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영검전-195화 (195/225)

195.

#귀역무간진 (2)

“으아악-!”

누군가가 비명을 터트렸다.

-으아악 -으아악

[으히히-!]

그 비명은 사방팔방에서 겹겹이 들려왔고, 이를 흉내 내는 악귀의 소름 끼치는 소리가 이어졌다.

신마황동 일대의 뭇 강호인들이 저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공포가 밀려들었다.

어느새 동서남북의 방향, 멀고 가까운 거리 등도 파악할 수 없었다. 천지간의 이치가 모두 뒤엉켜서 꼬여버린 탓이었다.

“하늘에 왜 땅이 있어!”

[키에엑-!]

“제발 사람 살려! 거기 누구 없소?”

[키킥-! 키킥-?]

사방에 비명과 귀곡성이 혼재하고 있었다.

하늘은 희뿌연 어둠에 가려져 있고, 근방의 산자락과 강줄기 역시 보이지 않았다.

자욱한 귀무가 내려앉으며 강력한 진법이 펼쳐진 이후, 삼문협 일대는 대혼란에 빠져 있었다.

천하를 비출 빛이 없으니, 귀기만이 한없이 날뛰고 있었다.

홰액-!

쉬이익-!

악귀들이 공간을 가르고 지나갔다. 그러자 곳곳에서 단말마의 비명들이 터져 나왔다.

“끄아아악-!”

[흐이익-!]

귀기에 찔리고 할퀴어지고 베인 사람들이 극심한 고통에 신음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컥-!”

[킥-!]

“윽-!”

[껙-!]

눈 깜짝할 사이 귀기에 꿰뚫려 버린 사람들이 마지막 숨결을 토해내며 쓰러졌다.

그들의 시신은 처참했다.

눈알이 파먹히고 목구멍이 터지는 건 예사였고, 배가 뚫려 내장이 쏟아지고, 머리가 터져 뇌수가 흘러나오는 등 목불인견의 참경이 펼쳐졌다.

아비규환의 지옥도가 바로 여기이리라.

“막아! 막으라고-!”

[끽! 끼이이-!]

무인들이 악을 지르며 온 내공을 끌어올려 귀기들과 맞섰다.

하지만 귀기들은 그저 스쳐 지나갈 뿐이었다.

“아니, 백주대낮에 대체 이게 무슨!”

[끼이익-!]

“망했다!”

[끼에-!]

절망의 소리도 마구 터져 나왔다.

이 상황이 인간에게는 한없는 고통이나, 악귀에게는 무한한 즐거움일 뿐이었다.

이승의 법칙을 무시한 채, 산 사람들을 마구 죽이고 희롱하니 어찌 신명 나지 않을 수 있을까.

이곳은 악귀의 세계였다.

결국, 귀기 자욱한 진법에 갇혀 버린 삼문협 일대의 무인들은 끝없는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헤어 나올 수 없을 지경이었다.

그런 가운데, 귀기에 맞서며 분전하는 이들이 있었다.

“아직입니까?”

용천월이 다급하게 물었다. 그의 음성에서 몹시 힘겨운 기색이 느껴졌다.

진우선이 맡기고 간 연화구고저를 굳건히 움켜쥐고 서서 항마의 기운을 펼쳐내는 까닭이었다. 그 덕에 귀기가 주변으로 얼씬조차 못 했다.

하지만 연화구고저가 구천의 수많은 원혼을 가둬놨다가 승천시켰던 대법구인지라, 용천월로서는 힘에 부치는 게 사실이었다.

어쨌거나, 그런 용천월의 질문에 제갈영과 백하련이 얼른 대답했다.

“미안해요! 너무 어려워요! 갈피조차 찾을 수가 없어요!”

“맞습니다. 도대체 어디서 어떤 힘을 받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정말 두려울 정도입니다!”

내당 혜도원과 만상각 백혜원의 지낭이라 할 두 사람이 고개를 세차게 가로저었다.

