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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증권사 생활-236화 (236/650)

236화 내가 너를 그 자리에 앉혀주겠다

한진영은 대한정유에서 나와 차에 올라타자마자 운전석에 앉아있는 조지훈을 향해 말했다.

“또 뭐가 궁금한데?”

한진영의 말에 조지훈이 운전대를 잡은 채 머쓱하게 웃었다.

“제 얼굴에 다 드러났나요?”

“다 드러날 뿐이냐? 대답해주지 않으면 출발하지 않겠습니다 하고 얼굴에 쓰여 있는데 어떻게 모를 수가 있겠냐? 또 뭐가 궁금해서 그래?”

한진영의 말에 조지훈이 웃으며 대답했다.

“그럼 바로 여쭤보도록 하겠습니다. 3,000억은 또 어디서 나서 투자한다고 하신 겁니까? 대한정유에 기풍철강까지 각각 3,000억이면 총 6,000억이 필요한 일인데…… 지금 우리가 가용할 금액을 까마득히 넘는 금액이 아닌가요?”

“네가 내 주머닛돈을 걱정해주는 거야?”

“그럴 리야 있겠습니까? 단지, 저는 방법이 궁금해서요.”

조지훈은 몸을 돌려 앉으며 말했다.

“대한정유 때야 돈을 벌어 채운다고 하셔서 그러려니 하고 넘겼는데 이번에는 또 어떻게 하시려고요?”

“뭘 어떻게 하긴 어떻게 해? 대한정유 때하고 마찬가지로 벌어서 투자하면 되지.”

“또 버셔서 하시겠다고요?”

“왜? 못 벌 거 같아서 그래?”

한진영의 말에 조지훈이 급히 양손을 휘저으며 아니라는 뜻을 전했지만, 얼굴은 여전히 궁금증이 남아있었다.

“아닙니다. 대표님이시라면 분명 그럴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그 수 외에는 딱히 다른 수가 보이지 않으니까요. 단순하지만 명쾌한 방법 아닙니까? 하지만 그 단순하고 명쾌한 방법의 세세한 부분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어디서 어떻게 돈을 버실 생각이십니까?”

“어디서 어떻게 벌겠어? 지금 제일 좋은 곳이 있는데 굳이 고민할 필요가 있어?”

“지금 제일 좋은 곳이라면…….”

“그래. 지금 조 비서가 생각하는 곳이 맞아. 오일 시장.”

“이번에도 오일 시장에서 버시겠다고요? 그것도 3,000억이나 되는 돈을 또요?”

조지훈이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한진영을 바라봤다.

그러나 한진영은 태연한 얼굴로 이야기했다.

“오히려 대한정유 때 3,000억을 벌겠다는 것보다 지금이 더 쉬워. 복리로 돈이 붙어가니까 얼마 힘들이지 않아도 금방 벌게 될 거다.”

“하지만…… 그러려면 유가가…….”

여기서 유가가 더 빠져야 한다고 말하려던 조지훈은 지난 팀장 회의 때를 떠올렸다.

당시 회의에서 한진영은 이쯤에서 한번 정리하고 가는 것이 어떠냐는 팀장들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히려 버는 대로 족족 투자금을 더하여 포지션을 크게 키워갈 것을 지시했다.

한진영은 하락에 대한 확고한 확신이 있는 모습이었다.

이쯤이면 그래도 대략적인 하락 추세가 끝이 나지 않겠냐는 의견에 콧방귀도 뀌지 않고 더욱 강력한 포지션을 구축해 나간 것이 그런 한진영의 생각을 그대로 보여줬다.

조지훈은 그때의 결정을 떠올리고 한진영이 어떤 식으로 돈을 벌겠다는 지 알게 됐다.

그러나 여전히 궁금한 것이 남아있었다.

“대표님 한 가지만 더 여쭙겠습니다. 증여를 회피하기 위해 중간에 우리가 들어가 투자하여 지분을 획득하는 것은 알겠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른 뒤 이성우 사장님이나 이유정 본부장님께 매각한다는 것도 이해합니다. 이렇게 된다면 기풍철강 입장에서는 기업 분할을 통해 자연스럽게 승계작업을 마무리하게 되는 것이니까요. 하지만 이게 어째서 이성우 사장님께 이득이 된다는 겁니까? 아무리 봐도 이성우 사장님만 이득 보는 일 같아 보이지 않아서 말입니다. 이유정 본부장님께도 도움이 되는 일 아닙니까?”

