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회: 1권-1화 파병(派兵) -->
아프리카의 뿔이라고 불리는 소말리아는 1990년대 초부터 시작된 내전으로 국가 조직망이 와해된 지 수십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무정부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동안 유엔을 비롯한 유력 국가들이 나서서 수없는 중재를 하였지만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오히려 내전 초기, 작은 조직에 불과했던 반군들은 자신들의 세력을 키우거나 유지하기 위해 인근 바다에서 대규모 해적질을 서슴없이 자행했다. 이들의 행위는 국제적인 공분을 사서 연합함대까지 구성하여 대응했지만 이들을 완전히 근절시키지 못했다.
더구나 반군들은 소말리아 유력자들과 은밀히 손을 잡으며 세 불리기에 나서자 점점 기세를 더해졌고 무장을 불리면서 이제는 어엿한 거대 군벌들로 성장해 버렸다.
세를 불리고 중무장을 한 이들의 해적 행위는 점점 도를 넘었다. 초기에 선박을 납치해서 몸값을 요구하던 정도에서 몸값은 물론이고 선박 털기도 자행하게 됐다. 이렇게 되자 피해는 눈덩이같이 불어났다. 거기에 케냐 국경까지 침범해 인종 학살까지 자행했다.
상황이 여기까지 전개되자 그동안 연합함대를 구성해 선박을 호위하며 방어적으로 대응하던 각국은 유엔 결의를 거쳐 나토의 신속대응군같이 반군을 직접 타격할 평화유지군 결성을 결의하고 작전의 신속 전개를 위해 단일국가군대를 파병하기로 결정한다.
유엔 안보리의 결의가 있자 각국의 시선은 국제경찰을 자임하던 미국에게로 쏠렸다. 하지만 미국은 의외로 자국 병력의 파병에 난색을 표명하고 나섰다. 겉으로는 지속적인 병력 감축 때문에 장기 주둔시킬 여유 병력이 없다는 것이었지만 속내는 파병으로 거둘 실익이 없다는 것이다.
더구나 미국은 소말리아 옆 지부티에 이미 해군기지가 세워져 있었고 반군들이 미국 선박은 절대 손을 대지 않고 있었기에 구태여 여단 이상의 병력을 파견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거기다 파병할 지역인 스코트라 섬은 전통적으로 미국과 불편한 관계인 예맨의 영토였다.
미국이 이런저런 이유로 파병에 난색을 표시하자 이번엔 영국이 파병하겠다고 나섰다. 하지만 이 또한 중동 지역에지지 기반을 넓히려는 러시아와 프랑스의 거부권 행사로 무산되어 버렸다.
이렇듯 각국의 첨예한 이해관계로 영국과 미국이 파병을 못 하게 되자 이번에는 그동안 집단적자위권이란 미명하에 강력하게 군사 대국화를 추진하고 있는 일본이 나섰다. 이러한 일본 의도는 미국과 영국의 지지를 받았지만 일본의 군사대국화를 경계하고 있던 중국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혀 결국 해프닝으로 끝나고 말았다.
이렇게 유엔 상임이사국들의 자국의 이해득실에 의한 물고 물리는 파병 반대가 잇따르자 유엔은 파병 결의는 했지만 실제 행동에는 옮기지는 못한 채 시간만 흘려보내야 했다.
유엔이 이렇듯 각국의 이해득실로 시간을 보내는 사이 해적들은 마치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아덴만 인근뿐이 아니라 인도양까지 진출해서 해적질을 자행하여 이들에 의한 피해는 급격하게 늘어났다.
이렇게 되자 소말리아 해적들이 공략 대상이 되면서 많은 피해를 입고 있던 주요 당사국들인 아시아권 국가들은 안보리 상임이사국들을 강력하게 비판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미묘한 국제 역학 관계에 의외의 불똥이 튄 나라는 바로 한국이었다.
2030년 한국 대통령은 홍성관이었다.
홍성관 대통령은 보수 성향의 정당 출신으로 비록 보수적 인사이기는 하지만 합리적 성품으로 야권에서도 인정을 받으며 국정 운영을 원만하게 처리해 나가고 있었다.
청와대 대통령 집무실에는 총리를 비롯한 주요 장관급 인사들 몇 명이 자리하고 있었다.
홍성관 대통령이 먼저 입을 열었다.
