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증권사 생활-454화 (454/650)

454화 늪에 빠진 자들의 마지막 발악

이성우는 이서율을 들어 얼굴을 마주 보게 만들고 몸을 흔들었다.

그리고 자기가 지을 수 있는 최대한 무서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런 말 쓰면 못써.”

“꺄르르르.”

이서율은 이성우가 자기를 혼낸다고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자기와 장난친다고 생각한 것인지 발까지 동동거리며 즐거워했다.

한진영은 두 부녀의 모습을 보고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너는 서율이가 네 말을 알아들을 거로 생각해서 혼내는 거냐?”

“알아듣고 말고가 중요한 게 아니라 이런 상황에서는 혼날 수 있다는 걸 알려주는 거야.”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거 같은데?”

여전히 이서율은 아빠 손에 들려졌다는 사실이 즐거운 건지 공중에 뜬 채로 발을 앞뒤로 흔들었다.

이성우는 그런 이서율의 모습을 보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래. 네가 무슨 잘못이겠냐? 내가 잘못이지. 그래그래.”

이성우는 재미있어하는 이서율을 품에 안고 다시 화면을 바라봤다.

화면 속의 최석영은 여전히 곤란한 표정을 지우지 않고 있었다.

“저거 보여주려고 나가라고 한 거야?”

“뭐…… 비슷하지.”

한진영은 땅콩을 입에 넣고는 이서율에게는 부드러운 아기용 카스텔라 빵을 쥐여줬다.

그리고 이서율이 빵을 주물럭거린 뒤 천천히 빨아 먹는 모습을 바라보며 말했다.

“정확히는 사람들에게 매수하라는 사인을 주고 싶어서 최 상무님에게 방송에 나가라고 한 거야.”

“매수 사인?”

“그래. 그래야. 우리가 나중에 일하고 나서도 혼자 먹기 위해 정보를 숨겼다는 의심을 받지 않을 테니까.”

“아~.”

이성우는 이해한다는 표정을 짓고는 이서율 손에 쥐어진 카스텔라를 떼어 입에 넣어줬다.

그리고 화면 속의 최석영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우리 세이지증권은 모든 계좌를 열어 ‘매수’에 들어갔습니다. 시장은 충분히 저점에 도달한 상태이고 지금은 과매도 지점을 지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과매도라고 말하기에는 확인하고 넘어가야 하는 문제가 있지 않습니까? 예를 들면 일본의 무역 제재라든지…….

진행자는 말을 하고 최석영의 눈치를 살폈다.

무역 제재는 계속되고 있으며 일본과의 관계는 점점 더 악화하여 가는 중이었다.

이제는 반도체뿐만 아니라 다른 산업으로까지 무역 제재가 넓어지는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였다.

미국을 비롯한 유럽 및 제3 세력의 중재도 보이지 않았다.

마치 모두 일본 편을 들겠다는 듯이 지금의 상황을 모르는 척 지켜보고만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매수는 섶을 지고 불길에 뛰어드는 게 아니냐는 생각이 든 진행자였다.

‘혹은 무언가 믿고 있는 게 있던가?’

진행자를 비롯한 화면을 바라보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이 동시에 같은 생각을 하게 됐다.

진행자는 다시 한번 마른침을 삼키고 최석영에게 물었다.

-혹시 지금의 상황을 바꿀만한 무언가가 있는 건가요?

-노코멘트하겠습니다.

최석영의 말에 진행자는 매우 놀랐다.

-노코멘트라면 무언가가 있다는 말씀이시군요?

-글쎄요. 그것도 노코멘트하겠습니다.

-그렇게 말씀하시니 더욱더 확신이 듭니다.

진행자의 말에 최석영은 가만히 웃기만 했다.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있지만 진행자를 비롯하여 화면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에게 오히려 이런 모습이 확신을 전해줬다.

-다 말씀하시는 게 어렵다면 대략적인 이야기라도 해주실 수는 없겠습니까? 지금 많은 투자자 여러분들이 고생하고 계시니 자그마한 선물을 주신다고 생각하시고 이야기를 풀어주십시오.

