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증권사 생활-112화 (112/650)

112화 제안하고 고민하겠다는 답을 들었다

들어온 풍경 속의 사무실 내부 모습은 처참해 보였다.

응접용 소파는 기대도 할 수 없는 공간이었다.

책상과 마주 앉아 이야기할 수 있게 미리 마련해 놓은 의자 두 개만으로도 가득 찰 정도의 방 크기 때문이었다.

3평은 될까 의심이 되는 곳에서 조용재가 책상에 앉은 채 한진영 등을 맞았다.

“어서 와.”

별장에서 볼 때와 전혀 다른 모습의 조용재였다.

이성우가 알던 평소의 조용재가 아니었다.

게다가 조용재가 이런 공간에서 일한다는 사실에 놀라 얼이 빠졌다.

“형님.”

“어. 들어와. 으음~ 보다시피 내 사무실은 두 명만 와도 좁은 곳이라 편히 앉으라는 말도 하지 못하겠다. 그래도 뭐 생각보다 아늑하니까 편하게 있어. 어디 보자.”

조용재는 말을 마치고 의자 뒤편에 있는 자그마한 냉장고를 열었다.

“오면서 봐서 알겠지만, 여기에 있는 임원 숫자만 스무 명이 넘어. 그러다 보니 탕비실 가기도 불편해. 딱히 수행비서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음료수용 냉장고를 따로 뒀어. 이렇게라도 해야 찾아온 손님에게 뭐라도 내놓을 수 있으니까. 자. 이거면 되겠지?”

냉장고에서 주스를 꺼내 자리에 앉은 한진영과 이성우에게 내민 조용재는 웃는 얼굴로 이성우를 바라봤다.

“왜? 놀랐냐?”

“네. 여기는…… 형님이 있기에는 너무 작잖아요.”

“우리 아버지 지론이야. 모든 임원은 같은 크기의 방을 가진다. 아들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아.”

“그래도 이건…….”

“이게 LZ그룹 회장님의 경영철학이지.”

조용재는 고개를 돌려 한진영을 바라봤다.

그리고 책상을 두드린 뒤 한진영에게 말했다.

“어때? 성우 친구 양반. 이런 경영철학을 갖춘 분을 어떻게 설득할 생각인가?”

조용재는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한진영의 말을 기다렸다.

이성우와 다르게 한진영은 놀랍지 않다는 모습으로 사무실을 둘러봤다.

그리고 앞에 놓인 병을 따 주스를 마신 뒤 입을 열었다.

“확실히 경영철학이 남다르시네요. 정말로 설득하는 게 쉽지는 않겠습니다.”

“그래. 많이 고지식하시지. 대신 이런 사무실을 내줬다고 월급까지 박한 건 아니야.”

“그렇다고 들었습니다. LZ그룹은 다른 곳과 달리 성과급에 힘을 쓰기보다 본봉에 더 힘을 싣는다고요.”

“그래서 불만인 사람도 있기는 하지. 특히 자네같이 능력 있는 사람들은 이런 시스템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잖아.”

조용재 가만히 한진영을 바라본 뒤 다시 한진영을 향해 말했다.

“올 때 인포데스크의 여직원들을 만났겠지?”

“네. 저희를 바라보는 시선이 다르더군요.”

“뭣 때문에 그런 것 같나?”

이성우는 이유가 있다는 듯한 조용재의 말에 눈을 크게 떴다.

단순히 자기는 호감의 눈빛으로 느꼈기 때문이다.

“아마 상무님과 만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회장님께서 궁금해하셔서 그런 것이겠지요.”

“맞아. 자네 센스도 좋구먼. 슬쩍 만나서 웬만한 사람들은 잘 못 느낄 텐데 말이야.”

조용재는 팔짱을 낀 채 환한 얼굴을 하고 한진영에 대해 알고 있는 것들을 이야기했다.

“자네에 대해서 좀 알아봤어. 투자전략사업부 부부문장? 투자전략이라…… 너무 두루뭉술한 이름 아닌가?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그래서 더 좋지요. 이것도 할 수 있고 저것도 할 수 있으니까요.”

