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1
16화
무당파에서도 상당한 제자를 잃었는데 이 싸움까지 한다면 뿌리마저 흔들릴 정도로 휘청거릴 수도 있다. 이런 사실은 자신도 알고 제자인 불취개도 안다. 또한 이 싸움에 참가한 방도들도 안다.
하지만 자신들만이 나설 수밖에 없음을 알기에 기꺼이 나선 것이다.
어차피 흔들려도 개방은 개방이니까.
가진 것 없으니 잃을 것도 없으니까.
그때였다.
펑, 퍼버버벙!
하늘에서 요란한 폭음과 함께 폭죽이 터졌다.
“개방도는 들으라! 개방이, 이 거지들이 무림을 곧게 바로잡는다! 가라, 이 빌어먹을 놈들아!”
목이 터져라 외치는 걸왕의 목소리에 개방의 제자들이 일제히 모습을 드러냈다.
“와아아아아!”
그리고는 함성을 내지르며 무림맹을 향해 달려 나갔다.
* * *
“파이어 재벌린!”
마현은 달려 나가며 세 발의 화창을 만들어 장원 정문으로 날렸다.
후우우웅!
콰과과과광!
세 발의 화창은 나무로 만들어진 정문을 그대로 폭파시키며 집어삼켰다. 굳게 닫혔던 정문이 사라지자 마현은 계단을 밟듯 허공으로 훌쩍 몸을 날렸다.
장원을 중심으로 다른 세 방향에서 달려드는 호원 소속 3무대가 눈에 들어왔다.
일단 마현은 독혈대가 맡은 후문으로 시선을 돌렸다.
마현과 가장 선두에서 달려드는 사공찬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거침없이 질주하던 독혈대의 걸음이 늦춰졌다.
그 모습에 마현의 입가가 말려 올라갔다.
상당히 다혈질이면서도 이럴 때에는 징그러울 정도로 냉철한 모습이 새삼 믿음직한 까닭이었다.
마현은 사공찬이 원하는 것이 무언지 알았기에 마력을 끌어올렸다. 사실 그가 원하지 않아도 강제로 후문을 열어줬을 것이다.
콰과과과광!
후문에서도 정문과 마찬가지로 폭음과 함께 불기둥이 치솟아 올랐다. 그러자 잠시 속도를 늦췄던 독혈대는 기다렸다는 듯이 다시 속도를 높여 거침없이 후문으로 뛰어들었다.
이어 마현은 길고 높게 드리운 양옆 담벼락으로 시선을 돌렸다. 흑풍대와 독혈대가 들이닥친 곳이 남북이라면 동서 방향으로 지옥철마대와 문혼대가 달려들고 있었다.
“슬로웁 랜드(Slope land)!”
그그그극!
장원을 철통처럼 두르고 있던 담장 아래 땅거죽이 부르르 요동치더니 위로 불룩 솟아올랐다.
그러자 담장 꼭대기에서부터 땅바닥까지 흙으로 인해 얕은 경사가 만들어졌다.
두 호원무대, 즉 문혼대와 지옥철마대는 그 장면에 잠시 놀라 주춤거리는가 싶더니 이내 허공 위에 떠 있는 마현을 발견하고는 다시 속도를 높였다.
그들은 담장 위로 쭉 뻗은 둔덕을 달려 손쉽게 장원 내로 뛰어 들어갈 수 있었다.
댕댕댕댕댕댕―
동시에 적의 기습을 알리는 종소리가 장원 내부에서 급히 터져 나왔다.
지붕에서 내려온 황사는 심란한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다시 붓을 들었다가 몸을 흠칫했다. 경직된 몸은 쉽사리 풀리지 않았다.
사방에서 죄여오는 수많은 기운들.
또한 그 기운들이 뿜어내는 예리한 살기와 투기들.
아니나 다를까.
콰과과과광!