-죄송합니다. 제가 그런 것을 말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못해 감히 이야기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대신 이 말씀은 드릴 수 있습니다.

최석영은 카메라를 똑바로 바라보고 이야기했다.

-매수하십시오. 지금입니다.

최석영은 말을 하고 가만히 카메라를 노려봤다.

이성우는 최석영의 모습을 바라보다 입을 벌렸다.

그리고 이서율을 안은 채로 한진영을 돌아봤다.

“저렇게 이야기해도 되냐?”

“왜 안 돼?”

한진영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화면을 바라봤다.

자기가 생각했던 것 보다 최석영의 모습이 더욱 맛깔나게 화면을 통해 나왔기 때문이다.

“왜 안 되냐고? 왜 안 되기는…… 너무…… 노골적이잖아.”

“그러라고 한 말이야.”

한진영은 소파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천천히 TV 옆에 자리한 모니터링 화면 옆으로 다가가며 말했다.

“그리고 저들을 자극하기 위해서 한 말이기도 하고…….”

한진영은 화면 속의 코스피 지수를 손바닥으로 두드렸다.

코스피지수는 1,800을 지키고 있는 1,803을 가리키고 있었다.

일주일 전 하락 파동 속에서 1,800을 깨트리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삼선전자의 주가는 세이지의 매수 평균단가인 180만 원을 잠시 하회하기도 했으며 하이식스의 경우 3만 5,000원을 무너뜨리고 선강이 인수하기 전 주가로 회귀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었다.

그러나 세이지의 강력한 매수세 속에 몇몇 기관들이 힘을 보태며 지수를 다시 1,800 위로 끌어 올려놓은 상태였다.

한진영이 말한 그들이 답답해할 거라는 말이 차트를 통해 그대로 보이는 모습이었다.

이성우는 한진영이 손바닥으로 두드리는 차트를 바라본 채로 물었다.

“저들이 1,800에 붙잡혀 있는 지금 지수를 만족해하지 않고 있다는 뜻이야?”

“당연하지. 그러니 청산 모습이 나오지 않고 있지.”

세이지증권의 전략실에서 구축한 모니터링 시스템이 추적한 내용에 따르면 브릿지랜드와 홀리스는 청산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일본계 자금들이 쳐놓은 공매도 포지션들도 전혀 청산이 되고 있지 않았다.

한진영은 그 부분을 이야기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차라리 손해를 보고 있거나 아니면 애매한 자리였다면 그냥 손을 털고 나왔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지금 자리는 골대가 눈에 보이는 시점이거든. 우리가 예상하기로는 여기.”

한진영은 차트상에서 1,700대 중반 자리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여기부터가 아마 저들이 만족해할 만한 자리라고 판단하고 있어.”

“정말 얼마 안 남았네.”

“그래. 하루 이틀이면 갈 수 있는 자리지. 특히 지금처럼 변동성이 커져서 큰 움직임이 나오는 시점에는 한두 시간만 밀어도 갈 수 있는 자리기는 해. 그런데 여기서 만족하고 손을 턴다? 그럴 리가 없어. 무조건 저기를 찍고 만족스러운 상태로 나가려고 할 거야.”

한진영은 여전히 손바닥으로 1,700대 중반을 지그시 눌렀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자극했으니 저들은 더욱 이를 악물고 시장을 찍어 누르려 할 거야. 하루 이틀 콱 찍어 눌러 만족스러운 가격대에서 물량을 정리하고 손 털고 배 두드리면서 우리나라를 떠나려 할 거야.”

한진영은 누르고 있던 화면에 손을 뗐다.

그리고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말했다.

“하지만 그걸 그냥 놔둘 수는 없지. 팔이 됐건 다리가 됐건 그것도 아니라면 머리라도 놓고 나가야지. 어딜 그냥 빠져나가려고 해.”

한진영의 미소는 점점 짙어져만 갔다.

이성우는 그런 한진영의 미소에 소름이 돋아나는 것을 느꼈다.

“두 번 다시 장난치지 못하게 만들 생각이야. 한국을 생각하기만 해도 몸서리치고 다시는 쓸데없는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말이야.”

한진영은 말을 마치고 이성우를 돌아봤다.

