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4화 분할을 이야기할 때가 됐다
한진영은 이성우의 시선에 가볍게 웃었다.
“왜 그렇게 봐?”
“유가가 어디까지 빠지는지 알고 있지?”
노골적인 이성우의 질문에 한진영은 태연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알고 있다기보다는 예상하는 지점이 있지.”
“어딘데?”
“그것보다 너한테는 더 중요한 게 있어.”
“나한테? 나한테 더 중요한 게 있다고?”
한진영은 이성우의 어깨에 손을 두르고 강한 어조로 말했다.
“내일 우리 쪽에서 실버만삭스에 네 이름으로 개설된 CFD 계좌를 회수를 준비하겠다는 통보를 할 거야.”
“회수하겠다면…… 여기서 정리하겠다고?”
“어. 처음 이야기한 대로 80달러에서 정리할 거야. 그걸 위해 내일 미리 통보하고 준비할 시간을 주려 해.”
“그럼 80달러가 네가 예상하는 지점이야?”
“아니.”
한진영은 고개를 저었다.
“나는 더 밑을 바라보고 있어.”
“더 밑이라면 어디까지?”
“네가 생각하는 것 이상의 깊은 하락이 나올지도 몰라. 나는 거기까지 보고 있어.”
“그런데 왜 나는 빼라고 하는 거야?”
이성우는 이상하다는 눈으로 한진영을 바라봤다.
물론 지금만으로도 엄청난 수익이 보장되기는 했다.
60억으로 이렇게 단시간 만에 이런 엄청난 수익을 올린 것만으로도 기적과도 같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일을 현실에서 만들어낸 한진영은 더 깊은 곳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에 왜 정리해야 하는 것인지 순수한 의미에서 궁금증이 솟아난 이성우였다.
한진영은 그런 이성우의 반응이 이해가 간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 우리가 CFD 계좌를 개설해서 펀드에 투자했을 때 기억하지?”
“당연히 기억하지.”
“그때 우리 목표 지점이 80달러였어. 그것도 기억해?”
“그럼. 그것도 기억하지. 네가 우리 집에 와보면 알겠지만 내 침대 머리맡에 그때 말한 것들 적어 놓은 액자가 걸려있어. 80달러에 6,000억 번다는 말 말이야.”
한진영은 이성우의 말에 뒤통수를 살짝 때렸다.
“이거 또 오버하네. 6,000억이 아니라 네 손에 쥐는 건 2,500억이라고.”
“알아. 알아. 그래도 사람이 기분이라도 내려면 세전 금액을 써야 하는 거 아니냐? 야. 어디 가서 연봉이 얼마예요? 라고 물었을 때 누가 세후 연봉을 이야기하냐? 세전 연봉을 이야기하지. 나도 마찬가지야. 기분이라도 내려고 6,000억 써놓은 거야.”
“하여튼 너는 말도 잘한다.”
한진영은 이성우의 말에 헛웃음을 터트리고는 계속 이야기했다.
“그 목표는 변함이 없어. 너는 거기서 빠져야 해.”
“그러니까 너는 더 깊은 곳을 보는데 왜 나는 빠져야 하는 거야? 내가 돈을 더 벌고 싶어서 묻는 게 아니라 이상해서 그래.”
한진영은 잠시 이성우를 돌아봤다.
그의 눈에서는 아쉬움이 담겨 있기는 했지만 억울함이 보이지는 않았다.
그의 말대로 정말로 순수하게 궁금해서 묻는 듯한 모습이 보였다.
“우리가 처음 CFD 이야기했을 때 말한 것들이 모두 떠오른다면 그때 이야기한 골치 아파진다는 이야기도 기억하겠네?”
“어. 기억해. 그때 정확하게 묻지 않아서 궁금하기는 했는데 골치 아파진다는 게 정확하게 무슨 말이야?”
“너무 많은 돈을 벌면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한다는 말이야. 혹은 너의 수익에 이상한 딴지를 걸려는 존재들이 나타날 수도 있고…….”
이성우는 한진영의 말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다.
