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증권사 생활-184화 (184/650)

184화 내가 키운 걸 가지고 나간다

최석영은 사람을 찾으러 와서 눈까지 감아버린 한진영의 모습에 이상함을 느꼈다.

하지만 한진영이라면 다 생각이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에 조용히 한진영의 곁에서 최석영은 탕 안의 따뜻한 물을 느꼈다.

그렇게 한동안 탕 안에서 몸을 녹이던 한진영은 자리에서 일어나 이제 본격적으로 사우나를 즐기려는 듯이 사우나실로 향했다.

최석영은 그런 한진영을 따라 사우나실로 들어갔다.

“어우~ 좋다.”

사우나실에 들어온 한진영이 몸을 수건으로 두드리자 최석영이 곁에 앉으며 헛웃음을 터트렸다.

“젊은 놈이 무슨 노인네처럼 사우나를 즐기냐? 그렇게 좋아?”

“오랜만에 오니까 몸이 확 풀어지는 느낌이네요.”

최석영은 한진영의 말에 다시 한번 웃고는 한진영을 수건으로 몸을 두드렸다.

그리고 사우나실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조용히 한진영을 불렀다.

“진영아.”

“왜 그러세요?”

한진영은 은근한 어조로 자기를 부르는 최석영 과장의 모습에 웃음을 터트렸다.

최석영이 무엇 때문에 자기를 부른지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왜 사람을 안 찾느냐고 물어보시려고요?”

“아니. 그거야 뭐 여기까지 왔으니 네가 알아서 하겠지. 그것 말고…… 난 다른 게 궁금해서.”

“다른 거요?”

한진영의 생각과 다른 말이 최석영의 입에서 나오자 한진영은 이상하다는 듯이 최석영을 바라봤다.

그런 한진영을 향해 최석영이 둘만 있는 공간에서도 목소리를 낮추고 말했다.

“다름이 아니라…… 회사가 아니라 밖에 나온 김에 물어보는 거야. 회사에서는 도저히 물어볼 수가 없어서.”

“네 말씀하세요.”

“으음~”

말을 꺼내놓고도 뜸을 들이는 최석영이었다.

한진영은 수건으로 몸을 두드리는 것을 멈추지 않은 채 가만히 최석영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렇게 한동안 주저하던 최석영이 결심을 한 듯이 주먹으로 양 무릎을 내려치면서 말했다.

“에이. 그래. 기왕에 말 꺼낸 김에 물어볼게. 너 회사에 계속 다닐 생각이냐?”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아. 내가 너무 앞뒤를 자르고 말한 건가? 미안. 마음이 급해서 내가 너무 대충 말했나 보다.”

최석영은 잠시 심호흡을 하고는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리고 천천히 한진영을 향해 다시 이야기했다.

“다름이 아니라. 성우가 사장 자리에 올라가면서 말들이 많았거든.”

“어떤 말이요?”

“네가 회사를 떠나지 않겠느냐는 말. 사실 다른 임원급들이야 회사를 나가는 것보다 남아있는 게 더 도움이 될 테지만 너는 다르잖아.”

한진영은 최석영의 말이 무얼 의미하는지 눈치채고 웃었다.

“그러니까 독립할지도 모른다는 말이 돌았다는 이야기군요.”

“그래. 너라면 할 수 있었을 테니까. 돈을 지원해 준다는 곳도 많을 테고…….”

최석영은 슬쩍 한진영의 눈치를 살폈다.

혹시 괜한 말을 꺼낸 게 아니냐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한진영은 최석영의 말을 들으면서도 수건으로 몸을 두드리는 것을 멈추지 않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최석영은 용기를 내 한진영을 향해 계속 이야기했다.

“사실 다른 회사에서도 영입 제의 많이 들어왔을 거 아냐? 그렇지?”

“뭐…… 없다고는 말씀드리지 않을게요.”

