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1화 돈이 있다면 해결할 수 있다
조지훈이 회의실 앞에 서서 문을 열었다.
나창운과 타일러 버드는 조지훈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두 사람이 안으로 들어오자 한진영이 앉아있던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먼저 나창운에게 다가가 인사했다.
“잘 다녀오셨습니까?”
“네. 다녀왔습니다.”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보게 되어 다행입니다. 그럼 이쪽이…….”
나창운과 손을 맞잡고 인사한 한진영은 노란 머리의 외국인을 바라봤다.
나창운은 한진영에게 타일러 버드를 소개했다.
“사장님 제가 이야기한 타일러 버드 사장님이십니다.”
한진영은 이번에는 타일러 버드에게 손을 내밀어 인사했다.
“어서 오십시오. 먼 길 오느라 고생하셨습니다.”
“따뜻하게 맞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제가 미국에 가지 못해 오히려 죄송합니다. 제가 움직이기에는 시간이 맞지 않아서요.”
“괜찮습니다. 저도 대한민국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이참에 일을 마치고 여행도 한번 해볼 생각입니다.”
“잘 됐습니다. 그럼 한국 여행은 저희가 책임지도록 하겠습니다.”
한진영은 말을 마치고 뒤에 서 있는 조지훈에게 바로 준비하라고 지시를 내렸다.
그리고 타일러 버드에게 자리를 안내했다.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면 조 비서가 투어 가이드를 작성하여 가지고 올 겁니다. 내일부터는 저희가 준비한 대로 여행하시면 됩니다. 그럼 우리는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실까요?”
한진영이 앉을 것을 권하자 타일러 버드는 감사하다는 인사를 건넨 후 자리에 앉았다.
그런 타일러 버드 곁에 나창운이 앉고 타일러 버드 맞은편에 한진영이 앉으며 투자에 관한 이야기가 시작될 준비가 끝이 났다.
타일러 버드는 좋은 분위기에 이번에는 기대할 만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네가 무엇을 하는 곳인지 분명 나창운을 통해 이야기를 먼저 들었을 테니 자기를 초대하고 이렇게 반기는 것에 반쯤은 세이지가 투자할 마음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냐는 생각이 든 것이었다.
하지만 타일러 버드는 안심하지 않았다.
비단 이번만 이렇게 좋은 분위기에서 이야기가 시작된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몇 차례나 이와 같은 분위기가 연출 됐었고, 최후에는 빈손으로 집에 돌아가며 아쉬움을 달랬었던 기억을 떠올렸다.
한진영은 비장함까지 묻어 나오는 타일러 버드를 바라보고 웃으며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오시기 전에 대충 회사에 대한 보고서를 봤습니다. 하지만 직접 이야기를 듣고 싶군요. 저에게 회사 소개 좀 해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네. 그럼.”
타일러 버드는 대답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가지고 온 노트북을 화면에 연결했다.
그리고 미리 준비한 회사소개서를 화면에 띄운 채 한진영을 향해 회사 소개를 시작했다.
“저희 코인 그라운드는 암호화폐 거래를 중개하는 거래소입니다. 현재 2만 명의 고객을 보유하고 있는 코인 그라운드는 암호화폐 4종을 중심으로 앞으로 신규 암호화폐를 유치하여 거래를 중개할 계획입니다.”
타일러 버드는 말을 마치고 한진영의 눈치를 살폈다.
보통 여기쯤 말하면 대부분 투자자가 짓는 공통된 표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황당함.
암호화폐가 무엇이고 그걸 거래한다는 이야기가 무엇인지 대부분 사람은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마치 열 살 아이의 발표를 듣는 듯이 황당하다는 표정을 짓는 투자자들은 이다음부터는 타일러 버드가 하는 말을 귓등으로 흘려듣고는 했다.
그러나 한진영은 달랐다.
그는 나창운과 타일러 버드가 비행기에 타기 전 보낸 회사소개서를 진지한 태도로 바라보고 있었다.
“계속하세요.”
