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증권사 생활-51화 (51/650)

51화 본사로 자리를 옮길 시간이 됐다

신성증권 감사팀은 박기수의 책상에 있는 모든 것을 수거하기 시작했다.

굴러다니는 연필과 책상 위에 올려져 있는 사진은 물론이고 휴지 한 장까지도 남겨놓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증거로 사용될 수 있는 모든 것을 감사팀은 빠르게 걷어갔다.

박기수는 감사팀을 지휘하는 팀장을 붙잡고 애원했다.

“세상에 감사가 이루어지기 전에 고소장부터 들이미는 사람들이 어디 있습니까? 난 아닙니다. 난 아니에요. 난 아무런 짓도 하지 않았어요.”

박기수가 감사팀 팀장의 팔을 붙잡고 자기는 아니라며 울부짖었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는 신성증권 시흥지점의 직원들은 누구도 박기수를 도와줄 생각이 없는 듯했다.

오히려 자기들끼리 수군대며 그동안의 의심이 진짜인 것 같다는 이야기를 나누기만 했다.

“이봐. 최 과장. 성우야. 너희들도 좀 도와줘. 왜 가만히 있는 거야?”

최석영과 이성우는 박기수의 애원에 고개를 돌렸다.

모든 실상을 알고 이런 광경이 펼쳐질 거라는 것을 알았으면서도 막상 두 눈으로 지켜보자니 마음이 불편했던 두 사람이었다.

박기수는 팔을 털어내며 마무리 지시를 내린 팀장을 붙잡고 소리쳤다.

“나만 그런 게 아니야. 저놈들. 그래. 저놈들도 똑같이 했어. 나만 잡아가지 마.”

이미 돌이킬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박기수가 최석영과 이성우를 향해 손가락질했다.

“저놈들도 잠자던 고객계좌들 가지고 매매했어. 저놈들도 같이 붙잡아가라고.”

사람들의 시선이 최석영과 이성우 쪽으로 쏠렸다.

박기수와 함께 다니던 것을 알고 있던 사람들은 최석영과 이성우에게 의심의 눈빛을 쏘아 보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의 의심을 지우는 말이 팀장의 입을 통해 나왔다.

“우리가 파악한 것은 당신 하나입니다. 그런 식으로 다른 직원들을 모욕한다면 모욕죄가 추가될 수도 있으니 잘 생각해보고 이야기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뭐라고? 나 하나만이라고? 그럴 리가…… 그럴 리가 없는데…….”

“이곳에서 고객계좌를 유용한 사람은 당신 말고 또 있을 것 같습니까? 그런 짓은 당신 같은 사람들이나 하는 짓입니다.”

“아닌데…….”

박기수가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으로 최석영과 이성우를 바라봤다.

잠시 의심을 하던 사람들도 이내 의심의 빛을 거뒀다.

감사팀이 직접 몇 번이나 박기수 혼자만의 잘못이라고 이야기해 준 덕분에 다른 의심의 싹을 잘라버렸기 때문이다.

감사팀 팀장은 모든 수거가 마무리된 것을 확인하고 철수를 지시했다.

그리고 최준호 지점장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누가 한진영 사원입니까?”

최준호 지점장이 한진영을 불러들였다.

한진영은 최준호의 손짓에 감사팀 팀장이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이 친구가 한진영 사원입니다.”

감사팀 팀장은 한진영을 위아래로 살핀 후 고개를 끄덕였다.

“빠른 신고 덕분에 큰 피해를 막을 수 있었습니다.”

“다른 지점에서도 이와 유사한 일이 벌어지고 있지 않았습니까?”

감사팀 팀장은 한진영의 말에 감탄하는 얼굴로 한진영을 바라봤다.

“맞습니다. 몇 군데에서 유사한 방법을 이용하려는 시도가 있었습니다. 그걸 한진영 사원의 빠른 신고 덕분에 막을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별말씀을요. 고객에게 피해가 가는 일만큼은 막아야겠다는 생각에 한 신고이니 팀장님이 그렇게 감사 인사를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한두 푼 사고가 일어날 만한 일이 아니었으니까요. 게다가 이 일이 잘못된다면 감사원의 조사는 피할 수 없었을 일입니다. 다시 한번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군요.”