“야. 6,000억도 호들갑을 떨고도 남을 만큼 큰돈이야. 그런데 6,000억에서 멈춰야 할 정도면 도대체 네가 생각하는 자리까지 간다면 얼마를 번다는 건데?”
이성우의 말에 한진영은 잠시 허공으로 시선을 돌려 머릿속으로 계산한 뒤 대답했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여기서 최~소 10배? 아니다. 최소 20배도 가능할지 몰라. 추세가 붙어 나간다면 3배수 종목이라 무섭게 치고 올라갈 테니까.”
“에? 뭐? 여기서 몇 배를 더 벌 수 있다고?”
너무나 터무니없는 숫자를 이야기하는 바람에 이성우의 머리가 멈추고 말았다.
한진영은 그런 이성우에게 이야기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지금 상황에서는 어림짐작으로 계산할 수밖에 없어. 배수가 붙은 인덱스 펀드 같은 경우는 정확히 계산하려면 컴퓨터로 돌려봐야 알 수 있으니까. 하지만 이거 하나만큼은 확실해. 내가 보는 자리까지 계속 끌고 간다면…… 넌 그 돈 만져 보지도 못할 거야.”
“잠깐. 잠깐만. 지금 이게 무슨 소리야?”
이성우는 복잡해진 머리를 풀어보려 했지만, 도저히 자기 힘만으로 풀 수 없음을 깨달았다.
그래서 한진영에게 정확히 지금 상황에 관해 물으려 했다.
“다시 천천히 이야기해봐. 그…… 내가 지금부터 얼마를 더 벌 수가 있다고?”
“어림짐작으로 계산했을 때 여기서 네가 더 끌고 나간다면 10조? 아마 그쯤 벌 수 있지 않을까 싶다.”
“10조? 지금 10조라고 이야기한 거냐?”
“물론 네 손에 들어가는 돈은 거기에 한참 못 미치겠지. 잘해야 3~4조? 아마 그쯤 될 거다. 미국 같은 경우에는 누진세가 무시무시하게 붙어 들어가니까.”
이성우의 귀에는 누진세가 어쩌고저쩌고하는 이야기는 들리지 않는 듯했다.
계속 앞에 이야기한 3조라는 말만 그의 귀에 맴도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니까 최소 3조라고? 최소 3조?”
“그렇지 않을까 싶은데?”
이성우가 처음 6,000억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와 전혀 다른 반응을 보였다.
호들갑을 떨었을 때와 달리 지금은 차분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던 것이었다.
한진영은 이런 이성우의 반응이 이해가 갔다.
인간은 상상의 범위를 넘어서면 생각하는 것을 멈추고는 하는데 바로 이성우의 지금 모습이 바로 그랬다.
한동안 눈만 끔벅이던 이성우는 한진영을 향해 다시 물었다.
“그런데 그렇게 되면 돈을 빼지 못하니 여기서 멈춰야 한다는 거야?”
“그래. 네 손에 쥐는 돈은 3조지만 총수익은 10조 혹은 그보다 더 많을 수가 있어. 그렇다면 그 돈을 곱게 돌려주려 할까? 천만에 절대 그렇게 안 만들어.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네 손에 들어가려는 그 돈을 막으려 할 거야.”
“왜? 나는 정당히 번 건데?”
“도박판에서 싹쓸이한 존재가 판에서 일어나는 걸 가만두고 볼 것 같아?”
“누가 가만히 두고 보지 않는데?”
“누구긴 누구야. 미국 정부와 도박장을 개설한 미국 금융회사들이지.”
이성우는 한진영의 말이 뜻밖으로 들렸는지 다음 말을 하지 못했다.
한진영은 그런 이성우를 향해 왜 돈을 들고나오지 못하는지 설명했다.
“네가 돈을 벌면 그 돈을 가지고 미국에서 살 거야? 아니지? 우리나라로 돈을 들고 와야 그 돈을 가지고 뭘 하든지 할 거 아냐? 그런데 그렇게 조 단위의 돈이 빠져나가는 걸 정부가 가만히 두고 볼까? 그리고 금융회사들은 자기가 잃은 돈을 순순히 주고 손 터는 너를 가만히 지켜보기만 하겠어?”
