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홈즈 런던앙복-1화 (1/110)

001. 마지막 사건…?

The Final Problem...?

모든 인간의 영혼은 영원하지만, 정의로운 영혼은 영원하고 신성하다.

-소크라테스-

* * *

허락받은 적은 없지만 나의 절친한 친구 왓슨이 키우는 강아지의 목숨을 걸고 단언하겠다.

직감과 지식 그리고 경험에 의거한 내 추리에 따르면 ‘인간의 뇌는 죽기 직전 지난 삶의 궤적을 빠르게 떠올린다’는 명제는 새빨간 거짓이 틀림없다.

어떻게 알았냐고?

평소였다면 차분하게 설명했겠지만 아쉽게도 지금은 몇 가지 요소가 나에게서 시간과 여유를 앗아 가고 있는 중이다.

첫째로 이곳에는 편안한 소파가 없다.

둘째로 나는 조금 전 격하게 움직이다 물고 있던 파이프를 떨어뜨리고 말았다.

그리고 세 번째.

스위스, 마이링엔.

알프스산맥의 많고 많은 폭포 중에서도 가장 높은 라이헨바흐.

“끝이다, 모리어티!”

이곳에서 나, 셜록 홈즈는 숙적을 끌어안고 270야드 상공에 있는 다리에서 몸을 날린 참이었으니까.

-콰아아아!!

메아리치는 물소리. 기나긴 세월 동안 바위와 물이 만들어 낸 장엄한 경관은 평소였다면 넋을 놓고 바라봤을 만도 한 광경이다.

하지만.

지금은 이 아름다운 폭포도, 획득한 위치 에너지도, 전부.

내가 단단히 목을 조르고 있는 이 사내를 세상에서 지우기 위한 흉기에 지나지 않는다.

“커헉……!”

금방이라도 기절할 것처럼 숨을 헐떡이고 있는 장년 사내의 이름은 제임스 모리어티.

전 유럽의 존경을 한 몸에 받는 대학 교수이자 수학, 체스, 승마, 복싱 등 다양한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진짜배기 천재…… 라고 알려졌지만.

그 정체는 런던의 밤을 지배하는 악의 제왕이자 범죄자에게 지혜와 도움을 제공하며 암약하는 최악의 컨설턴트다.

갖은 흉계를 통해 몇 번이나 나와 왓슨을 죽음의 위기에 몰아넣은 숙적이 바로 이 남자.

다만, 이젠 아무래도 좋은 일이다.

그놈의 잘나신 사설 범죄 자문가께선 목이 졸려 눈을 뒤집고 계시니.

“커헉…….”

모리어티는 자정을 맞이한 아이처럼 쏟아지는 졸음과 산소 부족을 견디는 중이다.

발 디딜 곳도 없는 허공에서 구속을 풀어내기란 불가능하다.

이대로 목을 졸라 질식사시킨다면 놈은 알프스의 청정수에 가라앉겠지.

“어서…….”

뇌로 가는 산소가 부족해 판단을 그르친 걸까.

모리어티는 목을 조르고 있는 팔을 뿌리치는 대신 손을 허우적대며 백금 시곗줄에 연결된 회중시계를 붙잡으려 했다.

마치 그것만이 이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자신을 구원해줄 한 줄기 희망이라도 되는 것처럼, 처절하게.

“어서 회귀를…….”

모리어티는 도무지 알아먹을 수 없는 개소리를 중얼대며 팔을 허우적댔지만 나는 개의치 않고 계속해서 목을 졸랐다.

남은 힘을 모조리 팔뚝에 불어넣자 금방 녀석의 몸에서 힘이 빠지는 게 느껴졌다.

벅차오르는 성취감.

‘약간의 희생’이 따르긴 했지만 이 대결은 나의 승리로 막을 내리려 하고 있었다.

이 높이에서 떨어지면 모리어티는 반드시 죽는다.

그리고, 나 역시 같은 운명을 맞이하겠지.

나의 목숨을 사용해 놈의 숨통을 끊는 최후의 거래.

인생 마지막 낭비라 생각하니 아깝진 않다.

다시 아까 하던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죽기 전에 과거의 삶이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나간다는 이야기는 근거 없는 낭설에 불과하다.

사설 수사 자문가인 나는 내 눈으로 직접 본 것만을 믿는 사람이고, 죽음을 앞둔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건 오래된 기억 따위가 아니었다.

눈을 감자 떠오르는 친우의 얼굴.

나는 거악에서부터 런던과 유럽을 구했다.

