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2화 한진영을 배제하자
조지훈은 그래도 안산문어에 대해 경계하는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만큼 그에 대한 이야기가 전설처럼 계속 이어져 왔기 때문이다.
조지훈은 긴장된 목소리로 한진영에게 말했다.
“대표님. 그래도 다른 사람도 아니라 안산문어 아닙니까? 저도 이야기를 들었을 정도로 유명한 사람인데…… 아무리 시장에 떨어져 있었다고 하더라도 클래스가 있지 않을까요? 성공하여 시장에서 엑시트 한 개인투자자 중에 몇 안 되는 케이스의 주인공인데 말입니다.”
조지훈의 말에 한진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조 비서 말이 맞아. 이 바닥에 발 들인 사람 중 성공한 채로 엑시트 한 사람이 많지가 않지. 그래서 더 유명하기도 하고…… 지금도 3,000억이라는 돈은 엄청난 돈인데 그 시절 3,000억을 들고 쿨하게 시장을 떠났으니 얼마나 전설적이야. 하지만…….”
한진영의 얼굴은 점점 더 짙어졌다.
안산문어라는 존재를 그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었기에 미소가 짙어지는 것을 참을 수 없었던 것이었다.
“그가 왜 왔을까?”
“네?”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곳을 찔린 사람처럼 조지훈은 한진영을 멍하니 바라봤다.
그리고 한진영은 그런 조지훈을 향해 계속 의문을 던졌다.
“엑시트 한 사람이 왜 왔을까? 컨설팅 회사를 인수해서 경영에만 집중하겠다는 사람이 왜? 매매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그가 왜?”
한진영은 말을 할수록 미소가 짙어졌다.
조지훈은 그런 한진영의 모습을 보고 무언가 머리를 스쳐 지나감을 깨달았다.
“혹시 그럼 이유가 있어서 안 의원의 제안을 받아들인 건가요?”
“당연히 이유가 있어서 온 거 아니겠어? 그렇지 않다면 다시는 매매하지 않겠다고 선언을 한 사람이 돌아올 일이 없잖아.”
“매매를 하는 게 아니라 단순히 조언하는 자리에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안 의원이 말입니다.”
“조언? 하하. 꼭 마우스로 내 손가락으로 클릭해야지만 매매가 아니야. 상대를 통해 클릭하게 만드는 것도 매매야.”
한진영이 단호한 모습으로 이야기했다.
조지훈은 그의 모습에서 이유를 아는 것만 같았다.
한진영은 점점 더 편안해져만 가는 모습으로 이야기했다.
“이 시장에서 엑시트는 쉬운 일이 아니야. 차라리 돈을 잃었다면 탈출할 수 있기도 한데, 돈을 번 사람은 이 바닥을 떠나지 못해.”
“돈을 번 사람이라면 더 빠져나가지 못한다고요? 그럼 설마 안산문어가 돌아온 이유가…… 돈…… 때문인가요?”
“그래. 갑자기 돈이 필요하면 제일 먼저 뭐가 떠오르겠어? 내가 돈을 번 곳이 가장 먼저 떠오르지 않겠어? 그에게는 이곳이 바로 ATM기기와 같은 곳이었으니 말이야. 3,000억을 번 곳인데 얼마나 쉬워 보이겠어. 여기서 잠시 매매를 통해 필요한 돈을 벌려고 하지 않을까? 그게 내 손가락을 통해서건 남의 손가락을 통해서건 상관없이 말이야.”
한진영은 놀란 듯이 눈을 크게 뜨고 있는 조지훈을 향해 웃으며 계속 이야기했다.
“늪에 빠트린 줄 알았는데 바닷속에 집어 던진 거였어. 아니. 제 발로 걸어 들어갔다는 표현이 맞을까? 뭐가 됐건 잘 됐어. 내가 움직이지 않아도 되게 생겼으니 말이야.”
한진영은 태블릿을 든 채 가만히 자기를 바라보고 있는 조지훈을 향해 지시했다.
“그냥 우리는 하던 대로 해. 포지션을 계속 공유하면 저들이 알아서 내부에서 싸울 테니 우리는 그걸 지켜만 보자고.”