내부가 아닌 외부에서 이야기가 먼저 터졌다면 감사팀 팀장 또한 자리를 보전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한진영에게 계속 고맙다는 말을 전했고, 한진영은 자연스럽게 괜찮다며 감사팀 팀장을 다독였다.

사람들의 눈에는 이런 광경이 펼쳐질 수 있다는 것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본사 감사팀 팀장이 지점 직원에게 고개를 숙이는 광경은 그들에게 너무나 생소한 것이었다.

그것도 고개를 숙이는 존재가 사원에 불과한 신입직원이었다.

생각도 못 한 모습에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어리둥절하기만 했다.

“조만간 본사에 오면 그때 다시 감사 인사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괜찮습니다. 팀장님. 너무 그러시면 제가 부담스럽습니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소주나 한잔하도록 하시죠.”

“알겠습니다. 그리고 이번 일은 위에 한진영 사원의 도움으로 일이 벌어지기 전에 잘 마무리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를 꼭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 정도면 저도 만족합니다.”

한진영은 감사팀 팀장의 말에 만족한 미소를 지었다.

이걸 기대한 것이었고 기대했던 대로 결과가 나와 만족하는 모습을 보인 것이었다.

밀물처럼 쏟아져 들어왔던 감사팀 사람들이 나갈 때는 썰물처럼 시흥지점에서 빠져나갔다.

최준호는 정신없이 벌어진 일에 고개를 흔들고는 한진영을 잡아당겼다.

“감사팀 팀장이 왜 그렇게 자네한테 고맙다고 몇 번이나 인사하는 거야? 큰일이 벌어질 걸 막아줘서 고마운 마음이야 이해하는데…… 좀 과한 거 아냐?”

“아무래도 생각보다 많은 곳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나 보네요. 제가 그러지 않았습니까? 우리만의 일이 아니라고요.”

최준호는 지난번에 이야기했던 한진영의 말을 떠올렸다.

바뀐 규정은 우리에게만 적용된 것이 아니다.

그 말대로 다른 곳에서도 이와 유사한 일이 벌어진 것으로 보였다.

그리고 한진영의 말대로 사고는 생각보다 많은 곳에서 광범위하게 큰 규모로 벌어진 듯했다.

그렇지 않다면 도도하기로 유명한 본사 감사팀의 팀장이 일개 사원을 향해 고개 숙일 일은 없었기 때문이다.

한진영은 나라를 잃은 것처럼 의자에 앉아 고개를 무릎 사이에 파묻은 박기수를 바라봤다.

박기수 주변에 시흥지점 직원들이 서성이며 박기수를 내려다보기만 했다.

괜찮다고 다독이기에는 너무나 큰 잘못을 한 박기수를 바라보며 자기에게 벌어지지 않은 일이라고 안도하는 모습이었다.

한진영은 새롭게 얻은 훈장에 만족하는 모습으로 박기수를 쳐다봤다.

***

한차례 폭풍이 휘몰아친 시흥지점은 한동안 잔잔한 시간을 보냈다.

어느 날부터 갑자기 박기수가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도 사람들은 그런 사람이 있었냐는 얼굴로 박기수의 빈자리를 무심하게 바라보기만 했다.

“강원지역에서는 난리가 났다고 하더라고요. 계좌를 건드린 것도 모자라 계좌를 모두 털어먹을 뻔한 직원도 있었다고 하고…… 하여튼 빨리 발견해서 다행이지 대형사고 터질 뻔했어요.”

“도대체 얼마나 간이 크면 계좌를 모두 박살 낼 생각을 하는 거야? 나도 해봤지만 이거 보통 심장으로는 그렇게 하지 못할 텐데 말이야. 난 심장마비 걸리는 줄 알았어.”

박기수와 한동안 함께 했던 두 사람이 이제는 한진영의 근처에 모여 있었다.

그들은 다시 본래의 집에 돌아온 것처럼 편안한 마음으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처음 손해 볼 때야 떨리고 두렵기도 하겠지만 한푼 두푼 손해가 커지면 익숙해지니까요. 그냥 그러려니 하고 기계처럼 돌리다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고객계좌가 다 작살 나 있는 상태였을 거예요.”

