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 무저갱의 밑바닥으로 떨어지다
온몸을 난타당한 듯한 고통이 느껴졌다. 나는 얼굴을 찌푸리며 몸을 일으켰다.
아프지 않은 곳이 없었다. 팔과 다리는 몽둥이로 두들겨 맞은 것처럼 뻐근했고, 바싹 마른 입에서는 모래 맛이 났다. 뻑뻑한 눈을 두어 번 문지르며 주위를 둘러보았으나 여전히 사방이 캄캄했다. 내 눈 문제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멀리서 희미한 빛이 어렴풋이 비추었지만 그것만으로는 세상을 밝히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신음을 흘리며 머리를 긁적이길 잠시, 무언가 이상한 점을 느꼈다.
이상하다. 구속복은 누가 벗겼지? 나는 분명 꽁꽁 묶인 채 무저갱 안쪽으로 던져졌는데.
팔다리 하나 옴짝달싹 못 하게 묶였고, 눈에는 안대를 끼고 입에는 재갈까지 물었다. 신체의 자유를 박탈당한 상태에서 아무런 안전장치 없이 무저갱의 밑바닥까지 던져졌다.
떨어지는 도중에도 나는 살아남기 위해 한참 발버둥을 쳤으나, 군국 특제 구속복은 나 같은 평범한 사람이 어찌할 수가 없는 종류였다. 하긴 군국이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낸 구속복을 내가 푼다는 게 이상하지. 나는 구속복 속에서 무력한 저항만 계속하다가 결국 지쳐 쓰러지고 말았다.
최소한 고통 없이, 대지모신께서 나를 단번에 끝내리라는 사실에 만족하면서.
그런데 이 밑바닥에 떨어지고 나서도 살아있다고? 아무런 안전장치도 없이 몇 시간이 넘게 떨어졌는데?
아니, 그 이전에.
이곳은 분명 대지모신의 저주를 받은 무저갱(無底坑). 밑바닥이 없는 심연인데. 왜 밑바닥이 있는 거지?
모순이다. 무저갱의 밑바닥, 그런 것은 단어의 연결만 보아도 존재하지 않을 터.
이게 어찌된 영문인지, 잠시 생각하던 나는 무언가를 깨닫고는 중얼거렸다. 이거다. 이거 아니면 설명할 방법이 없다.
“아, 내가 죽어서 지옥에 왔구나.”
[아니오. 이곳은 지옥이 아닙니다.]
“끄아앗!”
목소리가 들려온 곳은 내 바로 뒤편이었다. 나는 깜짝 놀라 바닥을 나뒹굴었다. 덜덜 떨리는 몸을 추스르며, 눈앞에 있는 ‘무언가’를 향해 외쳤다.
“누구냐!”
어둠 속에서 두 눈동자가 반짝였다. 유령처럼 흐릿한 존재감을 가진 어떤 존재가 저 자리에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인간은 분명 아니다. 인간이었다면 내가 생각을 읽었을 테니까. 그렇다면 뭐지? 유령? 짐승? 아니면 지옥의 사도?
내가 두려움에 떨며 대답을 기다리는 동안, 그 눈동자는 천천히 다가왔다. 어둠에 익숙해진 내 눈이 그것의 윤곽을 잡았다.
정체를 알아차린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그것을 불렀다.
“골렘?”
유령도, 짐승도 아니었다. 그나마 지옥의 사도가 가장 가까운 설명이리라.
내 앞에 있는 그것의 정체는, 군국이라는 지옥같은 나라에서 만들어낸 군용 마도 골렘이었으니까.
오직 원통과 블록만을 사용해서 인간을 흉내낸다면 이런 모습일까. 골렘이 수정구로 만들어진 눈을 빛내며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골렘의 입가에 있는 스피커에서 기계적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본관은 군국 통신병 에이비 대위입니다. 귀하는 금일부로 교육대에 인도되었으며, 본관의 통제에 따라 주어진 임무를 수행하여야 합니다.]
마도 골렘, 사용자와 싱크로하여 움직이는 원격 조종 타입. 조종하기 편리하여 자주 사용되곤 하는 군국의 장비다.
나는 그 골렘을 보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한탄했다.
“골렘도 지옥에 떨어졌나? 쯧쯧. 얼마나 사람을 많이 썰었으면…. 군국의 골렘으로 태어난 자신을 원망해라.”
[이곳은 지옥이 아닙니다. 혹 믿음이 가지 않는다면 주위를 둘러보시기를 권장합니다.]
골렘의 말을 따라 주위를 둘러보았다.
땅은 군국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콘크리트다. 안에 뭐가 담겨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위를 덮은 콘크리트가 딱딱하게 세상을 받쳐주고 있다. 당연히 풀이나 나무는 보이지 않는다. 오직 인간이 만든 무채색의 구조물만이 초목 대신 서있을 뿐이다.