한진영은 말을 마치고 낮게 웃으며 혼잣말을 내뱉었다.
“돈을 꼭 벌어야 하는 두 사람이 모였으니 재미있는 일이 벌어지겠어. 아쉬워. 이런 광경은 곁에서 지켜봐야 하는데 말이야.”
한진영은 아쉽다고 말하면서도 얼굴에서 미소를 잃지 않았다.
꽃놀이패를 쥔 사람처럼 한진영은 즐거워했다.
***
안혁규는 초조한 모습으로 화면을 바라봤다.
“김 사장님. 이거…… 이거…….”
안혁규는 손가락으로 모니터를 가리키며 안산문어를 바라봤다.
안혁규가 중간막으로 앉힐 사람을 찾을 때 우연히도 안산문어를 만날 수 있었다.
두 사람은 처음 만난 자리에서 의기투합할 수 있었고, 그렇게 안산문어는 안혁규의 파트너로 시장에 다시 진입하게 된 것이었다.
안혁규는 계속 오르는 지수 차트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지금이라도 사야 하는 거 아닙니까?”
“기다리세요.”
“기다리라고요?”
“네. 1,600에서 1,900까지 단숨에 지수가 20% 가까이 올랐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들어갔다가는 물리기에 십상입니다.”
“하지만 그 말은 1,800에서도 하지 않았습니까?”
안산문어는 김혁규의 말에 가만히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얼굴에 가득 불쾌함을 나타내며 고개를 돌렸다.
안혁규는 안산문어의 표정을 보고 급히 그의 마음을 달래주려 했다.
어쨌든 지금 안혁규에게는 안산문어가 꼭 필요한 존재였기 때문이다.
“제가 말실수했네요. 미안합니다. 제가 주식을 잘 몰라서 그렇게 이야기한 겁니다. 김 사장님께서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해주세요.”
안혁규가 사과하자 안산문어는 그제야 표정을 풀고 다시 몸을 돌렸다.
“1,900까지 올라간 건 오버슈팅입니다. 사람은 이런 오버슈팅까지 계산하지 못합니다.”
“그래도 한 대표는 1,800에서도 매수하라고 사인을…….”
안혁규는 안산문어의 눈치를 살피며 한진영이 건넸던 메시지를 확인했다.
그곳에는 분명 1,800 돌파 시 건설주를 매수하라고 적혀있었다.
안산문어는 안혁규가 내려다보는 메시지를 흘겨보며 코웃음을 쳤다.
“객기로 시장에 대응하는 사람의 말을 들을 필요 없습니다. 그냥 의원님은 제 말 따라서 움직이시면 됩니다.”
“김 사장님은 한 대표의 말이 맞는지 틀리는지만 봐주시면 되는데…….”
“이미 상황이 이렇게 돼 버렸는데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의원님. 돈 벌고 싶지 않으십니까?”
“벌고 싶습니다. 아니. 벌어야 합니다.”
“그럼 제 말 들으세요. 저 안산문어입니다. 주식시장을 지배했던 안산문어요.”
“알고 있습니다. 김 사장님의 명성은 모르는 사람이 없으니까요.”
안혁규는 안산문어의 말에 아쉬운 듯이 한진영이 건넨 메시지를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한진영이 건넨 세 번의 매수찬스 때마다 말리던 안산문어로 인해 안혁규는 타이밍을 모두 놓친 상태였다.
안혁규는 아쉬운 마음을 지우지 못했다.
세 번 모두 잡기만 했어도 족히 20% 가까이 수익을 올렸을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손실을 복구할 기회를 놓친 것 같은 기분에 우울해하는 안혁규를 향해 수행비서가 찾아왔다.
“의원님.”
안혁규는 정신을 차리고 수행비서를 돌아봤다.
“왜?”
“이거…… 세이지 자산운용에서 또 온 겁니다.”
안혁규는 세이지 자산운용에서 왔다는 이야기에 비서가 건넨 종이를 받았다.
그곳에는 지난번과 같은 글이 적혀 있었다.
[IT주 즉시 매수]
안혁규는 다시 또 연락이 온 메시지를 안산문어에게 내밀었다.