“그래? 뭐 그렇게 이야기한다면 그럴 수도 있겠지.”

조용재가 지난 별장에서 이야기를 나누지 않은 것은 바로 이렇게 맨정신에서 한진영과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서였다.

한진영의 말을 들었을 때 조용재는 찬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든 느낌을 받았다.

그가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이자 아버지인 LZ그룹의 회장님이 가장 크게 걱정하는 부분이 바로 지분 문제였기 때문이다.

그걸 한진영이 당차게 자기가 풀어주겠다고 말한 것이었다.

조용재는 한진영을 한번은 만나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가 한 말이 허튼소리라고 하더라도 지금은 그런 이야기조차 들어야 할 때였기 때문이다.

치기 어린 마음으로 질러보자는 식으로 자기에게 말을 던진 게 아니냐는 생각에 한진영의 뒷조사도 진행했었다.

그리고 조용재는 흥미로운 것들을 많이 발견할 수 있었다.

“자네에 대해서 알아보니 꽤 재미있는 사람이더군. 능력도 좋아. 짧은 시간 만에 그 자리에 올라간 게 괜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감사합니다. 상무님에게 잘 보이기 위해 한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잘 봐주신다니 기분이 좋네요.”

한진영은 사무실 안을 다시 살펴본 뒤 병 안에 남아있는 주스를 다 마셨다.

그리고 병뚜껑을 닫으며 말했다.

“그런데 회장실은 어떻습니까? 회장실도 이런가요?”

여전히 팔짱을 끼고 있던 조용재는 한진영의 말에 살짝 눈살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회장실? 거기가 이래서는 안 되지. 부회장실부터는 다른 회사와 크게 다르지 않아. 그 이하의 임원들에게만 이런 방을 내어주신 거지. 그런데 그건 왜 물어보는 거야?”

“자주 뵙게 될 텐데 계속 이런 곳에서 만나는 것은 불편하니까요. 천하의 LZ그룹 회장님께 주스를 얻어 마시는 것도 나쁘지는 않은데, 그것보다는 그럴듯한 차를 얻어 마셨다는 이야기를 듣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이건…… 너무 답니다.”

“뭐? 하하하.”

조용재는 사무실이 떠나갈 듯이 웃었다.

한참을 웃던 조용재는 이성우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너 친구로 뭐 이런 녀석을 사귀냐?”

“그러게요.”

이성우는 멋쩍다는 표정으로 뒷머리를 만졌다.

조용재는 다시 한진영을 바라보고 물었다.

“좋아. 이만하면 됐어. 네가 마음에 드니까 이야기를 들어야겠다. 그 방법이란 게 뭐냐?”

한진영은 이제 본격적인 이야기를 할 정도로 조용재의 마음의 문이 열린 것을 알게 됐다.

한진영은 이렇게 열린 마음의 문은 금방 닫힌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열려 있을 때 바로 지난 시절 LZ그룹이 진행했던 그룹 재편 작업을 말하기 시작했다.

“두선화학을 1조 3천억에 매수를 하시는 겁니다.”

“…….”

조용재는 한진영의 말에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좋다는 건지 싫다는 건지 표정만으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모습이었다.

곁에 있던 이성우는 이런 조용재의 표정이 좋지 않음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한진영을 말리려 했다.

그러나 그런 이성우의 행동보다 한진영의 말이 한발 빨랐다.

“LZ기계의 가치는 9천억입니다. 4천억의 차이가 나지요. 그걸 LZ상사가 대납하는 형태로 지급하십시오. 그리고 대납금은 3자 유상증자를 이용하는 겁니다. 바로 상무님이 유상증자를 받는 주체가 되는 것이지요.”

“기존 LZ상사 주주들이 가만히 안 있을 텐데? 아니. 애초에 내가 4천억이라는 자금을 어디서 만들어서 들어가나? 그런 자금이 있다면 지분 정리에 고민도 하지 않았을 거야.”

조금 전에는 아무 말이 없던 조용재가 이번에는 한진영의 말에 대꾸했다.