“너 잘 안다. 혹시 너도 그러는 거 아냐?”

한진영은 이성우의 말에 들고 있던 음료수를 건넸다.

쓸데없는 말 하지 말고 음료수나 마시라는 뜻이었다.

이성우도 한진영이 음료수를 건넨 이유를 알고 웃으며 음료수를 마셨다.

최석영이 그런 이성우를 대신해서 한진영에게 물었다.

“본사에 언제 간다고?”

“아마 내일 오후쯤에 지점장님과 넘어갈 것 같습니다.”

“우리 지점에서 실적 왕이 나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모두 두 분이 도와준 덕분이죠. 과장님이 방송에 나와 고객을 끌어주고 성우 덕분에 큰 고객과 거래를 할 수 있었으니까요.”

“성우 덕분에 큰 고객과 거래를 했다고?”

아직 이성우가 기풍철강의 아들이라는 것을 모르는 최석영은 한진영의 말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음료수를 마시던 이성우는 한진영의 말에 깜짝 놀라 마시던 음료수를 뱉었다.

“야! 왜 사람 놀라게…… 그런 쓸데없는 말을 하고 그래. 과장님. 아니에요. 이 친구가 이상한 소리를 한 거예요.”

“그렇지? 네가 뭐라고 진영이에게 도움을 줬겠냐? 네가 도움을 받았으면 받았지.”

“그러니까요. 제가 모은 고객들 태반이 진영이 덕분인데 제가 뭐라고…… 야야. 이야기 다 했으면 들어가자. 일하는 중에 너무 나와 있다고 지점장님께서 뭐라고 하시겠다.”

이성우는 한진영에게 눈을 한번 흘기고는 최석영을 데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한진영은 그런 두 사람의 등을 바라보며 느긋하게 지점 안으로 들어갔다.

지점에서는 벌써 커다란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신성증권 전국 실적 1등 한진영]

한진영 개인에게도 영광스러운 일이었지만 시흥지점에도 영광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이런 일을 널리 퍼트려야 고객을 유치하는 데 큰 도움이 되는 것이었다.

“내가 내일 본사 들어갔다가 돌아왔을 때까지 전단지도 다 돌려야 해.”

“걱정하지 마세요. 이미 주변 아파트 단지 부녀회들과 이야기 끝냈어요. 관리사무소의 허락도 받았고요.”

“외부에 어떻게 알리지?”

“지난 강연회 때처럼 인터넷 광고를 하는 건 어떨까요?”

“그건…… 좀 그래. 다른 지점 눈치도 봐야 하는 일이니까. 생각 좀 해봐야겠어.”

최준호 지점장은 김미진과 함께 어떤 식으로 이번 일을 알릴까 고민하는 중이었다.

그때 들어오는 한진영을 보고 반갑게 손짓했다.

“진영 씨. 오늘은 일찍 들어가지 그래? 내일 사진도 찍고 그래야 하니까 피부 관리도 좀 받고 말이야.”

“지점장님께서 더 들뜨셨습니다.”

“나도 기분이 좋지. 우리 지점이 우수지점으로 지정됐잖아. 그 덕분에 내가 경기 남부지역 권역장 자리에 앉을 수도 있을 것 같고…… 이게 다 자네 덕분이야.”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감사합니다. 나중에 가서 저 원망하시면 안 됩니다.”

“내가 자네를 원망할 일이 뭐가 있나? 자네를 좋아하면 좋아하지.”

최준호 지점장이 사람 좋은 미소를 지었다.

한진영은 저 미소가 지어지는 날은 오늘이 마지막일 거로 생각했다.

오래 함께하기를 바라는 최준호였지만 그러지 못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본사로 자리를 옮길 시간이 됐어.’

본사로 자리를 옮기기 위해서는 3년의 시간이 걸릴 거로 생각한 한진영이었다.

그러나 생각보다 일이 수월하게 진행됐다.

일을 진행하며 도움이 되는 사람들도 많이 만났다.

