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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시작이 게이트라곤 안 했잖아요-206화 (217/361)

206화

"엘리사!"

비앙카가 새된 비명을 질렀다.

"이게 뭐 하는 짓이야!"

바닥에 나뒹구는 샌드위치를 보며 분노를 감추지 못한다. 그러나 엘리 사는 미안한 기색이 없다.

"왜? 비앙카가 먼저 우리 오빠 욕

했잖아!"

"먹을 걸 이렇게 던지면 어떡하 니? 그래, 네 성질머리가 이러니 네 오빠가 널 두고 도망친 거야!"

그 말에 엘리사가 한 번 더 도끼 눈을 떴다.

"그렇게 말하지 말라고 했잖아!"

"네가 그렇게 자랑하는 오빠가 누 군진 몰라도, 그렇게 잘났으면 왜 널 여기에 처박아뒀겠어? 이 거짓 말쟁이야!"

"거짓말 아니야!"

비앙카가 입가에 비웃음을 띠며

냉큼 대꾸했다.

"그럼 누군데?"

" 응?"

"누군지 이름이라도 대 봐. 혹시 알아? 나도 아는 사람일지."

그러자 엘리사의 기세가 확 꺾였 다.

" 그건......

"왜 말 못 해? 역시 네가 상상으 로 지어낸 거야. 여기 갇혀 살다 보니까 헛것을 보는 거지."

"아니야! 진짜란 말이야! 그냥…… 오빠가, 어디 가서 말하지 말라 그

랬어. 그래서 말 못 하는 거야!"

그러자 비앙카는 자기가 졌다는 듯 고개를 살살 저었다.

"핑계도 많다."

전혀 믿는 듯한 어투가 아니었다.

엘리사는 발끈한 표정이었지만 입 밖으로 내뱉는 것은 불만 대신 체 념에 가까웠다.

"치. 됐어. 비앙카랑 말 안 해."

"바라던 바야. 요 꼬맹아."

비앙카는 코웃음을 치더니 한구석 에서 청소도구를 가지고 와서 샌드 위치를 치운다.

"그래. 네가 무슨 잘못이 있겠어."

스윽, 스윽.

잔여물을 닦아내며 나지막이 중얼 거린다.

"너나 나나 여기서 평생 썩을 운 명인데……. 널 맡으면서 내 출셋길 도 막혔으니, 이 아무것도 없는 탑 안엔 너랑 나뿐이야."

씁쓸한 어조였다.

"오랜 시간 탑에 갇혀서, 본 적도 없는 오빠 소리만 백날 하고……. 에휴, 쯧쯧."

비앙카의 말에도 엘리사는 무릎

사이에 고개를 묻은 채였다.

다리를 끌어안고 몸을 둥글게 만 모습이 애처롭기까지 하다.

비앙카도 마음이 쓰이는지 슬쩍슬 쩍 엘리사 쪽을 바라보곤 했다.

"엘리사. 나 간다?"

샌드위치를 다 치우고 나서 비앙 카가 나설 채비를 할 때까지도 엘 리사는 웅크려 있었다.

"나 진짜 간다?"

"가!"

엘리사가 날카롭게 소리쳤다.

"나도 비앙카 필요 없어! 그냥

가!"

"하여튼……

비앙카는 툴툴 대면서 발걸음을 옮겼다.

끼이이익, 탁.

문이 잠겼다.

엘리사는 다시금 이 탑에 홀로 남 겨 졌다.

달깍.

엘리사는 한 번 더 목걸이를 꺼내 펜던트를 열어봤다.

"로지. 너도 그렇게 생각해?"

사진은 답이 없었다.

"오빠가 날 버린 거라고. 그렇게 생각해?"

아이가 들여다보고 있는 사진이 대체 뭔진 몰라도, 연신 말을 거는 것을 보면 사람인 듯했다.

그리고 엘리사에게 대화할 수 있 는 '사람'은 이 탑에서 비앙카와 저 사진 속 '로지' 둘뿐인 것 같다.

"아니지? 맞아, 그럴 리가 없지. 우리 오빠가 얼마나 다정한데……

작게 되뇌는 목소리는 확신보단 불안을 담고 있었다.

"비앙카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비 앙카야말로 바보야. 원래 남한테 바 보라고 하는 사람이 진짜 바보랬 어..

중얼거리는 소리는 점점 작아졌다.

스르륵, 엘리사는 차츰차츰 잠에 빠져들었다. 펜던트는 손 안에 쥐어 진 채였다.

'기회야.'

늘 목에 걸고 다니는 펜던트가 밖 으로 나와 있는 것만으로도 내겐 큰 기회다.

게다가 소유주가 잠에 빠져들었으

니 더더욱.

'몰래 가져가야 하는데……

엘리사라고 불린 저 아이가 펜던 트에 갖는 애착이 꽤 큰 것 같아서 마음이 쓰였다.

'아니. 공과 사는 구분해야지.'

다니엘에게 저 목걸이를 가져다주 는 게 내가 해야 할 일이니까.

