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증권사 생활-52화 (52/650)

52화 도장을 찍으려 한다

“여기에는 어쩐 일이십니까?”

“어쩐 일이기는? 자네 보고 싶어서 왔지.”

“저를 보고 싶으셨다고요?”

한진영의 말에 김정대 부문장은 웃는 것을 숨기지 않았다.

“보고 싶었다는 말을 믿지 않는 거 같군그래. 이거 섭섭한데. 나 혼자 짝사랑을 하고 있었으니 말이야.”

“다른 사람이 들으면 오해합니다.”

“오해하라고 그러지 뭐. 내 마음은 진짜니까.”

한진영에 대한 호감을 숨기지 않은 김정대였다.

그는 한진영의 손을 붙잡고 말했다.

“축하하네. 자네가 언젠가는 일을 벌일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더 빨리 성공해서 조금 놀라기는 했어.”

“감사합니다. 이렇게 축하해주시러 직접 찾아와주시고…… 저도 부문장님의 축하에 뭐라 답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감사한 마음입니다.”

“하하하. 자네와 내가 이렇게 서로 같은 감정이기만 하면 된다네. 난 그거로 충분해.”

한진영은 웃고 있는 김정대를 보고 생각했다.

‘생각보다 프라임 리츠와의 일이 잘되고 있나 보구나.’

둘을 이어준 것은 고객을 공유하라는 뜻에서였다.

그리고 그 뜻이 제대로 이어졌는지 김정대의 반응은 한진영의 생각 이상이었다.

김정대와 한진영이 반갑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오늘 시상식의 또 다른 주인공이 등장했다.

“이거 두 사람이 잘 아는 사이였다니 의외인데.”

장근수가 김정대와 한진영이 있는 곳을 찾아온 것이었다.

“아 진영아. 장 본부장 처음 보지? 내가 소개해줄게. 장 본부장. 여기는 오늘 시상식의 주인공인 한진영 사원. 그리고 이쪽은 오늘 시상식을 수여 할 장근수 WM본부장. 둘이 인사해.”

김정대는 일부러 장근수에게 보라는 듯이 한진영을 이름으로 불렀다.

너보다 내가 더 친하다는 뜻을 장근수에게 알려주기 위함이었다.

이런 김정대의 의도가 먹혔던지 장근수의 표정이 찌푸려졌다.

“처음 뵙겠습니다. 한진영이라고 합니다.”

장근수를 향해 한진영이 먼저 손을 내밀었다.

장근수는 당돌해 보이는 한진영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자네가 그 유명한 한진영이더구만.”

“제가 유명한가요?”

“유명하니 이 자리에 온 거지. 유명하지 않으면 1년에 딱 한 명에게 주는 이런 상을 자네가 받을 수 있었을 것 같나? 기존의 쟁쟁한 인물들을 모두 제치고?”

“그렇군요. 저도 정확하게 인식하지 못했는데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장근수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지점 영업을 총괄하여 지휘하는 자기를 만난 직원 중에 한진영과 같은 태도를 보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지점장조차도 허리가 부러져라 인사를 했고 그런 모습을 조금 전 최준호가 잘 보여주기도 했다.

그런데 이 천둥벌거숭이 같은 녀석은 자기와 동등한 위치에 있는 것처럼 행동했다.

그것도 이제 들어온 지 채 1년이 안 된 신입이 말이다.

“보통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더한 친구야.”

“칭찬으로 듣겠습니다.”

“자네에게 칭찬으로 하는 말이 아닌 줄 알지? 그런데도 그렇게 말하는 건 날 놀리려고 그러는 건가?”

가만히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던 김정대는 이 정도면 됐다는 생각으로 둘 사이를 가로막았다.

“왜들 이러나? 오늘같이 좋은 날에…… 이제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친구를 데리고 신경전을 왜 벌이고 있어?”

“신경전?”

장근수가 발끈하는 모습을 보이자 김정대는 재미있다는 식으로 장근수의 등을 두드렸다.