“유엔에서 파병 국가로 우리나라가 집중적으로 거론되고 있다고요?”
대통령의 물음에 외교부 장관 김석하가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의외입니다. 파병을 자청한 일본도 아니고 가만히 있는 우리나라가 거론되고 있다니요?”
“유엔 대사의 보고로는 일본의 무모한 파병 요청 때문에 그러한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고 합니다.”
“일본 때문에요?”
“중국의 반대로 비록 일본 파병이 무산되기는 했지만 소말리아 반군의 해적 행위로 각국들의 피해가 급증하고 있는 현 상황에 중국도 대안도 없이 일본의 파병을 계속 반대만은 할 수 없지 않겠습니까? 저희 외교부 판단으로는 중국이 미국과 모종의 협상을 한 것 같다는 분석입니다.”
그러자 배석한 국정원장 나용호가 나섰다.
“김 장관님의 지적이 맞습니다. 워싱턴에 파견 나가 있는 우리 요원들의 첩보에 의하면 중국 대사가 며칠 전 미국 국무 장관을 은밀히 만났다고 합니다. 그 후부터 우리나라의 파병으로 급격히 분위기가 조성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중국의 의도가 아주 불편하군요.”
이번에는 총리가 발언했다.
“맞습니다. 중국의 입장에서 우리 병력이 조금이라도 줄어드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총리의 말에 대통령의 이마에 주름이 잡혔다.
“그렇지 않아도 남북한 통일 무드가 조성되면서 늘 촉각을 곤두세우고 사사건건 트집을 잡더니 이젠 노골적으로 우릴 경계하기 시작하는군요.”
2030년의 한반도는 통일 직전이었다.
이렇게 통일 무드가 조성된 것은 전제 왕조와 같았던 북한이 2020년 소장파 장성들이 주축이 되어 친위 쿠데타를 일으켜 최고 권력자인 김정은을 몰아냈기 때문이었다. 그 후 쿠데타 주역들은 집단 지도 체재를 구성하고는 반대하는 세력을 몰아내기 위해 내전에 버금가는 피의 숙청을 벌였다. 그 여파로 한동안 한반도의 정국 불안이 최고조에 이르렀었다.
다행히 쿠데타 세력이 기득권 세력을 일소했다. 이렇듯 정국을 완전히 장악한 북한의 신지도부는 통일에 대해 적극적으로 나섰다. 북한의 이러한 적극적인 통일 의지는 남한의 열렬한 호응으로 급격히 실체화되기 시작했다.
이후 통일의 가장 전 단계로 조건 없는 이산가족 상봉과 더불어 적극적인 경제 교류가 시작되었다.
남한은 북한의 낙후된 경제를 살리기 위해 통일을 전제한 적극적인 인적 물적 지원을 아낌없이 펼쳤고 북한도 이에 범국가적으로 호응했다. 남한의 자본과 북한의 숙련된 노동력의 조합이 환상적으로 맞아떨어지며 남북한 국력은 이후 급속히 신장된다.
이후 10년의 세월 동안 남북이 동반 성장을 하자 시너지 효과는 극대화되어 북한은 남한과의 경제 격차가 10년 이내로 줄어들 정도로 완전히 상전벽해 되었다. 그동안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북한 재건과 이산가족 교류, 그리고 관광 등을 제외한 인적 교류를 막아 왔던 남북한은 통일의 기반이 완전 조성되었다는 판단하에 2030년에 들어서면서 인적 교류를 전면 개방하기에 이르렀다.
참으로 다행이었던 것은 그동안 그렇게 자신들의 당리당략과 사리사욕만을 챙겨 왔던 국해의원(國害議員)들이 지난 10년간 통일 문제에 대해서는 별다른 해악 행위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물론 모든 국해의원들이 그러했던 것은 아니었다.
스스로 힘이 있다고 자부하던 상당수 국해의원들은 자신들의 힘과 지위를 악용하여 북한의 지도층과 접촉하여 사리사욕을 챙기려 했지만 비리 권력층을 일소한 북한 지도부의 철저한 대응으로 대부분 법정에 서면서 역사에서 사라졌다.
