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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증권사 생활-270화 (270/650)

270화 나를 죽인 존재

김교철은 즐거워하는 안혁규를 잠시 바라본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먼저 가보겠습니다.”

“벌써 일어나시려고요?”

안혁규가 김교철을 따라 자리에서 일어나자 한진영도 뒤를 이어 일어났다.

“앉으세요. 앉아. 괜찮으니 말이야.”

안혁규는 김교철의 곁으로 갔다.

김교철은 그런 안혁규를 향해 웃으며 말했다.

“먼저 가봐야지요. 그렇지 않으면 회사 직원들이 불편해합니다.”

한진영은 김교철이 무얼 말하는지 알았다.

김교철이 들어와 있는 것으로 20층 공간을 비워 놓는 것을 이야기한 것이었다.

안혁규도 그런 김교철의 뜻을 알았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그럼 제가 가시는 데까지 배웅하도록 하겠습니다.”

“하하하. 제가 어디 먼 곳을 가는 것도 아니고 바로 아래층으로 가는데 배웅하시겠다고요?”

“그럼요. 버릇없이 이렇게 앉아서 떠나시는 것을 그냥 볼 수는 없지요.”

안혁규는 웃으며 말하고는 한진영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한 대표님께서는 계세요. 어르신을 배웅하는데 두 사람까지 갈 필요는 없을 테니까요. 안 그렇습니까? 어르신?”

“그럼요. 두 사람이나 저를 배웅하는 모습을 다른 사람이 본다면 정말 제가 몸도 못 가누는 늙은이인 줄 알겠습니다. 저도 그런 모습을 보이고 싶지는 않으니…… 한 대표. 만나서 반가웠어. 앞으로 동우와 세이지의 좋은 관계를 기대하겠네.”

한진영은 웃으며 건네는 김교철의 말에 고개 숙여 대답했다.

“앞으로 많은 지도편달 부탁드리겠습니다.”

“하하하. 변호사가 전문투자자에게 무슨 조언을 할 수 있겠나? 그저 좋은 파트너로 일이나 많이 하도록 하세.”

김교철은 기분 좋게 웃고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한진영은 안혁규까지 밖으로 나가자 소파에 늘어지게 앉았다.

알게 모르게 바짝 긴장하느라 기운이 온몸에서 날아간 듯한 느낌마저 들 정도였다.

약 10분여의 시간이 흐른 뒤 안혁규가 다시 방 안으로 들어왔다.

김교철을 건물 밖에까지 배웅하고 온 것이 아니라면 누가 봐도 이야기를 나누고 왔다는 게 느껴질 만한 시간이었다.

안혁규는 안에 들어오자마자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한진영에게 내밀었다.

“한 대 태우실까요?”

한진영은 안혁규의 담배를 거절하지 않고 담배를 빼 들었다.

안혁규는 그런 한진영의 모습에 웃으며 담배에 불까지 붙여줬다.

“어르신이 매우 만족해하십니다. 엘리베이터에 타기 전에 잠깐 대화를 나눴는데, 좋은 청년을 소개해 줘 고맙다고까지 했습니다. 어르신이 누구에게 고맙다는 말을 잘하는 사람이 아닌데…… 하하하. 잘됐습니다. 잘됐어요.”

대화를 나누느라 늦게 왔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는 안혁규였다.

한진영은 그런 안혁규를 향해 감사의 인사를 건네는 것을 잊지 않았다.

“이게 다 안 의원님 덕분입니다. 저는 그저 안 의원님께서 만나자고 해서 그런 줄로만 알았는데…… 이렇게 뵙기 어려운 분과 만나게 해주시려고 그런 것인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아니요. 아닙니다. 제가 소개했다기보다는 어르신이 한 대표를 보고 싶다고 해서 마련된 자리였습니다.”

“저를요? 어르신께서 직접 말입니까?”

“그러니 얼마나 잘된 일입니까? 하하하.”

안혁규는 만족스럽게 큰 웃음을 터트렸다.

김교철에게 사람을 소개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늘과 같은 높이에 자리한 동우 로펌의 위상을 생각했을 때, 김교철의 눈에 드는 사람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개에 성공했을 때 돌아오는 성취 또한 작지 않았다.

