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초인이지만, 히어로나 빌런이 되는건 거절한다-1화 (1/196)

#0. 영웅이 될 생각은 없지만, 악당도 귀찮다.

고영준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자신이 지금 있는 곳이 대한민국 수도 서울이 아니라 유학 시절 머물던 보스턴이 아닌가 싶었다.

아니라면 이럴 수가 없었다.

그가 아는 상식으로는 대한민국에서는, 그것도 서울에서는 이런 일이 일어날 수가 없었다.

사방에는 총에 맞아 죽은 사체가 널려 있다. 한가락 하는 깡패들도, 특수부대 출신인 자신의 경호원들도, 여배우 뺨칠 정도로 잘 나간다는 텐프로 에이스 아가씨도 모두 사이좋게 다 죽어 있다.

이런 상황을 만든 놈은 몸에 뚫린 총알구멍에서 피를 질질 흘리며 자기 머리에 총을 겨누고 있다.

무엇보다 가장 비현실적인 것은 구멍난 셔츠 사이로 총에 맞은 상처가 멀쩡하게 아물어져 가는 모습이 선명하게 보인다는 것이었다.

“나 오늘은 아직 약도 안 먹었는데 왜 헛것이 보이지? 넌 뭐라는 괴물이지?”

고영준의 대가리에 총을 겨누고 있던 남자, 유진이 말했다.

“유언이 좀 특이하군. 하지만 이제 죽어라.”

망설임 없이 방아쇠를 당기려는 그의 모습에 고영준이 본능적으로 소리를 질렀다.

“너! 내가 누군지 알아! 감히 니가 나를 죽이고도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아!”

유진은 피식 웃었다.

한국에 와서 이런 일을 겪은 것이 벌써 몇 번째인데, 반응들이 한결같이 똑같았다.

그래서 그냥 방아쇠를 당기기 전에 잠시 멈추고 그의 말에 대꾸해 주었다. 혹시나 이번에는 다른 반응이 나올지 궁금했던 탓이었다.

“넌 고영준이지. 성효그룹 3세. 그러는 넌 내가 누군지 알아?”

“어?”

고영준은 대답하지 못했다.

유진은 그가 자신을 모른다는 것을, 그리고 자신이 왜 여기에 와서 이러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것을 확신했다.

사전에 경고까지 했는데도 말이다.

유진은 시체와 대화하는 취미는 없지만, 도저히 한마디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 작은 나라에서 법과 규칙을 회피할 수 있는 약간의 돈과 권력이 있다고 자신이 특별한 줄 아는 놈들이 왜 이렇게 많은지 모르겠어. 너 같은 건 정말 아무것도 아닌데.”

유진의 말에 고영준은 화가 났다.

마음 깊이 분노했다.

성효그룹은 대한민국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대기업이었고, 그런 대기업 회장의 친손자로 태어난 그는 왕자나 다름없는 특별한 대우를 받으며 자랐다.

법과 도덕, 규칙은 자신을 보호하고 자신이 세상을 지배하기 위해 있는 것이지, 자신을 제어하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학교 선생도, 경찰도, 변호사는 물론이고 검사나 판사도 그리고 언론 기자나 정치인들까지 다 자기 가문의 돈으로 고용된 아랫것들일 뿐이었다.

맘에 안 드는 놈들을 두들겨 패고, 맘에 드는 여자를 강간하고, 마약을 먹고, 사람을 죽여도 그건 그에게는 범죄가 아니었다. 그저 남들에게는 허락되지 않을지 몰라도 그에게는 허락된 유희일 뿐.

그는 특별했다. 특별한 존재였다.

재수가 없어서 눈앞의 이 괴물의 손에 죽게 되더라고 그건 부정되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죽을 땐 죽더라도 당당하게 이 괴물 새끼를 꾸짖고, 자기 목숨값을 어떻게 치르게 될지 알려주고자 했다. 이 괴물의 부모, 형제, 가족, 친구들이 모두 살려달라고 빌면서 죽게 될 거라고 말이다. 그는 진심으로 그렇게 믿었다.