한진영은 회사소개서를 내려다보며 타일러 버드에게 계속 진행할 것을 말했고 타일러 버드는 그런 한진영을 향해 계속 이야기했다.
“우선 회사 소개를 잠시 멈추고 암호화폐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암호화폐(Cryptocurrency)는 암호화라는 의미를 가진 ‘crypto’와 화폐라는 의미를 가진 currency의 합성어로…….”
“암호화폐에 대한 이야기는 됐습니다.”
“네? 암호화폐라는 것을 먼저 설명을 드려야 저희 사업을 이해하실 수 있으십니다.”
“저도 대충은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서두는 빼고 바로 본론부터 말씀하시지요.”
“암호화폐를 알고 계십니까?”
반갑다는 표정의 타일러 버드였다.
어디를 가든지 간에 암호화폐가 무엇인지부터 이야기해야만 했다.
그리고 그게 어떻게 쓰여지는지, 왜 거래가 되는지 이야기할 것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래서 어떤 때는 회사에 대한 이야기보다 암호화폐를 설명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는 했던 게 지금까지 타일러 버드가 걸어왔던 길이었다.
그러나 세이지의 한진영은 암호화폐를 안다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타일러 버드는 지금 자리가 생각보다 희망적일 수 있다는 생각하며 이야기를 계속 이어갔다.
“우선 저희가 확보한 고객 수는 10만 명입니다. 10만 명의 거래 고객을 확보한 뒤 이를 바탕으로 100만, 1,000만 고객을 유치하여…….”
“잠시만요.”
나창운은 흥분한 것만 같은 타일러 버드의 말을 잠시 멈춰 세웠다.
나창운이 경험한 한진영은 이런 허황한 이야기를 듣는 것보다 현실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이 맞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창운이 자리에서 일어나 타일러 버드에게 잘했다는 뜻을 전한 후 타일러 버드 대신 화면 앞에 섰다.
“여기서부터는 제가 하도록 하겠습니다.”
한진영은 코인 그라운드라는 회사를 소개하는 데 나창운이 나선 것을 나무라지 않았다.
오히려 이해하기 쉽게 설명할 수 있다면 그게 코인 그라운드의 사람이 아니어도 괜찮다는 모습으로 이야기를 시작하라고 손짓했다.
나창운은 그런 한진영의 손짓을 보며 타일러 버드에게 이야기를 건네받아 한진영 앞에 설명했다.
“현재 코인 그라운드의 한 달 거래액은 5,000만 달러를 살짝 상회하는 수준입니다. 거래수수료는 0.4% 수준이지만 여러 가지 이벤트를 통해 실제 거래되는 수수료는 이보다 낮은 것은 사실입니다. 지난 분기 매출은 50만 달러이며 약 3만 달러의 적자 상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올해 총매출은 300만 달러를 목표로 하고 있으며 현재 분위기로는…….”
나창운은 슬쩍 타일러 버드를 바라봤다.
타일러 버드는 자기 회사의 재정 상태를 다른 사람을 통해 들으며 부끄러운 듯이 고개를 숙였다.
나창운은 다시 고개를 돌려 한진영을 향해 이야기했다.
“현재 상태로는 작년 말 잡았던 매출 목표를 달성하지 못할 것으로 보입니다. 올해 4분기쯤에는 1억 달러의 거래액을 기대했지만, 기대를 채우지 못한 것이 실패를 예상한 첫 번째 이유입니다. 두 번째는 가입자 숫자가 충분히 늘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15만에서 20만의 가입자 유치를 목표로 했지만, 가입자 유입은 현재 지지부진한 상태입니다. 마지막으로…… 아직 시장에는 암호화폐가 무엇인지 인식이 부족한 상태로 보입니다. 무엇에 쓰이고 어떻게 사용되는지 일반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한 상태라 섣불리 거래에 참여하지 못하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나창운은 타일러 버드를 앞에 놓은 채로 신랄하게 코인 그라운드의 단점을 나열했다.
타일러 버드는 미리 나창운에게 이와 같은 이야기를 할 거라는 언질을 들었음에도 막상 이야기 듣자 거북한 느낌이 들기까지 했다.