게다가 이번에는 그냥 동우에 소개한 것이 아니라 김교철에게 직접 소개를 한 자리였다.

안혁규는 김교철과의 관계가 더욱 돈독해졌다고 생각하자 터져 나오는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

똑똑.

노크를 하고 문을 열고 바텐더가 들어왔다.

김교철이 자리를 떠나며 보이지 않던 다른 사람들이 모두 제자리를 찾아 돌아온 것으로 보였다.

“술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간단하게 주게. 나도 조금 뒤에 어디를 좀 가봐야 해서.”

“알겠습니다.”

안혁규의 지시받은 바텐더가 얼마 뒤 얼음과 술을 채운 언더락 잔을 가지고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한진영과 안혁규 앞에 각각 잔을 내려놓은 뒤 룸을 떠났다.

안혁규는 술잔을 집어 들고 한진영에게 말했다.

“축하의 의미로 한잔 마십시다.”

“네.”

한진영이 대답을 마치고 술잔을 집어 들자 안혁규는 힘차게 한진영의 잔에 자기 잔을 부딪쳤다.

그리고 단숨에 술잔을 들이켰다.

한진영은 그런 안혁규의 모습에 술잔에 입을 잠시 가져다 댄 후 자리에 내려놓았다.

오늘은 지난번처럼 한 번에 술을 마시지 않고 맛만 본 후에 내려놓은 것이었다.

안혁규는 술잔에 술을 남김없이 다 들이켠 후 한진영을 향해 말했다.

“어르신께서 한 대표를 잘 봤습니다. 아마 알게 모르게 동우에서 진행하는 일에 세이지가 많이 참여하게 될 겁니다.”

“진행하는 일이라면 어떤 걸 말씀하시는 거죠?”

“그건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알게 되실 테니 거기까지만 아시면 됩니다.”

안혁규는 한진영의 질문에 웃으며 어깨를 두드렸다.

한진영도 더는 묻지 않았다.

묻지 않아도 어느 정도 한진영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알고 있는 이야기로 단둘이 있는 자리에서 안혁규와 오랫동안 대화를 하고 싶지 않았기에 한진영은 나중에 알게 된다는 말에 가만히 입을 다물기만 했다.

그러나 이런 한진영의 모습에 안혁규는 만족한 듯이 더욱 크게 웃었다.

“하하하. 바로 한 대표의 이런 모습에 어르신께서 더 마음에 들어 하신 겁니다. 꼬치꼬치 캐묻지 않고 적당한 선에서 물러설 줄 아니 말입니다. 앞으로도 이런 자세를 잘 유지하세요. 그렇다면 어르신이 분명 한 대표를 중히 쓰실 테니 말입니다.”

“알겠습니다.”

한진영의 대답에 안혁규는 기쁜 듯이 큰 소리로 웃었다.

***

한진영은 돌아가는 차 안에서 안혁규가 두드린 어깨를 손으로 털어냈다.

조지훈은 그런 한진영의 모습을 룸미러로 바라보며 물었다.

“괜찮으십니까?”

“안 괜찮아.”

“어디가 불편하세요?”

“불편하지.”

한진영은 어깨를 털어내던 손을 멈추고 말했다.

“지난번에 갔던 그 집 괜찮더라. 거기 들렀다 집에 가자.”

“또 속이 안 좋으셔서 그러십니까?”

“속이 좋을 수가 없지. 특히 오늘은 제일 보기 싫은 상판대기를 봤으니 속이 아주 뒤집어지는 느낌이었어.”

조지훈은 한진영이 말하는 게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동우의 대표님께서 뭐라고 하셨습니까?”

“대표’님’은 무슨 대표’님’ 그냥 우리끼리는 대표라고 불러. 아니다. 그 ‘늙은이’로 이야기하자. 그게 좋겠다.”

노골적으로 싫어하는 티를 내는 한진영이었다.

조지훈은 한진영이 이렇게까지 싫어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아무런 이유 없이 그러지는 않을 테고, 그만한 이유가 있을 텐데 대한민국 최대, 최고 로펌의 대표를 이렇게 싫어할 만한 이유가 무엇인지가 궁금했던 조지훈이었다.

그러나 한진영이 말하지 않는 한 물을 수 없기에 조지훈은 다른 이야기를 건네는 것으로 한진영의 관심을 돌렸다.

