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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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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 비밀조직, 연구소, 초인 그리고 탈출 - 1
탕! 탕! 탕! 두. 두. 두.
총격이 쏟아진다.
좁은 복도에는 쏟아지는 탄환을 피해서 엄폐할 장소가 없다.
아이들 일부는 총에 맞아 쓰러졌다.
인간과 비교할 수 없이 강한 육체적 능력을 갖춘 아이들이라고 해도, 팔다리나 어중간한 부분들이라면 몰라도 심장이나 머리가 부서지면 그건 버티지 못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쏟아지는 총탄을 몸으로 버텨낸 나머지 아이들 대다수는 결국 자신들을 공격하는 전투부대의 화망을 뚫고 그들이 설치한 장애물과 엄폐물을 돌파했다.
선두에 선 유진이 대부분의 공격을 감당해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보복이 시작된다.
원거리에서 총으로 싸우는 것이라면 몰라도 손발이 닿는 거리가 되면 아무리 정예 특수부대원이라고 해도 아이들을 감당할 수 없었다.
아이들의 사격 실력은 특수부대원들에 비하면 조악하지만, 근거리에서는 사격 실력의 차이는 별로 의미가 없었다. 어지간한 총격은 몸으로 버텨내는 아이들에 비해 특수부대원들은 총에 맞으면 죽는다.
전신을 방탄복으로 가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아무리 훌륭한 방탄복이라고 해도 코앞에서 쏘아진 소총탄 연사는 못 막아낸다.
총이 아니어도 상관없었다.
유진을 포함한 소수의 아이는 총을 쏘는 대신 팔과 다리를 휘둘러 특수부대원들의 머리를 박살 내고 몸을 으스러뜨렸다.
“사, 살려줘!”
코앞까지 다가온 유진을 향해 탄환이 다 떨어질 때까지 권총을 연사하던 한 특수부대원이 애원했지만, 유진은 망설임 없이 그의 머리를 걷어차 버렸다.
압도적 충격에 방탄 헬멧과 머리가 함께 으스러지며 특수부대원은 즉사했다.
이제 살아 있는 적이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한 유진은 말없이 앞으로 나아갔다.
다른 아이들은 쓰러진 친구의 죽음을 확인하고, 아직 살아 있는 아이들을 부축해서 유진의 뒤를 따랐다.
곧 그들은 특수부대원들이 죽음을 각오하고 사수하고 있던 문 앞에 도착했다.
위쪽에 붉은색 램프가 반짝이는 그 강철제 문은 굳게 닫혀 있었지만, 아이들은 쇠몽둥이를 휘둘러 문의 연결 부분에 흠집을 낸 다음 거기에 손을 끼워 넣고 강제로 좌우로 벌렸다.
그그그극.
쇠와 쇠가 부딪치고, 기어가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문은 조금씩 열렸고 곧 사람 한 명 지나갈 만한 틈이 간신히 열렸다.
하지만 아이들 그 누구도 그 틈으로 들어갈 생각을 하지 못했다.
열린 틈으로 보이는 그 안쪽은 무너진 흙과 바위로 가득 차 있었다.
그들이 아무리 압도적으로 강인한 육체적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해도 뚫고 나갈 수 있을 상황이 아니었다.
“하. 하. 하.”
누군가 허탈한 웃음소리를 내뱉었다.
“흑. 흑. 흑.”
누구는 억눌린 울음소리를 내었다.
그나마 힘을 내 서 있던 아이들도 이제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쓰러지듯 바닥에 주저앉았다.
최후의 최후의 최후의 희망이었던 비상 탈출로가 무너져 있는 것을 확인한 상황에서 아이들은 더 이상 아무거라도 할 의욕이 없었다.
“어쩐지, 아무도 도망가지 않더라니.”
누군가 자신들의 손에 죽은 특수부대원 시체를 보며 중얼거렸다.
그렇게 모두 포기하려는 분위기에 무리의 리더 로자가 외쳤다.
“일어나! 여기서 머뭇거릴 시간 없어! 여기가 막혔으면 다른 길 찾아야 해!”
아이들의 시선이 로자를 향했다.
오른팔 팔꿈치 아래는 없어졌고, 피 묻은 붕대로 얼굴과 배를 칭칭 감고 있는 그녀의 새하얗게 질려 버린 얼굴을 보는 아이들의 눈빛은 마치 시체처럼 죽어 있었다.
“이러지 마! 포기하지 마! 우리 아직 살아 있어!”
로자가 아이들을 둘러보며 울음 섞인 목소리로 외쳤지만, 아이들은 고개를 숙여 그녀를 외면했다.
로자도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주저앉았다.
“로자!”
로자의 연인 카를이 그런 그녀를 안았다.
카를의 상태도 좋지 않았다.
몸에 육체적 상처는 없지만, 코에서는 코피가 계속 흐르고 있고, 눈은 충혈되다 못해 실핏줄이 모두 터져 붉게 변해 있었다.