“그래. 그럴 줄 알았어. 가뜩이나 소문이 빠르기로 유명한 이 바닥에서 너를 모르면 간첩일 테니까.”

한진영은 최석영의 말에 말없이 가만히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최석영은 그런 한진영을 잠시 살피고는 계속 이야기했다.

“그래서 너 나간다는 이야기가 엄청나게 많았어. 굳이 여기에 남아있을 이유도 없고 나가면 더 잘할 수 있을 테니까.”

“그렇군요.”

“그런데 지금까지 남아있는 걸 보면…… 회사에 남아있을 생각이야?”

잠시 말을 멈춘 최석영은 한진영이 아무런 말을 하지 않자 수건으로 한진영과 같이 몸을 두드리며 말했다.

“그래. 뭐 여기 남아있어도 나쁠 건 없지. 돈도 많이 벌 테고 말이야. 그런데…… 나가면 더 많이 벌지 않나?”

최석영이 은근슬쩍 계속 질문을 던지는데도 한진영은 대답하지 않은 채 웃기만 할 뿐이었다.

최근 회사에 가장 많이 오가는 이야기가 바로 한진영의 퇴사와 관련된 이야기였다.

둘만 모여도 한진영이 언제까지 회사에 있을지 이야기했고, 셋이 모이면 각자의 생각에 따라 내기를 진행할 정도로 모든 이의 관심을 받았다.

그러나 궁금해만 할 뿐 감히 회사에서 한진영에게 노골적으로 물어보기 어려워했다.

한진영의 의도가 어떤지 모르는 상태에서 섣불리 이야기하기에는 어려운 문제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이렇게 기회가 생겨 최석영이 물어본 건데, 정작 당사자인 한진영이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으니 최석영은 답답해 미칠 노릇이었다.

이럴 줄 알았다면 차라리 물어보지 않는 편이 나았겠다는 후회가 될 정도였다.

“에이. 뭐 네가 다 생각이 있는 거겠지. 나는…….”

“나갈 겁니다.”

“어?”

마음을 비우고 포기했을 때 그렇게 기다리던 한진영의 대답이 들렸다.

하지만 앞 뒷말이 잘린 채 나온 대답에 최석영은 다시 한번 확인할 수밖에 없었다.

“뭐라고? 나간다고? 언제?”

한진영은 몸을 때리던 젖은 수건을 내려놓고 최석영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최석영을 바라본 채로 대답했다.

“나가기 위해 지금 여기에 찾아온 거예요.”

“그게 무슨 소리야? 나가기 위해 여기에 찾아온다니? 여긴 그 무당인지 뭔지 만나러 온 거잖아. 그렇다면 그 사람이 너 회사 나가는 것하고 연관이 있다는 말이야?”

“뭐 직접적인 연관은 없지만 큰 줄기 내에서는 영향이 있죠.”

그토록 궁금했던 이야기의 대답이건만 듣고 나니 더욱 모호해진 기분이 든 최석영이었다.

최석영은 얼굴을 붉게 붉힌 채로 한진영을 바라봤다.

한진영은 붉게 얼굴이 물든 최석영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과장님은 저하고 인연도 깊고 함께할 분이니 말씀드릴게요.”

지난 시절부터 포함하여 최석영과 함께하며 그가 입이 무거운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던 한진영이었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가 사업부 내에 돌아다니는 만큼 이제는 이야기할 때가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석영 과장은 잠시 마른침을 삼키고 한진영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한진영은 긴장한 듯한 표정의 최석영을 바라보고 말했다.

“다들 제가 언제 나갈지를 생각하는 것 보면 제가 나갈 때가 거의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맞아요. 다른 분들이 그런 생각을 하고 계시듯이 저도 나갈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하지만…… 지금은 아니에요.”

“지금은 아니라고?”

“네. 지금은 제가 원하는 방식으로 나갈 수가 없어서요.”

“원하는 방식이 있다는 말이야? 그냥 나가는 게 아니고?”

