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4화
234화. 새로운 도구 (2)
[지구 최초로 ‘X등급 아이템’을 ‘창조’하였습니다.]
[보상으로 업적 포인트 30,000점을 획득합니다.]
눈앞으로 떠오르는 최초 보상 업적.
무려 3만 점이라는 묵직한 보상이었지만.
시문의 관심은 보상보다 그 업적 자체를 향했다.
‘X등급이라…….’
X등급.
때론 A급보다도 못한 수준이지만.
또 다르겐 SSS급과 맞먹거나 그 이상의 효력을 보이기도 하는 등급.
하나 일반적인 등급들과 확실한 차이를 가지는 것은 바로 ‘고유’하다는 것.
즉, 세상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아이템에 주어지는 등급이었다.
그런 등급을 지구 최초로 창조해 낸 것이었으나.
당사자인 시문은 크게 놀라지는 않았다.
‘소멸하긴 했어도 성좌의 창조물. 그 두 개를 합쳤으니 고유 등급인 건 당연하지.’
오히려 조금의 아쉬움을 느꼈다.
‘그래도 옛 신화등급의 아이템이었는데…… X등급이라니. 좀 아쉽네.’
성좌가 소멸했다곤 하나.
과거에는 신화급에 해당하던 아이템들 아니던가?
‘불완전했다지만, 1개도 아니고 2개를 합친 건데…….’
고작 X등급이라니?
그러나 이러한 아쉬움이 사라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이름없는 가마솥] - 성장형
등급 – X (20%)
소멸해버린 성좌 파라켈수스와 다그다의 가마솥.
진리에 달한 연금술로 불완전했던 두 가마솥의 요소는 사라졌지만.
완벽한 형태를 갖추진 못했다.
-제작되는 결과물의 총량을 20% 증가시킨다.
-제작되는 결과물의 효능을 20% 증가시킨다.
“미친! 성장형이었어?”
저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육성.
시문의 시선은 빠르게 이름 없는 가마솥의 정보창을 훑었다.
‘보아하니 성장률에 따라 옵션 수치가 달라지나 본데?’
등급 옆에 붙은 20%의 성장률.
거기에 맞춰 아래 총량과 효능을 증가시키는 두 옵션 역시 20%인 것을 보면.
옵션은 가마솥의 성장률을 그대로 따라갈 가능성이 높았다.
‘그럼 총량이나 효능이 100%까지 증가할 수 있다는 거잖아?’
완성도 100%를 만들면 총량과 효능이 각각 100%씩.
즉, 2배로 증가하게 된다는 것.
거기다.
‘성장 조건은 아마 다그다의 가마솥일 가능성이 높아.’
파손되어 제 기능이 불가능했던 파라켈수스의 가마솥.
그리고 제 기능은 가능하나.
크로노스의 모래알처럼 연성 유지 시간이 존재했던 다그다의 가마솥.
서로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실행했던 융합이었고.
실제로 정보창에도 자신이 노렸던 부분이 그대로 명시되어 있었다.
시문의 미간이 슬쩍 찌푸려진다.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다그다의 솥의 연성 값이 5만 점이었지?’
업적 포인트 50,000점.
천마신공 5성의 연성에 드는 값도 똑같지 않은가?
물론.
‘이미 가마솥의 형태와 안전성이 완전히 잡혔으니, 어쩌면 이 뒤는 값이 싸질지도 몰라.’
이는 따로 실험해 봐야 아는 부분이었다.
그렇게 이름 없는 가마솥에 대한 생각이 정리되어가자.
-……빠! 오빠! 크기 좀 줄여 봐! 이러다 무너지겠어!
다급한 현자의 돌의 목소리가 상념을 일깨웠다.
정신을 차린 시문은 얼른 정보창을 치웠고.
볼 수 있었다.
쿠그그그그.
시문의 펜트하우스 중에서도 유난히 높은 방.
그래서 연구실로 지정했던 이곳의 천장까지 가마솥이 커지는 것을 말이다.
당연히.
그그극.
덜그럭!
미스릴 골렘과 작업용 기계 팔을 동원해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지만 그뿐.
풍선마냥 점점 부피가 커지는 가마솥 앞에선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이윽고.
까각!
자라는 가마솥이 천장과 벽면에 부딪혔고.
-오빠! 이러다 건물 붕괴되겠어!
현자의 돌은 혼비백산한 눈으로 소리쳤다.
