바닥을 뒹굴며.
가둘 때와 똑같은 모습에 조금 안심한 경관은 그에게 다가가려고…. 하다가 갑자기 강철봉을 머리 위로 들었다. 나는 그 생각을 읽고는 들리지 않을 신음을 내질렀다.
아, 잠깐. 멈….
"웁!"
강철봉이 내 복부를 강타했다. 뼈까지 닿는 충격에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질렀으나 그것은 재갈에 막혀 나오지 못했다. 나는 아무런 저항도 못하고 강철봉에 얻어맞았다.
확인사살이라도 하듯 강철봉을 대여섯 번 내려친 경관은 내 반응을 보고 안도했다.
'다행히도 구속은 풀리지 않은 모양이군. 기습당할 염려는 없겠어.'
확신을 얻은 경관이 구속복의 벨트를 잡아끌었다. 차량 바닥에 널브러졌던 내 몸은 이리 치이고 저리치이다 땅으로 굴러떨어졌다. 힘없이 질질 끌려오는 내 모습을 본 경관이 의아해했다.
'탄탈로스에 갇힐 흉악범이라 들었는데, 뭐지? 손맛은 평범한 잡범이랑 비슷하잖아?'
경관의 생각을 읽은 나는, 차오르는 울분을 삼키며 몸을 뒤틀었다.
그야 당연하다.
나는 탄탈로스에 수감될 범죄자도, 세기의 테러리스트도 아니다. 역사서에 기록될 범죄는커녕 뒷골목에서 사기나 조금 칠 뿐인,
그저 마음을 읽는 능력이 전부인 잡범이니까!
***
평소처럼 호구들이랑 집문서를 깔고 카드게임을 하고 있던 터였다.
도박이 나쁘다는 건 편견이다. 돈이 있거나, 빽이 있거나, 아니면 조금 특이한 경우지만 나처럼 독심술이 있다면 도박은 땅에서 돈을 쓸어 담는 것과 같다. 세상에는 잠깐의 스릴을 위해 전재산을 기꺼이 지불하고자 하는 머저리들이 많았다. 나는 그들의 은밀한 욕망을 온전히 이해해주는 고해소의 신부나 마찬가지였다. 십일조 대신 딴 돈의 반만 가져가서 그렇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호구들을 상대로 집 한 채 마련하던 참이었다. 갑자기 바깥이 소란스러워졌다.
판에 끼지도 않으면서 개평을 받는 아랫집 할머니가 신호를 보냈고, 안 붙는 뒷패에 끙끙거리던 호구가 화색이 되어 판을 엎었다. 내 집 마련의 꿈을 뒤로 미루며 흔적을 숨기고 기다리는데, 못 보던 헌병들이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불시검문을 하는 헌병과 판을 정리한 도박꾼들. 거기까지는 늘상 있는 일이었다. 나는 늘 그랬듯 헌병에게도 개평을 나눠주려 품 안에 손을 넣었다.
그 순간 헌병이 내 손목을 붙잡았다.
‘군법에 의거, 너희들을 전원 체포한다.’
불시단속을 나온 헌병대가 이곳에 있는 모두를 두들겨 패고는 붙잡아갔다.
군국은 내 예상보다도 훨씬 미친 나라였다. 나는 자신을 변호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으나 그들은 증거도 증인도 없이 나를 재판에 넘겼다. 내가 중죄인으로 바뀌는 데까지는 만 하루도 걸리지 않았다. 참관인도 없는 법정에서 나는 아무런 저항도 못하고 탄탈로스 노역형을 선고받았다.
내 생각을 읽는 능력은 부조리한 재판장에서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헌병대는 우리가 카드놀이를 하는 척 무언가 작당하고 있을 거라 주장했고 , 판사는 확실한 증거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재판봉을 두들겼다.
땅, 땅, 땅, 유죄. 정의를 상징하는 나무 망치가 자신의 불의함을 사과하며 세 번 머리를 찧을 동안 그 누구도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
논리? 원칙? 그런 게 있었으면 군 정부가 쿠데타를 일으키지 않았겠지.
나는 구치소의 차가운 바닥에 내팽개쳐졌고.
그리고 세계 최악의 감옥, 탄탈로스로 호송당했다.
***
묶인 채 과거를 떠올리니 더 서글퍼졌지만, 경관은 내 사정을 봐주지 않고 질질 끌고 갔다. 그 덕에 나는 내 온 등으로 땅을 느낄 수 있었다. 경관이 벨트를 잡아끌 때마다 돌 섞인 모래가 내 등을 할퀴고 지나갔다.
아아, 대지모시여. 피부가 좀 거치시네요. 보습 좀 해드려야겠는데.
대지모신에게 불경한 기도를 드리며 짐짝처럼 굴려지기를 잠시, 표지판 앞에 서 있던 경관이 나를 끌고 온 경관을 보고 걱정스러워했다.
"경위님, 그래도 됩니까?"
"뭐 어때? 어차피 범죄자인데."
"아니, 제 말은. 탄탈로스에 갇힐 정도의 녀석인데 괜찮겠습니까? 나중에 탈출해서 보복하기라도 하면..."
"당국에서 우리에게 인도할 때부터 안대를 끼고 있었잖아. 이 자식은 내 얼굴이랑 이름도 모를걸?"
경위는 내 구속복에 연결된 벨트를 훅 들었다가 툭 놓았다. 그 탓에 내 몸은 땅에 부딪히고 말았다. 온몸으로 느껴지는 충격에 나는 치를 떨었다.
