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증권사 생활-256화 (256/650)

256화 같이 찾아온 기회

조용재는 한진영이 보고 있는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이곳에 온 이유를 떠올렸다.

“그래. 기다리겠구나. 가자.”

조용재는 이성우를 잡고 있던 손을 풀었다.

그리고 손으로 옷을 털어내고는 먼저 앞서 나갔다.

이성우는 조용재에게 잡혔던 목을 손으로 매만지며 한진영에게 말했다.

“우리도 가자.”

“그래. 가자.”

한진영이 이성우에게 다가가 등을 두들기고는 먼저 앞서 걸었다.

대한정유 본사 안으로 들어가자 대한정유 직원들이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한진영 일행은 그런 대한정유 직원들의 안내에 따라 15층에 자리하고 있는 회의실로 향했다.

일요일 아침의 대한정유는 길거리와 마찬가지로 조용하기만 했다.

대부분의 직원이 휴일을 지내기 위해 출근하지 않아서 그런지 로비부터 시작하여 엘리베이터까지 한산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한진영 등이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15층만은 달랐다.

대한정유의 직원부터 시작하여 미리 와있던 LZ그룹의 직원들과 기풍의 직원들까지 북적이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리고 그 속에서 익숙한 사람이 다가와 한진영 일행을 향해 인사를 건넸다.

“오셨습니까?”

몇 번 만난 덕분에 익숙하게 된 윤길영 회장의 비서였다.

한진영 등은 윤길영 회장의 비서의 인사를 받고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회장님께서도 나오신 겁니까?”

“아닙니다. 방 부회장님이 회장님을 대신하여 나오셨습니다.”

조용재는 윤길영 회장 비서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윤길영 회장의 비서가 모습을 드러내서 잠시 윤길영이 직접 온 게 아니냐고 생각했던 조용재였다.

그리고 회장이 직접 왔다면 협상의 방향도 바뀌는 것이 아니냐는 생각을 잠시 하기도 했다.

그러나 윤길영이 직접 오지 않았다는 사실에 조용재는 안심하고는 웃었다.

윤 회장의 비서는 조용재의 표정을 보고 마주 웃으며 말했다.

“협상의 방향은 바뀌지 않을 겁니다.”

의미심장한 말을 건넨 윤길영의 비서는 한쪽으로 비켜서고는 한진영 일행을 안내했다.

“들어가시지요. 준비가 다 된 상태입니다.”

말을 마친 윤길영의 비서가 먼저 앞서 걷자 한진영 등도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한진영은 윤 회장의 비서를 따라 회의실로 가며 외국인들을 슬쩍 살폈다.

데이비드 칼슨 테라 CFO와 함께 따라온 테라의 직원들로 보였다.

‘전 세계를 순회공연 하듯이 돌아다닌다고 하더니만…….’

자금을 구하기 위해 테라의 직원들이 전 세계를 돌아다닌다는 이야기는 얼마 전부터 들려왔던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렇게 순회하던 팀이 대한민국에 오게 됐다.

그들은 가장 먼저 자기들과 거래하는 세 곳의 그룹과 이야기를 나누기를 바랐다.

자기들과 거래하는 곳이기에 자금 수혈에도 관심이 있을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한진영은 그런 세 그룹의 초청으로 협상장에 오게 됐다.

한진영이 내놓은 아이디어를 이용하여 이루어진 연합이었기에 한진영에게 조언을 듣고 싶다는 뜻에서였다.

한진영 등이 회의실에 들어가자 먼저 와 있던 사람들이 이야기하던 것을 멈추고 한진영 등에로 시선을 돌렸다.

“어서 오십시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대한정유의 대표로 협상 자리에 온 방우열 부회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한진영 등을 향해 인사했다.

특히 조용재와 오랫동안 손을 잡고 이야기하는 것으로 세 사람 중에 조용재가 가장 중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은연중에 데이비드 칼슨 테라 CFO에 알려줬다.

방우열 부회장은 조용재에 이어 이성우, 한진영과 인사를 나눈 뒤 맞은편에 앉아있는 금발의 남자를 세 사람에게 소개했다.

