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증권사 생활-269화 (269/650)

269화 안갯속에 잠긴 거인

동우 법률사무소.

동우 로펌으로 불리는 곳의 대표는 김교철이었다.

그가 동우 법률사무소를 만들기 전까지 우리나라에는 제대로 된 선진국형 법률사무소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가 미국 유학 뒤 동우라는 간판을 걸고 나서야 제대로 된 법률사무소. 흔히 말하는 로펌이 우리나라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일반적으로 로펌의 경우에는 공동 대표체제를 가지고 있었다.

일정 기간 회사에 이익을 가져다준 변호사에게는 파트너라는 자리를 건네주어 회사의 지분을 나누어주는 형식으로 운영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최초 설립자는 그저 처음 간판을 내건 사람. 그 이상의 가치를 지니지 못하는 게 바로 로펌 시장의 일반적인 모습이었다.

그러나 동우는 달랐다.

김교철 아래에 모여든 변호사들은 월급제 혹은 시급제로 정해진 기준 아래 동우에 소속되어 일하는 방식이었다.

일반 회사들의 체제를 따르는 동우는 김교철이라는 카리스마 있는 대표를 중심으로 모여 그의 지시를 통해 모든 것이 진행되는 프로세스를 가지고 있었다.

어찌 보면 구시대적인 운영방식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런 구시대적인 방식에 변호사들이 반발하지 않겠냐는 생각들을 많이 하고는 했다.

그러나 그런 대중들의 생각과 다르게 변호사들 혹은 법복을 벗은 이들은 모두 동우를 동경하며 동우에 몸담기를 원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지분을 받지 않아도 될 정도의 많은 연봉과 다른 곳에 비해 편한 업무. 그리고 소속 변호사에 대한 지원 등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선 시니어 급의 경우에는 시간당 수십만 원에서 수백만 원에까지 이르는 엄청난 금액을 보장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대표 변호사가 되어 회사의 이득을 나누더라도 가지지 못할 돈을 동우는 보장하여 소속 변호사들에게 지급하는 것이었다.

주니어 급의 경우에도 흔히 말하는 억대 연봉은 가볍게 넘는 수준의 연봉을 받아 갈 수 있었기에 신입 변호사들은 동우에 들어가는 것이 하나의 목표가 된 지 오래였다.

그리고 업무의 편의성도 다른 곳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동우의 간판 아래 모여 있는 것은 변호사만이 아니었다.

회계사는 물론이고, 현장을 도와줄 경찰 출신의 인력과 해외 파트너와 업무 진행 시 통역 및 번역을 지원해줄 인력까지.

변호사 업무 외에 다른 것에 신경 쓰지 않도록 회사가 모든 것을 지원해줬다.

심지어 사택을 제공하는 것을 넘어 집안일을 해주는 아주머니들까지 지원하는 것이 동우였다.

동우는 업무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모든 것을 회사가 알아서 지원해주는 시스템으로 운영이 되고 있었다.

이런 편한 업무 형태와 높은 연봉보다도 기존 변호사들이 동우를 찾는 데는 중요한 것이 하나가 더 있었다.

바로 일하면서 쌓을 수 있는 인맥이 다른 곳과는 차원을 달리한다는 게 동우의 가장 큰 장점이었다.

각계각층의 원로급들을 고문으로 초빙한 뒤, 일하지 않아도 수억의 돈을 주는 것은 오래전부터 익히 알려진 사실이었다.

그들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 혹은 그들이 어쩌다 한번 나서주는 한 번의 일로 매년 지급되는 수억 원의 돈은 충분한 값어치를 하고도 남는다는 게 업계의 평가였다.

이런 원로급 인사들과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에 젊은 변호사들은 동우를 더욱 원하게 됐다.

인맥이란 쉽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최근에는 모인 원로들로 인해 다른 방식으로 동우가 주목받고 있었다.

바로 회전문 인사라고 부를 정도로 동우의 고문 출신들이 내각에 속속 입성한 것이었다.