“들어가자. 들어가. 여기서 이러고 있으면 사람들이 뭔가 싶어 이상한 눈으로 쳐다본다.”

김정대의 말에 장근수가 주변을 둘러봤다.

김정대의 말대로 행사에 참여하려는 사람들의 시선이 장근수가 있는 쪽에 쏠렸다.

신성증권의 거대한 기둥 중에 두 사람이 모여있는 곳은 아무래도 사람들의 주목을 받기 쉬웠기 때문이다.

김정대가 장근수를 이끌고 안으로 들어가며 한진영을 향해 슬쩍 말했다.

“행사가 끝나고 나 좀 보세나.”

한진영은 김정대의 말에 살짝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벌써 준비가 모두 끝났구나. 행사가 몇 시부터 시작한다고?”

김정대가 괜한 너스레를 떨자 장근수가 귀찮은 듯이 김정대의 팔을 뿌리쳤다.

그러나 김정대는 장근수의 짜증 난 반응에 오히려 즐거움을 느꼈는지 웃음을 터트리며 행사장 안으로 들어갔다.

***

영업과 관련된 실적의 경우에는 웬만해서는 수상자가 바뀌기가 어려운 일이었다.

원래 하던 사람이 잘하는 곳이 바로 영업이었다.

게다가 돈과 관련된 일의 경우에는 그게 더 심했다.

큰손이 다른 큰손을 물어와 연결해주는 일이 심심치 않게 벌어지는 곳이기 때문이다.

가만히 있어도 알아서 실적이 굴러가는데 다른 사람이 그 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일이 벌어지려야 벌어질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 틈을 신입직원이 벌리고 들어와 앉아버리는 일이 신성증권에서 일어나고 말았다.

“올해 전국 실적 1위는 시흥지점의 한진영 사원입니다. 모두 박수로 맞아주시기 바랍니다.”

행사 진행자가 한진영의 이름을 부르자 여기저기서 플래시 세례가 터졌다.

사내 신문을 비롯하여 몇몇 언론사에 제공하기 위해 열심히 사진을 찍어댔다.

그리고 이런 플래시 세례 속에서 박수가 쏟아졌다.

짝짝짝짝.

관계자들과 참석자들이 한진영을 향해 박수를 보냈다.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굵직한 계약을 몇 차례나 성공시킨 한진영 사원의 시상을 위해 WM본부의 본부장님이신 장근수 본부장님이 시상자로 나오셨습니다.”

장근수는 사람들의 환영 속에 시상자로 나와 한진영을 향해 상장을 내밀었다.

한진영은 고개 숙여 상장을 받은 뒤 상장을 앞에 놓고 다시 한번 포즈를 잡았다.

그러자 다시 플래시 세례가 터졌다.

마치 미리 연습이라도 되어 있었던 것처럼 행동하는 모습에 장근수가 한진영의 곁에 서서 포즈를 취하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런 자리가 익숙한가?”

“어렸을 때부터 상을 많이 타봐서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

장근수는 태연하게 받아치는 한진영을 슬쩍 흘겨봤다.

그러나 한진영은 그런 장근수에게 시선도 주지 않았다.

한진영에 대한 시상이 마무리된 이후 이번에는 우수지점에 대한 시상이 이루어졌다.

우수지점의 경우에는 단독시상이 아니라 권역별로 우수지점을 선정하여 시상했다.

시흥지점은 경기 남부지역의 우수지점으로 선정되어 상장이 수여됐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최준호는 감격한 얼굴로 장근수가 건넨 상장을 두 손으로 공손히 받아 들었다.

그리고 장근수에 바짝 붙어 사진 속에서 친목이 잘 드러나도록 사진 찍었다.

약 30여 분 동안 진행된 시상식은 마무리 단계에 들어갔다.

수상자들이 모두 모여 사진을 찍는 것으로 올해 우수실적 수상 행사는 끝이 났다.

“자 그럼 우리도 이제 가볼까?”

최준호는 즐거운 얼굴로 상장과 상패를 들고 서 있었다.