하나 당황스러운 것은 시문 역시 마찬가지였다.
‘뭘 어떻게 해야 작아지는 거지?’
정보창에도 가마솥의 크기와 관련된 내용은 없지 않았던가?
‘아까 같은 크기로 되돌아갔으면 좋겠는데…….’
그렇게 생각한 순간.
까각.
끝없이 늘어나던 가마솥의 성장 뚝 멈춘다.
이내.
쉬이이이…….
바람 빠지는 소리와 함께 점점 부피가 줄어드는 가마솥.
그를 본 시문은 눈을 반짝였다.
‘그렇군. 내 의지를 따르는 건가?’
어찌 보면 당연하기도 했다.
불완전하지만 과거 옛 성좌들의 물건이었고.
이를 바탕으로 시문이 재창조한 것 아니던가?
시문은 점점 줄어드는 가마솥에 손을 올렸다.
‘크기는 아까 정도로. 아니, 작업하기 불편하니까 높이 자체는 내 키 정도로 줄어라.’
창조자의 의지가 더해지자.
가마솥은 더욱 빠르게 시문이 원하는 크키로 변모했고.
데구르르.
가마솥으로 꽉 찼던 주변은 어느새 박살 난 도구와 물건, 그리고.
-하…… 망할! 이걸 언제 다 치워!!
현자의 돌의 절규로 가득 찼다.
* * *
그그그극.
달그락.
백은색의 골렘들과 기계 팔들이 바쁘게 움직인다.
그만큼 박살 난 연구실은 빠르게 제 모습을 찾아가고 있었지만.
정작 이 사태의 원인인 물약과 영약 쪽 구역은 가장 먼저 정리가 끝나 있었다.
이유는 다름 아니었다.
-오빠. 이왕 연성하는 거 다른 구역도 좀 수리해 줘!
“응. 안 돼. 가마솥 써 봐야 돼. 레시피도 전부 다시 손봐야 하고.”
-아이 씨! 오빠!!
두 개의 신화급 가마솥을 합쳐 창조한 이름 없는 가마솥.
그 효과를 확인하기 위해, 시문이 딱 가마솥의 주변만 복구해 버린 탓이었다.
덕분에.
-다른 구역에도 치울 거 개많다고오오!
연구실을 총괄하는 현자의 돌만 죽어 나갈 뿐이었으나.
어쩌겠는가?
“어디 보자…… 가마솥의 전체 용량이…… 재료의 일부만 사용되도 옵션이 적용되는지…….”
연구실의 주인은 이미 이름 없는 가마솥 실험 삼매경에 빠져버린 것을.
-하여간에. 맨날 나보고 연금술에 미쳤다더니.
정작 연금술광은 본인이잖아?
그렇게 중얼거린 현자의 돌은 피식 웃고는 몸을 돌렸다.
현자의 돌까지 자리를 뜨자.
“그럼 스탯 증가제를 기준으로…… 아레나 질병 치료제도 물약 형태는…… 아냐. 그건 나중으로.”
시문의 삼매경은 더욱 깊어졌고.
어느새 말끔해진 주변으로 수십 장의 필기와 그림이 담긴 종이들이 흩날렸다.
이내.
“좋았어. 이럼 스탯 증강제의 레시피에 가마솥을 이용할 수 있겠어.”
스탯 증가제의 레시피의 수정안을 완성한 시문은 그것을 두어 차례 정도 더 정독했고.
“다 외웠다.”
따악.
가벼운 핑거스냅과 함께.
화륵.
보고 있던 레시피의 수정안을 태워버렸다.
주변으로 흩날렸던 종이들은 역시 마찬가지였다.
다른 구역의 정리도 끝이 났는지.
-뭐야? 레시피 전부 수정한다며? 벌써 끝났어?
둥둥 허공을 부유하며 다가오는 플라스크 속 현자의 돌.
“어. 이제 효능의 증가가 제작 단계에서 어디까지 허용되는지만 실험해 보면 돼.”
시문은 고개를 끄덕이곤.
제 키만 한 높이에 옆으로 팽팽하게 늘어난 가마솥에 손을 올렸다.
‘대충 스탯 증강제 하나 정도니까…… 이 정도로 줄어라.’
스탯 증강제 1개분을 떠올리는 시문.
그러자.
쉬이이.
바람 빠지는 소리와 함께.
이름 없는 가마솥은 라면 하나도 끓이지 못할 크기로 줄어들었다.
