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증권사 생활-198화 (198/650)

198화 사업부와 함께 나가겠다

한진영을 찾아 부문장실에 들어온 이성우는 자리에 앉아 있는 한진영에게 빠르게 다가갔다.

“어서 일어나.”

“갑자기 왜?”

한진영은 보고 있던 서류를 닫지도 못한 채 이성우의 손에 이끌려 자리에서 일어나고 말았다.

이성우는 한진영을 일으켜 세운 뒤 손을 잡아 밖으로 나가려 했다.

“가자.”

“갑자기 어딜 가자고 그래?”

“본사. 회장님 만나러 가자.”

“회장님? 갑자기?”

갑작스러운 이야기에 한진영이 어리둥절한 사이 이성우는 기어코 한진영을 밖에까지 끌어냈다.

문 앞에는 어느새 이성우를 찾아온 비서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들은 이성우가 한진영을 끌고 나온 것을 확인하고 이성우에게 이야기했다.

“차 준비해놨습니다.”

“그래요. 바로 갑시다.”

“네. 알겠습니다.”

한진영은 미리 자기에게 찾아오기 전에 차까지 준비해놓은 것을 보고 웃으며 이성우에게 물었다.

“뭐야? 미리 차까지 다 준비해놓은 거야?”

이성우는 한진영이 거부하지 않은 채 자기를 따라오려 한다는 것을 확인하고 잡았던 손을 놓았다.

그리고 한진영을 향해 가까이 다가가 갑작스럽게 본사로 가자고 한 이유를 이야기했다.

“나도 갑작스럽게 이야기 들었어. 오늘 오전에 있던 회의가 캔슬 돼서 아버지 시간이 딱 빈다는 거야. 그래서 부랴부랴 차 준비시키고 이렇게 너 데리러 온 거다.”

“성질도 급하다. 시간 안 되면 미리 약속 시간 잡아놓고 대기한 뒤에 만나 봬도 되잖아.”

“야. 너 회장님 성격 몰라서 그러냐? 미리 약속을 잡으면 왜 약속을 잡고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찾아오는지 다 알아보시는 분 아니냐? 그럼 우리 계획을 이야기도 꺼내기 전에 싫다는 대답부터 하실 수 있어.”

“그러니까. 회장님께 이것저것 따지고 생각할 여유를 주지 말고 이렇게 갑자기 찾아가자고?”

“그래. 그게 나아. 내 말 들어.”

얼마 전까지만 해도 꼭 나가야 하는 거냐고 묻던 이성우였다.

하지만 한진영의 설명을 들은 뒤 지금은 그 누구보다 이성우가 나가기를 바라는 입장이 되어 있었다.

한진영은 굳이 그럴 필요 없이 이미 회장님은 나가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있을 거라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투자전략사업부를 통으로 들고 나가기 위해서는 이성우의 도움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성우는 한진영을 데리고 회사 앞에 세워진 차에 몸을 실었다.

그리고 차 안에서 열심히 아버지인 이정훈 회장에게 할 말을 한진영과 함께 준비했다.

한진영은 차분히 이성우에게 이정훈 회장 앞에서 할 말의 순서를 알려줬고, 이성우는 그것들을 차가 본사에 도착할 때까지 몇 차례나 연습했다.

본사에 차가 도착하자마자 이성우는 회장 비서실에 연락도 하지 않은 채 바로 한진영과 함께 회장실로 향했다.

“도련님. 연락도 없이 어쩐 일이십니까?”

회장실 앞을 지키고 있던 비서실장이 갑작스럽게 등장한 이성우의 모습에 당황한 표정으로 이유를 물었다.

이성우는 비서실장의 질문에 대답 대신 문을 가리키고 질문을 던졌다.

“김 비서님. 회장님 계시죠?”

“네. 회장님 안에 계시기는 하는데…….”

“누구 만나고 계시나요?”

“아니요. 그것도 아니십니다.”

“그럼 쉬고 계시나 보네요.”

“네. 그렇기는 한데…… 어쩐 일로…….”

“그럼 됐어요.”

딱 좋은 타이밍에 찾아왔음을 확인한 이성우는 김 비서를 지나 문손잡이를 잡았다.