한진영은 최석영 과장의 말을 들으며 사우나에서 몸을 뒤로 젖혔다.

습한 공기를 들이마신 한진영은 수건으로 땀이 솟아난 이마를 닦아낸 뒤 말했다.

“저는 기풍증권에서 그냥 나올 생각이 아니에요. 제가 원하는 것을 가지고 나올 수 있게 됐을 때 그때 나갈 생각이에요.”

“뭘 가지고 나가려고?”

놀란 듯한 최석영 과장의 말에 한진영이 여전히 천장에 시선을 둔 채 말했다.

“투자전략사업부요.”

“어? 뭘 가지고 나간다고?”

최석영은 자기가 잘못들은 게 아니냐는 생각에 한진영에게 다시 물었다.

그러나 한진영의 입을 통해 다시 나온 말은 전에 들었던 말과 같은 말이었다.

“투자전략사업부를 들고 나갈 생각이에요.”

“그게 무슨 소리야? 투자전략사업부를 가지고 나간다니? 그걸 어떻게? 아니 왜? 왜 그걸 가지고 나가려고?”

한진영은 눕힌 등을 세우지 않은 채 고개만 돌려 최석영을 바라봤다.

“제가 왜 투자전략사업부에 공을 들였겠어요? 알맞은 인재를 모으고 그 인재를 통해 여러 가지 시험을 하기 위해서였어요. 다 제가 나갈 때를 대비해서 한 거죠.”

“그러니까. 네 말은…… 신성 아니. 지금은 기풍증권이지. 그래. 기풍증권의 그늘 아래 있으면서 테스트를 했다는 이야기야?”

“네. 맞아요.”

당연하다는 듯한 한진영의 말에 최석영 과장은 당황해서 얼굴이 굳어지고 말았다.

한진영의 말이 너무나 충격적이었기 때문이다.

한진영은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모르는 듯이 가만히 자기를 바라보고만 있는 최석영 과장을 향해 먼저 입을 열었다.

“테스트는 아직 좀 더 진행해야 해요. 준하가 작업 중인 퀀트 프로그램도 그렇고 여러 가지 경우에 따른 대처법도 충분히 숙지해야 하고요. 우리 사업부의 평균연령이 낮은 만큼 경험이 부족하니까요. 그 경험을 채우기 위한 시간이 더 필요한 거죠.”

한진영은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계속 이야기했다.

“하지만 이미 우리는 충분히 많은 경험을 했고 그것을 녹여내 몸에 체득하게만 하면 될 테니까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을 거예요.”

“기풍이…… 성우가…… 이정훈 회장님이…… 놔줄까?”

기풍이라는 그늘 밑에서 힘을 키우고 경험을 쌓은 뒤에 나간다는 이야기는 뒤로 미뤄두고 지금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생각을 말로 꺼낸 최석영이었다.

“안 내보내 주겠죠.”

최석영이 이제야 말이 통한다고 생각했는지 커다란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안 내보내 주지. 너 하나 나가는 거야. 그래. 눈 딱 감고 내보내 줄 수 있어. 준하 나가는 거? 그래. 그것도 뭐 네 밑에서 크게 성장했고, 너와의 관계를 생각한다면 내보내 줄 수 있어. 하지만 거기에 더해서 박도하 팀장이라던가 다른 사람들이 하나둘 붙으면 이야기가 달라져. 그런데 사업부를 통으로 들고 나가겠다고?”

최석영은 말도 안 된다는 듯이 고개를 세차게 저으며 말했다.

“있을 수 없는 일이야. 절대 허락해주지 않을 거야.”

“그렇죠. 평소라면 허락해주지 않겠죠. 하지만…….”

“하지만?”

최석영은 한진영의 말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한진영과 함께하며 여러 가지 상식 밖의 일을 직접 목격했던 최석영이었다.