“딱 좋네.”
만족스러운 미소를 걸친 시문은 곧바로 재료들을 준비했다.
그중 가마솥에 들어가는 것은 당연하게도.
“일단 세계수의 샘물부터 시작해 볼까?”
현 제작품 중 가장 핫한 스탯 증강제.
그것의 메인 재료가 되는 ‘세계수의 샘물’이었다.
쪼르륵.
보통 물보다도 맑고 청아한 소리가 들려온다.
세계수의 샘물을 담은 시문은 손가락을 튕겨, 조심스레 가마솥 아래로 불을 붙였다.
-가열하는 방식으로 가게?
“어. 증류 방식으로 갈려다가, 그냥 뜨겁지 않은 선에서 다른 차가운 재료들과 섞어서 혼합하는 쪽으로 갈려고.”
-흐응~ 하긴, 저건 증류하면 오히려 손해지. 하나부터 열까지 버릴 게 없으니까.
고개를 끄덕이는 현자의 돌.
-그럼 이제 가마솥을 조금만 이용해도 효과가 적용되는지만 보면 되겠네?
“그렇지. 안 되면 가열 시간을 늘리거나 아예 다른 방식으로 돌려야 되고.”
-실험이 길어지면 재료 로스도 꽤 크겠는데? 이거 원 큐로 끝났으면 좋겠다.
“나도 그러길 빌고 있어.”
그렇게 답하면서도 가마솥에서 눈을 떼지 않는 시문.
이내.
“이쯤에서 이 둘을 넣어준 다음…… 이쯤에서 열 번 정도 저어주고…….”
가마솥 자체에서 몇 개의 재료 혼합이 더 이루어지고.
가마솥에서 미약한 김이 올라오자.
“됐다. 지금 빼면 돼.”
얼른 내용물을 덜어 낸 시문은 준비되어 있던 재료들을 빠르게 혼합, 제조했다.
그리하여.
달깍.
특별 제조된 포션병에 담긴 결과물이 테이블 위로 놓였다.
-어때? 성공했어?
플라스크 속 현자의 돌은 곧바로 큼직한 눈알을 들이대며 물었고.
[지구 최초로 ‘X+등급 아이템’을 ‘제작’하였습니다.]
[보상으로 업적 포인트 10,000점을 획득합니다.]
정보창을 확인한 시문은.
씨익.
입꼬리를 올리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 * *
암시장.
없는 물건이 없으며, 원한다면 본인 스스로까지 내다 팔 수 있는 지구 최대의 블랙마켓.
그런 암시장을 관리하는 이는 그 어느 대길드의 길마 못지않게 바빴고.
어지간한 유명 인사들도 실물을 보기 힘들었다.
당연하게도.
“오랜만이에요~.”
그 귀하디 귀한 암시장의 주인의 갑작스러운 등장은.
“다, 당신은!”
다이아 최상위권의 네임드인 밤사냥꾼 박진욱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의 반응이 즐거운 것인지.
“무슨 귀신이라도 본 표정이네요?”
아니면 진실로 상처가 된 것인지.
“저 상처 받아요~.”
암시장의 주인 린은 제 가슴을 감싸며, 상처받은 얼굴로 말했다.
서글픈 표정임에도 야릇한 색기가 흘러나오는 몸짓.
어지간한 남자들이라면 목울대를 꿀렁일 모습이었으나.
“퍽이나 그러시겠습니다.”
암시장의 VVIP인 박진욱에겐 그저 독이 잔뜩 오른 뱀으로밖에 보이지 않았고.
그걸 느낀 린은.
“치. 어째 점점 놀리는 재미가 없어지네요? 누구의 영향이려나~.”
장난기가 가득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저것이 또 다른 흔들기의 시작임을 잘 아는 박진욱은.
“들어가시죠. 마침 쉬고 계십니다.”
곧바로 린을 시문에게 안내했다.
쉰다는 말이 놀라웠던 걸까?
“어머! 아레나와 일밖에 안 하시는 분이 웬일로 쉬신대요?”
린은 드물게 진실된 마음으로 물었고.
이는 시문의 펜트하우스에 도착하고 나서, 절로 알 수 있게 되었다.
“어서 와요. 린.”
싱그러운 향이 널따란 거실에 은은히 감돈다.
아마 엘븐 티로 추정될 그것을 여유롭게 마시고 있는 시문과 그 일행들.