“물건이 언제 들어온다고?”

“다음 주 화요일.”

“시간상으로 딱 맞네. 좋아. 그럼 월요일 발표를 하면 되겠어. 그때까지 물 좀 제대로 먹이고…….”

한진영의 섬뜩한 미소를 짓자 이성우의 품에 안겨 있던 이서율이 한진영을 향해 자그마한 손가락을 들어 올린 채 어물거렸다.

아직 말을 하지 못하는 이서율이기에 외계어와 같은 말이 입에서 튀어나왔지만, 단어 하나는 똑똑히 이성우의 귀에 들렸다.

“죽인다.”

“얌마!”

이성우는 이서율이 똑똑한 발음으로 ‘죽인다’는 말을 하자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이서율은 그런 아빠의 반응이 재미있다는 듯이 계속 같은 단어만 내뱉었다.

“죽인다. 죽인다. 죽인다.”

이성우는 내뱉을수록 점점 또렷해지는 이서율의 발음에 손으로 눈을 가렸다.

***

최석영의 방송이 나오자마자 시장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노골적으로 매수 신호를 준 것에 사람들은 세이지의 이런 모습이 무얼 의미하는 것인지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다.

자기들의 매수만으로 지수가 밀리는 것을 막지 못해 도움을 청하는 거라는 이야기가 있었다.

일부는 자기들만 물릴 것 같으니 과한 행동을 보이는 거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세이지증권의 매수 선언이 시장의 턴어라운드를 이야기하는 거라며 흥분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지금까지 보여준 세이지증권의 모습으로 보아 이번 이야기도 어설프게 흘려들을 만한 이야기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지수가 3,000을 이야기할 때 펀드 자금 집행 보류를 공식적으로 선언했던 세이지증권이었다.

그들은 지금 들어갔다간 고객이 손해를 본다며 욕과 함께 일부 고객들의 해지 요청을 받았음에도 꿋꿋이 자기들의 신념을 치켰었다.

그리고 그들의 생각은 적중했다.

지수는 2,600부터 1,800까지 빠져 내려왔으며 시장붕괴를 이야기하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그런 세이지증권이 이제는 노골적인 매수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동안 보류해 놓은 펀드의 계좌도 열어 3조에 가까운 자금을 집행한 것이 지금 자리야말로 하락의 끝에 다다른 것이 아니냐는 생각이 들게 만든 것이었다.

물론 증거로 이야기할 만한 것이 없었다.

하지만 최석영의 모습이 증거가 있음을 대신 이야기해준다고 생각했다.

아무것도 없이 이렇게 공개적인 매수신호를 세이지증권이 보낸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개인들의 매수세가 시장에 뭉칫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일부 기관들조차 이런 개인들의 모습에 동조하여 매수 포지션을 잡아나가기도 했다.

시장에 본격적인 매수세가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었다.

지수 1,800을 중심으로 하여 거래량이 폭증했다.

여전히 보이는 세이지증권과 그런 세이지증권의 뒤를 따르는 개인 그리고 일부 기관들까지 매수세의 총공세가 이루어졌다.

“이렇게 매수세가 들어오는데도 쉽지 않네요.”

조지훈은 한진영의 곁에서 같이 상황판을 바라보고 이야기했다.

“쉽지 않지. 그러라고 이야기한 거니까. 매도세 잘 나온다.”

세이지증권을 필두로 한 매수세가 나왔다면 반대로 시장을 찍어 누르던 이들 또한 마찬가지로 물량을 닥치는 대로 내놓기 바빴다.

마치 여기서 밀리면 죽는다는 생각으로 모든 것을 끌어 시장에 물량을 내던지는 중이었다.

“아직도 물량이 저렇게 많이 남아있었나요? 처음 전략실에서 예상하기로는 공매도 물량이 5조쯤 되지 않을까 예상했는데 말입니다. 우리가 먼저 들어간 공매도 물량을 청산한 것에 더해 이번에 새로 매수한 물량까지 더한다면 얼추 예상한 공매도 금액을 맞춘 것 같은데…….”

조지훈은 말끝을 흐리며 한진영을 살폈다.