안산문어는 안혁규가 내민 메시지를 내려다보고 코웃음을 쳤다.
“풋내기라더니 역시 풋내기군요.”
“풋내기요? 그래도 한 대표는 이 바닥에서 유명한…….”
“저보다 유명한가요?”
“뭐 그건 아니지만 그래도…….”
“볼 것도 없습니다. 버리세요.”
안산문어는 메시지가 적힌 종이를 한 손으로 구겨버리더니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
그리고 자신감에 가득 찬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은 고점입니다. 지금이라도 따라붙자는 생각에 들어갔다가는 물려버리는 자리입니다. 여기서 물리면 약도 없을 정도로 꼭대기 중의 꼭대기라는 이야기지요. 지수는 이대로 계속 가지 못합니다. 분명 조정이 올 테고 조정의 위치는 1,700대가 될 겁니다. 그러니 1,700대까지 떨어져 내리는 것을 기다렸다가 그때 잡으면 됩니다. 기다리세요. 이 시장에서는 초조한 사람이 지게 되니까요.”
안산문어의 말에 안혁규가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한진영이 건넨 메시지가 아쉽다는 눈빛을 거두지 못한 채 한동안 쓰레기통을 바라봤다.
***
1,900을 돌파한 지수의 상승세는 조금씩 둔화되어 갔다.
저점에서 원체 가파르게 올라온 만큼 힘에 부친다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지수가 꺾여 내려가는 것은 아니었다.
상승은 계속 이어진 채로 상승 폭만 조금 줄었을 뿐이었다.
이런 지수의 움직임에 안혁규는 가슴이 타들어 가는 느낌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지수의 둔화 속에서도 IT주의 상승은 계속 이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IT주의 상승을 콕 집어 이야기했던 한진영의 말이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다.
“김 사장님. 정말 매수를 안 해도 되는 겁니까?”
안산문어를 대접해주며 그의 앞에서 예의를 차리던 모습은 이제 더는 보이지 않았다.
계속 기다리라는 말에 오르는 시장을 보니 그를 존중하던 마음도 사라졌기 때문이다.
“의원님. 매수하지 않으면 손해를 보지 않는 겁니다. 최악의 상황에 다다라봤자 제로라는 겁니다. 왜 그렇게 안달을 내십니까?”
“나는…….”
안혁규는 안산문어의 질문에 바로 대답하려다가 참고는 주변을 살폈다.
그리고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돈을 벌어야 한단 말입니다. 안 사면 손해가 없지만 마찬가지로 이득도 없는 것 아닙니까? 지금 손해고 나발이고 돈을 버는 게 우선이라 이 말입니다.”
안혁규는 높아져 가는 억양을 있는 힘껏 잡아당기며 계속 이야기했다.
“1,700에서 1,800 그리고 1,900에서까지 기다리며 지수가 오르는 걸 다 지켜봤으니 내 마음이 답답하지 않겠습니까? 이럴 줄 알았으면 한 대표가 시키는 대로 하는 거였는데…….”
가만히 이야기를 듣던 안산문어는 안혁규의 말에 자존심이 상하는 걸 느꼈다.
“그가 그렇게 잘합니까?”
“보셔서 아시지 않습니까? 그가 집어준 자리와 종목. 모두 급등한 상태입니다.”
안혁규의 말에 안산문어는 잠시 모니터로 시선을 돌렸다.
안혁규의 말대로 한진영 측에서 전해져 온 타점들은 기가 막힌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정확했다.
하지만 안산문어는 여전히 한진영을 인정할 마음이 없었다.
안산문어의 눈에는 한진영이 여전히 햇병아리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럼 이렇게 하시죠.”
“어떻게 말입니까?”
“아무래도 지금 우리의 상황이 빠르게 움직이는 시장에 따라가기 어려운 게 사실입니다.”
“그건 그렇지요. 한 대표에게 연락받고 다시 그걸 제가 김 사장님께 확인받는 좀 번거로운 절차를 밟으니까요. 그럼 이걸 바꾸자는 생각이신 겁니까? 직접 한 대표에게서 연락받을 생각은 아니시지요? 저는 무조건 들어가 있어야 합니다. 저를 배제하실 생각이라면 빨리 접어주세요.”