린의 눈매가 미약하게 꿈틀거렸다.
“제가 찾아올 걸…… 알고 계셨군요? 아니, 예상하셨던 걸까요?”
“뭐, 대충은요.”
달깍.
척 보기에도 비싸 보이는 찻잔을 놓으며, 어깨를 으쓱하는 시문.
어째서일까.
“남에게 읽히는 건 달갑지 않았는데 말이죠~.”
당하는 입장은 극도로 싫어하는 그녀이거늘.
자신의 행적이 다 읽혔음에도, 린의 얼굴엔 불쾌감이 감돌지 않았다.
이어.
따로 앉으라 권하지도 않았거늘.
“막상 당해 보니, 그리 나쁘지는 않네요.”
소파의 빈자리에 털썩 앉은 그녀는 마치 제집이라도 되는 듯.
“으아~ 소파 좋네요. 시중에 판매되는 그 어느 것들보다도 편하고 좋은데요?”
소파에 몸을 푹 파묻으며 늘어지는 린.
시문은 피식 웃으며 답해주었다.
“제가 따로 손봤거든요.”
“정말요? 어쩐지~ 나중에 저도 하나 부탁드려도 될까요? 수고비는 두둑하게 드릴게요.”
“하하. 나름 비즈니스 파트넌데. 그 정도는 서비스로 해드리죠.”
“비즈니스 파트너라…….”
비즈니스 파트너란 말을 곱씹는 린.
긍정인지 부정인지 모를 모호한 얼굴로 곱씹던 그녀는 픽 웃더니.
“좋아요. 하지만 이왕 ‘비즈니스 파트너’에게 서비스 베푸시는 거, 조금 더 풀어 주시죠?”
허공에서 무언가를 꺼내, 테이블 위로 놓았다.
심플하지만 세련된 포션병.
“바로 이 스탯 증강제로 말이에요.”
현 지구에서 가장 핫한 아이템 중 하나인 스탯 증강제였다.
그것도.
[스탯 증강제]
등급 : X+
-복용 시 주력 스탯이 영구적 12 상승.
-첫 복용 시 주력 스탯이 영구적 6 상승.
-첫 복용 시 모든 스탯이 영구적 6 상승.
유일한 재료로 만들어진 증강제.
고수준의 연금술로 효능을 한층 더 높였다.
“설마 효과를 더 높여서 출시하실 거라곤 상상도 못 했어요.”
그것도 본래 10이었던 첫 번째 옵션은 12.
각각 5였던 두 번째와 세 번째 옵션은 6으로 증가시킨.
“그것도 무려 20%나 증가시켜서 말이죠.”
따끈따끈한 신상으로 말이다.
“저희 측에 정확히 31병을 보내 주셨죠. 하지만…….”
말없이 주변에 앉아있는 시문의 일행들을 슥 훑어보는 린.
“동료분들의 밝은 표정을 보아하니. 다들 한 병씩 나눠드리고도…… 남은 물량이 더 있지 않으실까 싶어서 찾아왔답니다?”
특유의 야릇한 미소를 짓고 있지만.
상당히 날카롭게 찌르고 들어오는 린.
“역시 린은 못 속이겠네요.”
시문은 피식 웃으며 긍정을 표했고.
“린의 말대로예요. 현재 남은 물량은 대략 60병입니다.”
“대략 60병이라…… 지난 버전을 고려해 보면 대충 한 달에 100병 정도 생산되는 거군요?”
“그렇죠.”
할짝.
린의 새빨간 입술 위로 혓바닥이 모습을 비친다.
그녀는 평소와 달리 꽤나 흥분한 모습이었고.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죠. 앞으로 생산의 전량 저희 쪽으로 위탁해 주시겠어요?”
따로 숨길 기색도 없이, 그것을 여실 없이 드러냈다.
“그 어떤 곳보다도 좋은 조건으로 팔아드릴 것을 약속드리겠습니다.”
“독점 판매권을 달라? 그럼 조건 세게 주셔야 할 텐데요?”
“물론이죠. 우선 지구에서 언제까지나 가장 적은 수수료를 약속드릴게요.”
린의 선언에 시문은 눈을 반짝였고.
주변에 가만 듣고 있던 일행들 역시 제법 놀란 기색이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가장 적은 수수료요?”
가장 적은 수수료라는 대목 때문이었다.