그는 한진영에게 다가와 돌아갈 것을 이야기했다.

그러나 한진영은 슬쩍 주변을 둘러보며 대답했다.

“저는 혼자 돌아가도록 하겠습니다.”

“혼자? 누구 만날 사람이라도 있어?”

“김정대 부문장님께서 만나자고 하시네요.”

“그래? 그럼…… 나도 같이 만날까?”

최준호는 한진영의 곁에서 함께 주변을 살피며 말했다.

이런 자리에 참석한 좋은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이렇게 고위 임원과 친목을 다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런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던 최준호였다.

“여기입니다. 부문장님. 여기요.”

최준호가 손을 들어 김정대를 불렀다.

김정대는 이야기를 나누던 상대와 인사를 한 후 한진영과 최준호가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그래. 다 마무리됐나?”

“네. 마무리됐습니다. 그럼 가실까요?”

마치 자기와 약속을 한 것처럼 나서는 최준호를 김정대는 위아래로 살폈다.

“최준호 지점장님이 왜 그러시는 겁니까?”

“진영이와 약속하셨다고요? 저도 같이 가기로 했습니다.”

“지점장님도요?”

김정대가 의아한 표정으로 한진영을 바라보자 한진영은 말없이 웃기만 했다.

그리고 이런 불청객의 난입은 최준호로 끝이 나지 않았다.

“다른 좋은 곳에 가서 식사라도 하실 생각인가?”

장근수 또한 사람들과 인사를 나눈 뒤 한진영이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어디를 갈지 모르지만 나도 같이 가서 사업부 부문장이 사는 밥이나 좀 얻어먹었으면 하는데…… 나도 밥 사줄 거지?”

“이거 참.”

김정대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장근수와 최준호를 번갈아 바라봤다.

그렇게 합류한 둘까지 더해 넷은 여의도에 얼마 전에 오픈 한 5성급 호텔로 향했다.

“남자 둘이 이런 곳에서 밥을 먹는다는 게 좀 그렇지 않아?”

“내가 이런 곳에서 밥을 먹든 잠을 자든 그게 너하고 무슨 상관인데 자꾸 딴지를 걸어?”

밖에 나오자 김정대와 장근수는 서슴없이 대화를 나눴다.

다른 증권사의 동기였던 둘은 비슷한 시기에 신성증권으로 넘어왔고 서로 경쟁 부서의 책임자 자리까지 올라간 것이었다.

그래서 서로를 더 잘 알았고 서로에 대한 경쟁심이 다른 사람보다 더 심했다.

“내 밑에 있는 직원을 오늘 같은 날 빼내서 따로 밥을 사준다는 게 이상하지 않아?”

“내가 모르는 사람도 아니고 아는 친구라서 그래. 거기다 시흥에서 여의도까지 왔는데 내가 밥을 사야지.”

“밥을 굳이…… 이런 호텔에서?”

금융인들을 상대로 오픈 한 호텔은 5성급이라는 말이 그대로 인테리어를 통해 전해질 정도로 휘황찬란한 모습이었다.

그들이 가는 식당 또한 여느 호텔의 식당보다 더 고급스러웠다.

“상무님. 준비해놨습니다.”

김정대를 먼저 알아본 식당의 매니저가 인사를 건넸다.

그 모습을 곁에서 지켜본 장근수는 코웃음을 쳤다.

“자주 오나 봐? 여기 호텔 오픈 한 지 몇 달 되지도 않았는데 자네를 알아볼 정도로 말이야.”

장근수의 비아냥에 김정대가 아닌 식당 매니저가 답했다.

“여의도에서 영업한다면 이 정도는 기본이지요. 김 상무님에 오늘은 특별히 장 상무님도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장근수는 매니저의 말에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나를 어떻게 알지요? 나는 이곳에 온 적이 없는 것 같은데…….”