장원 가장 깊숙한 곳이자 중앙에 위치한 자신의 거처마저 흔들릴 정도로 엄청난 진동과 함께 곧이어 귀가 찢어지는 듯한 폭음이 터졌다.
누군가가 습격한 것이 틀림없었다.
‘서, 설마…….’
송겸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황제를 떠올렸다.
‘아니야, 아닐 것이야.’
애써 불안감을 외면하며 송겸이 창문으로 몸을 날리려는 그때 다시 한 번 폭음이 터져 나왔다. 이번에는 처음 들렸던 정문과 정반대인 후문 쪽이었다.
송겸은 수염을 부르르 떨며 입술을 꽉 깨물었다.
분명 화포와 같은 벽력탄일 것이다.
‘진정 폐하께서?’
비록 암암리에 무림에서 벽력탄을 사용한다고는 하지만 지금처럼 대놓고 사용하지는 못한다.
더더욱 지금은 군사훈련으로 인해 중경의 모든 사람들에게 금족령까지 내려져 있지 않은가? 제아무리 무림인들이 국법을 수시로 무시하는 이들이라고는 하지만 이렇게 들어 내놓고 일을 벌일 자들은 아니었다.
그러는 사이 적의 기습을 알리는 종소리가 요란하게 귀를 때렸다.
황사는 어두운 얼굴로 창문을 통해 밖으로 튀어나왔다.
막 지붕으로 오르려던 황사의 몸이 다시 한 번 굳어졌다. 잠시 파르르 떨렸던 눈동자 역시 딱 멈추더니 머리 위로 서서히 올라갔다.
그리고 허공에 떠 있는 한 인물과 눈이 마주쳤다.
‘저, 저놈은?’
황사의 뺨에 경련이 일어났다.
한 번 본 적이 있는 인물, 하지만 결코 잊을 수 없는 자.
바로 마현이었다.
단지 마현의 등장으로 황사의 마음속에서 깊은 분노가 일어난 것은 아니었다.
마현의 등장은 단지 그만의 등장, 혹은 마교 만의 등장이 아닌 까닭이다.
‘분명 폐하께서……!’
황사의 눈이 붉게 충혈되었다.
어떻게 자신이 여기 있는 걸 알아낸 것인지는 이미 뒷전이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다.
분명 황제가 중경에 들어섰다고 들었다. 황제가 친히 금족령을 내린 이날 이렇게 들어내 놓고 자신을 쳤다는 건 황제의 동의가 없고서는 불가능한 일.
결국 자신은 황제에게서 내쳐진 것이다.
“이럴 수는 없다! 이럴 수는……. 어떻게, 일평생 오로지 황제 폐하의 안녕을 보고 이날까지 살아온 내게…….”
황사의 눈동자가 핏물을 삼킨 것처럼 붉게 변했다.
우우우웅!
그런 황사의 몸에서 내력이 폭주하듯이 뿜어져 나왔다.
오금이 저릴 정도로 무시무시하게 내뿜어지는 내력에 황사의 도포는 찢어질 듯 펄럭거렸다.
“네놈이 원흉이다! 네놈만 사라지고, 무림만 사라지면…… 황제 폐하께서도 다시 나를 찾으리라!”
황사의 몸이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폐, 폐하! 폐하!”
백이량 지부가 황제가 머물고 있는 자신의 집무실로 허겁지겁 달려 들어왔다.
“이게 무슨 황망한 짓인가!”
조자경이 가는 눈으로 백이량을 노려보며 나직하게 호통 쳤다.
“괜찮느니라, 무슨 일이더냐?”
황제는 그런 조자경을 말리며 백이량을 쳐다보았다.
“지, 지금 정체를 알 수 없는 자들이 무림맹과 더불어 외각에 위치한 구금상단 상주 금대치의 개인 장원을 급습했사옵니다.”
“그렇더냐?”
황제의 담담한 물음에 백이량은 물론 조자경까지 놀란 눈동자를 만들어야 했다. 하지만 여전히 놀란 눈을 한 백이량과 달리 조자경의 눈매는 다시 가늘어졌다.