혹시 전략실이 숫자를 착각했다면 큰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진영은 이것조차 계획의 일부였다는 듯이 이야기했다.

“저들도 공매도 5조를 계획하고 일을 진행했을 거야. 지금은 계획이 어그러진 상태일 거고…….”

“그렇다면…….”

“늪에 빠졌으니 허우적대고 있는 거지.”

계속된 외국인의 매도 물량이 한진영의 눈에는 늪에서 허우적대는 손짓으로 보이고 있던 것이었다.

조지훈은 한진영의 말에 안심하면서도 허우적대는 손에 휘말려 같이 늪에 빠지는 것이 아니냐는 걱정이 됐다.

한진영은 조지훈을 돌아보고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안다는 듯이 이야기했다.

“걱정하지 마. 얼마 남지 않았어. 월요일 발표가 나온 이후 저들의 머리까지 모래가 덮일 테니 지금은 그냥 즐겨. 저들의 마지막 발악을 말이야.”

한진영은 조지훈의 어깨를 두드리고 다시 상황판으로 고개를 돌렸다.

한진영이 걱정하지 말라고 했지만 브릿지랜드 등의 마지막 발악은 생각 이상으로 거셌다.

외국인의 매도 포지션으로 잡힌 물량만 금요일 하루 5조가 넘어갔다.

매수 포지션으로 잡힌 물량이 3조 5,000억이었기에 순매도 포지션은 1조 5,000억이라고 볼 수 있었다.

1조 5,000억 중 개인이 1조를 넘게 받아 갔다.

그리고 나머지 물량은 세이지증권이 대부분 받아 가며 외국인의 매도 공세를 또 막아내어 일주일의 마지막을 넘겼다.

증시 전문가들은 세이지도 한계에 다다랐다고 평가했다.

일부 고객의 이탈로 펀드 자금이 예상보다 쪼그라든 상태이기에 세이지증권의 여력도 이제 끝이라는 주장이 주말 동안 힘을 받았다.

세이지증권이 매수세의 선두에 섰기에 이제 매수세는 힘이 빠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었다.

개인들은 결집력이 약해 선두에 선 존재가 없을 때 급속히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이론을 펼쳤다.

중심이 되는 곳이 없다면 개인의 매수세도 모래알처럼 흩어질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그들은 여전히 지금의 사태를 해결할 방법은 일본이 원하는 것을 들어주는 것뿐이라며 지금이라도 일본에 머리를 수그려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세이지증권과 같은 곳은 나라에 도움이 안 되며 손 놓고 상황을 지켜보기만 하는 정부의 무능력이 일을 키우고 있다고 주장했다.

야당 또한 맹공세를 펼쳤다.

결과적으로 일본과 외국인들이 이길 수밖에 없는 흐름으로 흘러가는 것에 다시 한번 자기들의 존재를 뽐내기 위해 소리를 높였다.

우리나라 내에서 불매운동이 진행되더라도 핵심 소재를 틀어쥐고 산업생산을 막는 일본이 이길 수밖에 없다는 판단이었다.

지금은 매국노라는 욕을 먹고 있지만 결국 자기들 생각대로 일이 끝난다면 정국 운영의 키를 자기들이 쥘 수 있다는 생각에 그들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그렇게 주말이 흐르고 월요일 장이 열리기 전인 오전 8시 하이식스에서 공시가 떴다.

[불화 폴리이미드, 포토 레지스트, 불화수소 등과 같은 핵심소재에 대한 수급이 새롭게 개선되었다는 루머는 사실임. 이미 테스트는 완료되었으며 명일 부산항을 통해 물량이 들어올 것으로 예상. 기존 거래처인 일본의 제품과 동일한 순도를 가지고 있어 반도체 수율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으로 기대함. 이미 확보한 물량만으로 올해를 넘길 수 있으며 본격적으로 내년부터 독일 측 제품을 공정에 투입할 예정임. 남은 기간 라인에 적용하여 수율 변화를 계속 주시할 예정이기에 생산에는 무리가 없을 것으로 보임을 공시함]

뜻밖의 소식이 한 주의 시작을 알리기 전에 먼저 시장에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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