“그 이야기는 가서 이야기하자. 성우가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한진영이 말을 마치고 턱짓으로 앞을 가리키자 조지훈이 몸을 돌려 운전석에 똑바로 앉았다.

이 문제는 자기보다 이성우가 더 궁금해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 조지훈이었다.

그리고 돌아가 이성우와 함께 들려주겠다는 한진영의 말에 조지훈은 부지런히 차를 몰았다.

***

주인도 없는 사무실에서 서성이던 이성우는 한진영이 도착하자 반가운 얼굴로 한진영에게 달려들었다.

“어서 와. 어떻게 됐어?”

“잘됐다. 회장님께서 계획을 승낙하셨어. 조만간 계약 체결하고 우리 계획대로 일을 진행하기로 확답받고 오는 길이다.”

“그렇지!”

이성우는 잘 됐다는 말에 손을 꽉 쥐었다.

그리고 긴장이 풀렸는지 소파에 털썩 주저앉으며 말했다.

“이제 한시름 놨다. 혹시나 아버지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말이야.”

“그럴 리가 없지. 회장님만큼 돈에 민감한 분이 없는데 이런 기회를 놓치려 하시겠냐? 내가 걱정하지 말라고 했잖아.”

한진영의 말에 이성우가 희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네가 나보다 더 아버지를 잘 아는 것 같다. 그럼 바로 시작하는 거냐?”

“그래. 유가가 80달러에 도달하면 실버만삭스에 자리하고 있는 네 계좌를 정리할 거야. 그리고 네 돈을 우리 쪽에서 받아 운용할 거다.”

“알겠어. 그거야 뭐 이미 이야기했던 거니까 상관없는데…… 정말 이렇게 하면 유정이가 지분을 획득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게 맞냐? 아무리 봐도 유정이에게도 기회가 있는 것 같은 방법 같아서…….”

이성우도 조지훈과 같은 의문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조지훈은 반가운 마음으로 이성우 쪽으로 한 걸음을 내디뎠다.

이성우는 그런 조지훈의 모습에 말하던 것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조지훈을 바라보고 말했다.

“쟨 왜 저래?”

“쟤도 그게 궁금하다고 했거든. 두 번 말하기 귀찮아서 너 만나면 이야기해준다고 그랬다. 그래서 반가워서 저래.”

이성우는 한진영의 말에 피식하고 웃은 뒤 다시 한진영에게 물었다.

“세이지가 획득한 유상증자 지분 말이야. 아버지는 그걸 공평하게 나누기를 바라셨을 텐데…… 그리고 계약도 그렇게 맺어지는 거 아니야?”

“맞아. 이번 유상증자를 통해 획득하는 지분은 공평하게 두 사람에게 나누어 주려 하실 거야. 그래야 본인이 가지고 있는 지분에 힘이 더 실릴 테니까.”

“그런데도 내가 유리한 거라고?”

“그래.”

한진영의 짧은 대답에 조지훈과 이성우가 한진영이 있는 쪽으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어떤 이유인지 궁금하다는 표정이 얼굴에 가득 들어차 있었다.

한진영은 그런 두 사람을 향해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번 일은 무조건 너한테 유리해.”

“어째서?”

“우리 세이지 자산운용이 획득하는 유상증자 물량을 네가 5년 뒤에 다 먹게 될 테니까.”

“내가? 내가 어떻게 다 먹어? 너도 말했잖아 아버지가 공평하게 나누려 하신다고 말이야.”

“그래. 공평하게 나누고 싶으시겠지. 지금은 말이야.”

이성우는 여전히 한진영의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이성우와 달리 조지훈은 한진영의 말뜻이 무얼 의미하는지 감을 잡은 듯했다.

“저…….”

조지훈은 말을 하려던 것을 멈추고 이성우를 돌아봤다.