그리고 비서를 통해 자기가 왔음을 알리지도 않은 채 문을 벌컥 열어젖히며 안으로 들어갔다.

“저 왔어요.”

한진영은 막무가내로 밀고 들어가는 이성우의 뒷모습을 보고 슬며시 웃어 보이고는 이성우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뭐야? 회사에 있어야 할 놈이 여긴 웬일이야?”

오랜만에 달콤한 휴식을 즐기며 TV를 보던 이정훈 회장은 갑작스러운 이성우의 등장에 불쾌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뒤에 한진영의 모습까지 발견하자 빙그레 웃으며 보고 있던 TV를 끄고 리모컨을 내려놓았다.

“어쩐 일이냐? 숙제 검사받으러 온 거냐?”

“검사는요. 무슨…… 중요한 말씀 드릴 게 있어서 왔어요.”

“그래? 좋아. 앉아서 이야기해봐라.”

이성우는 갑작스럽게 들이닥쳤는데도 아버지가 크게 화를 내지 않는 것을 보며 안심했다.

그래서 기분이 나쁘지 않을 때 단숨에 몰아붙여야 한다는 생각에 서론을 건너뛴 채 바로 본론 이야기부터 꺼내기 시작했다.

“여기 있는 진영이를 회사에서 내보낼 생각이에요.”

“내보낸다? 나가겠다도 아니라. 내보낸다?”

이정훈 회장은 의외라는 표정으로 한진영과 이성우를 바라본 뒤 이성우를 향해 턱짓했다.

“계속 이야기해 봐.”

이성우는 이번에도 화를 내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 가슴을 쓸어내리며 계속 이야기했다.

“한 부문장을 독립시켜 우리의 든든한 우군으로 만들 생각이에요.”

“든든한 우군?”

“네. 한 본부장의 능력이 매우 뛰어나다는 건 아버지도 아실 거예요.”

“회장님! 지금 업무 이야기를 하는데 아버지를 왜 찾아?”

“죄송해요.”

이성우는 버럭 소리를 지르는 이정훈 회장의 목소리에 풀렸던 긴장의 끈을 다시 옥죄었다.

그리고 입술에 침을 묻히며 다시 이정훈 회장을 향해 이야기했다.

“한 부문장이 우리 회사에만 얽매여 있는 건 한 부문장에게도 큰 손해면서 우리에게도 큰 손해예요.”

“구체적으로 이야기해봐라. 어떻게 도움이 된다는 거지?”

이성우는 이정훈이 관심이 있는 듯한 모습을 보이자 차분한 목소리로 한진영과 연습했던 이야기들을 이정훈 회장 앞에서 풀어놨다.

“우선 한 부문장이 나감으로 인해 자기자본에 얽매여 있는 것부터 풀어낼 수 있어요. 지금은 자본시장통합법에 따라서 기풍의 돈을 자회사인 기풍증권에서 마음대로 쓸 수가 없어요. 기풍철강의 곳간에 아무리 많은 돈이 쌓여도 기풍증권은 건드리지도 못한다는 이야기예요.”

“그러니까 한진영이를 내보내서 회사를 설립하고 그곳에 우리 기풍의 돈을 투자하면…….”

“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이에요.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말이죠.”

이성우는 슬쩍 이정훈 회장의 표정을 살폈다.

자기의 말을 불쾌하게 여기는지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이정훈 회장은 무표정한 얼굴로 가만히 이성우의 이야기를 듣기만 했다.

이성우는 이정훈 회장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미 이야기를 꺼냈으니 되돌릴 수 없다고 생각하여 준비했던 이야기들을 모두 다 꺼내놓았다.

“그리고 외부에서 우리의 지원군 역할을 기대할 수도 있어요.”

“구체적으로 이야기해봐라.”

“만약의 경우가 벌어졌을 때 확실한 우리 편이 있다는 게 얼마나 큰 차이를 보이는지 지난 선강그룹의 일로 회장님도 기억하시죠?”

“그래. 똑똑히 기억하지. 경영권 싸움이 벌어졌을 때 외부의 백기사들이 경영권을 지키는 데 큰 도움을 줬다는 것 잘 알고 있다. 그러니까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확실한 외부의 우리 편이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냐?”

“네. 바로 그거예요.”

이정훈 회장은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의문을 한가지 이성우에게 던졌다.