이성우는 조용재의 변화에 눈을 크게 뜨고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기존 주주들에 대한 반발은 LZ상사 유상증자에 상무님이 참여했다는 사실만으로 잠잠해질 겁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기존 주주들이 왜 가만히 있어? 앉아서 주식가치가 희석되는 건데…….”

“3자 배정은 그렇게 심한 반발을 일으키지 않습니다. 그리고 상무님이 참여했다는 것만으로 LZ상사 위주로 그룹이 재편될 거라는 시각이 주목받을 테니 더욱 반발을 일으키지 않을 겁니다. 가만히 있으면 그룹의 지주사가 될 텐데 반발을 하는 바보는 없을 테니까요.”

조용재는 한진영의 말에 양미간의 주름이 깊게 잡혔다.

한진영의 말을 이제는 깊이 고민하는 모습을 보였다.

“자금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지금 상무님께서 보유하고 계신 LZ신소재 주식을 담보로 제공하시면 저희 증권사에서 2천억을 마련하도록 하겠습니다.”

“신성증권에서?”

“네. 저희 쪽에서 LZ신소재를 담보로 하여 2천억. 그리고 또 다른 재무적 투자자를 모집하여 2천억. 이렇게 4천억을 마련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한진영의 말에 팔짱을 끼고 있던 조용재의 손이 턱으로 올라갔다.

한동안 턱을 쓰다듬으며 생각을 하던 조용재는 그 모습 그대로 한진영을 바라보고 입을 열었다.

“결국 그룹을 LZ상사를 지주사로 삼아 재편하고 나는 자연스럽게 LZ상사의 지분을 취득하여 그룹의 지배권을 갖는다? LZ상사의 지분을 취득하는 과정은 증여가 포함되지 않으니 따로 세금을 낼 필요도 없고?”

“역시 단번에 알아들으시는군요.”

“그리고…… 애초에 1조 3천억에 두선화학을 제시했던 너희 회사의 실추된 명예도 회복할 수 있고?

“그건 뭐 그렇게 되면 좋고 아니면 어쩔 수 없고…… 그 수준입니다.”

한진영의 말에 조용재는 피식하고 웃었다.

“성우야.”

“네? 네.”

조용재가 부르자 그때까지 가만히 이야기만 듣고 있던 이성우가 퍼뜩 정신을 차리고 대답했다.

조용재는 한진영을 향해 턱짓하며 이성우에게 말했다.

“너 이런 놈은 어디서 만난 거냐?”

“회사에서…… 알게 됐어요.”

“그래? 저놈이 먼저 접근한 건 아니고?”

“그게…….”

이성우는 한진영과의 첫 만남을 떠올리려는지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봤다.

조용재는 그런 이성우의 모습에 다시 한번 웃었다.

“됐어. 그냥 물어본 거야.”

조용재는 조금 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한진영을 바라봤다.

한진영의 제안이 그의 귀에 매력적으로 들렸기 때문이다.

조용재는 한진영을 잠시 바라본 뒤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재미있는 이야기 잘 들었다. 그런데 나도 좀 생각해봐야 할 것 같으니 돌아가서 연락할 때까지 기다리도록 해.”

“알겠습니다.”

한진영이 조용재의 말에 인사하고 자리에서 일어나자 이성우가 한진영을 따라 엉거주춤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진영이 다시 한번 앉아있는 조용재에게 인사하고 나가려고 문을 잡았을 때 조용재가 한진영을 불렀다.

“아 참. 뭐 알아서 하겠지만…… 이번 인수 건은 자네하고 진행할 테니까 그리 알아. 투자전략사업부. 좋네.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할 수 있어서…….”

조용재는 조금 전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리고 미소 지었다.

밖으로 나온 한진영의 얼굴의 표정에는 짙은 웃음기가 어렸다.

그가 듣고 싶던 이야기를 모두 들었기 때문이다.

***

LZ그룹을 나와 회사로 돌아가는 길은 올 때와 달리 노을이 지고 있었다.

