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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증권사 생활-303화 (303/650)

303화 제대로 튀겨 먹겠다

한진영의 예상대로 호기롭게 나섰던 안산문어의 매매는 처음부터 꼬이기 시작했다.

“이런.”

나지막이 혼잣말을 내뱉은 안산문어는 자기 목소리가 크지는 않았나 깜짝 놀라 잠시 주변을 살폈다.

자기를 바라보고 있는 시선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한 안산문어는 다급히 다시 모니터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리고 열심히 무언가를 하는 것이 멀리서 보기에도 한눈에 그가 실수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런 안산문어의 모습을 먼 곳에서 유심히 지켜보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혹시 모르는 상황을 대비하기 위해 안혁규가 심어놓은 사람이 안산문어를 먼 곳에서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는 안산문어의 이상한 모습을 확인하고 안혁규에게 바로 연락을 넣었다.

그렇게 연락을 넣은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안혁규가 사무실로 모습을 드러냈다.

“김 사장님.”

그는 사무실에 들어오자마자 큰 소리로 안산문어를 찾았다.

안산문어는 뜻밖의 사람이 등장한 것에 놀란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나 그의 엉덩이는 의자에서 20cm 이상 떨어지지 않았다.

몸도 굽힌 상태로 손을 열심히 놀리는 것이 마치 무언가를 숨기는 모습만 같았다.

안혁규는 그런 안산문어가 있는 곳으로 급히 걸어왔다.

“어떻습니까?”

“아~ 좋습니다. 잘 되고 있습니다.”

“그래요? 그럼 계좌 좀 한번 보여주실 수 있으십니까?”

“계좌요? 계좌는 왜…… 보자고 하시는지요?”

“궁금하니까요. 어떻게 됐습니까?”

왜 당연한 걸 묻느냐는 표정의 안혁규는 어서 보여달라는 표정을 지었다.

안산문어는 어쩔 수 없다는 모습으로 미적거리며 창을 띄웠다.

“비켜보세요.”

안혁규는 안산문어를 밀치고 화면을 확인했다.

계좌에 담긴 금액 중 10억가량이 벌써 녹아 없어진 상태였다.

“이게 뭡니까?”

“오늘은 장이 좋지 못했습니다.”

“오늘 장이 좋지 못하다니요? 오늘도 지수는 상승했던데 도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이런 강 보합권인 지수 상태에서는 상승하는 종목도 있고 하락하는 종목도 있는 법입니다.”

안혁규는 안산문어가 하는 말이 이해가 가지 않는 듯이 손을 펴 모니터를 가리키고 소리쳤다.

“네. 상승하는 종목이 있고 하락하는 종목이 있다고 칩시다. 그렇다면 그 하락한 종목이 어디 있습니까? 계좌에는 아무것도 없지 않습니까?”

“손절이라는 말을 아십니까? 자칫 위험할 수도 있어서 잘라낸 겁니다.”

“그걸…… 10억 치나 하셨다고요?”

“의원님.”

안산문어는 조금 전과 달리 태연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어쨌든 안혁규가 자기의 말을 들으려는 자세가 되어 있다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안산문어는 자리에 도로 앉아 편안한 모습으로 이야기했다.

“절대적인 금액으로 봤을 때야 10억이 많아 보이지만 지금 우리가 움직이는 돈을 생각해보십시오. 저에게 얼마짜리 계좌를 주셨습니까?”

“100억짜리 3개에…… 50억짜리 10개 그리고 10억짜리 20개. 도합 1,000억을 넘겨주었지요.”

“네. 맞습니다. 그럼 생각해보십시오. 10억은 1,000억의 몇 프로입니까? 1%밖에 안 됩니다. 1%. 지금 우리가 이렇게 대화를 나누는 중에도 1%는 움직입니다.”

안혁규는 안산문어의 말에 설득이 된 듯 보였다.

언뜻 듣기에 안산문어의 말이 그럴듯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안산문어는 안혁규가 자기의 말에 동의하는 모습을 보이자 앉은 채로 다리까지 꼬았다.

“그리고 오신 김에 말씀드리는데 저 혼자서는 힘듭니다.”