육체적으로는 전혀 특이점이 없어서 싸울 때 가장 안전한 곳에서 보호받고 있었지만, 대신 투시력과 텔레파시 등으로 돕고 있었는데, 지나친 능력 사용으로 목숨이 위험할 정도의 한계에 다다른 상태였다.
유진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대부분 로자나 카를처럼 오래 버티기 힘든 상태였고, 그나마 좀 멀쩡한 친구들도 의욕을 완전히 잃고 더 이상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그나마 비교적 멀쩡한 것은 유진 본인 하나뿐이었다.
그래서 유진은 혼자 움직였다.
죽은 특수부대원들이 남긴 장비들을 챙기고, 자신들이 돌파하며 부서지거나 흩어진 바리케이드와 엄폐물들을 다시 배치했다.
멀지 않은 곳에서 추격해 오는 발소리들이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그런 유진을 바라보던 로자가 입을 열었다.
“유진. 너 혹시 혼자서라도 빠져나갈 수 있겠어? 이쪽이든 저쪽이든.”
유진은 로사의 손짓에 지금 적이 몰려오고 있는 통로와 무너진 토사로 비상구 쪽을 번갈아 바라보며 살짝 고민했다.
그리고 고개를 저었다.
“어려워.”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라는 거네?”
“의미는 없지만.”
“왜 의미가 없어? 전멸보다는 하나라도 살아 남아야지.”
유진은 친구들을 둘러보았다.
그들도 유진과 눈이 마주치자 고개를 끄덕여 동의를 표했다.
유진은 다시 고민했다.
포위망을 돌파해서 탈출할 가능성과 그렇게 탈출해서 외부에서 어떻게 적응할 것인지 등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
별로 좋은 결과가 나올 것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이대로 싸우다가 죽는 것보다는 나아 보였다.
친구들을 버리는 것이지만, 해야 한다면 그렇게 하겠다고 결심했다.
하지만 유진이 그런 생각을 하기 전에 포위하고 있는 쪽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확성기로 말하는 것이 먼저 들려왔다.
“유진! 들리니, 유진!”
연구소장 마리아 리페 박사의 목소리에 유진은 인상을 찌푸렸다.
아이들도 모두 비슷하게 인상을 찌푸렸고, 로자는 욕설을 내뱉었다.
“씨발년. 제일 빨리 튀었던 년이 빨리도 돌아왔네.”
그러거나 말거나 마리아 리페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항복해! 이대로 더 이상 저항하지 않고 항복하면 아직 살아 있는 아이들은 용서해 줄게. 이미 너희 너무 많이 죽었어! 특히, 유진! 우리는 절대로 너를 놓치지 않을 거야! 절대로!”
악에 받친 마리아 리페 소장의 목소리에 유진은 한숨을 내쉬었다.
마리아 리페 소장이라면 유진이 탈출하는 중에 쓸만한 방법 대부분에 대응이 가능할 터였다. 유진이 가진 초능력은 전부 그녀가 훈련 시킨 것이기 때문이었다.
몰래 숨겨둔 것들도 몇 가지 있기는 하지만 그것들은 지금 탈출에 도움이 될만한 것들이 아니었다.
결국 그렇지 않아도 얼마 없던 탈출 가능성은 이걸로 제로가 되었다.
로자도 인정했다.
“미안. 이제 늦었네. 어쩔 수 없지. 모두 미안. 이제 방법이 없네. 우리 그냥 죽기 전에 하나라도 더 죽이고 죽자.”
처연하지만 독기가 스며든 그녀의 말에 유진은 고개를 끄덕여 동의했다.
하지만 모두 그런 것은 아니었다.
“항복하자.”
카를이었다.
“투항하면 살려준다고 하잖아. 이번에는 실패했지만, 살아만 있으면 다음에 다시 기회가 있을 거야. 그러니까 우리 이번에는 여기까지 하고 다음 기회를 노리자.”
아이들의 분위기 바뀌었다.
대부분은 여전히 아무 의욕도 없었지만, 몇몇은 카를의 말에 동조했다.
로자는 어이가 없었다.
이대로 계속 버텨봐야 다들 몇 년 더 버티지 못하고 죽을 것이 너무 분명하기에, 기왕 죽을 거 우리만 죽지 말자고 시작한 반란이었다. 탈출 가능성은 그 와중에 운이 좋게 생겼던 것이었고, 그것도 결국 배신으로 끝났다.
로자가 생각하기에 상황은 확실했다.
실험체 아이들의 위험성이 확인되었고, 아이들 손에 상당수 연구원과 경비 인원이 죽어 나간 지금, 아이들이 항복한다고 살려둘 리가 없었다.
로자는 죽을 때까지 싸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대로 산채로 온전히 저들 손에 자신들을 내주느니 죽을 때까지 싸우고 시체나마 저들 손에 온전히 남기지 않는 것이 자기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저항이라고 생각 했다.
하지만 그녀가 그렇게 아이들을 설득하기 전에 그녀의 어린 연인 카를이 초를 쳤다.
“진심이야. 항복하면 우리 모두 용서하겠다는 소장님 이야기 진심이라고.”
로자는 당황했다.