대한민국의 인재는 모두 동우에 몰려있고, 동우 사람으로 내각을 꾸리는 것이 동우 사람을 쓰지 않고 내각을 꾸리는 것보다 쉽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돌아다닐 정도였다.

이런 동우를 이끄는 김교철은 철저히 외부와는 선을 긋고 밖에 모습을 드러내기를 꺼렸다.

사진이라고 할만한 것도 10년도 훨씬 전에 찍은 사진이 전부였으며, 성격이라든지 좋아하는 것 등등 이름 외에는 외부에 알려진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안갯속에 잠긴 거인이라는 이름으로 김교철을 부르고는 했다.

그런 김교철의 비서가 직접 내려와 한진영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다.

게다가 어르신이 기다리고 있다는 말로 위에 김교철이 있다는 것도 함께 알 수 있었다.

조지훈은 놀란 눈을 하고 지금의 상황을 멍하니 바라봤다.

“오늘은 혼자서만 올라가시지요.”

엘리베이터 문을 잡고 있던 박경진은 놀라고 있는 조지훈을 가리킨 채 말했다.

“이해해주십시오.”

박경진의 말에 한진영은 반쯤 몸을 엘리베이터에 태운 채 조지훈을 돌아봤다.

“오늘은 어르신까지 와 계신 것 같으니 여기서 기다려.”

조지훈은 놀란 얼굴을 금세 가라앉히고는 한진영의 말에 고개 숙여 대답했다.

“네. 알겠습니다.”

한진영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었다.

“가실까요?”

박경진은 의외라는 표정으로 한진영과 조지훈을 번갈아 바라봤다.

그리고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은 채 엘리베이터 문을 닫았다.

“좋은 친구입니다.”

문이 닫히고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박경진이 조지훈을 향해 칭찬의 말을 건넸다.

한진영은 살며시 미소 지었다.

“네. 좋은 친구입니다.”

“제가 다 탐이 나더군요. 제가 가르친다면 조금 더 좋은 재목으로 성장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말입니다.”

박경진이 고개를 돌려 은근한 눈으로 한진영을 돌아봤다.

괜한 말이 아니라 진심으로 조지훈이 마음에 들어 하는 말이라는 것을 박경진의 눈을 통해 알 수 있었다.

“박 실장님의 이야기를 들으면 좋아할 겁니다. 다른 사람도 아니라 동우의 대표 비서실장님께서 하신 말씀이니까요.”

“알겠습니다.”

박경진은 한진영이 완곡한 표현으로 거절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듣고는 다시는 조지훈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엘리베이터는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20층에 멈춰 섰다.

“내리시지요.”

박경진의 안내에 한진영은 서주한 때와 마찬가지로 기다란 통로를 지나 바의 입구 앞에 서게 됐다.

박경진은 바 문을 거침없이 열어젖혔다.

그리고 열린 문 안을 손으로 가리키며 한진영에게 말했다.

“저는 여기까지입니다. 지난번에 가셨던 방에 대표님께서 기다리고 계시니 들어가시지요.”

“여기까지 안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뵙게 되어 영광이었습니다.”

깍듯한 인사를 건넨 박경진이 어서 들어가라는 듯한 눈빛을 한진영에게 보냈다.

한진영은 짧은 숨을 토해내고는 바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바의 모습은 지난번과 다를 것이 없었다.

테이블과 의자 그리고 조명까지 대부분이 처음 왔을 때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중요한 것 하나가 지난번과는 달랐다.

“사람이 없네.”

지난번에는 군데군데 자리를 잡고 앉아 대화를 나누던 사람들이 지금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바 안쪽에 자리하고 서서 유리컵을 닦고 있어야 할 바텐더들조차 보이지 않았다.