모리어티에게 위협받던 친구의 목숨 역시도.

의식의 끈을 붙들어 매고 있던 마지막 순간, 모리어티의 주머니에서 빠져나온 회중시계에 얼굴이 비쳤다.

마지막으로 확인한 내 입가엔 미소가 걸려 있었다.

왓슨, 울어 주려나.

아아. 마지막으로 위스키가 마시고 싶―

-콰득

* * *

사건 종료.

셜록 홈즈. 향년 37세.

사인은 경추 골절.

런던 최고의 사설 수사 자문가는 사명을 다하고 기나긴 잠에 들었다.

* * *

얼마나 지났을까.

나는 어둠 속에서 정신을 차렸다.

모리어티를 붙잡고 폭포 아래로 떨어진 데까진 기억하는데 어째서인지 물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호흡 역시 자유롭고.

강물에 빠진 게 아니었나.

그 높이에서 거꾸로 추락했는데 목이 부러지지 않고 멀쩡할 리는 없다.

하지만 오컬트를 믿지 않는 사람으로서 지금 갇혀 있는 어둠을 사후 세계라고 인정하고 싶진  않다.

그렇다면 남아 있는 가능성은 하나.

내가 아직 살아 있다는 소리다.

하지만, 대체 어떻게?

“이보게 점소이! 피쉬 앤 칩스 한 접시 갖다주게!”

다음 순간, 내 옆에서 누군가가 매너도 없이 큰 소리를 냈고, 반사적으로 눈이 뜨였다.

나는 테이블과 가죽 소파, 그리고 벽난로와 서가가 아늑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는 라이브러리룸에 홀로 앉아 있었다.

“여긴―”

익숙한 장소였다.

패딩턴 스트리트 가든 부근에 자리 잡은 펍의 2층. 베이커가 221b 번지에서 도보 10분도 걸리지 않는 작은 가게.

나는 사람이 적은 시간대에 이곳을 찾아 에일과 파이를 즐기곤 했다.

“…….”

아니, 지금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다.

나는 분명 라이헨바흐 폭포에서 떨어져 경추가 부러진 순간의 고통과 공포를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일까. 내 목과 머리는 올바른 위치를 유지하고 있다.

“……놀랍군.”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다.

누군가가 물에 빠진 날 건져 올린 다음 치료한 다음 이곳으로 데려온 걸까. 그런 것 치고는 몸 상태가 너무 멀쩡한데.

나는 모리어티 교수와 사투를 벌였고 그 과정에서 부상을 당했다.

하지만 내 몸엔 그런 상처를 하나도 찾아볼 수  없다. 봉합한 흔적 역시 보이지 않고.

그저, 긴 꿈이라도 꾸다 깨어난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예, 나으리. 음료는 뭐로 드릴까요.”

그때였다. 조금 전 큰 소리를 낸 사내에게 웨이터가 다가왔다.

“죽엽청으로 하지. 두 병 주게.”

“피시 앤 칩스와 죽엽청은 최고의 조합이죠. 탁월한 선택입니다.”

평소였다면 옆 테이블에 앉은 사람이 뭘 주문하든 신경도 쓰지 않았겠지만 기묘한 경험을 한 직후여서인지 유독 거슬렸다.

아까 사내가 런던 토박이로 보이는 웨이터를 부를 때 쓴 ‘점소이’라는 호칭도 처음 듣는 것이고, 무엇보다 이 펍에서 ‘죽엽청’ 같은 이름의 술을 파는 건 본 적이 없다.

그러다가 문득, 장갑을 낀 자신의 손이 눈에 들어왔다.

딱히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나는 맡을 사건이 없어 무료한 시간을 보낼 때면 자주 모르핀 주사를 투여하곤 했다.

덕분에 모리어티와 싸우기 직전까지도 심각한 부작용에 시달리기까지 했다.

왓슨이라든지, 다른 또래 영국 신사보다 노화가 빨랐던 건 덤이었고.

그런데.

장갑을 벗은 내 손등엔 예전만큼 주름이 잡혀 있지 않았다.

반복된 화학 실험 탓에 손가락의 피부가 변색한 흔적도, 자잘한 상처도, 전부 사라졌다.

그뿐인가. 약물의 부작용으로 인해 만성적으로 낮았던 체온 역시 정상으로 돌아왔다.

“믿을 수 없군.”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근처에 있던 거울 앞으로 달려간 나는 생각지도 못한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다.