그러다 보니 생각 이상으로 일이 빠르게 진행됐고, 점프하기 위한 모든 조건이 갖추어지게 됐다.

한진영은 최준호에게 미안하지만 이곳을 떠날 때가 됐다고 생각했다.

최준호는 그런 한진영의 마음도 알지 못한 채 앞으로를 계획했다.

신성증권의 본사는 다른 곳들과 마찬가지로 여의도에 있었다.

과거 증권거래소가 여의도에 있었기에 많은 증권사들이 여의도에 본사를 세웠었다.

그러던 증권거래소가 선물거래소와 합쳐져 한국거래소로 사명을 변경한 뒤 부산으로 본사를 옮겼다.

본사가 부산으로 갔다고 하지만 결국 대부분의 업무는 여의도 사옥으로 불리는 서울사무소에서 진행하고 부산에서는 간판만 걸어놓은 형태로 업무가 진행됐다.

그래서 아직도 대한민국 증권의 중심은 여의도였으며 그런 여의도에 신성증권 본사가 자리 잡고 있는 것이었다.

최준호는 시상이 이루어지는 신성증권 본사 컨벤션홀을 향해 거침없이 나아가는 한진영의 뒤를 따랐다.

그는 익숙하게 움직이는 한진영의 뒤를 따르며 신기하듯이 한진영을 향해 물었다.

“자네 여기 와봤었나?”

“몇 번 와봤습니다.”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직원이 본사에 몇 번 와봤다는 한진영의 말에 최준호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다 무언가를 떠올리고 한진영의 말을 이해했다.

“아~ 그래. 신입사원 연수. 신입사원 연수를 받은 지 얼마 안 됐겠구먼. 역시 그래서 자네가 본사 지리를 잘 아는 거였어.”

한진영은 최준호의 말에 말없이 미소만 지었다.

그리고 멈춰 선 엘리베이터 문을 붙잡은 채 말했다.

“내리시죠. 다 왔습니다.”

최준호는 열린 엘리베이터 문에서 내려 14층 전경을 살폈다.

이미 준비를 마쳐놓은 컨벤션홀 바깥 풍경에 익숙한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아이고…….”

마치 조상신을 만난 것처럼 최준호가 급히 누군가를 향해 다가가 인사했다.

“여기는 어쩐 일이십니까? 본부장님.”

최준호는 자기의 상관인 WM본부장을 향해 급히 인사했다.

WM본부장인 장근수 본부장은 최준호 지점장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오늘 최 지점장님께서 이곳에 온 이유를 기억하지 못하시는 겁니까? 제가 시상자입니다.”

“아~ 맞습니다. 그렇군요. 제가 깜빡했습니다. 그저 본부장님을 만나 뵈었다는 사실에 반가워서 그만…… 하하하.”

“어쩐 일은 제가 아니고 저 사람인 것 같군요.”

최준호의 손을 잡은 장근수가 한쪽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한진영이 김정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여기에 왜 FICC 사업부 부문장이 얼굴을 들이미는 거지? 그럴만한 자리가 아닐 텐데?”

김정대와 사사건건 부딪쳤던 장근수는 김정대의 등장에 기분이 상한 얼굴로 함께 있는 직원에게 물었다.

그는 김정대의 등장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인지 장근수를 향해 조심스러운 말투로 대답했다.

“오늘 시상이 이루어질 한진영 사원과 안면이 있던 사이라고 합니다.”

“안면이 있다고? 김 부문장의 경우에는 FICC를 맡기 전에 분명 WHOLESALE 본부장이었을 텐데 어떻게 이제 갓 들어온 신입직원을 알고 있다는 거지?”

“프라임 리츠 건을…….”

“아~ 프라임 리츠. 그게 한진영 사원의 작품이었나?”

“네. 그것뿐만이 아니라…… 기풍철강도…….”

“그 기풍철강 이 회장님 계좌도 한진영 그 친구의 작품이었어?”

“네.”

“이거 내가 너무 조사 없이 시상 자리에 왔나 봐. 이런 거물이 오늘 수상자라는 것도 모르고 말이야.”

최준호는 장근수의 손에 힘이 실려 아파져 오는 손을 붙잡고 울상을 지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