“오늘 있을 협상 자리에 테라를 대표하여 찾아오신 테라 CFO 데이비드 칼슨 씨입니다.”

조용재는 CFO라는 직함에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CFO요? 테라의 대표가 오는 게 아니었나요?”

조용재의 말에 테라의 CFO인 데이비드 칼슨이 직접 대답했다.

“홍콩에 급한 일이 잡히는 바람에 저희 대표님께서는 홍콩에 남으셨습니다. 제가 비록 대표님보다 못하지만 모든 권한을 위임받아 자리에 온 만큼 저와 이야기를 나누는 게 곧 대표님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과 같으니 너그러이 이해해 주십시오.”

조용재가 데이비드 칼슨의 말에 그를 위아래로 훑었다.

머리 하나는 더 큰 듯한 키와 덩치의 데이비드 칼슨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큰 몸집의 데이비드 칼슨이더라도 현 테라 CEO를 대신할 수 없었다.

현재 테라는 노아 스미스 CEO와 거의 한 몸처럼 사람들이 여겼기 때문이다.

노아 스미스 CEO가 있기에 테라라는 회사가 있으며, 테라라는 회사에 대한 관심은 노아 스미스 CEO 때문에 생겨난 것이었다.

테라가 하려는 일이 무엇인지, 만들려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해하기보다 그저 노아 스미스라는 사람을 따라 테라라는 회사에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는 것뿐이었다.

테라에 노아 스미스가 가지는 무게감은 어떤 누구로도 대체가 불가능했다.

조용재는 데이비드 칼슨의 말에 비웃음 가득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스미스 CEO와 이야기하는 것과 같다고요?”

조용재는 믿기 어렵다는 얼굴로 데이비드 칼슨을 살폈다.

데이비드 칼슨은 그런 조용재를 향해 웃음을 잃지 않은 채 대답했다.

“상무님께서 회장님을 대신하여 오셨듯이 저도 저희 스미스 CEO를 대신하여 왔다고 생각하셨으면 합니다.”

“그거와 같을 수가 있나요? 우리와 당신네는 엄연히…….”

조용재는 LZ그룹과 테라가 어떻게 같은 선상에 놓일 수 있냐며 비웃음 섞인 말을 하려다 말았다.

이곳에 다른 이들이 있어 끝말까지는 내뱉지 않은 것이었다.

그러나 앞에 말만으로도 조용재가 하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알 수 있었다.

방우열은 조용재의 말에 동의하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고, 이성우는 민망한 듯 고개를 돌렸다.

이런 대우에 데이비드 칼슨은 냉정함을 유지하려 했지만, 그의 얼굴이 미세하게 흔들리는 것이 완전히 마음을 다스릴 수 있었던 것은 아닌 것처럼 보였다.

한진영은 한걸음 떨어져 이런 광경을 말없이 지켜봤다.

그리고 조용재와 방우열의 모습을 바라보며 웃음을 나오려는 것을 억지로 참아냈다.

지금이 얼마나 그들에게 큰 기회인지 모르는 두 사람이었다.

오히려 일요일 아침 이곳에 불려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조차 짜증이 난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 모습을 보고 조금 전 나누었던 의미심장한 대화가 어떤 의미인지 알게 됐다.

‘이미 두 곳은 결정을 하고 나왔나 보구나. 그래 먼 훗날도 아니라 5년만 지나면 알게 되겠지. 지금 자기들이 얼마나 큰 실수를 하는 것인지 말이야.’

한진영은 지금 그들이 어떤 기회를 잡은 것인지 알면서도 알려주려 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그 사실을 알릴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히려 그들이 기회를 잃으면 잃을수록 자기에게 더 많은 기회가 돌아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들에게 다시 찾아오지 못할 기회가 옴과 동시에 한진영에게도 같은 기회가 찾아온 것이었다.

한진영은 고개를 돌려 이성우를 바라봤다.

그리고 이성우를 향해 어제 이야기한 대로 하라는 뜻의 눈빛을 건넸다.