“왓슨이 이걸 봐야 하는데.”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보다 훨씬 젊어진 나의 얼굴을.

* * *

펍에서 뛰쳐나온 나는 곧바로 그리운 하숙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는 이내 그곳에 왓슨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절망했다.

하나 다행인 점은 친절한 하숙집 주인 허드슨 부인이 멀쩡히 날 알아보았다는 사실이다.

그녀는 야식으로 만든 치킨 커리와 석간신문을 갖다주었고, 나는 가장 먼저 신문 상단에 적힌 발행일을 확인했다.

어이없게도, 왓슨과 처음 만나기 일주일 전의 날짜가 적혀 있었다.

“부인답지 않군. 이런 장난을 치다니.”

그녀가 오래된 신문을 건네준 게 틀림없다고 생각한 나는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신문이 잘못 올라온 것 같습니다. 허드슨 부인.”

“무슨 말씀이신가요, 홈즈 씨. 1881년 3월 7일, 이 신문은 오늘 자 석간이 맞아요.”

그녀는 미친놈이라도 보는 듯한 눈으로 날 흘겨보며 답했다.

“뭐라고요?”

“밖에서 한잔 걸치고 오셨나보네요. 그보다 왓슨 씨는 대체 어디 사는 누굴 말하는 거죠?”

“왓슨을 모른다고요? 존 왓슨을?”

“네. 몰라요. 늦었으니까 커리 다 드시면 운기조식으로 취기나 좀 빼고 주무세요. 자기 전에 그릇 문 앞에 두는 거 잊지 마시고요.”

취할 수도 없는 양반이 뭘 마셨길래 저런대.

허드슨 부인은 그렇게 투덜대며 방으로 돌아갔다.

운기조식이라니, 이것 또한 처음 듣는 단어다.

아까 펍에서 눈을 떴을 때부터 계속되는 위화감.

계속해서 내가 모르는 명사들이 들려온다.

알고 있던 지식을 잃어버린 걸까.

아니, 모르핀의 부작용에 그런 건 없다.

나는 다시 2층 거실로 올라가 꼼꼼히 신문을 살폈다.

“……오늘 발행된 게 확실하군.”

잉크의 냄새와 종이의 질감을 다시 확인하니 알 수 있었다.

허드슨 부인이 내게 준 신문은 오늘 발행된 것이 틀림없었다.

“정말, 왓슨을 만나기 전으로 돌아온 건가.”

내가 묵고 있는 방엔 두 개의 침실과 거실이 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집안을 뒤져 봤지만 왓슨의 것으로 보이는 짐은 없었다.

“이런 게 가능할 줄이야.”

기적 같은 걸 믿어본 적은 없지만 이번만은 인정할 수밖에.

거울 속에 비춘 내가 젊어진 걸 보고 설마 했는데,정황상 과거로 돌아왔다고 확신해도 좋은 듯했다.

물론, 모리어티를 죽인 게 생생한 꿈이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 역시 검토해 보긴 했다.

하지만 이를 부정하는 가장 큰 증거가 하나, 내가 쥔 신문 1면에 대문짝만한 사진과 함께 붙어  있었다.

[이브닝 스탠더드 단독 보도]

[하느님의 은총으로 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 연합 왕국의 여왕, 신앙의 수호자이자 검후 되시는 빅토리아 여왕 폐하께서 화경에 도달, 반로환동Rejuvenation에 성공하시다.]

굵은 글자의 헤드라인 옆에는 왕관을 쓴 2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여인의 사진이 같이 인쇄되어 있었다.

제왕의 격이 느껴지는 깊고 차가운 눈매.

기사 내용에 따르면, 그녀가 바로 빅토리아 여왕이었다.

“…….”

머리가 어지러웠다.

나는 조용히 치킨 커리를 비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과거로 돌아온 건 기쁘긴 한데, 여긴 정말 내가 아는 런던이 맞는 걸까.

일단은 허드슨 부인의 말대로 빈 그릇을 문앞에 두고―

-휘청

낯선 세계에 들어섰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탓인지 다리의 힘이 풀리며 몸이 균형을 잃었다.

다행히도 바로 중심을 잡았지만 의도치 않게 왼발로 바닥을 세게 굴렀는데.

-콰아앙!!!!

엄청난 굉음과 함께 바닥이 부서지며 뚫린 구멍 너머로 허드슨 부인의 성난 얼굴이 보였다.

“홈즈 씨!! 진각은 밖에서 밟으시라고 제가 몇 번을 얘기해야 아시겠어요!!!”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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