“혼자서 힘들다고요?”

안혁규는 이게 무슨 말이냐는 표정으로 안산문어를 바라봤다.

안산문어는 그런 안혁규를 향해 다리를 꼰 채 안혁규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당연한 것 아닙니까? 조금 전에도 안 의원님께서 직접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까? 계좌만 33개입니다. 이걸 제가 혼자 어떻게 합니까? 그렇다고 돈을 모두 합쳐서도 안 된다고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합치면 안 됩니다. 그건…….”

“알고 있습니다. 차명으로 움직이는 거라는 걸요. 합쳐서 자칫 여러 사람의 주목을 받아서도 안 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힘들다는 겁니다. 혼자서 계좌 33개? 제가 한창 수천억씩 자금을 움직일 때도 이렇게 계좌를 쪼개지 않았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안산문어는 잠시 생각했다.

그리고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보통 이런 건 호흡이 맞는 사람과 함께 해야 하는 건데…… 그러려면 우리 직원들이 제일 좋을 테고…….”

“그럼 김 사장님 직원들을 부르도록 하죠?”

안산문어가 듣고 싶었던 말이지만 짐짓 어렵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렇게 되면 우리 회사가 일하지 못하게 될 텐데요?”

“김 사장님 회사는 컨설팅 회사 아닙니까? 제가 컨설팅 비용을 모두 지불하도록 하겠습니다. 석 달. 석 달간 저와 단독으로 일을 하는 것으로 하시지요.”

“아~ 그런 방법이 있었군요.”

“그리고 보수도 상향시켜 드리겠습니다. 수익의 10% 어떻습니까?”

“10%요? 100억을 벌어봤자 10억이라는 이야기인데…….”

다시 한번 안산문어가 곤란한 표정을 짓자 안혁규는 뒤를 생각하지 않은 채 거침없이 이야기했다.

“1,000억은 우선 테스트 계좌였습니다. 아직 4,000억이 더 남아있습니다.”

“4,000억이 더 남아있다고요? 총 5,000억을 가지고 계신단 말씀입니까?”

“정확히 하자면 6,500억입니다. 하지만 그중 1,500억을 이번에…… 쓰게 됐습니다. 그래서 5,000억만 유용할 수 있습니다. 기간은 석 달. 이러면 구미가 당기는 제안 아닙니까?”

“확실히 전의 제안과는 다르군요.”

5,000억이라면 20%만 수익을 올려도 100억의 수수료를 가지고 올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게다가 이 100억에는 아무런 세금도 붙지 않는 순수한 100억이었다.

안산문어 입장에서는 나쁜 것이 없는 것이 아니라 쌍수를 들고 환영할만한 제안이었다.

‘제대로 튀겨 먹자.’

너무 방만하게 운영해서 그런 것인지 최근에 자금난에 빠져 있던 안산문어였다.

그러다 보니 돈이 필요하게 됐고, 그래서 주식시장에 다시 발을 들여놓게 됐다.

자리를 털고 일어나며 다시는 오지 않겠다고 선언한 곳이었다.

그래서 어떻게든 이곳으로 다시 오려 하지 않았는데 돈이 어쩔 수 없이 그를 이곳으로 끌고 오게 했다.

‘한번 해봤으니 어렵지 않아. 게다가 이번에는 자금도 넉넉하고…… 석 달이면 충분해. 할 수 있어.’

안산문어는 5,000억이라는 돈에 희망찬 미래를 떠올렸다.

1억이 안 되는 돈으로 3,000억이라는 자금을 만들었던 안산문어였다.

그에게 지금 5,000억이라는 자금이 쥐어졌으니 무서울 게 아무것도 없었다.

10배나 100배를 만들 것도 아니라 딱 2배에서 3배만 만들어도 충분했다.

그 정도만 만들어도 1,000이 넘는 자금이 자기 주머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안산문어의 얼굴이 조금씩 상기되어 갔다.

***

안혁규 의원이 마련한 사무실이 시끌벅적하게 변했다.

평소의 이곳은 정치 전략과 정계 분석을 하던 곳이었다.