무심코 위쪽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은커녕 반짝이는 무언가도 보이지 않았다. 밤도, 무엇도 아닌 순수한 어둠. 공허만이 보여줄 수 있는, 빛을 빨아들이는 칠흑이 저 너머에 펼쳐졌다.
그리고 천천히 시선을 내리니, 꽤 익숙한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탐조등이 좌우로 움직이면서 무저갱 속 어둠을 밝히고 있다. 동그란 빛그림자가 콘크리트 땅을 샅샅이 훑는다. 그러다 툭, 내 발에 닿은 순간, 바짝 약이 오른 짐승처럼 존재하는 모든 탐조등이 땅을 기어오르며 일제히 나를 향했다.
눈부신 인공 빛이 몸을 태워버리려는 듯 나에게 집중된다. 나는 손으로 빛을 가리며, 아까는 발견하지 못했던 거대한 구조물을 눈에 담았다.
오직 실용적인 목적으로만 만들어진 네모난 5층 건물. 강철판을 드문드문 덧붙여가며 지은 두꺼운 콘크리트 외벽에 탈주자를 찾아내기 위한 탐조등이 매달려있다. 커다란 조명이 높이 매달려 감옥 부근을 비추고 있지만, 태양을 대신하기에는 너무 보잘것없다. 불과 몇십 미터밖에 떨어지지 않은 이곳은 탐조등이 닿지 않으면 아무것도 안 보이니까.
밖과 안을 완전히 분리하려고 지어진, 땅 위에 고립된 섬.
지금껏 먼 발치에서만 보았던 감옥이 내 눈앞에 있다. 군국의 상징과도 같은 감옥이 수십 개의 탐조등으로 나를 지켜보고 서서는, 이곳이 앞으로 네가 머무를 장소라고 선언하는 것 같았다.
그 모든 빛을 담담히 받으며 골렘이 내게 말했다.
[이제 상황판단이 되십니까?]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대감옥 탄탈로스는, 확실히 군국의 전설이 될 법한 공간인 듯하다.
“미친 나라 같으니. 무저갱의 밑바닥이라는 기적의 땅에 짓는 게 감옥이라니.”
군국답다면 군국답다고 해야 할까. 무저갱의 밑바닥에 감옥부터 지어 올리는 돌아버린 테크트리는 군국만큼 미친 나라 아니면 하지 못하겠지.
골렘이 내 혼잣말을 지적했다.
[귀하의 불건전한 발언에 주의를 주고 싶습니다만.]
“어이가 없네. 죄없는 사람을 이딴 곳에 가둬놓고 충성심이라도 표하기를 바라?”
[시간이 부족하니 우선 귀하가 맡은 임무에 대해 브리핑하겠습니다. 경청하시기를 권장합니다…. 죽고 싶지 않다면, 말이지요.]
골렘이 음산하게 경고했다. 한껏 비아냥거리려고 했던 나는, 그 서슬 퍼런 음색을 느끼고는 일단 입을 다물었다.
내가 말을 멈추자, 골렘의 마이크에서 무미건조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곳은 군국의 5레벨 중요시설, 정신교육대 탄탈로스입니다.]
정신교육대란 군국이 감옥을 부르는 다른 이름이었다. 감옥이나 죄수는 어감이 안 좋아서 사회 안정에 도움이 안 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나. 그래서 감옥을 정신교육대, 죄수를 교육생이라고 부르곤 했다.
좋게 말하면 군국식 말장난이고, 나쁘게 말하면 언어 통제다.
군국은 둘 중 어느 쪽도 인정하지 않겠지만.
[탄탈로스는 고레벨 위험도를 가진 교육생들을 위해 마련된 시설이었습니다. 그들은 대단히 위험한 능력과 난폭한 성격을 지니고 있으며, 사회성이 부족하여 세상과 완전히 격리된 탄탈로스에서 사회화 교육을 받을 예정이었습니다.]
“예정이었다고 하면?”
[그러나 일주일 전 일어난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인해, 대부분의 교육생이 탄탈로스를 탈출하는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뭐?”
탈출? 무저갱을 탈출했다고?
반항적인 태도를 일단 집어넣고, 온 신경을 골렘의 말에 집중했다. 골렘의 생각은 읽을 수 없으니, 말투나 어조에서 어떻게든 정보를 빼내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웠다.
탄탈로스가 품고 있던 수많은 흉악범들이 탈출하여 사회로 곳곳으로 퍼져나갔다는 사실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그딴 나라가 혼란에 빠지든 망하든 말든 내 알 바인가?
중요한 건, 그들이 ‘탈옥’을 했다는 사실 그 자체. 그 정보는 무저갱의 밑바닥에서 빠져나갈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었다.
“어떻게 탈출했는데?”
내 질문에 골렘은 나를 빤히 응시하며 대꾸했다.