당사자를 앞에 두고 자기가 나서서 말을 해도 괜찮은지 걱정되어 말하려던 것을 멈춘 것이었다.

이성우는 그런 조지훈을 바라보고 말했다.

“괜찮아. 말해봐. 뭔데? 왜 내가 유리한 건데?”

조지훈은 이성우의 말에 조심스럽게 자기 생각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5년 뒤에는 기풍그룹 지주사의 가격이 크게 오르기 때문이 아닐까요?”

“기풍그룹 지주사의 가격이 크게 오른다고? 그래 가격이 뛰어야지. 그래야 한 대표나 세이지가 투자하는 의미가 있는 건데…… 그거하고 내가 유리한 거는 또 무슨 상관인데?”

“가격이 이유정 본부장님이 건드리지 못할 정도로 오르는 것이 아니냐는 생각이 들어서요.”

“건드리지 못할 정도로 오른다고? 진짜?”

조지훈의 말이 맞는 건지 이성우는 한진영을 향해 확인했다.

한진영은 조지훈을 바라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조 비서가 정확하게 봤네.”

“에? 정말이야? 유정이가 건드릴 수 없을 정도로 가격이 오르기 때문에 내가 유리하다는 거였어?”

한진영은 이성우의 질문에 고개를 돌려 이성우를 바라보고 설명했다.

“그래. 바로 그 이유로 네가 유리하다는 거다.”

“도대체 얼마나 뛴다고 생각해서 건드리지도 못한다고 말하는 거야?”

“3배.”

“3배? 3,000억을 투자한다고 했잖아? 그럼 9,000억까지 가치가 오른다는 이야기야? 정말로?”

이성우는 깜짝 놀란 얼굴로 한진영을 향해 물었다.

한진영은 그런 이성우를 향해 차분히 설명했다.

“그래. 그렇기 때문에 이유정 본부장보다 네가 더 유리하다고 이야기한 거야. 9,000억에 매각하게 된다면 이유정 본부장은 지분을 받고 싶어도 받지를 못할 테니까.”

“나는? 나는 받을 수 있고?”

이성우는 황당한 표정으로 이성우를 바라보고 물었다.

9,000억이라는 돈은 동생인 이유정 본부장뿐만 아니라 자기도 감당하기 어려운 금액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진영은 다르게 생각했다.

“너는 받을 수 있지.”

“나는 받을 수 있다고? 어떻게?”

“너는 이번 일로 번 돈이 있으니까.”

“야. 네가 숫자를 헷갈리는 건 아닐 테고…… 내 몫으로 떨어지는 돈은 2,500억이 전부라고 네가 직접 말했잖아. 그런데 내가 어떻게 1조 가까운 돈을 받아낼 수 있겠어?”

9,000억이라는 돈은 적당히 눈 딱 감고 받아낼 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한진영의 계산이 과하게 잡은 것도 아니었고 9,000억이라고 말하면 9,000억이 맞을 게 분명했다.

오히려 어쩌면 9,000억이 아니라 그보다 더 큰돈이 필요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성우는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의 금액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건 나도 못 해.”

“아니. 너는 할 수 있어.”

“내가 어떻게?”

“너는 2,500억이라는 돈을 나한테 맡길 테니까 할 수 있지.”

“너한테 맡겨서 할 수 있다고?”

“그래. 5년 뒤 지분 매각 시에 네가 받아낼 수 있을 만큼 돈을 튀겨주면 될 일 아니냐?”

“어…….”

너무나 간단하게 해답을 내놓는 한진영의 말에 이성우는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몰라 했다.

한진영은 그런 이성우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

“걱정하지 말아라. 네가 받아낼 수 있도록 네 자금을 튀겨줄 테니까.”

“그래. 네가 그렇게 말한다면 그렇게 되는 거겠지. 하지만 아버지가 계약을 파기하는 일이 생길지도 모르잖아.”

“아니. 그건 절대 일어나지 않을 거야. 매각 진행은 일어날 수밖에 없어.”