“너 같은 놈을 그냥 죽이면, 기존에 내 손에 죽은 놈들이 매우 억울하겠지?”

유진이 이상한 말을 중얼거리고, 그의 무릎에 권총탄을 한 방 박아 넣기 전까지는 말이다.

“아아악!”

무릎이 부서지는 고통 앞에 고영준의 자존심과 자부심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고영준이 눈물, 콧물 흘리면서 살려달라고 애원하게 되는 데는 두 번째 총알조차 필요가 없었다.

“아아악. 아파. 아프다고. 살려주세요, 잘못했어요, 살려주세요. 엉엉엉.”

유진은 그 모습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어느 정도 예상하긴 했지만, 고영준은 정말 한심한 놈이었다. 기존에 그의 손에 죽은 비슷한 놈 중에서도 정말 최악이었다.

유진은 더 이상 뭔가 할 의욕이 생기지 않아 방아쇠를 다시 당겼다.

애용하는 M1911 피스톨에서 쏘아져 나간 45구경 ACP탄이 고영준의 두개골을 뚫고 들어가 뇌를 부숴버린 다음 반대쪽 두개골을 뚫고 튀어나와 소파에 박혔다.

이런 짓 하는 놈들을 처음 보던 무렵에는 몇 시간에 걸쳐서 자기 몸이 산채로 산산조각이 나는 일을 경험하게 만들어 주면서, 차라리 죽여달라고 애원하게 만드는 것이 취미였지만, 이제는 그것도 귀찮았다.

이번에는 딱히 보복 조치를 확인하고자 하는 피해자도 없으니 더욱.

마지막 목표까지 처리했으니 뒤처리할 시간이었다.

유진은 적당한 자리를 찾아 앉은 다음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여기까지 들어오는 과정에서 전술 도끼와 컴뱃 나이프로 쳐 죽인 깡패만 열이 넘었고, 총을 뽑아 덤비기에 총으로 쏴 죽인 경호원도 네 명이나 되었다. 거기에 고영준과 함께 목표였던 깡패 두목 새끼와 모든 문제의 원인이었던 술집 여자들까지 합치면 거의 스무 명 넘게 죽였다.

자주 저질러본 일이기에, 이 나라에서 이 정도의 사건이면 온 나라의 수사기관은 물론 정보기관들까지 다 동원되어서 뒤를 쫓는 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한두 번 겪은 일도 아니지만, 그래도 조용히 처리할 수 있다면 시끄럽지 않게 처리하는 것이 좋았다. 유진 본인 말고, 수사기관이나 공무원 혹은 그를 감시하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말이다.

곧 그가 보낸 문자 메시지를 받은 상대가 전화를 걸어왔다.

“이번에는 또 무슨 일이에요?”

“전에 말했던 그 술집 마담과 깡패 새끼 그리고 그 뒤를 봐주고 있던 성효그룹의 고영준을 처리했지. 그 와중에 대략 스무 명 정도 죽였어. 여기 위치는 당신이 말해 준 그 술집이고.”

“미쳤어요? 고영준은 지금까지 당신 손에 죽은 다른 놈들과는 달라요! 회장 직계이자, 차기 회장의 아들이라고요! 성효그룹쯤 되면 우리도 조용히 무마하기 힘들다고 미리 말했잖아요! 굳이 죽이지 않고도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었는데!”

“그런 말은 이 새끼들을 제대로 제어라도 한 다음에 해야 하는 말이 아니었나? 경찰과 검찰의 수사는 형식적이었고, 대충 수사받고 나서 이 새끼가 제일 먼저 한 것은 협박이었어. 가만두지 않겠다고. 설마 이 새끼들이 정말 사고를 저지를 때까지 내가 기다렸어야 한다고 말할 건가?”

유진을 탓하던 상대는 유진의 독설에 더 이상 그를 추궁하지 않았다.