이성우는 그런 노을을 헤치고 한진영에게 다가가 조금 전부터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그런데 회사에서 진짜 2천억을 해주겠다고 했어?”

“그건 이제 지금부터 들어가서 이야기를 하면 되지.”

“지금부터? 너 설마…….”

이성우는 너무 놀라서 걷던 걸음도 멈추고 한진영의 등을 바라봤다.

그러고는 다시 한진영에게 다급히 달려갔다.

“회사에다가는 묻지도 않고 이야기한 거야? 그러다 안 된다고 하면 어쩌려고?”

“왜 우리 회사에서만 안 된다고 할 거라고 생각해? 조 상무 쪽에서 싫다고 할 수도 있어. 너도 들었잖아. 생각해보겠다고 말이야. 그런데 무턱대고 회사에다가 먼저 이야기했다가 일이 틀어지면? 그때 가서 회사에다가 뭐라고 할 거야?”

“그건 그렇지만…….”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고 너는 나만 따라와. 내가 너 대리 만들어줄 테니까.”

한진영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이성우에게 말하고 회사로 발걸음을 옮겼다.

회사에 도착한 한진영은 바로 남원석 사장을 만나기 위해 사장실로 향했다.

사장실에서는 임재홍 센터장이 초조한 모습으로 한진영이 복귀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떻게 됐습니까?”

남원석은 한진영의 얼굴을 보자마자 물었다.

한진영은 남원석의 손을 잡고 안으로 들어가며 임재홍을 향해 말했다.

“임 센터장님. 죄송하게 됐습니다.”

“뭐가…… 말입니까?”

초조한 모습의 임재홍은 한진영의 말에 바짝 긴장한 모습을 보였다.

한진영은 그런 임재홍의 맞은 편에 앉았다.

“조 상무 측에서 저희 사업부와 두선화학 인수 건을 진행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임재홍은 한진영의 말에 눈을 감았다.

예상한 일이기는 하지만 직접 한진영의 입을 통해 이야기 듣자 가슴이 아려오는 느낌의 임재홍이었다.

하지만 임재홍과 달리 곁에 있던 남원석은 기쁜 마음으로 손뼉을 치며 말했다.

“계속 인수합병 건을 진행한다는 말입니까?”

남원석에게는 누가 인수합병 건을 진행하든 상관이 없었다.

그저 이 대형 프로젝트가 다른 사람 손에 넘어가지만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었던 것이었다.

한진영은 옆에서 기쁜 모습의 표정을 짓고 있는 남원석을 향해 같이 웃었다.

“그건 아직 확정되지 않았습니다. 제가 제안했고, 조 상무 측에서 고민을 해보겠다는 답을 들었을 뿐입니다. 다만, 인수 건이 계속 진행이 된다면 저희 사업부와 함께 하고 싶다는 뜻을 비쳤습니다.”

“제안? 제안이라니요? 무슨 제안을 했다는 말입니까?”

남원석은 한진영의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LZ그룹에 가는 한진영에게 제안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없었던 남원석이었다.

그래서 한진영이 했다는 제안이 무엇인지 궁금해했다.

“조 상무 측에 두선화학을 1조 3천억에 인수하는 게 어떠냐는 말을 전했습니다.”

“네? 1조 3천억이요?”

남원석은 깜짝 놀랐다.

그리고 놀라기는 임재홍도 마찬가지였다.

가만히 감고 있던 임재홍의 눈이 번쩍 뜨여 한진영을 노려봤다.

“그건 홍 전임 센터장이 두선화학의 가치를 부풀렸을 때의 가격 아닙니까? 그런데 그걸 제안했다고요?”

임재홍이 놀란 얼굴로 묻자 곁에 있던 남원석도 참지 못하고 한진영을 향해 물었다.

“그 제안 가격을 받아들였단 말입니까?”

한진영은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본 후 고개를 끄덕였다.

“제안을 했고 고민을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게 지금 제가 LZ그룹에서 받아서 온 결과표입니다.”

한진영의 말에 자리에 있던 두 사람은 황당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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