한진영은 고요함이 느껴지는 바를 한차례 쓸어보고는 헛웃음을 내뱉은 후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지나온 바의 테이블 모습과 의자의 놓여있는 모습 등이 조금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이 자리하고 있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마치 급히 자리를 비운 것 같은 모습에 한진영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하여튼 노친네 참 유별나. 사람이 있으면 뭐 어떻다고 이렇게 사람을 다 비웠어? 어휴.”

한진영은 질렸다는 듯이 몇 차례나 몸서리를 치고는 지난번 술을 마셨던 룸 앞에 도착했다.

그리고 잠시 몸을 털어낸 뒤 조심스럽게 문에 노크했다.

똑똑.

“들어오세요.”

노크가 끝나기가 무섭게 안에서는 대답이 들려왔다.

한진영이 오기만을 기다렸다는 듯한 느낌이 전해져 오는 말소리를 들으며 한진영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익숙한 얼굴의 안혁규와 지난날 만나봤던 김교철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

“어서 와요.”

안혁규가 자리에서 일어나 한진영이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반갑게 한진영을 향해 인사하고는 한진영의 어깨를 잡은 채 김교철에게 한진영을 소개했다.

“어르신. 여기 한 대표가 제가 이야기하던 친구입니다.”

김교철은 자리에 앉은 채로 한진영을 위아래로 살폈다.

눈에서 경계심이 그대로 느껴질 정도로 김교철의 눈빛은 날카롭기만 했다.

한진영은 그런 김교철을 향해 먼저 인사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세이지 자산운용의 한진영이라고 합니다.”

담백한 자기소개였다.

이렇게 유명한 대표님을 뵙게 되어 영광이라느니 꼭 만나 뵙고 싶었다느니 같은 말이 전혀 들어있지 않은 깔끔한 인사였다.

한진영은 인사를 마치고 허리를 펴고 꼿꼿이 섰다.

들어와서 앉으라고 하기 전까지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겠다는 듯이 한진영은 방에 들어왔을 때 그 모습 그대로 서서 자기를 쳐다보는 김교철을 마주 쳐다볼 뿐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한진영을 훑어보던 김교철이 드디어 한진영에게 들어오란 말을 건넸다.

“들어와서 앉게.”

“감사합니다.”

자리에 앉을 수 있게 허락해주셔서 감사하다는 말도 한진영은 잊지 않았다.

이런 한진영의 모습에 안혁규의 눈빛이 반짝였다.

“한 대표가 예의를 차릴 줄 압니다. 요즘 친구들의 경우에는 객과 주인의 경계를 잘 모르는데 말입니다. 주인이 허락하기 전까지는 객의 경우에는 선 채로 앉기를 기다려야 한다는 거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 아닙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어르신?”

“하하. 그렇지요. 나이 먹은 사람들도 모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안 의원님쯤이나 되니 잘 아시는 것이지요.”

“제가 뭐라고 그렇게 말씀하십니까? 그냥 저희 후보님을 모시고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몸에 익어 알게 된 겁니다.”

안혁규의 말에 김교철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후보님이시라면 과거부터 많은 교육을 받아 잘 알고 계셔서 그러실 겁니다.”

“가끔 이야기 듣습니다. 후보님께서 얼마나 몸가짐에 신경을 쓰셨는지 말입니다.”

“고생하셨지요. 참 고생 많이 하셨지요. 후보님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픕니다.”

김교철은 안타깝다는 듯이 고개를 숙이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한진영은 그런 그들의 대화를 들으며 비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겨우 참았다.

자리에 앉는 것 하나 가지고 어디까지 이야기를 이어가려고 하는 것인지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아 참. 내 정신 좀 봐라. 손님을 모시고 내내 딴소리만 했네.”

어두웠던 김교철의 표정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밝아졌다.

김교철은 한진영이 앉아있는 쪽을 돌아보고 말했다.

“한 대표의 이야기는 잘 듣고 있네. 아주 흥미로워. 몇 해 전만 해도 일개 지점의 영업직원이었던 사람이 지금은 조 단위의 자금을 굴리는 사람이 됐으니 말이야.”