“기본이라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김 상무님과 장 상무님과 같은 VIP들에 대한 정보는 다 숙지해 놓고 있어야 여의도에서 장사를 할 수 있으니까요. 그럼 들어가시겠습니까? 처음 김 상무님이 예약하셨을 때는 두 분만 오신다고 했는데 네 분이나 오셨으니 저는 주방에 이야기하러 가봐야겠습니다. 손님 잘 모셔.”

매니저는 직원에게 주의하라는 말을 건네고 김정대 등에게 인사를 한 후 자리를 떠났다.

그리고 매니저의 지시를 받은 직원은 미리 마련해놓은 룸 앞으로 한진영 등을 안내했다.

룸 안에 들어간 네 사람은 원형으로 자리 잡은 식탁에 앉았다.

사람들이 자리에 앉자 미리 준비되어 있던 음식들이 나왔다.

예약했던 사람보다 두 사람이 더 왔는데도 대기시간 없이 음식이 나오는 것이 혹시 모를 일에도 미리 준비되어 있는 모습이었다.

장근수는 그런 식당의 반응과 분위기를 살피며 말했다.

“김 부문장이 좋아하는 이유가 있군그래. 꽤 괜찮아. 나도 다음부터 미팅할 때 이곳을 잘 이용해야겠어.”

김정대는 장근수의 혼잣말과 같은 말에 반응도 보이지 않고 맞은 편에 앉아 있는 한진영을 빤히 바라봤다.

한진영도 김정대의 시선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옅게 미소 지으며 김정대에게 먼저 말을 건넸다.

“하실 말씀이 있는 거 같네요.”

“있지. 있으니까 여기로 오자고 했지.”

“여기 다른 사람들이 있는데도 말씀을 하시려는 것을 보니 부문장님께서는 마음을 굳히셨나 봅니다.”

김정대는 한진영의 말에 크게 웃었다.

한진영은 그런 김정대를 향해 마주 웃으며 말했다.

“마음을 정하셨다면 그 전에 제가 먼저 말씀드리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잠깐!”

크게 웃던 김정대는 한진영의 말을 가로막았다.

“거절하려거든 말하지 말게.”

김정대는 장근수와 최준호를 번갈아 바라본 후 말했다.

“내가 왜 이 사람들을 오늘 자리에 오는 것을 허락했는지 아나? 이 사람들 앞에서 도장을 찍기 위함이야.”

“도장?”

“설마…… 진영이를…….”

김정대의 말에 장근수와 최준호가 각각 반응을 보였다.

김정대는 그런 그들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

“나는 이 친구를 우리 FICC 사업부에 데리고 가려 하네. 그래도 괜찮겠지?”

“상무님.”

“그게 무슨 소리야?”

김정대의 말에 최준호와 장근수는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김정대는 예상과 같은 두 사람의 반응을 보며 만족한 미소를 띠었다.

그리고 이제 당사자인 한진영에게서 도장을 받아내려 했다.

“이제 그만했으면 넘어와도 되네. 그 정도면 충분해.”

김정대는 하나하나 나오는 식탁 위의 음식들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좋은 음식점에는 그에 맞는 음식들이 있어야 하지. 특히, 이런 고급식당에서는 잘하는 것 한두 개로는 장사할 수가 없어. 특별한 음식 하나만 잘한다고 이런 5성급 호텔에 들어올 수 있는 게 아니야. 그런 면에서 자네와 우리 FICC의 관계도 호텔과 식당과 같다고 볼 수 있지. 영업만 잘한다고 우리 FICC 사업부에 들어올 수는 없어. 그런데 자네는 지금 식탁 위에 잘 차려진 음식과 그에 걸맞은 인테리어까지 갖추고 있다고 봐야 해. 바로 영업력과 매매능력 그리고 바뀐 회사 규정으로 인해 벌어질 일까지 예측하는 능력까지…… 뭐하나 흠잡을 데가 없네. 이 정도면 충분해. 그러니 이제 그만 넘어오게. 자네는 지점에 있을 만한 사람이 아니야.”

김정대는 한진영을 바라보고 손을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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