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2
17화
우지끈!
보기와는 달리 내부가 완전히 부서져 있었기 때문인지 마현이 손을 짚고 일어나자마자 기둥 내부에서 나뭇결이 뒤틀리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러더니 이내 기둥이 반 토막 나며 바닥으로 뒹굴었다.
끼이익― 끼기기긱!
기둥이 무너진 다음 건물 자체가 급속도로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조금 전 무너진 기둥이 건물 자체를 지탱해주는 주기둥이던 모양이었다.
마현은 그 자리에서 재빨리 벗어나려 했지만 이미 머리 위로 건물의 잔해들이 우르르 쏟아져 내렸다.
이것저것 잴 것도 없이 마현은 최대한 오를 수 있는 허공의 위치로 곧바로 텔레포트를 시전했다.
콰르르르르!
마현이 간발의 차이로 건물을 빠져나오자마자 건물은 그 자리에서 폭삭 주저앉았다.
안도의 한숨을 내쉴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
파방!
마현의 기척을 잡은 황사가 어느새 허공으로 몸을 날려 다시금 일장을 내지른 것이다. 하지만 마현은 조금 전처럼 맥없이 당하지는 않았다.
이미 황사가 엄청난 내력을 숨기고 있었음을 알았기에 그만큼 준비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마현은 발등을 발로 찍으며 허공에서 몸을 틀어 황사의 일장을 피했다.
그리고는 블링크를 이용해 황사의 옆으로 순간이동하는 것과 동시에 그의 뒷덜미를 잡아 아래로 내던졌다.
“이 땅에 모든 것을 불로 태우리라, 파이어 레인!”
후우우웅!
마현의 주위로 상당량의 마력이 들끓었다.
쑤아아아아앙!
그리고는 아래로 추락하는 황사를 향해 한 무더기의 불덩이를 쏟아 부었다.
콰과과과과과광!
엄청난 양의 불덩이는 순식간에 황사를 집어삼켰다.
“으아아아!”
그 불덩이 안에서 함성이 터져 나오더니 그 어떤 것도 잡아먹을 듯 타오르던 화마가 ‘퍼석!’ 소리를 터트리며 꺼져버렸다. 그로 인해 자욱한 연기가 만들어졌고, 그 중앙에 황사가 서 있었다.
마현의 한쪽 뺨이 씰룩거렸다.
황사의 몸 어느 한 군데에도 그을린 자국은 없었다. 오히려 그의 몸 주위에는 금빛 호신강기가 두텁게 쌓여 있었다. 하지만 투박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 어떤 깨달음을 통해 일정한 경지로 올라 자연스레 만들어진 호신강기가 아니라는 소리다. 막말로 무식하게 엄청난 내공의 양으로 강제로 만들어낸 호신강기였던 것이다. 또한 저 호신강기를 만들기 위해 낭비되는 내력까지 생각한다면 고개가 절로 저어질 정도였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내공을 몸에 쌓으면 깨달음도 없이 저런 호신강기를 만들 수 있을까 싶어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이노옴!”
황사는 크게 다리를 바닥에 구르며 신형을 띄웠다.
콰앙!
얼마나 강력하게 진각을 밟았는지 먼지가 피어오르는 정도가 아니라 그 울림으로 사방에 널려 있던 돌조각들이 공중으로 비산할 정도였다.
그에 반해 황사의 신형은 빛살처럼 빨랐다.
“아이스 재벌린!”
마현은 뒤로 재빨리 물러나며 연거푸 다섯 발의 얼음창을 만들어 날렸다.
하지만 황사는 그 아이스 재벌린을 그저 몸으로 견디며 순식간에 마현과의 거리를 좁혀 들어와 그의 어깨를 우악스럽게 잡았다.
마현은 황사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의 어깻죽지를 손날로 내려쳤다.
“큭!”
묵직한 고통이 손을 통해 느껴졌다.
하지만 정작 신음은 마현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정제되지 못한 투박한 호신강기 정도는 단숨에 부숴 버릴 수 있을 거라 여겼지만 그건 명백한 오판이었던 것이다.