엘리사인지 뭔지 하는 저 애의 사 정은 내가 알 바 아닌 거다.

나는 엘리사가 깊게 잠든 것을 확 인하고 슬그머니 자리를 이동했다.

'공간 간섭.'

엘리사의 앞에 소리 없이 내려앉 았다.

스으윽.

조심스럽게, 엘리사의 손아귀 안에 높인 펜던트에 손을 댔다.

내가 작아진 탓에 펜던트가 거의 내 몸만 했다.

'사파이어에 은. 거기다 로스 가문 의 문양까지. 이게 확실해.'

이제 펜던트와 나만 이동시키면 엘리사의 손에서 말끔하게 펜던트 만 빼낼 수 있을 터였다.

손을 얹은 채로 공간 간섭을 발동

하려는 찰나였다.

"넌 뭐야?"

갑작스러운 소리에 고개를 돌려보 니, 커다란 녹색 눈동자가 날 빤히 응시하고 있었다.

'눈을 떴어!'

기왕 들킨 거 어쩔 수 없다!

그냥 눈앞에서라도 가져가는 수밖 에!

나는 서둘러 스킬을 발동시키려고 했지만 이내 바로 멈췄다.

휘익!

"우와! 엄청 작다."

엘리사가 날 움켜쥔 탓이었다.

'윽!'

신기한 것을 보는 것처럼 날 꼭 쥔다. 배려심 없는 손길에 통증이 일었다.

"요정님? 요정님이죠! 제 소원을 들어주려고 온 거죠!"

엘리사가 반짝반짝 눈을 빛냈다. 어쩌지?

'대충 장단에 맞춰주고 펜던트를 달라고 해야겠어.'

여기서 요정이 아니라고 하면 또 정체가 뭔지 캐물어서 귀찮아질 것이 아닌가.

"맞아. 널 찾아온 요……정이야."

"우와! 맞았다! 요정님, 기다렸어 요! 매일 밤 기도했더니 정말 요정 님이 오셨네요!"

"그, 그럼. 기도하는 아이들을 찾 아가는 게 내 일이니까. 울지 않는 아이에겐 선물을 줘야지."

이게 요정인지 산타클로스인지 모 르겠지만, 대충 뒤죽박죽 섞어서 말 했다.

"그럼 제 소원을 들어주실 거죠?"

그게 뭔지 모르겠는데, 모르겠다고

말하면 안 될 분위기다.

"물론이지. 대신!"

반짝반짝 빛나는 눈동자에서 슬그 머니 시선을 옆으로 피했다.

"그 펜던트만 내게 주면 말이야."

손가락으로 엘리사의 반대편 손에 놓인 펜던트를 가리켰다.

"로지요? 그치만, 로지도 제 친군 데……

"저 펜던트를 준다고 약속하지 않 으면, 나도 다른 아이에게 가봐야겠 다."

"잠깐만요! 요정님, 잠깐만 기다려

줘요."

엘리사가 무척 고뇌하는 듯 울상 을 지었다. 강아지처럼 순등한 인상 탓에 죄책감이 한결 더 짙어졌다.

"……알겠어요. 대신, 정말로 제 소원 들어주시는 거죠?"

"응? 어, 으웅……

펜던트만 받고 도망칠 생각이었는 데.

대체 소원이 뭐길래 저러는 걸까.

잘은 모르겠지만, 아마도 이 탑에 서 벗어나게 해달라고 하는 거 아 닐까?

'이 탑에 오래 갇혀있었다고 했지. 진짜 친오빠가 있는지 없는지 모르 겠지만, 아무튼 그 탓에 오빠랑도 자주 못 보는 것 같고.'

이 탑에서 엘리사 하나 빠져나가 게 하는 일이야, 골치 아프긴 해도 못 할 건 없었다.

'황궁 밖까지 데리고 나가기는 어 려워도 탑 정도야, 뭐.'

밑에서 보초를 서고 있는 기사들 에게 장난질 좀 치면 되겠지.

"그래. 들어줄게."

"와아! 고마워요, 요정님!"

엘리사가 환하게 웃으며 말을 이 었다.

"이제 요정님이 제 친구가 되어 주는 거죠?"

응? 잠깐만.

" 친구......?"

"네! 제 소원이잖아요! 친구가 생 기는 거!"

탑에서 나가는 게 아니라?

나도 모르게 아득해지는 정신줄을 부여잡고 되물었다.

"……탑에서 나가고 싶진 않아?"

"탑이요? 그건……

엘리사의 낯빛이 조금 어두워졌다.

"……아니에요! 전 여기가 좋아 요!"

애써 하는 말인 게 분명했다.

"잘은 모르지만, 전 여기서 나가면 안 되는 것 같거든요."

그러더니 돌연 미소 지으며 내게 말했다.

"이제 친구도 있으니 탑에 있어도 외롭지 않을 거예요! 그럼 됐어요!"

"어……. 그래. 친구. 그럴 수 있 지. 엘리사, 네가 생각하는 친구는

어떤 건데?"

대충 1년에 한 번 정도 만나는 장 거리 친구는 어떠니.