도저히 말이 안 되는 일도 한진영의 손안에서는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던 것을 두 눈으로 확인한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래서 이번에도 혹시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진영은 말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면서 기대에 찬 눈을 하는 최석영을 향해 뉘었던 몸을 일으켜 세우며 말했다.

“기풍증권에서 나가라고 하면 이야기는 달라지겠죠.”

“기풍증권에서 나가라고 할 거라고? 왜?”

“품 안에 품고 있을 때보다 내보냈을 때 돈을 더 많이 벌게 될 테니까요.”

“품 안에…… 품고 있을 때보다…… 내보냈을 때 돈을 더 번다고?”

최석영은 한진영의 말에 문뜩 하나의 가정이 떠올랐다.

“설마…… 레버리지를 더 키울 생각이야? 그러다가는 LTCM(롱텀 캐피털 매니지먼트)처럼 한 번에 훅 날아가.”

“그러니까요. 한 번에 훅 날아갈지도 모르니 품 안에 넣어놓고 있으면 안 되죠. 내보내야 훅 날아가더라도 피해가 없지 않겠어요? 대신…… 돈을 벌었을 때는 더 큰돈을 벌 수 있을 테고요. 하지만 꼭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니에요.”

한진영은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화를 나누느라 사우나실에 오래 머물러서 그런지 한진영도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고 말았다.

그러나 최석영은 한진영을 따라 일어날 수가 없었다.

최석영은 일어나는 것도 잊어버린 채 자리에 앉아 멍하니 한진영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한진영은 그런 최석영을 내려다보며 이야기했다.

“제 계획은 이래요.”

한진영은 손짓까지 하며 미래를 설명했다.

“기풍증권의 그늘 아래에서는 투자금에 한계가 있어요. 자기자본 투자를 하는 것에도 한계가 있고요. 지금만 해도 자기자본 투자를 제한하는 정부의 눈치를 살피느라 큰 금액을 배팅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었으니까요.”

최석영은 한진영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한진영은 그런 최석영을 향해 계속 이야기했다.

“하지만 기풍증권의 그늘을 벗어나면 이야기는 달라지죠. 품 안에 있을 때 100원의 투자금을 내어주는 게 전부였지만 밖에 내놓은 뒤에는 1,000원을 투자할 수 있는 게 현실이니까요. 또한, 기풍증권의 돈만을 받아 운용하지 않아도 되는 것도 장점이에요. 다른 기관의 돈을 끌어모아 자금을 더 크게 만든 뒤에 투자할 수도 있어요. 그렇게 된다면 수익과 안정성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지요.”

“OCIO(Outsourced Chief Investment Officer)? 기관이나 기업의 자산운용을 외부에 위탁하는 사업?”

아직은 생소한 단어에 불과하건만 최석영은 한진영이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단번에 알아들었다.

한진영은 그런 최석영을 향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그거예요. 미국이나 일본에서는 투자은행조차 애용하는 사업인 OCIO 사업을 우리나라에서는 제가 처음으로 해볼 생각이에요.”

한진영의 말에 최석영은 자기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야기를 듣고 나니 한진영이 하려는 일이 무엇인지 알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최석영의 머리에 한가지 전제조건이 떠올랐다.

“기풍증권이 IB 파트에 안정을 찾아야 가능한 일이잖아. 그래야 기풍도 여유가 생겨서 내보내 줄 텐데? 그렇지 않아?”

한진영은 최석영의 말에 웃으며 사우나실 문을 열었다.

“제가 조금 전 말씀 드렸죠? 제가 여기에 온 이유가 제가 하려는 일에 직접적인 연관은 없지만 큰 줄기 내에서는 영향을 주는 일이라고요. 기풍증권이 IB 파트에 힘을 실을 수 있는 첫 단추가 여기에 있어요. 자 나가보죠. 슬슬 이곳에 온 일을 처리할 시간이 된 것 같으니까요.”

한진영은 말을 마치고 찬바람이 느껴지는 바깥을 향해 몸을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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