린은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네. 시문 님과 여기 계신 다른 분들도 아시리라 생각해요. 이게 어떤 의미인지.”
그녀의 말에 시문과 동료들 역시 찬찬히 고개를 끄덕였다.
암시장은 모든 것이 돈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그 근간이 되는 것이 바로 거래 수수료.
한데 그걸 그냥 낮추겠다는 것도 아니고.
‘언제까지나 지구에서 가장 적은 수수료’를 받겠다니?
이 말은 즉.
“다른 곳에서 얼마를 제시하건. 암시장이 더 싸게 수수료를 갱신해주겠단 말입니까?”
주변에서 제의가 들어올수록.
적자의 유무 없이 무조건 그보다 싸게 받겠다는 말이 된다.
“역시 잘 아시네요.”
린이 고개를 끄덕이자.
“거, 그럴 거면 그냥 수수료를 안 받으면 되는 거 아냐?”
제법 거친 어조의 목소리가 난입한다.
곁에서 상황을 보던 고말숙이었다.
린은 그녀를 보며 싱긋 웃었다.
“과연 세계적인 호걸답게 화통하시네요. 좋아요. 까짓거 수수료도 일절 받지 않을게요.”
“에, 엥? 정말로?”
너무 쉽게 수락한 탓일까?
고말숙은 제 입으로 말해놓고도, 당황이라는 드문 반응을 내어놓았고.
“자자. 린의 의지는 잘 알았으니. 그 건은 일단 보류하도록 하죠.”
시문은 양손을 들며, 상황을 진정시켰다.
린은 눈을 깜빡이며 되물었다.
“그 말씀은 굳이 수수료를 내시겠다는 건가요?”
“예. 그러니 린이 처음 제시한 수수료 갱신 조건으로 하시죠.”
“어째서죠?”
이번엔 고개까지 갸웃하는 린.
그녀는 진심으로 의문인 표정이었고.
시문은 싱긋 웃으며 답했다.
“이미 적자를 고려한 수수료일 텐데. 여기서 아예 무료로 해 버리면, 서비스의 질이 내려갈 수도 있잖아요.”
거래와 관련해서 값이 싸다는 건.
그리고 공짜라는 건 무릇 그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당연하지 않은가?
봉사도 아니고 거래인데 공짜라니?
“어머나~ 저희가 얕보인 걸까요?”
하지만 다른 의미로 받아들인 것인지.
“스탯 증강제의 수수료 면제가 저희로선 무조건적인 손해이긴 합니다만, 저흰 암시장이랍니다? 이 정도로 서비스 품질이 내려가진 않아요.”
린은 답지 않게 날이 선 미소로 말을 내뱉었고.
시문은 그런 그녀의 마음을 다 안다는 듯.
“알아요. 하지만 우린 파트너 관계잖아요?”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으며 답했다.
‘내가 돈이 없는 것도 아니고. 저쪽도 그깟 돈보단 체면치레의 의미가 더 클 테니까.’
거래와 관련된 영역에선 두 동생이나 고말숙, 박진욱과도 같은 관계다.
얼마 되지도 않는 돈으로 그 위신을 깎아내릴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
전혀 예상치도 못한 대답인 걸까?
린은 다소 충격받은 얼굴로 한동안 침묵을 지켰다.
이내.
“하……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잠시 잊고 있었네요.”
헛웃음과 함께 앞머리를 쓸어올리며 중얼거리는 린.
“본래는 여타 거래 관련한 조건들을 제시하려 했는데…….”
충격이 어느 정도 정리된 것인지.
“좋아요. 이리 파트너로서 대우를 해 주시니. 저도 그에 부합하는 대우를 해드려야겠죠.”
다시 미소를 걸친 그녀는 말을 이었다.
어째서일까?
“독점판매를 약속해 주신다면 수수료와 더불어, 시문 님에게 암시장의 정보 열람권을 드리겠어요.”
걸쳐진 그녀의 미소는 평소의 야릇한 미소가 아닌.
어딘가 한결 맑아진 미소였다.
하지만 시문은 그 변화를 눈치채지 못했다.
“그리고 당장 그 맛보기로 알려드릴 수 있는 건…….”
정확히는 그럴 여유가 없었다고 해야겠지.
린의 입에서 나온 정보는.
“현재 우크라이나 정부에서 한창 은폐 중인 아웃 브레이크 정도겠네요.”
“……뭐라고요?”
지금 일어나선 안 되는 일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