그래도 타일러 버드는 꾹 참고 자리에 앉아 있었다.
나창운이 미리 이야기해준 것도 있었지만 여기를 벗어난다면 회사 문을 닫아야 할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화가 난다는 본능보다 어떻게든 회사를 살려야 한다는 이성이 타일러 버드의 몸을 지배하고 있었다.
나창운은 잘 참고 있는 타일러 버드를 보고 만족한 표정을 지으며 한진영을 돌아봤다.
타일러 버드 쪽이야 미리 이야기했던 만큼 걱정이 덜했다.
오히려 걱정된다면 한진영 쪽이었다.
이렇게 안 좋은 이야기부터 꺼낸 것이 승부수나 마찬가지였다.
암호화폐라는 생소한 분야에 투자를 끌어내기 위해서 선택한 나창운의 계획이었다.
나창운은 한진영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걱정하는 표정으로 바라봤다.
“안 좋은 이야기는 이거로 충분히 들었고…… 좋은 이야기 좀 들어봅시다.”
나창운은 한진영의 모습에 적잖이 당황했다.
생각보다 더 태연한 것이 코인 그라운드의 상황을 마치 알고 있었다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창운은 당황한 마음을 급히 가라앉히고 한진영 앞에 코인 그라운드를 투자해야 하는 이유를 늘어놨다.
“이렇게 안 좋은 상황에서도 코인 그라운드에 투자해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우선 새로운 시장에 선점하여 들어갈 수 있다는 장점이 가장 큽니다. 암호화폐는 주식이나 채권과 같이 통합 거래소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개별적으로 거래소가 따로 존재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따로 존재하는 거래소에 세계 모든 사람이 접속하여 거래를 할 수가 있다는 장점이 존재합니다.”
나창운이 신난 얼굴로 장점들을 계속 이야기했다.
조금 전까지 단점을 이야기하며 눈치를 살피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나창운은 열띤 목소리로 암호화폐 시장에 진출해야 하는 이유를 계속 이야기했다.
“탈중앙화라는 것이 시대의 화두가 될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거래소를 장악하고 있다면…… 그리고 그 거래소가 세계 최고의 거래소라면…… 우리는 주식시장의 S&P500과 나스닥을 장악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인 게 됩니다. 대표님 이건 무조건 투자해야 하는 사업입니다.”
살짝 콧등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 나창운은 손으로 땀을 닦아내고 한진영의 표정을 살폈다.
그때까지도 가만히 회사소개서를 바라보던 한진영은 나창운을 불러 앉혔다.
“잘 들었습니다. 우선은 땀 좀 닦으시고 자리에 앉으시지요. 저는 회사 잠시 소개서 좀 살펴보겠습니다.”
나창운은 한진영의 말에 조심스럽게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그리고 조용히 회사소개서를 읽고 있는 한진영을 기다렸다.
그렇게 한참 동안 회사소개서를 샅샅이 살핀 한진영은 보고 있던 소개서를 덮은 채로 타일러 버드를 향해 물었다.
“시장 점유율은 어떻게 됩니까?”
“어…….”
“회사소개서에 전체 거래에서 코인 그라운드가 차지하는 비중이 어느 정도나 되는지 잘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게 암호화폐 특성상 거래구조가 알기 어렵게 되어…….”
떠듬거리는 타일러 버드의 모습에 한진영이 인상을 찌푸렸다.
“뭐 파악이 안 되어 있다고 봐야겠군요. 좋습니다. 그럼 휴대폰을 통해 거래할 때와 컴퓨터를 통해 거래할 때 보안은 어떻습니까? 각각 어떤 조치를 취하고 있습니까?”
“보안이요?”
“해커를 비롯하여 암호화폐를 탈취하려고 들어오는 사람과 단체를 어떤 방법으로 막고 있는지 묻는 겁니다.”
“암호화폐는 해킹이 불가능합니다.”
“암호화폐야 그렇겠지요. 하지만 거래소는 가능하지 않습니까? 거래소 자체를 해킹해서 암호화폐를 탈취하지 말란 법이 없지 않습니까?”