이러한 한반도 통일 무드에 중국은 자신들의 영향력하에 있던 북한이 떨어져 나가는 것을 그대로 보고만 있지는 않았다. 중국은 북한에 대한 자신들의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고 온갖 방해 공작을 펼쳤고 당장 통일을 눈앞에 둔 남북한이 이런 아귀와 같은 중국의 욕심을 모두 막아 내기는 불가능했다.
북한이 3대 세습을 하는 동안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중국 측에 많은 이권을 넘겨주었던 터라 지난 10년간 남북한 지도자들은 어쩔 수 없이 상당 부분의 이권을 그들에게 양보해야만 했다.
지난 시절을 잠깐 회고하던 대통령은 국정원장에게 물었다.
“나 원장님, 미국이 나섰다면 상황이 심각하겠군요. 국정원에서는 앞으로 어떻게 될 것으로 전망하십니까?”
“저의 원에서 판단하기는 조만간 미국 측에서 정식으로 우리에게 파병을 요청을 해 올 것으로 보입니다.”
“국정원이 생각한 대응 방법이 있습니까?”
“미국이 정식으로 요청해 온다면 들어주는 것이 국익에 도움이 된다고 봅니다.”
“국익이요?”
“그렇습니다. 남북한 통일 총선거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때 미국과 불편한 관계라도 조성된다면 통일에 상당한 차질이 있을 것이란 판단입니다.”
“그렇다고 해도 미국조차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포기한 곳에 귀중한 우리 군대를 파병하고 싶지는 않군요.”
“그렇지만 우리가 파병을 거부하면 일본이 파병을 할 명분을 제공하게 되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되면 오히려 우리 국익에 더 좋지 않습니다.”
대통령의 이마가 찌푸려졌다.
“하! 이거 참, 진퇴양난이군요.”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만 있던 국방부 장관 최영희가 나섰다.
“저희 국방부에서는 파병을 나쁘게 보지만은 않습니다.”
의외의 말에 대통령이 눈을 크게 하고 물었다.
“나쁘지만은 않다니요?”
“그렇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국정원에서 어제 우리 국방부에 유엔에 관한 첩보를 넘겨줘서 군 수뇌부가 별도로 회의를 했습니다.”
“그래요? 그렇다면 군에서는 파병을 어떻게 보고 있습니까?”
“저희는 대국적인 관점에서 파병을 찬성합니다.”
“대국적인 관점에서의 찬성이요?”
“그렇습니다. 저희군은 만일 파병을 하게 된다면 파병을 통일의 전 단계 과정으로 보자는 의견입니다.”
“어떻게 말입니까?”
“지난 10년간 통일 분위기 조성으로 남북은 협상에 따라 상당수의 병력을 감축해 오고 있습니다. 곧 남북한 총선거가 실시되어 정식으로 통일이 되겠지만 아직까지 남북한은 양군의 미묘한 문제로 아직 합동훈련을 한 적이 없고 그동안 남북 양군은 미묘한 입장 차로 누가 먼저 이 문제를 꺼내지 못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 이번에 파병을 하게 된다면 이것을 기회로 남북한이 본격적으로 군부 통합을 진행했으면 합니다.”
그랬다. 지난 10년간 남북은 경제 등 다른 분야는 교류가 진행되었지만 군대 문제만큼은 병력 감축 이외에는 본격적인 교류가 시작되지 않고 있었다.
군사 교류는 통일의 마지막 넘어야 할 산이었다.
남북한 지도자들도 이 문제는 누구보다 절실하게 잘 알고 있었지만 누구도 먼저 말을 꺼내기 어려운 뜨거운 감자나 다름없었다.
대통령도 항상 고심하던 문제라 국방부 장관의 말에 귀가 번쩍 뜨이는 기분이었다.
“군사 교류는 통일의 마지막 해결 과제라는 것은 모두들 아시고 계실 것입니다. 저도 그 문제를 늘 고심하던 참이었는데 국방부 장관 말씀을 들으니 눈이 번쩍 뜨이는 기분입니다. 국방부 장관께서는 양측의 군사 교류를 어떤 방식으로 진행하겠다는 계획은 있으십니까?”
“이번에 파병을 하게 된다면 남북 양군이 합동 파병을 하는 것을 건의 드리고 싶습니다.”
최영희의 말에 회의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이 깜짝 놀란 표정들이었다.
