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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시작이 게이트라곤 안 했잖아요-205화 (216/361)

205화

챕터: 하얀 탑에 갇힌 카나리아

5황자가 한국으로 파견된 걸 확인 했으니, 나도 약속을 지킬 차례였 다.

눈을 뜨자 이제는 익숙한 광경이 펼쳐졌다. 다니엘의 침실이다.

그는 내 인기척을 느꼈는지 검을

쥔 채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첫 만남이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왔군."

"약속했으니까요."

그가 멍청이로 보일 걸 감수하고 서 황제에게 얘길 꺼냈다면 나도 합당한 대가를 치르는 게 맞다.

"5황자가 한국으로 온 거 확인했 습니다."

"그럼 이제 내가 요구할 차례야."

그는 오랜 시간 이 순간만을 기다 려온 것처럼 형형한 눈빛을 했다.

"내 가문이 멸문당할 때 대부분의

재산은 국가에 귀속됐지만, 일부는 황제의 개인 자산이 됐지. 그 까마 귀 같은 자식이 화려한 보석들을 따로 챙긴 거야. 금은보화 같은 건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딱 하나, 돌려 받고 싶은 게 있어."

대체 뭐길래 이 귀한 기회를 물건 찾기에 쓰는 걸까?

차라리 내게 다른 걸 요구하는 게 훨씬 합리적일 텐데.

"그게 뭐죠?"

"펜던트다. 안에 소중한 사진이 담 긴."

아련한 눈빛이 잠시 일렁였다. 그

러나 이내, 복수심에 가득 찬다.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 거다. 겉 에 로스 가문의 상징이 새겨져 있 는 데다 사파이어와 은으로 꾸며져 화려한 펜던트니까."

보석이 박혀있으니 재산을 몰수할 때 가져간 모양이지.

"어디에 있는지 위치는 압니까?"

"정확히는 아니지만 대충은."

그거 좀 불안한 발언이다. 얼마나 찾아 헤매야 할지 모른단 소리 아 닌가.

"가문의 상징이 크게 새겨진 물건

이니 누구에게 하사하진 않았을 거 고, 보석을 일일이 빼내 재조립할 성미도 아니니 어딘가 구석진 곳에 처박아뒀겠지."

으드득, 작게 이를 가는 소리가 들 렸다. 자신의 소중한 것이 홀대받으 면 화가 나기 마련이다.

"동쪽에 황제 소유의 작은 탑이 있다. 일명 '하얀 탑'이라 불리는 곳인데, 아마 그곳에 있을 거야."

"그 탑 전체를 찾아보란 말인가 요?"

내 물음에 다니엘이 고개를 끄덕 였다.

"네 능력이면 잠입하기 어렵진 않 을 거다. 입구를 지키는 이들은 있 지만, 그 내부는 철저하게 비밀에 부쳐져 드나드는 시종도 거의 없거 드 "

뭐 그렇다면야 다행이지만.

내 능력을 사용하면 물건 찾기 정 도는 금방 할 테니 나쁘지 않은 거 래 였다.

"만약 하얀 탑에 없으면요?"

"그럼…… 나도 어디 있는지 모르 겠으니, 포기해야지."

상상만으로도 씁쓸한지 입술을 잘

게 깨문다.

"좋아요. 그럼, 최선을 다해보도록 하죠."

이건 나쁘지 않은 신호였다. 다니 엘도 나와의 거래를 신뢰하기 시작 했단 얘기니까.

'날 믿지 않았더라면 저런 조건을 내걸 리가 없지.'

내가 대충 찾으러 간 척했다가 돌 아와서 '그곳에 없던데요?' 하며 시 치미를 떼면 어쩌려고 저리 허술하 게 군단 말인가.

'그럴 생각이 없긴 하지만. 어찌 됐든 신뢰가 쌓이는 건 좋은 신호

지.'

단순한 정보뿐만 아니라 더 많은 것을 주고받게 될 수 있을 테니까.

나는 눈을 감고, 공간 간섭을 펼쳤 다.

이 몸은 아주 작고 연약해서, 기사 를 마주치기라도 하면 바로 끝장이 었다.

'인기척도 잘 느끼지 못하니까 애 초에 사람이 없는 곳으로 향해야 지.'

조심스럽게 인적이 드문 곳을 골 라 자리를 옮겼고, 그걸 두어 번 반복하자 다니엘이 말한 탑이 보였다.

하얀 탑.

그 이름대로 외벽은 흰색이었고 첨탑이 하늘 높이 솟아있었다.

창문도 제대로 뚫려 있지 않은 저 곳에 뭐가 숨겨져 있는 걸까.

황제 소유에, 내부는 철저히 비밀 에 부쳐진 곳.

그 미지의 공간에 발을 들였다.

* * *

'공간 간섭.'

스킬을 발동하자 탑의 내부가 머 릿속에 그려졌다.