“올라가서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박경진 비서실장과 잠깐 이야기를 나눴는데 이런 적은 처음이라고 합니다. 지금까지 새로운 사람과 독대를 나눴던 적은 없었다고 말입니다.”

“독대는 무슨 독대? 안혁규도 자리에 있었구먼. 하여튼 동우 간판 아래 있는 놈들은 입만 열면 거짓말이야. 박 실장도 신림동 낭인 출신이라고 하더니 입에 거짓말을 달고 살아.”

조지훈은 관심을 돌리는 것에 성공하지 못했음을 깨닫고 입술을 삐죽였다.

이제는 어떤 말을 꺼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한진영은 그런 조지훈의 얼굴을 보고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알았어. 그만할게.”

한차례 웃어 보인 한진영은 편하게 몸을 자동차 시트에 누이고는 조지훈에게 말했다.

“보기 싫은 늙은이하고 마주하고 있었더니 신경이 날카로워져서 그런 거니까 이해해.”

“아닙니다.”

“박 실장이 너를 잘 봤더라. 너하고 이야기할 때 같이 일해 보자는 말 없었어?”

한진영의 말에 잠시 말을 멈추고 생각하던 조지훈이 룸미러를 다시 쳐다보고 대답했다.

“그 말이 그 말이었나 보군요.”

“무슨 말?”

“조금 더 명확한 일을 해보고 싶은 생각은 없냐는 말을 들었습니다.”

“명확한 일? 질문이 명확하지 않은데 무슨 명확한 일을 해보겠냐고 하는 거야?”

한진영의 말에 조지훈이 살며시 웃으며 대답했다.

“안 그래도 저도 그렇게 말했습니다. 질문부터가 명확하지 않다고요.”

“그랬더니?”

“그랬더니 뭐 다음에 또 이야기하자고 그랬습니다. 그러고는 어제 있었던 야구 이야기를 하면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하여튼 동우 놈들은 음흉해. 로펌이라서 그런지 질문부터 시작해서…… 에이 그만해야겠다.”

이야기하면 이야기할수록 자꾸 안 좋은 이야기만 하는 것 같아 한진영은 그 생각은 이제 그만하기로 했다.

대신 조지훈을 향해서 일 이야기를 건넸다.

“내일부터 공고 하나 내.”

“공고요? 어떤 공고 말씀입니까?”

“동우와 우리 사이에서 연락을 담당할 사람이 필요하니까 자네 밑으로 사람 하나 뽑아봐. 아니다. 이참에 비서실 하나 짜봐. 조 비서 밑으로 사람을 모아서 여러 가지 일을 할 수 있는 부서를 하나 개설하도록 해. 돈 버는 일 말고 다른 여러 가지 일을 할 수 있는 곳이 필요했으니까.”

“동우와 우리 사이의 연락을 담당하는 일이라면…… 그럼 동우와 함께하기로 한 겁니까?”

조지훈은 핸들을 놓칠 뻔할 정도로 놀랐다.

지금까지 한진영의 말들과 행동으로 보았을 때, 한진영이 동우와 함께 일을 할거로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진영은 주춤하는 차를 느꼈으면서도 시트에서 일어날 생각이 없는지 누운 상태 그대로 조지훈에게 말했다.

“핸들 꽉 잡아. 난 결혼도 하기 전에 황천 가고 싶지 않으니까.”

“죄송합니다. 제가 그만 놀라서…… 그런데 정말 동우하고 같이 일을 하시는 겁니까? 듣기로는 동우와 함께 일한 곳이 우리나라에서도 손에 꼽힌다고 하던데…… 그것도 금융 관련해서는 여러 곳에서 제안을 넣었지만 모두 싫다고 말했다는 이야기를 들었거든요.”

“제안은 그쪽에서 했어.”

“네?”

차가 다시 한번 움찔거렸다.

이번만큼은 계속 누워있을 수 없었던 한진영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지훈은 뒷좌석에 앉아있는 한진영이 몸을 일으키는 것을 확인하고 급히 사과했다.

“대표님. 죄송합니다. 제가 잠시 그만 놀라서…… 죄송합니다.”

“알았으니까 앞에 보고 운전이나 제대로 해. 뭘 그렇게 하나하나 놀라?”