“남북한 합동 파병을 한다는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생각지도 않았던 국방부 장관의 제안에 대통령을 비롯한 참석자들은 잠깐 동안 아무도 입을 열지 못했다. 잠시 시간이 지나고 대통령이 물었다.
“남북 양측은 군사 문화가 전혀 다른데 무슨 복안이라도 있는 것입니까?”
“비록 양군의 문화가 다르고 직급이 조금 다르다고 해도 상명하복이 분명한 것이 군대입니다. 지난 10년간 개혁의 중심에 서 있었던 북한 군부도 이전의 독선적이고 자기중심적인 태도에서는 확실하게 벗어났다고 보아도 충분할 것입니다. 그리고 통합에 따라 발생할 소소한 문제점들은 몇 개월 정도 합동훈련을 하면서 충분히 극복해 낼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되었습니다. 더구나 합동훈련 중 발생하는 문제점은 앞으로 양군이 정식 통합을 할 때 반드시 나타날 문제일 것입니다. 이번 기회를 적극 활용해 양군이 충분히 협의하여 좋은 안을 도출한다면 통일을 대비해서라도 이보다 더 좋은 기회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서라도 저희 군은 이번 기회를 적극 활용할 것을 건의드립니다.”
주무장관인 국방부 장관의 적극적인 의사 표현이 있자 나머지 참석자들의 안색이 크게 밝아졌다.
그때 국무총리 박임모가 나섰다.
“최 장관의 말씀을 듣고 보니 충분히 일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젊은이들이 귀중한 목숨을 걸고 파병을 하는데 반드시 합당한 대가는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실속을 챙기자는 말씀입니까?”
“그렇습니다.”
“생각하고 계신 것이 있습니까?”
“금년 상반기 중에 주한 미군의 공군을 제외한 육군 병력 전부가 철수를 합니다. 미국의 요청으로 우리 군이 소말리아에 파병한다면 이번에 그들의 전시 물자를 무상 양도 받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는 것이 어떻습니까?”
주한 미군은 한반도 분쟁이 종식된 후에도 병력이 조금 줄기는 했으나 그동안 계속 존속되어 왔었다.
하지만 통일을 눈앞에 다가오면서 2030년 상반기 중 공군 병력을 제외한 지상 병력 전부를 철수하기로 한미 양국 간에 협의되어 있었다.
총리의 제안에 대통령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거 좋은 생각입니다. 국방부 장관께서는 총리께서 말씀하신 점을 적극 검토해 보시기 바랍니다.”
“알겠습니다.”
이렇게 청와대에서 회의가 있고 며칠 지나지 않아 예상대로 미국 국무 장관이 한국의 파병을 권하기 위해 내한했다. 한국 정부는 이미 파병을 전제로 검토를 진행하던 터라 파병협상은 별다른 무리 없이 진행되었다. 전시 물자 양도는 미국의 입장에서도 경제 사정으로 외국에 주둔하던 병력을 계속적으로 감축하고 있던 터라 잉여 물자로 남겨야 하는 주한 미군 전시 물자를 한국에 넘기는 것에 크게 반대하지 않았다.
단지 한국 요구대로 무상 양도는 아니고 본래 가격보다 아주 낮은 유상 양도로 결정되었으나 한국으로서도 낮은 가격 때문에 크게 불만이 없었다.
한국의 파병이 결정되자 한국 지도부는 이러한 결정을 즉각 북한 지도부에 알리며 합동 파병을 요청하기에 이르렀고 북한 지도부도 대환영이었다.
그들도 마지막 남은 통일의 걸림돌인 군부 통합에 대해 상당히 고심하고 있었기에 한국의 요청에 쌍수를 들고 환영했다. 남북한 양국은 즉시 세부 협의에 들어갔고 협의 결과 통합군 계급 체계는 북한군의 계급 체계인 각 직급별 4단 계급제를 채택하면서 군의 인사 적체도 해소하기로 했다.
장성직급은 차수를 없애고 부사관 계급 중 북한의 특무상사를 원사로 통일했다.
파병 병력은 남북한이 혼성 편성을 하기로 했고 파병은 의회의 결의를 거쳐 신속히 진행되었다.
파병 부대는 남측에서는 현지 작전 상황을 고려하여 해병대 병력과 각종 지원 부대가 차출되었고 북측에서도 연대 병력이 참여했으며 부대 지휘관으로는 한국군장성을 선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