다니엘의 말대로 입구를 지키는 병사를 제외하면 내부는 텅텅 비다 시피 했다.

'이런저런 물건들이 쌓여있는 걸 보면 여기 있을 것 같긴 한데.'

나는 펜던트와 유사한 형상을 가 진 물건을 발견하고 그곳으로 이동 했다.

"커흡!"

이동하자마자 먼지가 숨통을 조여

온다.

'대체 얼마나 정리를 안 한 거야.'

수북하게 쌓인 먼지와 거미줄이 이곳이 어떻게 관리되고 있는지를 반증했다.

'마족의 계약, 흑마법의 비책……. 이거 금서들인가?'

흑마법과 관련된 책들이 쌓여있는 걸 보니 보통 물건은 아닌 것 같았 다.

'그래도 황제의 소장품이긴 하다 이거지.'

아마 이번 대 황제만 여길 쓴 건

아닌 것 같고, 대대로 내려오는 곳 인 듯했다.

고작 몇십 년 동안 이만큼 거대한 창고를 만들 수 있을 리가 없지 않 은가.

'이거 완전히 보물찾기네.'

이 안에 얼마나 값진 것이 숨어 있을지, 아무도 모른단 얘기니까.

우선은 다니엘이 부탁한 펜던트를 찾기 위해 먼지 구덩이 사이로 기 어 들어갔다.

'몸이 작아서 망정이지. 으윽!'

자그마한 몸으로 물건들 틈새를

비집고 들어갔다. 안쪽 구석에 처박 힌 물건에 다다라 겨우 그 모습을 확인한다.

'.사파이어가 아니야.'

비슷하긴 하지만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게 사파이어가 아니라 금과 은이었다.

번쩍번쩍 빛나는 게 가져다 팔면 값어치가 상당할 것 같다.

'로스 가문의 문장은 맞아. 그러니 펜던트도 이 근처 어딘가에 있긴 할 텐데..

펜던트 앞면에 새겨진 문양은 분 명 다니엘이 보여줬던 로스 가문의문장이었다.

로스 가문의 재산이 이 안에 흩뿌 려진 건 확실해 보였다.

'공간 간섭.'

한 번 더 스킬을 펼치자 펜던트로 추정되는 것들이 몇몇 더 보였다.

그런데, 기감에 이상한 게 잡혔다.

제일 끄트머리 층에서 이제까지와 는 다른 것이 느껴졌다.

그건 살아 숨 쉬고 있었고, 동물이 라기엔 꽤 컸다.

'사람. 사람이야.'

그냥 사람도 아니다.

길게 늘어뜨린 머리카락, 바닥에 쓸리는 긴 옷자락에 발목에 매인 족쇄까지.

'갇혀 있는 건가?'

황제의 탑에 갇혀있는 사람이 라……. 이거 뭔가 이상하다.

죄수면 감옥에 있을 것이고, 황제 의 탑에 갇힐 정도로 중오를 샀다 면 그냥 목이 베였을 텐데.

뭣 때문에 귀찮게 사람을 여기에 가둬뒀단 말인가?

'모종의 이유로 숨겨뒀다……. 그 렇게 보는 게 맞겠지.'

이곳에 감춰둘 수밖에 없는 이유 가 있었을 거다. 그게 뭔진 몰라도.

'확인해봐야 하나?'

저 갇혀있는 자가 황제의 비장의 한 수거나, 약점일 가능성도 있었 다.

'얼굴만 미리 봐둘까. 나중에 다시 마주치면 알아볼 수 있게.'

그렇게 생각하면서 나는 스킬을 발동했다.

'공간 간섭.'

눈에 띄지 않게 천장 구조물들 사 이로 이동했다. 나는 슬그머니 고개를 뻗어 아래를 내려다봤다.

은발에 가까운 백금발이 일렁이고, 녹색 눈동자가 긴 속눈썹 사이로 슬며시 보였다.

아직 어린 나이로 보였다. 고작해 야 10대 후반 정도일까.

수수한 흰색 원피스나 맨발보다 훨씬 먼저 눈에 들어오는 특징이 있었다.

'귀가…… 귀가 길잖아.'

사르륵 흩날리는 머리카락 사이로 뾰족한 귀가 보였다!

'엘프라기엔 작고, 인간이라기엔

큰데.'

빼어난 용모가 분명 엘프와 닮았 지만 내가 아는 엘프와 귀 모양이 좀 달랐다.

'뭔진 몰라도 엘프로 추정되는 여 자를 탑에 가둬두고 있다니. 황제의 취향인가?'

정치적으로 약점이 될 만한 문제 는 아닐 텐데 굳이 숨겨야 할 필요 가 있을까?

엘프를 천대하는 문화가 아직 남 아있긴 하겠지만, 그렇다고 황제가 숨어서 봐야 하는 수준은 아니었다.