“그게…….”
“설마 거래소에 암호화폐를 보유하고 있지 않은 것은 아니겠지요? 그래서 뺏어갈 것도 없으니 걱정도 없다 이건가요?”
“아닙니다. 보유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보유하고 있지요.”
타일러 버드는 생각보다 날카롭게 찔러 들어오는 한진영의 모습에 당황했다.
지금까지 대부분 투자자들은 이런 부류의 질문을 하지 않았다.
그저 자기들이 투자했을 때 원금 회수가 언제 되는지에 관심이 있을 뿐이었다.
시장 점유율을 비롯하여 보안까지 관심이 있는 투자자는 한진영이 처음이었다.
타일러 버드가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자 한진영이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보안에 대해서 별 대책이 없나 보군요.”
“아닙니다. 굉장히 신경 쓰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지만 자금이 부족하다?”
타일러 버드는 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한정된 자원이기에 우선순위를 놓고 일을 진행해야 했습니다. 우리가 먼저 생각한 것은 처리 속도입니다. 그리고 다음이 낮은 수수료와 안정된 서버입니다. 이런 것들이 마케팅적으로 더 도움이 될 거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타일러 버드는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타일러 버드라고 보안을 신경 쓰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심심하면 터지는 거래소 보안 문제는 암호화폐 시장에 진입하려는 사람들의 발목을 잡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몇 년 전 거래소에서 대량으로 암호화폐가 탈취된 사건은 암호화폐 시장을 나락으로 보낼 뻔했었다.
그리고 그 사건을 지켜보던 타일러 버드는 무슨 일이 있어도 거래소에서 물리적으로 암호화폐가 탈취되는 일만큼은 막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생각 모두 돈이 걸림돌이 됐다.
돈만 있으면 해결되는 간단한 문제지만 반대로 돈이 있어야만 해결되기에 더 어려운 문제였던 것이었다.
타일러 버드는 이런 문제를 꼬집어 짚어내는 한진영을 바라보고 그가 단순한 투자자가 아님을 알게 됐다.
‘코인 그라운드.’
한진영은 회사소개서를 손으로 두드리며 속으로 크게 웃었다.
나창운이 고심 끝에 첫 투자회사를 선택했다는 말에 한진영은 그곳이 어디일지 매우 궁금해했다.
그리고 첫 회사인 만큼 직접 찾아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어떠냐는 제안에 흔쾌히 허락했다.
그렇게 찾아온 회사가 코인 그라운드였다.
한진영은 당황한 타일러 버드와 생각보다 어렵게 흘러갈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하는 나창운을 번갈아 바라봤다.
‘내 앞에 코인 그라운드 사장이 앉아있다 이 말이지?’
한진영은 코인 그라운드를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암호화폐 거래소로 세계 시장 1, 2위를 번갈아 차지하던 곳으로 나스닥에 상장하여 한때 우리나라 돈으로 150조가 넘는 덩치를 자랑하던 곳이었다.
한진영은 나창운의 탁월한 선택에 시작부터 흡족한 마음이었다.
지금은 경영난 속에 투자자를 찾으러 발품을 팔고 있는 코인 그라운드를 정확하게 찾아내어 데리고 온 것에 한진영은 앞으로 모든 투자가 망하더라도 괜찮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한진영은 곤란한 표정을 짓고 있는 타일러 버드에게 말했다.
“그렇다면 돈이 있다면…… 모든 게 해결이 됩니까?”
“돈만 있다면 다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입니다.”
“얼마나 있으면 가능합니까?”
한진영의 말에 타일러 버드가 슬쩍 나창운을 돌아봤다.
한진영은 그런 타일러 버드에게 먼저 제안했다.
“2,000만 달러. 1차 투자로 2,000만 달러 어떻습니까?”
“2,000만 달러…… 1차요?”
타일러 버드는 놀란 표정으로 한진영을 바라봤다.
500만 달러를 예상하고 온 곳에서 2,000만 달러 그것도 1차라는 제안을 받은 타일러 버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