긴장한 듯한 안혁규의 모습에 안산문어가 급히 고개를 저었다.
“당연하지요. 안 의원님을 배제해서야 되겠습니까? 그럴 일은 없습니다.”
“그럼…….”
“배제하려면 다른 사람을 배제해야지요.”
“다른 사람? 저를 빼지는 않는다고 말씀하셨으니 저는 아닐 테고…… 김 사장님이 빠질 생각이라면 이렇게 말씀하지 않으셨을 테니 김 사장님도 아닐 테고…….”
안혁규의 말에 안산문어는 고개를 끄덕이고 살며시 웃었다.
안혁규는 그런 안산문어의 미소를 보고 그가 배제하자는 존재가 누구인지 깨달았다.
“한 대표요? 한 대표를 배제하자는 말씀이십니까?”
“네. 한 대표에게 언제 연락해 올지도 모르는 걸 기다릴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그냥 배제하시죠.”
“그럼 어떻게 하겠다는 생각이신 겁니까?”
“제가 매매하겠습니다.”
“김 사장님이요? 김 사장님께서 직접 하시겠다는 말씀이십니까?”
“네. 그편이 확실하지 않겠습니까? 안 의원님이 직접 보는 앞에서 할 테니 더 안전하게 느껴지실 테고요.”
“직접…… 보는 앞에서요?”
“네. 그렇게 되면 의원님의 의견 반영에도 더욱 좋지 않겠습니까? 직접 의원님의 눈앞에서 의원님의 의견이 적용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으니 말입니다.”
안산문어의 말에 안혁규는 그럴듯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한진영이 거절했던 위임 매매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 메리트가 있는 제안처럼 느껴졌다.
안혁규는 안산문어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
한진영은 안혁규 측에서 전해온 연락을 내려다보고 웃었다.
조지훈은 그런 한진영을 향해 차분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대표님. 어떻게 할까요? 그래도 계속 우리 쪽 포지션을 공개할까요?”
“아니. 이제 됐어. 더 알려줄 필요 없어.”
한진영은 손을 내저었다.
“안산문어, 그 아저씨가 직접 하겠다고 했으니 놔둬. 괜히 알려줬다가는 정신만 산란하게 만들었다고 안 좋은 소리 들을 테니까.”
“알겠습니다.”
조지훈은 한진영의 지시받아 입력을 한 후 한진영을 향해 조용히 물었다.
“그런데 왜 직접 매매하겠다고 나선 걸까요?”
“내가 이야기했잖아 그 아저씨 돈 필요한 사람이라고.”
“돈 필요한 것과 직접 매매하는 게 상관이 있나요?”
“있지.”
한진영은 의자에 몸을 기대 누우며 말했다.
“안혁규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할 수 있겠어? 아니면 투자해달라고 할 수 있겠어? 어떻게든 돈을 뜯어와야 하는데 직접 돈을 만지는 것만큼 좋은 게 어디 있겠어?”
한진영은 깊게 몸을 눕히고 손을 배에 올린 채 천장을 올려다봤다.
그리고 지난 시절 안산문어가 역사 속에 쓰러져 갔던 것을 떠올리며 말했다.
“안 의원의 자금을 직접 매매하며 일정 부분의 수익을 넘겨달라고 할 거야. 그걸 노리고 직접 매매하겠다고 나선 걸 테고. 뭐 그거로 좀 아프게 얻어맞기는 할 거다.”
“매매가 실패할 거라고 예상하시나요?”
한진영은 천장을 바라보던 것을 조지훈 쪽으로 돌렸다.
“실패하지. 내가 그랬잖아. 과거와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고. 그 양반이 뛰었을 때가 동네 운동회였다면 지금은 올림픽이나 마찬가지야. 세계에 내로라하는 사람들이 다 몰려든 판에서 그가 살아남을 수는 없지. 안 의원 발목을 그 양반이 제대로 잡았어. 하하하.”
한진영은 즐거운 듯이 크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