그런 곳이 지금은 여러 대의 컴퓨터가 놓여 매매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그리고 평소의 배 이상의 사람이 모여 뜨거운 열기를 뿜어내는 중이었다.

“다 때려 박아. 목표는 기술주야. 삼선전자를 비롯한 코스닥 종목들까지 깡그리 긁어모아. 담을 수 있을 만큼 가득 담아.”

안산문어는 직원들을 향해 큰 소리로 지시를 내렸다.

곁에서 그런 안산문어의 지시를 듣던 안혁규는 의문을 품은 얼굴로 안산문어에게 질문했다.

“분명 지난번에는 조정이 온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1,900인데도 불구하고 매수하지 않은 것이고요. 그런데 지금은 2,000인데…… 지금 매수해도 괜찮은 겁니까?”

“그때와 지금은 다릅니다. 달리는 말에 올라타라는 말 들어보셨습니까?”

안혁규는 안산문어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안산문어는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비웃음에 가까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모르실 만도 하죠. 주식시장에 있는 격언이니까요. 달리는 말에 올라타라는 말은 가는 놈이 더 많이 간다는 뜻입니다.”

안산문어는 계속하여 기술주가 담기는 계좌를 슬쩍 바라본 후 이야기했다.

“지금까지 시장을 선도해왔던 기술주가 앞으로도 더 많이 가게 될 겁니다. 그리고 2,000이 뚫린 지금 조정을 염두에 둬야 할 타이밍이 아닙니다.”

“오히려 2,000이 뚫렸는데 조정을 염두에 둬야 하지 않는다고요?”

“네. 혹시 오버슈팅이라는 말 들어보셨습니까?”

안혁규는 이번에도 고개를 저었다.

안산문어는 다시 한번 비웃음에 가까운 표정을 지은 채 이야기했다.

“관성과 같은 겁니다. 저항으로 여겼던 부분이 뚫리면 순간 그 방향으로 치고 올라가는 힘이 폭발하거든요. 이번도 마찬가지입니다. 2,000이 뚫렸으니 위로 슈팅이 나올 겁니다. 우리는 그걸 노리고 들어가는 겁니다.”

안산문어는 더 설명하기에도 귀찮다는 듯이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더 설명을 해도 이해하기가 어려우실 겁니다. 이건 선수들의 영역이니까요. 안 의원님은 그냥 절 믿고 지켜만 보세요. 더 알려고 하셔 봤자 머리만 아픕니다.”

안산문어는 더 알 필요 없다는 말을 안혁규에게 던지고는 어깨를 한번 두드렸다.

그리고 앞으로 나서며 직원들을 독려하여 주식 매수에 박차를 가했다.

안혁규는 안산문어가 두드린 자리의 어깨를 손으로 털어냈다.

그리고 곁에서 대기하고 있던 비서를 불렀다.

“세이지의 한 대표에게 연락을 넣어봐. 어떻게 해야 하냐고 말이야.”

안혁규는 인사를 하고 자리를 떠나는 비서를 뒤로하고 불안한 눈으로 안산문어를 바라봤다.

비서가 떠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비서가 다시 안혁규 의원이 있는 곳으로 찾아왔다.

“의원님.”

비서는 나지막이 안혁규를 부른 뒤 안혁규를 향해 그만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세이지에서는 어떤 말도 할 수 없다고 합니다.”

“뭐? 그게 무슨 말이야?”

안혁규는 뜻밖의 대답에 고개를 비서에게로 돌렸다.

비서는 마치 자기가 잘못한 사람처럼 고개를 숙이고 대답했다.

“오랫동안 존경해왔던 김 사장님의 선택에 맞다 틀리다 이야기하기가 어렵다는 말을 한 대표가 대답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함께 시장에서 활동하는 입장에서도 그런 말을 쉽사리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라고 했고요.”

“그게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야? 그런 말을 할 수 없다니? 내가 물어봤다는 이야기 했어?”

안혁규가 화를 내자 더욱 고개를 숙인 비서가 힘겹게 대답했다.

“네. 저도 이상해서 몇 번이나 물었습니다. 그런데도 돌아온 대답은 남의 포지션에 왈가왈부하는 것은 동업자 정신에 위배된다는 말만 전해왔습니다.”