나는 독심술사거든? 에델파이트의 에비앙 경위. 내가 탈옥하면 보자. 가장 먼저 너 찾아가서 피의 복수를 벌여주마.
"그리고 탄탈로스에 갇혔는데 어떻게 나올 거야? 괜한 걱정하지 말고 전보나 보내."
"경위님이 걱정되서 그렇습니다. 저번에 탄탈로스에서 사고가 났다는 이야기가 있잖습니까. 이 자식도 탈출하면..."
"이 자식이 거기서 탈출할 능력이 있다면 우리 호송 마차에서 탈출했겠지. 쓸데없는 걱정할 시간에 빨리 책임자 불러. 신병을 인도하고 빨리 돌아가자. 탄탈로스에 오는 건 한 번도 너무 많다."
"전보는 보냈습니다. 답신만 기다리면…."
그 순간, 표지판에 있던 화살표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두 경관과, 그들의 생각을 읽고 있던 나는 순간적으로 긴장했다.
강철로 된 몸체에 페인트로 그려진 화살표. 어찌 된 영문인지, 그림일 게 분명한 화살표가 미친 듯이 진동하고 있다. 모두 말없이 표지판을 지켜보았다. 표지판에 그려진 화살표는 점점 흔들림을 더해가더니,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빙글빙글 돌다가-
땅바닥을 가리켰다.
쩡, 무언가 깨지는 소리가 들리고.
그 순간 두 경관은 눈앞에 펼쳐진 경관을 보고는 그들의 눈을 의심했다.
조금 전까지 황야였던 곳에, 어느 순간 밑도 끝도 보이지 않는 무저갱이 자리해있었다.
갑작스레 드러난 무저갱은 너무나도 이질적이었다.
널따란 황야.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찾기 어려우나, 그 덕에 지평선까지 훤히 보이는 탁 트인 평지에,
바닥이 보이지 않는 구멍이 아무런 맥락도 없이 뻥 뚫려있다. 누군가 파놓은 함정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크고 깊었으며, 자연물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부자연스럽다.
경관은 물론 그들의 생각을 읽고 있던 나까지 순간 환각이 아닌가 의심해보았으나, 오직 공허만이 만들 수 있는 끝도 없는 어둠과 안쪽으로 움직이는 바람의 흐름은 그것이 현실이라 주장하고 있었다. 경관은 말을 잃고 심연을 내려다보았다.
경관 둘이 서로 꿈을 꾸는 건가 생각하던 그때.
[확인했습니다.]
무미건조한 목소리가 표지판으로부터 들려왔다. 출처를 알 수 없는 목소리에 경관 둘이 경기를 일으키는 동안 표지판은 기계적인 태도로 말을 계속했다.
[임무 수행을 확인. 죄인의 신병을 저희에게 인도하는 것으로 임무를 마무리해주시기 바랍니다.]
풍경에 압도된 경관이 표지판을 향해 경례했다. 우스꽝스러운 모습이었지만 저 둘은 표지판이 이 무저갱을 만들어낸 능력자라도 된다는 듯 경도되어 있었다.
"추, 충성. 에델파이트의 에비앙 경위입니다. 죄인을 어디로 인도하면 되겠습니까?"
[귀관의 임무는 죄인을 탄탈로스에 호송하는 것입니다.]
탄탈로스.
신이 거인을 가두기 위해 만들었다는, 심연 속 감옥.
물론 신화에서 이름을 따온 것이겠지만, 저 깊은 어둠 속에 탄탈로스가 있다는 것은 쉽게 유추할 수 있었다. 경관이 아득한 무저갱을 내려다보고는 침을 꿀꺽 삼켰다.
"저, 저희가 직접 내려가야 합니까?"
[굳이 귀관이 동행할 필요는 없습니다, 인도 방식은 귀관의 재량에 맡기겠습니다.]
야, 표지판. 잠깐만.
경관이 희미하게 웃었다. 동행할 필요 없이 내려보낸다, 그 말의 진의를 파악했기 때문이다.
아니, 사실 파악했다고 말하기도 뭣하다. 사실 경관은 처음부터 나를 구멍 속으로 던져버릴 생각이 가득했으니까.
표지판의 말은 그의 계획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야, 그쪽 들어."
말뜻을 알아챈 부하 경관이 주저하며 내 다리를 잡았다.
"이, 이거 괜찮은 겁니까? 떨어지면 뼈도 못 추릴 텐데…."
"뼈 좀 못 추리면 어때? 어차피 갱생 불가능한 쓰레기니까 탄탈로스에 가두는 거잖아. 이대로 뒈져버리든 무슨 상관이야."
잠깐, 야, 아니, 선생님. 진정하시고요.
갱생할 테니까. 앞으로는 생각도 적당히 읽고 사기도 좀 덜 칠 테니까, 제발 던지더라도 로프에 묶고 던져주시는 건….
"아무리 그래도…."
"싫으면 너랑 내가 손 잡고 저 밑까지 내려갈까? 앙?"
그건 싫었는지 부하가 냉큼 내 다리를 들었다. 나는 필사적으로 바둥거렸지만 벨트로 단단히 구속된 몸으로는 아무런 저항도 할 수 없었다.
양쪽으로 나를 들은 둘은 호흡을 맞춰 좌우로 흔들었다. 하나, 둘.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움직일 때마다 나는 점점 높이 솟구쳤다가 다시 내려왔다.
그리고 세 번째, 내가 가장 높이 올라간 직후, 나를 잡고 있던 무언가가 사라졌고.
완전한 해방감이 내 몸을 감쌌다.
…아.
그렇게 나는, 아득히 깊은 무저갱 속으로 내던져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