“네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유능한 직원을 잃고 싶지 않은 마음이 더 큰데? 밖에 나가면 아무리 도움이 많이 되는 존재라고 하더라도 품에 있는 것과는 비교가 안 되지. 너는 한진영이를 놓칠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 거냐?”

당사자를 앞에 놓고 스스럼없이 이야기한 이정훈이었다.

그러나 말을 꺼낸 이정훈이나 이야기를 듣는 이성우 그리고 이런 이야기의 중심에 있는 한진영까지 모두 그런 것에는 신경을 쓰지 않는 모습이었다.

마치 곁에 한진영이 없다는 듯이 이성우는 이정훈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할 뿐이었다.

“맞아요. 저도 아까워요. 하지만…….”

“하지만?”

“돈을 더 버는 길이 눈앞에 있는데 저는 그걸 놓치고 싶은 생각이 없어요.”

“하하하하.”

이정훈 회장은 팔걸이를 손바닥으로 두드리며 즐거워했다.

“돈을 더 버는 길이 눈앞에 있다고? 네가 그 길을 봤다는 이야기냐?”

“네. 설마 제 눈은 옹이구멍인 줄 아셨어요? 저도 그 정도는 볼 능력이 있어요.”

“하하하하.”

이성우는 이정훈 회장의 웃음소리가 기분이 좋아 내는 소리라는 것을 알았다.

평소에 큰 성과를 냈거나 크게 돈 벌 일이 생겼을 때 늘 이런 식의 웃음소리를 터트렸기 때문이다.

이성우는 기분 좋아 보이는 이정훈의 모습에 안심했다.

그리고 한진영을 돌아보고 눈으로 다행이라는 뜻을 전했다.

한진영은 생각대로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즐거워하는 이정훈을 보고 슬며시 미소 지었다.

그 누구보다 돈에 관한 집착이 강했던 이정훈이었기에 이런 식의 이야기가 잘 통할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이성우 입을 통해 전하며 이정훈의 마음이 녹게 한 것이었다.

한진영은 그리고 생각보다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이정훈을 보고 생각했다.

‘역시 예상하고 있었구나.’

이정훈이라면 이런 류의 생각을 하지 않았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여기까진 쉽게 이야기가 진행될 것으로 예상했었다.

‘이제 본격적인 이야기를 꺼내야겠다.’

이제 남은 중요한 이야기가 있었다.

이 이야기는 이성우에게 온전히 맡길 수가 없었다.

지금까지 가만히 이야기를 듣기만 하던 한진영이 이제 앞에 나서기 시작했다.

“이성우 사장님의 말씀대로 제가 나가는 것이 기풍에 더 큰 도움이 됩니다. 하지만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문제?”

“네. 제가 나가 도움되는 일을 하더라도 그 시간이 만만치 않게 걸린다는 겁니다.”

“네가 나가서 회사를 차린다고 하면 돈을 싸 들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닐 텐데? 그렇게 된다면 너는 간판도 걸기 전부터 투자금 유치에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 시간이 걸린다고? 내 앞에서 왜 죽는소리를 하는 거냐? 다 알고 있으니 내 앞에서는 그럴 필요 없다. 그것보다 다른 이야기를 하자.”

이정훈은 한진영이 괜한 엄살을 부린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단숨에 이야기를 자르고 본래 하던 이야기를 계속하려 했다.

하지만 한진영은 이정훈의 말에도 물러서지 않고 자기가 하려던 이야기를 계속 이었다.

그에게는 지금의 이야기가 무엇보다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회장님. 돈이 아무리 많다고 하더라도 저 혼자만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하려던 말을 하지 못해 기분이 상한 이정훈은 한진영을 향해 인상을 썼다.

그리고 이렇게까지 이야기한 한진영의 의도를 확인하기 위해 그의 말을 받아 질문을 던졌다.

“마치 혼자서는 못하니 다른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것처럼 들리는데? 내가 잘못 들은 게 아닌가?”

“맞게 들으셨습니다.”