로자는 마리아 소장이 자신들을 살려주고 싶은 마음이 진심이라고 해봐야 실제로 가능할 리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연구소장이 연구소의 대장이라고 해봐야 전체 조직 규모에 비하면 실무진에 불과했고, 조만간 자신들이 일으킨 이번 사건에 책임을 져야 할 사람이었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이걸 설명해줄 수가 없었다.
연구원으로 채용되었다가 실험체로 전락한 그녀는 전체적인 조직의 규모에 대해서도 대충 알고 있고, 파벌과 정치로 이루어지는 사회생활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평생 연구소에서 살아온 아이들에게 마리아 리페는 뭐든지 할 수 있는 신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로자는 그런 아이들에게 그녀가 별거 아닌 사람이라고 설득할 방법이 없었다.
무엇보다 모든 것을 다 포기했던 아이들에게 희망이 돌아오고 있었다.
그것은 미래가 없는 거짓 희망이었지만, 아이들의 마음을 꺾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로자는 그래도 마지막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유진에게 물었다.
“유진, 네 생각은 어떠니?”
로자는 살아남은 아이들 다 합쳐도 유진 하나만큼의 가치가 없으니 나머지 아이들 다 항복해도 유진만 싸우겠다고 하면 싸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유진은 다른 아이들과 달리 이 연구소가 속한 조직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알기에 유진이라면 다를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유진도 그녀의 기대를 무너뜨렸다.
“항복하자. 동양에 전쟁터에서는 이길 때도 있고 질 때도 있다라는 구절이 있어. 설사 전쟁에 지더라도 그걸 교훈으로 삼아 다음 전쟁에서 이기면 된다는 뜻이래. 우리 모두 살아남으면 다시 기회가 올 거야.”
로자는 울고 싶었다.
유진에게 묻고 싶었다.
그렇게 이길 때도 있고 질 때도 있어서 패배하고도 살아남아 다음 전쟁을 준비하는 것은 귀족이나 장군뿐이라는 것을 아냐고 묻고 싶었다.
귀족이나 장군은 전쟁터에서 패배해서 항복하면 몸값을 내고 풀려나지만, 징병 된 병사들은 식량을 아끼기 위해 죽이거나 노예로 팔려나가는 법이라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말할 수 없었다. 이건 그나마 남은 아이들 사이에서 분란을 일으킬 수 있는 금기였다. 애초에 이 아이들은 탈출과 복수라는 명제에 동의해 함께 움직이고 있을뿐, 모두 서로 친한 사이도 아니었다.
대신 로자는 누가 귀족일까 생각해보았다.
유진은 확실하고 잘하면 자신의 어린 연인인 카를까지는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투시나 텔레파시 같은 정신계 쪽 초능력을 두루 가진 카를은 유진만큼은 아니어도 꽤 귀중한 샘플이었다.
로자는 포기했다.
로자는 죽거나 떠난 것이 분명하다고 저주하던 신이 혹시라도 아직 있을지 모른다고 희망하며 카를에게 말했다.
“카를, 네가 가서 항복하겠다고 말해.”
“내가?”
“난 이 꼴이고, 유진은 혹시 모르니 여길 지켜야 해. 너밖에 없어.”
카를은 조금 당황했지만 로자의 설득에 떠밀려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별로 내키지 않는 듯 불안한 표정으로 가끔 뒤를 돌아보며 앞으로 나아갔다.
웃으면서 그런 카를에게 손짓을 보내주던 로자는 카를이 충분히 멀어지자 언제 웃었냐는 듯이 굳은 표정으로 유진을 불렀다.
“유진, 잠시만.”
로자의 목소리가 워낙 작았기 때문에 유진이 그녀의 입가로 귀를 바싹 가져가야 했다.
그런 유진에게 로자는 마음속 숨겨둔 이야기를 해주었다.
“만약, 다음에 기회가 오면 그때는 다른 애들은 다 잊어. 너만, 너 스스로만 챙겨. 다른 것은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고 오직 너 혼자만의 행복만 생각해. 다른 아이들 챙기거나, 미안해하지 말고.”
“로자?”
유진은 그녀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어린 유진은 오늘의 포기가 영원한 것이 아닌데, 앞으로 다시는 볼 수 없을 것 같이 말하는 로자를 이해할 수 없었다.
대화는 거기서 끝났다.
카를이 연구원들과 무장 병력과 함께 돌아왔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안녕, 유진. 안녕 카를.”
로자는 항복하는 대신 들고 있던 권총을 자기 머리에 대고 방아쇠를 당겼다.
“로자!”
귓가에 맴도는 카를의 절규와 얼굴에 묻은 그녀의 피와 뇌수의 감촉 속에서 유진은 당혹했다.
말로 하지 않았지만, 로자의 마지막 인사 뒤에 따른 유언이 유진의 뇌에 울리고 있었다.
‘미안, 너희들만 두고 죽어서 미안.’
유진은 이해할 수 없었다.
어째서 죽은 사람이 산 사람을 걱정하고 살아 있는 사람에게 미안해하는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