"그야 친구라 하면! 매일매일 같이 놀고, 서로 고민도 들어주는! 그런 거 아닌가요?"

이런. 내가 기대한 조건과는 많이 다르다.

'그냥 도망칠까?'

펜던트만 받고 도망치는 쪽으로 생각이 기울고 있었다.

'엘리사가 불쌍한 건 불쌍한 거고, 매일 여기서 시간을 보낼 순 없는

노릇이잖아.'

내가 고민하는 눈치자 엘리사가 슬쩍 물었다.

"제가 너무 많은 걸 바란 건가 요……?"

"음……. 현실적으로 내가 매일 너 랑 함께하긴 어려울 거 같은데."

"그럼 3일에 한 번은요? 아님, 일 주일에 한 번?"

"그것도 좀……

난 할 일이 많아서 몸이 두 개라 도 모자라단 말이다.

"대신, 오늘 하루는 네 친구가 되

어줄게. 어때?"

"오늘, 하루만요?"

엘리사는 실망스러운 기색이 역력 했다.

"그래. 딱 하루."

고민되는지 펜던트를 내려다본다.

영원히 함께할 수 있는 종이 친구 와, 하루뿐인 현실 친구 사이의 갈 등이었다.

'이게 내가 제안할 수 있는 최선이 야.'

이것마저 엘리사가 거절한다면 그 냥 펜던트만 훔쳐서 도망칠 수밖에.

엘리사는 깊게 고민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하루뿐이지만, 우리 친구 해요."

미련이 남은 듯 펜던트를 바라보 면서도 끝내 이런 결정을 내린 모 양이다.

나는 어쩐지 몹쓸 짓을 하는 것 같아서 자꾸 찝찝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 그럼 무슨 얘길 하고 싶 어?"

"우리 오빠 얘기요!"

삽시간에 눈이 초롱초롱해졌다. 생

각만 해도 기쁜 기색이 역력했다.

"비앙카는 자꾸 가짜라고 하지만, 우리 오빠는 진짜 있어요. 가끔 와 서 대화도 하다 가는걸요. 자주 오 진 못하고 가끔씩만 들르긴 하지만 요."

엘리사가 가상 친구 로지를 만들 어낸 것처럼 그 오빠도 상상 친구 가 아니란 보장은 없었다.

게다가 비앙카의 말대로 이런 곳 에 애를 처박아둔 게 참 이상하지 않은가.

엘리사는 한참 자신의 오빠에 대 해서 떠들어댔다. 그가 얼마나 멋지고, 대단하고 또 자신을 아끼는지 말이다.

"제가 그때 '안 돼! 그건 나쁜 짓 이야!' 하고 말했더니 글쎄 오빠 가……

"잠깐만."

나는 급하게 엘리사의 말을 끊어 냈다.

1층에서 누군가 올라오고 있었다. 인기척이 비앙카의 것은 아니다.

"여기 올 사람이 있어? 1층에 누 가 온 것 같아서."

"이 탑에요? 그야, 비앙카랑 저희

오빠뿐인데……. 아! 오빤가 보다!"

엘리사가 벌떡 일어났다.

한눈에 봐도 기뻐서 어쩔 줄 모르 는 것 같았다.

"오빠가 왔나 봐요, 요정님!"

상상 친구가 아니라 실존 인물이 라는 게 더 놀랍다.

"엘리사. 내 존재는 비밀이야. 알 겠지? 요정은 아이들이 아닌 사람 한테 보이면 사라져버리고 말거든."

"헉! 알겠어요, 요정님!"

오빠라는 이에게 내 이야기를 꺼 낼까 봐 가볍게 경고했다. 엘리사는입을 틀어막으며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난 좀 숨어 있을게."

"네! 그럼요. 비밀!"

나는 방 한구석에 놓인 인형 더미 사이로 몸을 숨겼다.

'걸음걸이가 기사 같은데. 그래도 인형들 틈에 숨어있으면 모르겠지.'

이렇게 작은 인간이 있다는 걸 상 상이나 하겠는가.

'그냥 다른 충으로 이동할 수도 있 지만……. 이 인기척, 어딘가 익숙 하단 말이지.'

내가 아는 사람인 것 같았다.

톨룩에 내가 아는 이는 몇 없는데 말이지.

저벅, 저벅.

그가 가까워질수록 점점, 그 인기 척이 누구인지 확실해졌다.

'이 걸음, 이 체격……. 설마.'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엘리사에게 물었다.

"엘리사. 혹시, 네 오빠 이름 이…… 뭐야?"

"이름이요? 으음〜. 비밀인데, 특별 히 요정님한테만 알려줄게요!"

해맑은 모습에 불안감이 엄습했다.

"에녹 클라우드라고 해요!"

끼이이익.

문이 열리고, 그가 모습을 드러냈 다.

레몬빛 머리카락 사이로 뾰족한 귀가 보였다.

"에녹 오빠!"

엘리사가 확인 사살까지 마쳤다.

그래. 에녹 클라우드.

황제의 기사, 창지기 엘프. 그 남 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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