김교철의 눈은 한진영에 고정되어 있었다.

눈꼬리와 입꼬리 모두 올라가 웃고 있는 표정을 보였지만, 한진영에게 느껴지는 김교철의 표정은 웃는 느낌이 아니었다.

‘예전에도 그랬지만…… 기분 나빠.’

한진영은 김교철의 눈 깊은 곳에 자리한 심연이 자기를 훑어 내리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그 느낌은 마치 뱀이 온몸을 훑고 지나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한진영은 몸서리가 쳐지는 것을 겨우 참고 김교철의 말에 가볍게 대답했다.

“운이 좋았을 따름입니다.”

“아니야. 우리와 분야가 다르다지만 나도 대충은 안다네. 운만으로 그렇게 될 수 없다는 것을 말이야. 실력이 뒷받침해줘야 운도 따라오는 법이기도 하고…… 대단해. 단시간 만에 두각을 나타내는 게 쉽지만은 않을 텐데 말이야.”

“그뿐이 아니지요. 남을 배려하는 마음도 탁월합니다.”

안혁규가 추임새를 넣었다.

한진영은 그런 안혁규를 향해 눈으로 감사의 뜻을 표했다.

안혁규는 잊지 않고 바로 감사의 뜻을 표하는 한진영의 모습을 더욱 마음에 들어 하는 듯했다.

그는 다시 입을 열어 한진영을 칭찬하는 말을 김교철을 향해서 하기 시작했다.

“어르신. 실버만삭스 아시죠?”

“알지요. 우리와도 몇 번 거래했습니다.”

“실버만삭스가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파트너로 인정한 곳이 바로 한 대표 회사입니다.”

“그래요?”

마치 몰랐다는 듯이 말하고 있지만, 눈은 이미 알고 있었다는 빛을 보이고 있었다.

그저 안혁규의 말에 호응해주기 위해 몰랐다는 듯이 행동한다는 것이 한진영의 눈에 들어왔다.

“그뿐이 아닙니다. 기풍을 비롯해서 LZ라든지 대한정유라든지 많은 기업들과 돈독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특히 선강그룹의 경우에는…… 동우산…… 아시죠?”

“알죠. 그…… 박수…….”

“네. 그 사람이요. 그 사람과의 관계도 돈독하다고 합니다.”

“그래요?”

마치 자기 얘기라도 되는 양 안혁규는 한진영에 대한 소개를 거창하게 김교철 앞에서 펼쳐 보였다.

그리고 이런 소개로 인해 마지막에 돈독한 사이에 안혁규라는 이름도 자연스럽게 들어가 있음을 김교철에게 알려주고 있었다.

김교철은 그런 안혁규의 행동에 반응한다는 뜻을 보여주기라도 하려는 듯이 한진영을 향해 가벼운 질문을 던졌다.

“법률 자문은 어디를 통해 받고 있나? 혹시 내부적으로 법률팀이 꾸려져 있는 건가?”

“아닙니다. 회사를 설립한 지 아직 얼마 되지 않아 법률팀까지 꾸리지는 못했습니다. 법률 자문의 경우에는 그때그때 소개를 받아 진행하고 있습니다.”

“흐음~ 그렇군.”

김교철은 잠시 고개를 끄덕인 뒤 한진영을 말없이 바라봤다.

그리고 꼼꼼히 얼굴을 뜯어보기 시작했다.

눈과 코 그리고 귀와 이마까지 룸 안의 밝은 조명 아래 한진영의 얼굴을 조각조각 뜯어본 것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한진영의 얼굴을 살피던 김교철은 안혁규를 향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한진영을 향해 말했다.

“우리와 하도록 하게.”

“무엇을 말입니까?”

“법률 자문 말일세. 어떤가? 우리가 세이지 자산운용의 법률 자문을 해주도록 하겠네.”

김교철의 말에 안혁규는 잘됐다는 듯이 손뼉을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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