둘은 땀을 뻘뻘 흘리며 천지간의 기운을 헤아리려 애쓰고 있으나, 아예 진법을 엿보는 것조차 못하고 있었다.

백하련을 호위하며 온 한효기도 탄식만 흘렸다.

“육합귀문진만으로도 벅찼었는데, 그때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라니!”

그러면서 격전을 치르고 있는 두 사람, 만총과 우문혁을 살폈다.

한효기는 귀기를 제대로 상대해낼 수 없는 까닭에 그들의 모습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찌직-!

푸슥-.

만총의 묵창이 허공을 가로지르던 귀기를 꿰뚫었다.

창끝에서 번갯불이 튀며 귀기가 단박에 소멸했다. 그러더니 기운 덩어리가 산산이 부서져 산화되어 버렸다.

“만 무사! 머리 위에!”

하늘에서 수직으로 내리꽂히는 악귀를 보며 한효기가 소리쳤다.

그 순간, 만총이 묵창을 들어 머리 위를 찔렀다.

파츠측-!

섬광이 터지며 뇌격이 솟구쳐 올랐다.

[끼에에에엑-!]

악귀는 단박에 터져 나가며 귀곡성을 터트렸다. 소름 끼치는 그 소리에 정신마저 아찔했다.

“이 정도라면, 어지간한 무인은 미쳐버리겠군!”

이 소음에 자꾸 노출되면 정심마저 금이 가고 깨질 수도 있을 듯했다.

문득 떠오른 생각에 한효기가 질린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더니 생각을 떨쳐내기 위해서인지 고개를 흔들었다.

그때였다.

“한 무사님, 고맙습니다.”

만총의 음성이 귓전을 파고들자, 한효기는 정신이 다소 맑아지는 걸 느꼈다.

‘역시 파사의 공력이구나!’

한효기가 만총의 묵창에서 뿜어지는 파사(破邪)의 뇌기를 보며 감탄했다.

귀기는 본디 사특하다.

귀문탈백종이 비록 마로써 귀를 머금었다고 하나, 그 본질마저 바꿀 수는 없는 법이었다. 귀가 파사에 깨져나가는 게 바로 그래서였다.

파파파파팍-!

만총의 묵창이 연이어 허공을 꿰뚫었다.

뇌정일기공의 내력을 기반으로 한 천뢰신창의 뇌격이 단박에 악귀 다섯을 꿰었다. 악귀들은 허공에서 그대로 흩어져 버렸다.

실로 듬직하기 이를 데 없는 모습이었다.

한데 맹위를 떨치는 건 용천월과 만총만이 아니었다.

퍼억!

퍼퍽-!

한쪽에서 쌀 포대를 때리는 듯한 타격음이 연이어 터져 나왔다.

그러면 근방의 귀기들이 바위가 터지듯이 폭발하며 사라졌다.

“총아. 내 쪽으로 흘러오는 것들은 내가 처리하마. 무리하지 마라.”

“알았다, 혁아!”

우문혁이 만총에게 말을 건네며, 커다란 주먹을 휘둘렀다.

퍼퍼퍼퍽-!

근방에서 날아들던 악귀들이 허공에서 즉시 터져나갔다.

그에 우문혁의 뒤에서 사방을 경계하며 바라보던 탁운비가 탄성을 흘렸다.

“과연 권왕의 무공이오!”

이백 년 전에 강호를 주름잡았던 권왕 우문곽.

인의 대협이라고도 불렸던 권왕의 무공, 염왕신권이 후손 우문혁의 주먹에서 맹위를 떨치며 재현되고 있었다.

하지만 우문혁은 우쭐거리지 않았다. 그저 염왕의 눈빛으로 사방을 날카롭게 주시할 뿐이었다.

짓쳐들어오는 귀기들 말고도 허공에는 감히 셀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악귀가 날아다니고 있었다.

퍼엉-!