이성우는 한진영의 눈빛에 알겠다는 뜻을 전했다.

차에서 내리며 보였던 장난기 가득하던 모습은 더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높은 자리에 오르고 더 많은 책임이 어깨에 지워질수록 이성우도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지금 순간만큼은 조용재나 방우열보다 더욱 진중한 모습으로 진지하게 자리에 임하는 이성우였다.

“자자. 앉아서 이야기하시지요.”

호스트 역할을 맡은 방우열이 서 있는 사람들을 향해 앉을 것을 권했다.

이렇게 서서 이야기하는 것보다 앉아서 자세한 이야기를 나누자는 뜻에서였다.

방우열의 안내에 자리에 서 있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자리에 앉았다.

문 앞쪽으로 방우열을 포함하여 조용재와 이성우 그리고 한진영이 차례대로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그 맞은편으로 데이비드 칼슨이 앉아 홀로 네 명과 이야기를 나눌 준비를 마쳤다.

자리에 모든 사람이 앉은 후 잠시 침묵이 흘렀다.

오늘 자리에서 무슨 이야기가 오갈지 알고 나온 상황에서 사람들은 서로 눈치를 보고 있는 모습이었다.

이런 침묵을 호스트인 방우열이 깼다.

“일요일 아침부터 저희 회사를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이곳에 모인 이유를 모두 아실 겁니다. 테라의 요청으로 이렇게 자리하게 된 겁니다.”

방우열의 말에 사람들은 데이비드 칼슨으로 시선을 돌렸고, 칼슨은 그런 그들을 향해 살짝 고개 숙여 감사의 뜻을 표했다.

방우열은 그런 모습을 확인한 뒤 계속 이야기했다.

“자리에 있는 모든 분께서 아시다시피 테라가 투자 요청을 해왔습니다. 오늘 이 자리는 이 문제를 이야기하기 위한 자리입니다. 그럼 우선 테라의 이야기부터 들어보도록 하죠.”

방우열이 이야기를 마치고 데이비드 칼슨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데이비드 칼슨은 그런 방우열의 시선을 받아 오늘 이 자리에 온 이유를 차분히 설명했다.

“저희는 상장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상장 전에 테라의 파트너사에 기회를 주려 합니다.”

“기회요?”

“네. 기회입니다.”

방우열이 의아한 듯이 묻자 데이비드 칼슨은 칼로 무 자르듯이 단호하게 말했다.

“이건 어디까지나 파트너사에 도움을 주기 위해 기획된 일입니다.”

“그래요?”

방우열이 믿기지 않다는 듯이 눈을 게슴츠레 떴다.

조용재도 마찬가지였다.

눈꼬리까지 끌어올린 조용재는 데이비드 칼슨의 말을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노골적으로 숨기지 않았다.

그러나 데이비드 칼슨은 그런 두 사람의 모습에도 지지 않고 계속 제안을 이야기했다.

“상장 전에 파트너사에 지분을 최대한 많이 돌려주자는 것이 저희 대표님과 회사의 생각입니다. 파트너사와 이익을 공유하는 것. 그래서 테라와 파트너사가 하나로 묶이는 계기를 만들고 싶다는 것이 우리의 생각입니다.”

“자금이 필요해서가 아니고요?”

조용재의 질문에 데이비드 칼슨이 잠시 입을 다물었다.

조용재는 그런 데이비드 칼슨을 확인하고 얇게 웃으며 이야기했다.

“제가 보기에는 자금이 부족하여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이곳에 오신 것 같은데 아닙니까?”

“아닙니다.”

“아니라고요?”

조용재는 데이비드 칼슨의 말에 고개를 흔들었다.

“오늘 자리에 오기 전에 우리 LZ는 테라의 재무 상태를 확인했습니다.”

잠시 말을 멈추고 조용재는 데이비드 칼슨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다 알고 왔으니 숨길 생각은 하지 말라는 듯한 모습의 조용재였다.

그러나 데이비드 칼슨은 그런 조용재의 모습에도 물러서는 모습 하나 없이 똑바로 앉아 조용재의 시선과 마주했다.