'오히려 어설프게 외척 세력이 힘

을 얻는 것보단 뭣도 없는 엘프가 낫다고 환영하는 귀족들도 있었을 텐데.'

대체 이 소녀가 여기에 갇혀있는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흐흠〜, 흐흐흐흠.

아이는 머리카락을 빗으면서 작게 콧노래를 불렀다.

나는 숨죽여 그걸 바라봤다.

"곧 비앙카가 올 시간이야! 기대된 다! 물론 그분은 나한테 쌀쌀맞지 만, 그래도 은근히 여려서 막 대하 진 못하시거든."

누구에게 말하는 걸까.

아이는 듣는 이 없는 혼잣말을 중 얼거렸다.

"전에 왔던 사람들보단 훨씬 나아. 그자들은 날 벌레 보듯이 했다니 까!"

그러더니 혼자 분통이 터진다는 듯 불만 어린 어조로 불만을 토로 한다.

"네가 생각해도 그 사람들은 너무 하지 않았니?"

스윽.

아이가 옷 안에서 목걸이를 하나

꺼냈다. 거리가 꽤 멀었지만 똑똑히 보였다.

'로스 가문의 문장. 그리고 사파이 어와 은!'

분명하다. 저건 다니엘이 묘사했던 그 펜던트였다!

"너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고마워! 역시 내 편은 너뿐이야, 로지!"

아이는 펜던트 속 사진을 들여다 보며 여전히 혼자서 중얼거리고 있 었다.

정상으로 보이진 않았다.

'혼자 오랜 시간 이곳에 갇혀 있어

서 미쳐버린 건가.'

그때, 1층에서부터 누군가 올라오 는 기척이 느껴졌다.

'걸음걸이나 차림새가 기사는 아니 야.'

아마도 아이가 말한 '비앙카'인 것 같았다. 하녀복을 입고 있었다.

그렇다면 내 기척을 눈치챌 일도 없겠지. 나는 무슨 일인가 싶어서 좀 더 살펴보기로 했다.

'저 펜던트를 각별히 여기는 것 같 은데 어떻게 훔쳐올지도 좀 고민해 야 하고.'

목에 걸고 있는 걸 무슨 수로 몰 래 훔쳐온담.

지금 내 몸은 너무 자그마해서 저 어린 여자애와 싸워도 승산이 있을 지 장담할 수가 없었다.

벌컥.

비앙카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표 독스러운 얼굴을 하고서.

손에 든 바구니엔 샌드위치가 담 겨있었고 발걸음은 소란스러웠다.

짜증스러운 걸음이다.

툭.

"얼른 먹어! 할 일이 많으니까."

바구니를 내던지듯이 건네고는 퉁 명스럽게 말했다.

아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생긋 웃 으며 인사를 건넸다.

"안녕! 비앙카. 오늘도 기분이 나 빠 보이네!"

"밥이나 먹으라고!"

"알겠어. 먹을게. 대신 먹는 동안 내 얘기 좀 들어줘. 웅? 그 정도는 할 수 있잖아."

아이가 간절히 애원하자 비앙카는 못마땅한 표정을 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대신 빨리 먹어야 해."

"물론이지!"

아이가 구김살 없이 웃었다.

누구라도 좋으니 이야길 털어놓을 사람이 절실한 모양이었다.

"있잖아, 내가 어릴 때 우리 집에 불이 난 적이 있었거든. 새빨간 게 날 잡아먹을 것처럼 막 일렁거렸단 말야."

아이는 급하게 샌드위치를 먹으면 서도 입을 멈추지 않았다.

대답 한번 없어도 잘도 조잘조잘 떠들어댔다.

"그때 우리 오빠가 날 구해줬는 데……

"바보야. 아직도 그 얘기니?"

말없이 듣던 비앙카가 툭 핀잔을 던졌다.

"그놈의 오빠, 오빠. 그래서 네 그 잘난 오빠는 왜 널 이 구석진 탑에 처박아놨대?"

"그런 거 아냐! 우리 오빠는 아주 아주 바쁘거든. 난 비앙카 말대로 사람을 귀찮게 구는 편이니까, 그래 서 그런 것뿐이야."

아이는 한 치의 의심도 없이 그렇

게 대꾸했다. 그러나 비앙카는 코웃 음 쳤다.

"그게 아니라 널 버린 거야."

"아니야!"

"넌 버려진 거라고!"

"아니라니까!"

아이가 퍽! 먹던 샌드위치를 바닥 에 던졌다.

"함부로 말하지 마!"

씩씩거리면서도 눈가에 눈물이 맺 혀 있었다.

덜덜 떨리는 음성으로 아이가 말 을 이었다.

"우리 오빠는 아주 가끔 오긴 하 지만! 그래도 나한테 늘 미안하다 고, 늘 자기가 미안하다고 그런단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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