악귀들 가운데 심히 비대한 몸집의 귀기가 한주먹에 폭사했다.

염왕신권(閻王神拳)에 담긴 명옥기(冥玉氣)의 단단한 공력이 뭇 귀기들을 흡수하며 강력해진 커다란 악귀마저도 일거에 쪼개버렸다.

퍽-!

이번엔 온통 시커먼 악귀가 먹먹한 소리를 내며 터지더니, 짙은 독수(毒水)를 후르륵- 쏟아냈다.

육신을 마비시킬 독이 퍼지려는 찰나.

후웅-!

곧장 이어진 강력한 권풍(拳風)이 독수를 멀리 날려버렸다. 이미 예상했다는 듯한 한 수였다.

그러고도 우문혁은 멈추지 않았다. 두 주먹에서 강맹한 공력을 연거푸 뿜어냈다.

[끼엑-!]

[끼기기긱-!]

귀기들이 단박에 쪼개져 나가며, 빽빽 비명을 질러댔다.

등줄기가 서늘하다 못해 정기신의 조화마저 깨질 듯한 괴성이었으나 우문혁은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의 두 눈에서 오히려 정광이 솟구쳤다.

‘이것이 인의로운 일이다!’

정광은 바로 그의 심중에 새겨진 강인한 뜻이 천하에 터져 나오는 방증이었다.

‘진 대협 덕분에 시조님을 본받고 뒤따를 수 있게 되었어!’

우문혁의 가슴으로 진우선에 대한 고마움이 뜨겁게 치솟았다.

지금 펼쳐내는 염왕신권은 명옥기를 만나 온전한 위력을 떨쳐낼 수 있었다.

명옥기는 염왕신권을 만나 단순한 내력이 아니게 되었다. 북명천문 무학의 진경(眞境)을 열어젖히며, 사자(死者)마저 상대할 수 있게 신령스러워진 것이다.

그런 명옥기를 구해준 게 진우선이었다.

우문혁은 애초부터 진우선을 존경하고 따랐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이 더욱더 깊어진 데에는 그러한 이유가 있었다.

“우문세가의 옛 명성이 우문 무사에게서 다시 꽃피겠구려!”

“과찬이십니다. 저는 아직 갈 길이 멀었습니다!”

탁운비의 칭찬에도 우문혁은 잠시 한눈조차 팔지 않은 채 묵묵히 주먹을 떨쳐낼 따름이었다.

탁운비가 그런 우문혁의 모습에 탄성만 흘렸다.

그의 눈에 분전하고 있는 세 사람, 용천월과 만총과 우문혁은 찬란히 빛나고 있었다.

그러면서 탁운비가 사방을 둘러 보았다.

‘구음의 냉랭한 기운이 바닥을 흠뻑 적셨다! 위에는 귀기가 가득하고 아래에는 한기가 가득하니, 천지가 막혔어!’

탁운비는 한효기와 함께 언제 어디서 어떻게 암습해올지 모를 적들을 경계하는 역할을 맡은 상황이었다.

오면서 듣기로 월령마화종의 마교도가 일백가량 된다 했으니, 결코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바로 그때, 제갈영이 갑자기 소리쳤다.

“아! 아무래도…… 귀역무간진 같아요!”

“귀역무간진이라니요! 설마 잔백구유의?”

제갈영의 외침에 백하련이 화들짝 놀랐다. 그녀는 눈동자가 한없이 떨리고 있었다.

“네. 악귀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원귀(寃鬼), 독귀(毒鬼), 시귀(屍鬼) 등이 모두 섞여 있어요. 그들을 모두 품을 수 있는 건 제가 알기로 귀역무간진밖에 없어요!”

귀곡성은 원귀들의 원성이요, 독수는 독귀의 흔적이며, 뭇 귀기들을 흡수하며 몸집을 불리는 건 시귀의 특징이었다.

사방의 악귀들은 무간지옥에서 올라오기라도 했는지, 심히 지독하고 악독하게 날뛰고 있었다.