“그래. 내가 10조를 벌었다면 누군가는 10조를 잃은 걸 테니까. 그 정도 돈이면…… 어떤 방법을 쓰더라도 다시 판에 앉히려 할 거야.”
한진영은 쉽게 이해한 이성우를 향해 어깨를 두드렸다.
“그러니 들고나올 수 있는 수준에서 정리하는 거야. 6,000억까지는 그래도 그들이 눈감아 줄 수준은 되니까. 그리고 결정적으로…….”
“결정적으로?”
“지금 시점이 딱 중간 지점이거든. 그러니 다른 놈들도 먹을 게 많은 곳에 경쟁자 하나 빠지는 것쯤은 크게 신경 쓰지 않을 타이밍에 일어난다는 거야. 오히려 적당히 손 털고 일어나는 너를 향해 잘 가라고 손 흔들어줄지도 몰라. 네가 빨리 일어나야 비어있는 네 자리에 자기가 앉을 수 있으니까.”
한진영은 회의실 문을 열었다.
그러자 조지훈이 불러온 팀장들이 회의실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한진영은 그런 그들에게 잠시 기다리라고 손짓한 후 이성우에게 마지막 말을 건넸다.
“그러니 여기서 손 터는 걸 아쉬워하지 마. 어차피 너는 지금 3배수 펀드로 얼마를 버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니까. 중요한 게 뭔지 알지?”
“그럼. 네가 상기시켜주지 않아도 잘 알고 있다.”
한진영은 각오가 엿보이는 이성우의 표정에 안심했다.
“그래. 알고 있다니 다른 말 하지 않을게. 단지 실버만삭스만 주의해.”
“실버만삭스를 주의하라고?”
“그래. 너한테 아마 달라붙어서 그 돈으로 무얼 할 거냐고 물어볼 거야. 좋은 투자처가 있으니 투자해보라는 말도 할 테고. 거기에 흔들리지 마.”
“네가 있는데도 나한테 직접 연락한다고? 너희가 실버만삭스의 국내 영업을 맡은 거 아니었어?”
“그놈들이 그렇게 계약에 따라 움직였다면 지금 자리까지 올라가지 못했겠지. 하여튼 그건 네가 신경 쓸 문제가 아니고 네가 신경 쓸건…….”
“절대 흔들리지 말고 돈을 꼭 쥐고 있어야 한다 아니야? 걱정하지 마. 그 돈 가지고 무얼 할지 아는데 내가 그 돈을 놓치겠어? 절대 그럴 일 없으니까 믿어.”
이성우가 자기만 믿으라고 큰소리를 치고 한진영을 향해 손을 흔든 뒤 떠났다.
한진영은 그런 이성우의 뒷모습을 보며 이제 슬슬 기풍철강 일을 진행해도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표님. 준비가 다 됐습니다.”
조지훈이 팀장들이 모두 소집되어 회의실에 들어갔음을 한진영에게 알렸다.
“그래. 가자.”
한진영은 회의실로 발걸음을 옮기려던 것을 멈추고 조지훈에게 지시했다.
“기풍철강의 이정훈 회장님과 시간 좀 잡아봐. 슬슬 기풍철강의 분할을 시작할 타이밍이 됐다고 이야기하면 알아서 시간 빼주실 거야.”
“분할이요? 알겠습니다.”
한진영은 조지훈의 대답을 들은 뒤 회의실로 걸어갔다.
***
시장은 어지러워져 갔다.
유가의 앞자리가 8로 변하는 것을 봤음에도 반등은 전혀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은 짧지만 강렬했던 상승기가 끝난 것이 아니냐는 생각을 가지게 됐다.
120달러를 찍었을 만해도 역사적 고점인 150달러 돌파할 수 있어 보였던 시장이 이제는 하락기를 걱정해야 하는 순간이 찾아오고 만 것이었다.
이런 유가의 하락기에 미소를 짓는 곳도 있었다.
바로 기풍철강이 저유가의 혜택을 톡톡히 보는 중이었다.
“하하하. 요새 아주 기분이 좋아.”
이정훈 회장이 한진영과 마주하고 앉아 기분 좋은 얼굴로 차를 마셨다.