“누가 또 필요하단 말인가? 이야기해 보게. 웬만하면 들어줄 테니 말이야. 나도 그 생각은 하기는 했었어. 아무리 자네 능력이 뛰어나다고 하더라도 혼자서 시스템을 다시 만들고 우리네 같은 사람들의 자금을 운용할 정도로 회사를 키우는 것은 만만치가 않은 일일 테니 말이야. 함께하고 싶은 사람이 기풍증권에 있어서 그런 것 같으니 성우가 있는 자리에서 말해보게. 누가 필요한가?”

이정훈 회장의 말에 이성우가 바짝 긴장했다.

지금 말 때문에 이렇게 이정훈 회장이 예상하지 못하는 시간에 들이닥친 것이었다.

이성우는 이정훈 회장의 반응을 걱정하며 슬며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귀로 들리는 한진영의 말에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사람이 아닙니다.”

“사람이 아니라고? 그럼?”

“사업부가 필요합니다.”

“지금 그게 무슨 말이지?”

이정훈 회장은 이성우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저 녀석이 내 시선을 피하는 것을 보니 둘이 무언가 이야기를 맞춘 것 같은데…… 설마…….”

“네. 생각하시는 대로입니다. 투자전략사업부가 필요합니다.”

“이…….”

이정훈은 당장에라도 욕지거리를 쏟아낼 태세였다.

그리고 앞에 탁자를 두리번거리는 것이 집어 던질만한 것이 무엇이 없나 찾는 것만 같은 모습이었다.

이성우는 몸을 틀어 혹시라도 날아올지 모르는 물건을 대비했다.

하지만 한진영은 그런 이성우와 달리 꼿꼿한 자세로 이정훈을 향해 이야기했다.

“투자전략사업부와 함께 나가겠습니다.”

“이 미친 새끼야. 네가 아무리 투자전략사업부를 처음부터 만들었다고 해도 그걸 들고 나가겠다고 하는 놈이 어디 있어? 이 새끼. 웃긴 새끼 아냐?”

“투자전략사업부와 함께 나가야 회장님께서 그리시는 일을 제가 완성할 수 있습니다.”

손에 잡히는 것이 없자 신문이라도 집어 던지려던 이정훈은 손에 한 무더기의 신문을 꼭 쥔 채 한진영을 노려봤다.

“내가 그리는 일?”

“네. 회장님이 그리는 일. 바로 기풍철강의 분할 말입니다. 그걸 하기 위해서는 제가 사업부와 함께 나가야만 합니다.”

“기풍철강의 분할?”

“네. 기풍철강의 물적분할. 그 작업을 제가 제안했고, 회장님이 받아들여 신성증권을 인수하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런데?”

“그 작업을 제가 사업부와 함께 나가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꼭 나가야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잖아. 게다가 자네가 아니어도 할 수 있을 테고…….”

“내부에서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비난을 어찌 감당하실 생각이십니까? 그리고 제가 처음 제안한 일입니다. 저보다 더 그 일을 잘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이정훈은 손에 쥔 신문을 책상에 다시 올려놓았다.

그리고 조금 전과는 한결 달라진 눈으로 한진영을 바라보고 물었다.

“그래서 아까 시간이 없다느니 같은 말을 한 건가?”

“맞습니다. 회장님께서는 당장에라도 하고 싶으신 심정이실 테니 말입니다.”

이정훈은 이성우를 슬쩍 돌아봤다.

이성우가 갑자기 두각을 나타내지 않았다면 벌써 시작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승계와 관련된 일이기 때문에 빠르면 빠를수록 좋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각지도 못하게 이성우가 능력을 뽐내기 시작했고, 그 결과 한진영이 제안한 방법이 조금 뒤로 밀려나고 말았다.

그러나 뒤로 밀렸다고 하여 한없이 미룰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어떻게든 일은 시작을 해야 했고 그 시작의 순간이 멀지 않은 시기여야만 하다고 생각했던 이정훈이었다.

이정훈은 고민하는 눈빛으로 한진영을 바라봤다.

한진영은 그런 이정훈의 눈빛을 받으며 일이 원하는 대로 풀렸음을 알게 됐다.

이런 일은 고민하는 순간 마음이 넘어갔음을 알려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빠르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너무 늦은 것은 아니니 다행이구나. 다음 이벤트에 시간을 얼추 맞출 수 있겠어.”

한진영은 벌써 기풍증권을 나가서 해야 할 일을 머릿속으로 그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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