한진영은 고개를 돌리려 한 조지훈을 향해 앞쪽이나 바라보라고 손짓한 후 말했다.

“내가 이야기하지 않았어? 동우하고 일하겠다고 말이야. 그랬는데 뭘 동우하고 일하는 거에 그렇게 놀라고 그래?”

“동우가 먼저 제안했다고 그래서 좀…… 놀랐습니다.”

“그럴 수도 있지. 그럼 내가 동우에 제발 한 번만 일해달라고 부탁하기 위해서 이렇게 바쁘게 뛰어다닌 줄 알았어?”

한진영은 농담 같은 말을 던진 후 팔걸이에 손을 올렸다.

“저쪽에서는 우리와 같은 사람이 무조건 필요했어. 그런데 마침 적당한 사람이 나타나니 함께 일하자고 덤비는 거야. 말로는 자기네들이 법률 자문을 맡아준다고 그러지만…… 속내는 돈 되는 일에 함께할 파트너가 필요했던 거지.”

“돈 되는 일이요? 어떤 일 말씀이십니까?”

“내년에 무슨 일이 있어? 우리나라의 가장 큰 일 말이야.”

“내년이라면…… 선거요?”

“그래. 그거.”

한진영은 손톱을 내려다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이번에도 잘해 먹었으니 다음 정권에서도 또 해 먹고 싶었을 거야. 그리고 이번에 해 먹는 동안 부족한 부분이 무엇인지도 알았을 테니 그곳을 채워 넣으려 했을 테고…….”

“부족한 부분이 어느 곳입니까?”

“나를 찾으니 어디겠어?”

“주식시장 말입니까?”

“그렇지.”

한진영은 대답 한번 잘했다는 듯이 팔걸이를 손으로 한번 내리치고는 차창 밖을 바라봤다.

“주식시장에까지 영향력을 넓히고 싶었을 거야. 우리를 발판으로 삼아서…… 왜 안 그러겠어? 주식시장이 자본주의의 꽃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니, 군침이 나오는 것도 이상한 게 아니야. 하지만 실수했어.”

한진영은 비어있는 손아귀를 움켜쥐었다 피었다 거리며 말했다.

“다른 곳도 아니라 내 바닥에 스스로 걸어 들어왔으니 매운맛을 보여줘야지.”

한진영은 기쁜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조지훈이 앉아있는 운전석을 바라보고 말했다.

“조 비서.”

“네?”

“내가 아무래도 운이 좋기는 좋나 봐.”

“어떤 게 말입니까?”

“내가 꼬셔서 데리고 와야 할 사람이 날 찾아 스스로 내 바닥에 들어왔으니 말이야.”

“대표님. 정말 동우와 싸우실 생각이십니까?”

조지훈은 룸미러를 슬쩍 올려다보고 말했다.

“아무리 법률사무소인 동우가 주식시장에 들어와 힘을 쓰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동우는 동우 아닙니까? 그런 동우와 왜 싸우려 하시는 건가 걱정이 돼서 말입니다.”

“그래. 이해해. 동우는 동우라는 그 말도 동의해. 그런데 어쩌겠나.”

한진영은 다시 차창 밖을 바라보며 말했다.

“부모를 죽인 원수와는 한 하늘 아래에서 살지 말라는 말도 있지 않나?”

“설마 동우가 아버님 어머님을…….”

조지훈은 말을 하다 말고 이상한 걸 느꼈다.

“두 분 모두 서산에서 잘 살아 계시지 않습니까?”

조지훈의 반응에 한진영은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내가 언제 동우가 우리 부모님을 죽였다고 그래?”

“동우가 불구대천의 원수라고 말씀하신 것 아니었습니까?”

“이야기 끝까지 들어.”

한진영은 말을 마치고 웃던 얼굴을 굳혔다.

그리고 서늘한 목소리로 조지훈에게 물었다.

“부모를 죽인 원수와 한 하늘 아래 살지 못한다면 나를 죽인 원수와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건가?”

“네?”

“동우가 나를 죽인 원수라면? 어떻게 해야 하지?”

이해하지 못할 한진영의 말에도 조지훈은 한진영을 바라볼 생각을 하지 못했다.

지금 한진영을 봤다가는 운전대를 아예 놓칠지도 모를 정도로 한진영의 말이 날카롭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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