오히려 반발력으로 인해 그 충격이 고스란히 마현에게로 되돌아온 것이었다.
“네놈이 죽어야 내 충정이 폐하께 다다를 것이다!”
이번에는 황사가 마현을 잡아 땅바닥으로 냅다 집어던졌다.
마현은 반항 한 번 하지 못한 채 실 끊어진 연처럼 바닥으로 떨어져야 했다.
콰광, 콰르르르르!
마현은 십여 장이나 날아가 담장을 부숴 버린 것도 모자라 수 장이나 더 나뒹굴고 나서야 겨우 멈출 수가 있었다.
“쿨럭!”
간신히 실드를 치고 호신강기를 일으켰지만 워낙 강한 힘에 찰나에 당한 나머지 제대로 방어하지 못해 상당한 충격을 입은 것이다. 그로 인해 시커먼 피가 한 모금 뿜어져 나왔다.
“주, 주군!”
마현이 신형을 일으키자 흑풍대가 달려와 에워싸며 보호했다.
우연인지 아니면 황사의 의도였던지 마현이 떨어진 곳은 장원 내 전장 한가운데였던 것이다.
황당한 것은 마현뿐만 아닌 듯했다.
마현의 등장에 전장의 싸움이 잠시 멈췄고, 모든 시선들이 마현에게로 모여 있었다.
“이거 체면이 말이 아니군.”
사공찬의 노골적인 시선에 마현은 앓는 소리를 속으로 삼키며 자리에서 일어나 몸에 묻은 먼지를 손바닥으로 팡팡 털었다.
콰과과광!
그때 마현이 반쯤 부숴 놓은 담장이 와르르 무너지며 황사가 뚜벅뚜벅 걸어 나왔다.
“스승님.”
“황사님!”
그러자 장원 내 전장, 마당에 모여 있던 진유림 검사들이 좌우로 퍼지며 길을 내줬다.
“일기토(一騎討)라…….”
마현은 입가에 묻은 피를 소매로 쓱 닦으며 황사를 노려보았다.
싸움의 승패를 떠나 호승심이 일어났다.
그 호승심은 투기를 자극했고, 그로 인해 마현의 몸에서는 검은빛 마력이 피어올랐다. 과거 하르센 대륙에서 단기필마로 전장을 누빌 때와는 달리 무림에서는 직접적으로 싸움에 나선 일이 거의 없었다.
거기에 무시할 수 없는 적이 눈앞에 있었다.
“군신 아이벤이 나의 피를 뜨겁게 데워주는구나.”
금빛 내력을 거침없이 뿜어대며 한 걸음씩 다가오는 황사를 쳐다보며 마현은 크게 숨을 들이켰다. 그리고는 잠시 호흡을 멈췄다가 천천히 내쉬었다.
가슴 속에서 데워진 숨결이 천천히 흘러나왔다.
“공간을 만들라!”
마현 역시 황사를 향해 천천히 걸음을 내딛었다.
그 명은 마현의 명이기도 했지만 황사의 명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전장에 뒤섞여 있던 마인들과 진유림 검사들은 잠시 검을 멈추고 중앙에 큰 공간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중앙에 마현과 황사가 마주섰다.
“무공을 익히지 않은 줄 알았는데 감쪽같이 속았군.”
“황제 폐하를 위한 충정이 있다면 그 무엇이 불가능하겠는가? 간사한 세 치 혀로 흐려진 황제 폐하의 용안을 네놈의 수급을 들고 찾아가 개안시키겠노라!”
송겸의 금빛 기운이 더욱 커졌다.
지지직―
그 힘에 마현의 몸이 반 자 가량 뒤로 밀려났다.
정말 기가 차 말이 안 나올 지경이었다. 한 천 년의 내공쯤 쌓으면 저 정도가 될까? 막연히 추측만 할 따름이었다.
“하지만 황제 폐하 앞에 바쳐지는 수급은 네놈의 것이 될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았는가?”
마현의 몸을 덮고 있던 묵빛 기운 역시 더욱 커졌다.