악귀들을 한 번 둘러본 백하련이 저도 모르게 탄식을 터트렸다.

“이럴 수가! 그걸 인세에 다시 펼쳐냈을 줄이야!”

“귀안을 눈에 심어서 가능해졌나 봐요!”

제갈영의 떨리는 한마디에 탁운비가 말을 보탰다.

“잔백마군이 진 대협께 복수심을 단단히 품은 모양입니다.”

“게다가 천마교에서 강호를 상대로 선전포고를 한 셈이나 다름없다고 봐야 할 거 같습니다.”

“사도련의 꿍꿍이를 알아채는 것도 힘든데, 천마교마저 이렇게 거대한 음모를 꾸몄을 줄이야!”

백하련과 제갈영이 상황을 단숨에 정리했다.

한효기가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며 물었다.

“진법을 파훼하거나 빠져나갈 방도가 있겠습니까?”

“그건…….”

제갈영이 막막한 심정에 차마 말도 끝맺지 못한 채,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럼 이곳에서 대처할 방법이라도 찾아야겠군요.”

“일단은 용 무사와 만 무사, 우문 무사께 기대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 정도입니까?”

한효기의 물음에 백하련과 제갈영이 연이어 답했다.

“저는 제갈 책사님과 함께 일전에 천지무로절행진에 든 적이 있었습니다. 귀역무간진의 악명에 버금가는 진법답게, 생문(生門)이 없었습니다.”

“그때 오직 진 무사님만이 진법을 온전히 통과하실 수 있었습니다. 아마도 귀역무간진 역시 비슷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에 탁운비가 한마디 던졌다.

“그럼 진 대협을 만나야겠군요.”

“그렇습니다. 하지만 진 무사님이 나오기로 말씀하신 게 아직 이삼 일은 남았습니다. 탁 무사님은 설마 악귀들이 저리 쏟아져 나오는 신마황동에 지금 들어가실 생각이십니까?”

“아-!”

탁운비가 안타까움에 탄성을 흘렸다.

백하련의 말마따나 저 앞에 보이는 신마황동의 커다란 출입구에선 악귀들이 끊임없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러던 중.

“헛! 저 동혈은 뭐죠?”

신마황동을 바라보던 탁운비가 갑자기 눈을 부릅뜨며, 황급히 놀람을 토해냈다.

그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 산자락 중턱에는 종전의 출입구보다 훨씬 큰 동혈이 생겨나 있었다.

“아니, 저게 언제 생겼지?”

삼문협에서 계속 상황을 지켜봐 왔던 제갈영도 눈을 휘둥그레 뜨며 바라보았다.

하지만 아는 이가 아무도 없었다. 왜냐하면 이제야 열린 신마황동의 삼문, 비역의 문인 까닭이었다.

바로 그때였다.

후우우우우-!

모골이 송연할 정도로 오싹한 기운이 천지간에 내려앉았다.

일순간, 귀무마저도 멈춘 느낌이었다. 마치 무언가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이윽고 동혈에서 일남일녀 두 사람이 걸어 나왔다.

귀화를 흘리기 때문일까?

일행은 저 멀리 있는 남자의 새하얀 동공에 단연코 시선이 집중되었다.

화르륵-!

그의 백안에서 귀화가 맹렬히 타올랐다.

그러다 천하로 터져나간다 싶은 순간!

“……!”

호흡마저 멎었다.

용천월과 만총, 우문혁까지 모두가 위압감에 짓눌려버렸다.

그때, 귀안의 주인이 입을 열었다.

-모든 귀(鬼)는 들어라. 꺼지지 않는 귀안을 열어 구천에서 천상에 이르기까지 범접할 수 없는 귀역을 선포했으니, 이곳에서 삼악도(三惡道)의 지옥업력(地獄業力)을 모두 터트려라. 나 잔백마군(殘魄魔君)이 명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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