대신 한숨을 내쉬며 타이르듯 말했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는 말이 있어요. 당신이 가진 그 놀랍고도 위대한 능력을 생각해서 좀 더 훌륭한 사람이 될 생각은 없나요? 지금처럼 사고만 치지 말고 차라리 야망을 품어요! 영웅이 되어서 사람들에게 존경받으며 지배자의 위치에 오르는 것이 어렵지도 않잖아요!”

유진은 다시 한번 피식 웃었다.

그녀가 하는 말은 ‘내가 누군지 알아’와 함께 유진이 자주 드는 이야기 중에 가장 어이없는 이야기 중의 하나였다.

“좋은 말이지. 그 영화는 나도 이번에 재미있게 봤어. 당신도 영화에 취미가 있는 줄은 몰랐지만. 하지만 난 당신도 알다시피 그런 정의감 따위는 없어. 영웅 따위 이 세상이 정의롭다고 생각하는 병신들이나 꿈꾸라고 해.”

“그렇다고 굳이 악당으로 살 필요는 없잖아요?”

“내가 악당인가? 아니지. 내가 악당이라면 당신이 여태 멀쩡할 리가 없잖아. 아니 이 세상 전체가 멀쩡할 리가 없지. 안 그래?”

유진의 질문에 여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난 영웅도 악당도 될 생각 없어. 그런 건 세상에 대한 진실 따위 모르는 병신들이나 꿈꾸라고 해. 난 그저 내 삶을 바랄 뿐이니까.”

그 말을 끝으로 유진은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몸을 일으켜 시체로 가득 찬 술집을 나섰다. 뒷일은 이제 자신이 알 바가 아니었다. 설사 뒤처리에 문제가 생겨서 경찰이 수사해도 상관없었다.

알리바이도 완벽하게 만들어 두었지만, 애초에 알리바이 따위 쓸 일이 있을 리가 없었다. 이런 일 한두 번 한 것도 아니고 경찰 수사는 물론 검찰과 정보부, 군대에도 추적받아 봤다. 하지만 여태껏 단 한 번도 증거가 될만한 것들이 남아서 수사 용의선에 서 본 적도 한번 없었다.

“내일 메뉴는 스파게티나 해 볼까?”

갑자기 달고 짠 음식이 당겼다.

유진은 필요한 재료 중 부식 창고에 남아있을 자료가 얼마나 되는지, 그리고 내일 아침 배달에 뭘 추가 주문해야 할지 계산해보며 걷기 시작했다.

먹고 싶은 것을 마음껏 먹을 수 있는 자유는 유진에게 몹시 소중한 일이었다.

맘에 들지 않는 놈 자유롭게 쳐 죽일 수 있는 자유 이상으로.

영웅도, 악당도 관심 없는 그의 현재 직업은 직장인 상대로 하는 점심 뷔페 가게의 파트타임 요리사였고, 디저트 카페 보조 운영자였다.

유진은 이 직업에 현재 매우 만족하고 있었다.

유진은 지금도 원하는 것은 뭐든지 할 수 있었다.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뭐든지 만들어 먹고, 쉬고 싶으면 언제든 쉴 수 있다. 시원한 수영장 물 위에 누워 맑은 하늘을 바라보며 피서를 즐기고, 따뜻한 물이 가득한 욕조에 몸을 담그고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명상에 잠길 수 있다.

남들에게 추앙받는 영웅이 되는 것도, 남들을 공포로 군림하는 악당이 되는 것도 결코 현재의 자신과 비교할 수 없었다.

유진은 지금 아주 행복했다.

가끔 그런 자기 행복에 오물을 투척하며 끼어드는 놈들 대가리를 부수고 다녀야 하는 일조차 취미로 여길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결코 지금의 자신을 방해하는 그 어떤 것도 용서할 수 없었다.

가끔 옛 시절에 대한 복수를 떠올리는 자기 자신조차도.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