그는 다리를 꼬고 팔걸이에 비스듬하게 몸을 기댄 채 다시 한번 웃었다.
“하하하. 생각 같아서는 여기서 더 떨어져 내렸으면 좋겠어. 어떤가? 자네 생각에는 더 떨어질 것 같아?”
이정훈 회장은 모르는 척 한진영에게 유가의 추세에 관해 물었다.
한진영은 이정훈 회장의 질문에 찻물을 맛보고 대답했다.
“제가 어떤 포지션을 가지고 가는지 회장님도 아실 텐데요?”
“그 포지션 아직도 유지 중이야?”
이정훈 회장도 최석영이 TV에 나와 하락을 이야기하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이미 업계에서는 유명한 이야기로 세이지 자산운용이 머리 꼭대기에서 유가 하락 포지션을 잡았다는 소문은 모르는 사람이 없는 이야기가 되어 있었다.
이정훈 회장은 그런 사실을 몰라서 묻는 것이 아니었다.
다만 그 포지션을 아직 유지하고 있는 것인지 그게 궁금해서 묻는 것이었다.
한진영은 얼굴을 바짝 들이민 이정훈 회장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아직 유지하고 있습니다.”
“허어~ 대단하구먼. 대단해. 재미 좀 봤겠어?”
“조금 봤지요.”
“역시 내 판단이 틀리지 않았어. 자네는 풀어놓는 게 더 잘하는 타입이야. 어떤가? 이제 슬슬 기풍증권의 자산운용 파트를 더 끌고 가도 될 것 같은데 말이야.”
“괜찮으시겠습니까?”
“괜찮지? 안 괜찮을 게 무언가?”
“그렇게 되면 기풍증권의 자산운용 파트는 유명무실해지는 것일 텐데요?”
걱정스러운 듯한 한진영의 말에 걱정할 것 없다는 듯이 이정훈 회장이 손을 휘저었다.
“유명무실해지면 뭐 어때? 그게 바로 내 의지인데.”
“성우는요? 성우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다고 합니까?”
“그 자식 말도 마. 아 참. 자네가 한번 말해보게. 도대체 그 썩을 놈이 돈을 어디다 썼다고 하던가?”
한진영은 이정훈 회장의 말에 웃음이 터지려는 것을 억지로 참았다.
이성우가 자기 말을 따라 잘 행동한 듯했다.
이정훈 회장이 화를 참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한두 푼이 아니야. 무려 60억을 날려 먹었어. 어디다 썼는지 입을 꾹 다물고 말을 하려고 하지 않고 있으니 이거 참 환장할 노릇이야. 자네가 성우의 친구니까 알 것도 같은데 어디야? 어디에 그렇게 썼대?”
이정훈 회장이 한진영을 가만히 바라보다 아무 대답이 없자 먼저 나서서 이야기했다.
“여자던가? 여자에게 환장해서 집 해주고 생활비에 차까지 사줬다고 그래?”
“아닙니다.”
“아니면 노름인가? 카지노 가서 노름했다고 그래?”
“그것도 아닙니다.”
“설마…… 아니지?”
“뭘 말씀이십니까?”
“약. 약하고 그러는 건 아니지?”
화를 내던 이정훈 회장이 바짝 긴장한 얼굴로 한진영을 향해 물었다.
“내 자식에 모자란 놈이라는 건 아는데…… 약을 하거나 그럴 놈은 아니야. 약을 하면 그 녀석은 영원히 회사 경영에 손을 댈 수가 없어. 그 정도로 욕심 없는 놈이 아니야. 여기 기풍에 욕심을 가지고 있는 놈이라서 그런 일은 하지 않았을 거야. 그렇지? 내 생각이 맞지?”
한진영은 걱정하는 이정훈 회장을 향해 살며시 웃으며 말했다.
“성우가 그 정도로 바보는 아닙니다.”
“그럼 도대체 뭔데? 뭐 하는데 60억이라는 돈을 그렇게 연기처럼 날려 버릴 수가 있냐고?”
원하는 대답을 듣자마자 소리를 친 이정훈 회장은 말을 하면 할수록 울화통이 치미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