“뚫린 입이라고 망발을 함부로 내뱉는구나!”
황사는 크게 발을 내딛으면서 마현을 향해 일장을 내질렀다.
후우우웅, 파방!
마현은 몸을 웅크리며 양손을 교차시켜 황사의 일장을 막았다.
“큭!”
마현의 몸은 뒤로 주르르 밀려나다가 흑풍대원이 뒤를 받치고서야 겨우 멈출 수가 있었다.
“주, 주군.”
허무할 정도로 힘에서 밀린 마현을 보며 흑풍대원이 걱정 어린 목소리로 마현을 불렀다.
“괜찮다.”
마현은 화끈거리는 양팔을 털며 다시 황사 앞으로 걸어 나갔다. 그런 그의 눈동자는 반짝였고, 입 꼬리는 살짝 말려 올라가 있었다.
보았다.
황사의 치명적인 약점을.
“보아라, 진정한 충심이 만들어내는 것이 무언지!”
“와아아아!”
“황제 폐하, 만세, 만세, 만만세!”
황사의 쩌렁쩌렁한 목소리에 진유림 검사들은 저마다 병장기들을 들고 함성을 질렀다.
‘스, 스승님?’
평소 보아온 황사는 지금처럼 패도적이지 않았다. 설령 그런 심성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겉으로는 항상 냉정함을 잃지 않았다.
그런 송겸이 지나치게 흥분하고 있는 것이다.
금대치는 불안한 마음에 송겸을 세세히 살폈다. 이내 그의 눈동자는 힘없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붉게 충혈된 눈동자와 뭔가 탁한 듯 뿜어져 나오는 안광, 거기에 관자놀이 부근에서 간간히 불룩불룩 솟아오른 힘줄. 그것은 바로 주화입마 초입임이 분명했다.
‘스승님이라서 다를 줄 알았는데……, 나의 불찰이다, 불찰이야!’
금대치는 마현의 입 꼬리가 말려 올라가 있음을 알아차렸다. 그것은 마현도 스승의 상태를 알았다는 뜻일 터.
‘말려야 한다, 말려야 해!’
금대치는 마른침을 삼키며 서둘러 앞으로 튀어나갔다.
“스승님, 나머지는 제자가 처리하겠습니다.”
“들어가거라.”
“스, 스승님!”
금대치는 물러날 수 없었다.
그렇기에 처음으로 스승의 뜻을 완강히 거부했다.
그러자 황사의 고개가 금대치에게로 돌아갔다.
“지금 네가 이 스승의 충심을 왜곡하려는 것이냐?”
“그, 그게 아니오라…….”
금대치의 마음은 답답했다.
터놓고 이 상황을 말하려 했지만 보는 눈이 많았다.
“그게 아니라면 이 스승의 충심을 의심하는 게로구나!”
황사의 목소리에 살기가 짙게 들어섰다.
“스, 스승님. 그게 아니……. 으헉!”
금대치는 전음으로 현 상황을 설명하려다가 헛바람을 들이마시며 옆으로 몸을 날렸다.
콰과광!
“크윽!”
금대치가 서 있던 곳에 강력한 일장이 내리꽂혔다. 다행히 재빨리 몸을 피해 황사의 장풍을 직격으로 맞는 것은 피했지만 그 여파에 휘말린 것이다.
그 여파만으로도 금대치는 내상을 입을 정도였다.
“감히 네가 스승을 가르치려는 것이냐? 썩 물러가거라!”
“그런 것이 아니옵……, 컥!”
금대치는 끝까지 송겸을 말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려했지만 다시금 날아온 일장을 가슴에 정통으로 맞고 피를 토하며 정신을 잃어버렸다.
“금 대인, 금 대인.”
그 뒤에 있던 천호장 출신 장수가 재빨리 금대치를 안아들었다.
‘역시, 내 생각이 맞았군.’
마현은 송겸과 금대치의 일로 어렴풋하게 느꼈던 것, 그건 바로 송겸이 주화입마 초기에 빠진 것이 아닐까였다. 그런데 짐작한 바대로 송겸은 주화입마 초기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