“동업자 정신은 개뿔…….”

안혁규는 이렇게까지 이야기하는 세이지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한진영의 말대로 함께 활동하는 같은 업계의 사람으로서 상대방의 포지션이 어떻다고 평가하는 것은 후배가 해야 할 행동이 아니라는 것에도 동의했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자기 생각에는 안산문어의 선택이 틀린 것만 같았다.

그래서 지금의 상황을 확인받고 싶어 세이지에 연락한 것이었다.

그런데 돌아온 대답이 너무나 형식적인 것에 안혁규는 크게 실망하고 말았다.

“아닌데…… 아닌 것 같은데…….”

안혁규는 불안한 마음으로 2,000을 뚫은 지금 물량을 가득 담고 있는 안산문어를 바라봤다.

***

안혁규의 불안이 그저 기우에 그쳤던 것인지 2,000을 넘겼던 지수는 2,100을 향해 달려 나갔다.

차곡차곡 쌓여있던 물량들도 모두 소화해나가며 전진하는 것이 안산문어의 말대로 이루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 전해지는 모습이었다.

물론 과거 1,800을 돌파할 때나 1,900을 돌파해낼 때와 지금은 상승 각도가 다르기는 했다.

1,800과 1,900을 돌파할 때는 거칠 것이 없이 치고 올라가는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완만한 속도로 지그시 오르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대신에 이렇게 상승 속도가 떨어져 버린 덕분에 상황을 분석하기에는 더욱 편해졌다.

안혁규와 같은 일반인의 눈에도 지수의 움직임이 보일 정도였기 때문이다.

“보십시오. 2,070까지 올랐습니다. 어떻습니까?”

안산문어는 안혁규를 향해 자기의 판단이 맞은 것에 즐거워하며 너스레를 떨었다.

“2,000을 돌파했을 때 손을 놓고 있었다면 이런 상승을 만끽하지 못했을 겁니다. 이게 다 저의 빠른 판단 덕분입니다.”

“5,000억을 모두 투입한 건가요?”

“남아있는 잔금이 약 200억 정도이니 대략 거의 다 자금을 소진했다고 보는 편이 맞겠지요?”

“잔금 200억…….”

안혁규는 여전히 불안한 표정을 지우지 못한 채 지수의 움직임을 확인하고 말했다.

“만약 여기서 떨어지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떨어진다고요? 그럴 일이 없습니다.”

“만약에 말입니다. 만약에…….”

“그럼 뭐…… 포지션을 변경해야겠지요?”

“포지션을 어떻게 변경합니까? 공매도는 할 수 없지 않습니까?”

안혁규의 말에 안산문어는 잠시 팔짱을 끼고 턱을 괸 채로 대답했다.

“할 수는 있지요. 대차거래를 신청해서 진행하면 되기는 하는데…… 아무래도 의원님이 주신 계좌가 개인 계좌기에 진행 부분에서 애로사항이 꽃필지도 모릅니다. 그런 면에서 저는 그것보다는 차라리 선물 매도 포지션을 잡는 것이 좋을 것처럼 보입니다.”

“선물 매도요? 그건…… 위험하지 않습니까?”

안혁규는 걱정되는 표정으로 안산문어를 바라봤다.

“제가 무엇으로 돈을 벌었는지 잊으셨습니까? 선물이 위험하기는 하지만 저에게는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안혁규는 안산문어의 말에 그제야 안심하는 표정을 지었다.

안산문어의 말대로 그가 지금의 명성을 얻는 결정적인 카드가 있음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안산문어가 잘하기로서니 선물까지는 손을 대지 않기를 바랐다.

선물은 무지한 안혁규조차 위험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은 시장이었다.

그런 곳에 발을 들인다는 것은 그만큼 상황이 악화하였다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안혁규는 그저 조용히 이대로 계속 올라가 안산문어가 말하는 2,200까지 시장이 올려주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러나 그런 안혁규의 기대는 2,100을 코앞에 둔 시점에서 산산이 조각나고 말았다.

지수가 2,090에서 하루 만에 3%가 넘는 하락을 보이며 고점에 도착했다는 인식을 주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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