조용재는 그런 데이비드 칼슨을 향해 낮게 웃어 보이고는 이야기를 계속했다.

“외부로 드러난 테라의 재무 상태는 처참하더군요. 적자가 도대체 얼마입니까? 작년에만 3억 달러를 넘겼던데 제가 알고 있는 게 맞나요?”

데이비드 칼슨은 이번에도 자물쇠를 채운 것처럼 입을 꾹 다물고 대답하지 않았다.

조용재를 비롯하여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그런 데이비드 칼슨의 모습에 조용재의 말이 틀리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오히려 외부로 드러난 것이 실제 내부에서 이야기되는 것보다 축소되어 알려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만큼 지금 테라 상황은 좋은 상태가 아니었다.

조용재는 그런 테라의 상황을 계속 지적했다.

“중국 상하이에 공장을 짓고 있다는데…… 무슨 돈으로 지으시는 겁니까?”

“투자를 받아 짓는 겁니다.”

“중국 그것도 상하이가 완성차 조립에 관한 어떤 기반이 있다고 그곳에다 공장을 짓는 겁니까?”

“저희는 미래를 보고 공장부지를 선택한 겁니다.”

“미래를 위해 현실을 부정한 게 아니고요?”

조용재의 말에 방우열도 고개를 흔들고는 조용재의 말에 동조했다.

“저희도 지금 테라의 행보를 우려 섞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제조업에 대한 경험이 부족하지 않냐는 것이 우리의 판단입니다. 좋게 이야기해서 파격적이고, 나쁘게 말해서 무모하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지금의 테라이지요.”

방우열까지 나서서 테라에 안 좋은 이야기를 하자 데이비드 칼슨은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오늘 자리가 취조받는 자리인 줄은 몰랐군요. 대한민국에서는 원청 회사의 경영 상태에까지 간섭하는 겁니까? 게다가 오늘은 저희의 요청으로 인해 투자 관련 건으로 이야기를 나누자 하여 만들어진 자리인데 어째서 지금 자리에서 이런 이야기를 나눠야 하는 겁니까?”

방우열은 데이비드 칼슨이 발끈하는 모습을 보이자 급히 손을 들어 사과의 제스처를 취했다.

“미안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투자 부문을 따지다 보니 나온 이야기이니 오해하지 말아 주십시오.”

방우열이 빠르게 사과하자 데이비드 칼슨은 화난 마음을 추슬렀다.

어쨌든 지금 자리에서 방우열 등과 날을 세울 필요는 없었기 때문이다.

테라는 자금수혈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었다.

아직 시장이 형성되어 있지도 않은 전기차 시장의 생태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천문학적인 돈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천문학적인 투자를 하느라 테라는 서서히 자금이 말라가는 중이었다.

상장을 눈앞에 둔 지금 그 어느 때 보다 주머니를 채울 필요를 느끼고 있는 테라였다.

이렇게 비어있는 주머니를 채워줄 존재로 LZ그룹 등에 기대하고 있었다.

LZ그룹의 현금 보유 능력이라면 주머니를 채워주는 것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생태계를 형상하기 위한 자금까지도 지원이 가능할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아 스미스 CEO가 직접 이곳에 참여하려고 했던 것이었다.

홍콩에서의 갑작스러운 일정만 아니었다면 지금 한진영 앞에 앉아 있을 사람은 데이비드 칼슨이 아니라 노아 스미스였을게 분명했다.

방우열은 데이비드 칼슨의 안색이 돌아오는 것을 확인하고 한진영에게 물었다.

“한 대표님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저의 의견이 궁금하신 건가요?”

“네. 궁금합니다. 그래서 자리에 모신 겁니다. 조언을 듣기 위해서 말입니다.”

한진영은 방우열과 조용재를 번갈아 바라본 후 이야기했다.

“저는 두 분이 어떤 것을 걱정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겉으로 보이는 화려함과는 달리 내실이 상당히 부실하게 느껴졌을 겁니다.”

한진영의 말에 방우열과 조용재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한진영의 말이 핵심을 꿰뚫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진영은 차분히 조용재 등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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