[귀하에게는 허락되지 않은 정보입니다.]
“쳇.”
역시 안 되나. 군국 통신병이 그리 허술할 리가 없지.
생각을 읽을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아쉽다. 나는 어디까지나 사람의 생각을 읽을 수 있을 뿐, 신호로 전달되어 마이크로 재현되는 목소리는 읽지 못한다.
어쩔 수 없이, 조금 평범하고 재미없는 방식으로 정보를 얻을 수밖에.
말이나 더 해보라고 손짓하자 골렘은 설명을 이어갔다.
[대부분의 교육생들이 폭동을 일으켜 시설을 망가뜨리고 관리 인력을 살해했습니다. 그들은 탄탈로스를 무력으로 점거한 뒤 모종의 방법을 통해 일제히 탈출했습니다. 군 당국은 그들을 쫓고 있으며, 머지않아 전부 체포하여 처벌할 계획입니다. 하나 그 와중에도 세 명의 모범적인 교육생은 그 난폭하고 야만적인 행위에 가담하지 않고 자의로 이곳에 남았습니다.]
군국에서 모범적이라는 단어는 멍청한 호구한테 붙는 수식어이다. 그러니까 지금 이 감옥에 남은 건 겁쟁이들만 남았다는 뜻.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감옥이 겁쟁이들의 쉼터가 되었다니 아이러니다.
[그러나 탈출한 이들 때문에 시설은 반파되었고, 관리 인력 전부가 살해당했습니다. 협조적인 교육생들을 관리되지 않은 교육대에 방치할 수도 없는 노릇. 탄탈로스를 관리하기 위한 추가적인 인력이 필요했고, 귀하가 이곳으로 배정되게 되었습니다.]
“아아. 그러니까.”
이제야 이해가 간다. 왠지, 아무리 내가 누명을 썼다고 한들, 나처럼 평범한 잡범을 탄탈로스에 가둘 이유가 없거늘.
왠지 도시에 갑자기 헌병들이 돌아다닌다 했다. 내가 헌병대에게 잡힌 그 순간부터, 사흘도 걸리지 않아 끝난 재판까지. 내가 여기까지 잡혀 온 경위가 빤히 보였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인력이 부족해졌고, 나 같은 잡범을 대대적으로 잡아들인 뒤, 노역자랍시고 무저갱에 쳐넣었다는 거지?
죄수들의 수발을 들게 하려고 죄수를 이용하다니. 군국이 좋아하는 수법이다.
이이제이? 아니, 돌려막기. 죽어도 상관없으니까 일단 땜빵 난 곳을 범죄자로 틀어막는 거지.
어쨌건, 여기서 알 수 있는 사실은 하나. 갇혀있기는 하지만, 여기서 나는 자유롭다. 내가 무엇을 하든 막아설 이가 존재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교관도 없고, 노역자도 나 하나뿐이라면. 이곳에서 내가 게으름을 피우든 폭탄을 만들든 어떻게 제지하겠는가.
그것을 깨달은 나는 고개를 들고는 당당하게 나섰다.
“만일 내가 업무를 하지 않으면 어떻게 할 건데? 직접 내려와서 때려잡기라도 할 거야?”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귀하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무엇이라도 해야 할 테니까요.]
그 말을 끝낸 골렘이 고개를 돌려서 감옥 쪽을 바라보았다. 탐조등 몇 개만이 어둠을 어슴푸레 밝히는 가운데, 저 깊은 곳, 닫힌 문에서 검은 형체가 아른거렸다.
골렘이 중얼거렸다.
[…그들이 오고 있군요.]
“그들?”
내 반문을 무시한 골렘이 한층 빠르게 말했다.
[탄탈로스에 남은 이들…. 시간이 얼마 없습니다. 이제 귀하가 해야 할 업무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똑바로 듣기는 뭘. 기껏해야 청소나 빨래가 전부겠지.
여유롭게 머리 뒤쪽으로 깍지를 꼈다. 어디 보자. 남은 죄수가 고작 셋? 그 숫자라면 수발 정도야 들어줄 수 있다. 좀 만만한 죄수라면 듣기 좋은 말로 꼬드길 수도 있고.
아무리 탄탈로스에 갇힌 흉악범이라고 한들, 군국의 명령에 겁을 집어먹고 탈출할 기회도 스스로 걷어찰 정도라면 어지간히 수동적이고 나약한 성격일 터.
내가 비록 잡범이라고는 하지만 뒷골목에서는 고개 뻣뻣하게 들고 다니던 몸이다. 거기에 더해 독심술이라는 능력 덕분에 어지간히 난폭한 사람도 내 앞에서는 기를 못 펴고는 했다.
내가 힘이 없지 가오가 없나. 여차하면 이곳을 아예 접수해주마.
그렇게 마음을 다잡고 있을 때였다.
[살아남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