‘분명 폐하께서는 알고 계신 일이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
조자경의 머릿속에서 불현듯 떠오른 몇 가지 단편적인 기억들이 하나의 틀을 만들어내기 시작한 것이다.
황사를 만나봐야 별 소득이 없을 텐데도 이상하리만큼 금대치나 그의 사람들이 수시로 대림학당을 드나들었다는 것, 마현과 걸왕이 비록 명예직이지만 장군직을 하사받았다는 것, 마지막으로 갑작스러운 이 군사훈련을 행한다고 황명을 내리기 하루 전 비록 일 각 정도의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사라진 황제의 시간.
동그랗게 떠진 조자경의 눈이 황제와 눈을 빤히 마주쳤다. 조자경은 그런 사실을 곧바로 인지하지 못했다.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하는 건가?”
황제의 목소리에 조자경은 화들짝 놀라며 재빨리 허리를 깊게 숙였다.
“화, 황송하옵나이다. 폐하!”
‘황사를 찍어내시려면 차라리 그를 직접적으로 노리는……. 아뿔사! 그렇다면 학방에 연금된 황사가 진짜가 아니란 말인가?’
동창도독 박인태의 말에 의하면 황사의 행동이 조금 달라졌다는 것이다.
그저 황제의 내침에 충격을 받아서 그런 것이라 지레짐작했지만…….
조자경은 얼굴을 와락 구겼다.
그런 그의 귀에 황제의 목소리가 흘러들어왔다.
“현재 이곳에서 군사훈련이 감행중이다. 짐의 충성스러운 군사들의 훈련이니 개의치 말라.”
* * *
마현은 분노를 참지 못하고 수염을 파르르 떠는 황사를 내려다보며 차갑게 웃었다.
무림을 하찮게 여긴 것을 후회하게 만들어 줄 생각이다.
그렇다고 죽일 생각은 없었다.
그의 죽음은 황제가 판단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순순히 그를 생포해 황제에게 데려다줄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보여줄 것이다.
느끼게 해 줄 것이다.
살아서도 지옥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을!
황사 곁에 누군가가 지키고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그 곁에 아무도 없었다.
현재 장원 외부에는 한바탕 난리가 났을 터, 그리 긴 시간은 아니겠지만 한동안 아무도 황사를 신경 쓰지 못할 것이다.
마현이 마력을 끌어올리며 황사를 향해 내려가려고 할 때였다.
우우우웅!
황사의 몸에서 내력이 폭발했다.
그리고 그의 몸이 사라졌다.
마현의 눈이 화등잔처럼 크게 떠졌다. 그 자리에서 사라진 황사가 바로 자신의 코앞에 서 있었던 것이다. 아무리 방심했다고는 하지만 황사의 신형을 놓친 것이다.
“불충은 오로지 죽음뿐이다!”
황사는 현재 내뿜는 무시무시한 내력에 걸맞은 힘을 표출하며 마현의 가슴에 일장을 내질렀다.
“헉!”
마현은 서둘러 뒤로 물러나며 재빨리 실드를 겹겹이 쌓아 몸을 보호했다.
콰광!
불의의 일격을 맞은 마현은 황사가 기거했던 전각으로 내리꽂혔다.
황사의 힘이 얼마나 강했던지 마현은 전각 지붕을 뚫고도 모자라 몇 개의 벽과 기둥을 부숴 버린 후에나 겨우 신형을 멈출 수 있었다.
“크억!”
마현은 부러지기 일보 직전인 기둥을 등받이 삼아 겨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실드가 완전히 부서지지 않아 직접적인 타격은 받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내부는 완전히 진탕되어 피를 한 모금 내뿜었다.
“헉헉헉!”
연거푸 만든 네 겹의 실드가 아니었다면 내장이 완전히 부서졌을 만큼 엄청난 장력이었다.
“끄응!”
겨우 몸을 추스른 후 기둥을 잡고 자리에서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