확신에 찬 한진영의 말에 이성우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9,000억이야. 그 이상이 될 수도 있는 거잖아. 내가 받아낼 자금은 네가 만들어준다지만 아버지는 그걸 모르시는데 무슨 소용이 있어? 유정이야 용빼는 재주가 있다고 해도 그 돈을 만들 재주는 없을 테고…… 그렇다면 감당하기 어려워지는 순간부터 아버지는 계약을 파기하고 받지 않겠다고 나올지도 몰라.”

“절대 그럴 일은 없어.”

“왜 절대 그럴 일이 없는데?”

“그렇게 되면 기풍그룹이 내 손에 들어오게 되는 건데 이 회장님이 계약을 파기한다고? 절대 그러지 않지. 지분 회수는 우리 세이지가 유증에 참여하는 순간 결정된 거나 마찬가지야.”

한진영은 입꼬리를 한쪽으로 말아 올리며 말했다.

“5년 뒤에 내가 투자한 지분을 무슨 일이 있어도 거둬들이려고 하실 거야. 그게 1조가 됐건 10조가 됐건 돈보다 회수에 더 큰 의미를 두실 테니 신경 쓰지 않아도 돼. 그리고 그때 기풍그룹의 차기 자리가 결정되게 될 거다.”

“차기가 결정된다고?”

“그래. 5년 뒤. 기풍그룹의 차기는 너로 정해지게 될 거야. 그걸 위한 일이니까 잘 따라와. 내 뒤만 따라오면 그 자리에 내가 너를 앉혀줄 테니까.”

한진영의 말에 조금 전까지 보였던 이성우의 근심 걱정이 모두 날아간 듯 보였다.

어느새 이성우는 5년 뒤로 먼저 날아간 듯이 몽롱한 표정을 지은 채로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

유가의 하락은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어느새 80달러까지 떨어진 유가는 너무나 쉽게 80달러 선마저 뚫어내고 말았다.

이제 유가는 저유가 시대로의 회귀를 준비하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 시장에는 믿기지 못한 이야기 몇 가지가 흘러 다녔다.

모 자산운용사가 엄청난 돈을 벌었다는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해외의 모 투자은행이 3배수짜리 인버스에서 수억 달러의 돈을 벌었다는 이야기까지 온갖 이야기가 흘러 다닌 것이었다.

이런 이야기 중에서 한 가지만큼은 검증이 완료되어 사람들을 끌어당겼다.

조수아는 몰려드는 사람들을 막은 후 겨우 땀을 훔치며 사무실로 돌아왔다.

그런 조수아를 향해 직원이 다가와 손수건을 건넸다.

“조 과장님. 고생하셨어요.”

“아니. 도대체 사람들이 언제까지 이렇게 몰려올지 모르겠어요. 최 차장님!”

조수아는 손수건으로 땀을 닦은 후 최석영을 불렀다.

“최 차장님이 좀 나가서 사람들 진정시켜요. 우리한테만 떠맡기지 마시고요.”

“나? 나보고 나가서 사람들 진정시키라고? 참나.”

최석영은 고개를 흔들고는 조수아가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조수아의 어깨를 손으로 두드리고는 사무실 문 쪽으로 걸어가며 말했다.

“잘 봐. 내가 왜 안에 있는지 보여줄게.”

최석영이 사무실 문을 통해 밖으로 나가자 밖에 있던 사람들 속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최석영 차장님. 우리도…… 우리도 받아주세요.”

“여기 투자금 가지고 왔습니다. 내 돈도 좀 받아주세요.”

“최 차장님!”

“최 차장님!”

사람들은 발작이라도 하는 듯이 쏟아지는 아우성에 최석영은 고개를 돌렸다.

조수아는 그제야 최석영이 밖에 나오지 않은 이유를 알게 됐다.

최석영의 얼굴이 그들을 자극하는 효과를 보여준 것이었다.

유가의 하락을 최고 상단에서 예언하듯이 전망한 최석영과 세이지 자산운용은 단숨에 스타를 넘어 예언자의 위치에까지 올라가 있었다.

사람들은 돈을 싸 짊어지고 세이지 자산운용을 찾았고, 서로 나서서 자기의 돈을 받아달라 애원하는 지경에 이르고 만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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