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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증권사 생활-475화 (475/650)

475화 함께 묶이고 말다

레이 젠슨과 바비 힉스가 사무실을 떠나자마자 한진영은 조지훈에게 지시했다.

“바로 상장 작업을 진행할 회사를 섭외하도록 해. 그리고 시장에 코인 그라운드가 상장한다는 소식을 퍼뜨리고…….”

“아직 상장 작업에 대한 계획이 나오지 않은 상황인데 시장에 이야기를 풀어도 괜찮은 걸까요?”

“괜찮아. 이미 상장 작업을 위한 밑그림은 다 그려진 상태야. 다른 곳이 이 틈을 비집고 들어올 수는 없어. 코인 그라운드에 딴짓을 하려고 해도 우리가 보유하고 있는 코인 그라운드의 지분이라면 비집고 들어오려는 곳들을 다 막아낼 수 있어.”

한진영은 걱정하는 조지훈을 안심시키고 턱을 쓰다듬었다.

“문제는 그것보다…… 서울에 연락해서 태훈로펌에 세이지의 계열사 작업이 어느 정도나 진행됐는지 알아봐. 그게 끝나야 조로와의 주식교환 작업도 진행할 수 있으니까.”

“알겠습니다. 바로 알아보겠습니다.”

“좋아 그것까지 마치면 정식으로 이사회를 구성할 거야. 이사회 멤버로 최 전무님하고 나 대표 그리고 홍 대표도 들어갈 테니까 미리 알려서 준비하도록 해. 사외외사로 성우도 넣을 계획이니까 그렇게 전하고…….”

한진영의 지시를 받아 적던 조지훈은 고개를 들어 한진영을 올려다봤다.

“이 사장님도요?”

“어차피 사외이사가 셋 이상은 필요해. 우리 쪽 셋에 사외이사 셋. 이 정도가 외부에 보여주기 가장 좋은 구성이야. 그렇다면 반대편 셋 중에 우리 사람 하나는 넣어놔야지. 그래야 나중에 귀찮은 일이 일어나지 않을 테니까.”

한진영의 설명을 들은 조지훈은 고개를 갸웃했다.

“어차피 이사회라고 하지만 모두 사장님. 아차. 이제 회장님이라고 불러야 하는데 죄송합니다.”

“아무렇게나 해. 사장이나 회장이나…….”

“안 됩니다. 미국에서는 모두 뭉뚱그려 CEO로 통칭하기는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엄연히 자리 높낮이가 다른 것입니다.”

“하하하. 좋아. 그럼 내가 회장에 취임하면 자네는…… 부사장 대우로 해줄까? 아님 사장 대우?”

한진영의 놀리는 말에 조지훈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한진영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는 조지훈을 보고 웃으며 손짓했다.

“알았어. 그만할게. 하던 말이나 마저 해봐. 뭐가 이상해서 그래?”

한진영의 말에 짧게 헛기침을 내뱉은 조지훈은 다시 차분한 모습으로 한진영을 향해 의문점을 물어봤다.

“아무리 사외이사들이 회장님이 하려는 일에 반기를 든다고 해도 이쪽은 회장님 포함 넷이 포진되어 있지 않습니까? 딴맘을 품으려야 품을 수 없을 것 같아서 말입니다. 그래서 다른 회사 사람을 들이는 건…….”

“성우가 나하고 개인적으로 친하기는 하지만 기풍 사람이다 이 말이지?”

“네.”

“히야~ 이거 성우가 들으면 엄청 섭섭하다고 하겠다. 그래도 성우 딴에는 조 실장을 동생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 말이야.”

한진영의 말에 조지훈이 다급히 손짓했다.

“아닙니다. 저도 개인적으로 이 사장님을 매우 좋아합니다.”

“꼭 성우에게 사장이라는 칭호를 붙이는 걸 보면 별로 좋아하는 거 같지가 않은데?”

“아닙니다. 정말 아닙니다.”

조지훈은 다시 한번 놀리는 한진영의 말에 울상을 지으며 변명했다.

“정말 좋아합니다. 믿어 주세요.”

“나야 믿는데 성우가 들으면 안 믿을 거 같은데?”

한진영의 멈추지 않은 놀림에 조지훈의 표정은 일그러지기까지 했다.

한진영은 그런 조지훈의 모습에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알았어. 그만할 테니까 거기 앉아봐. 앉아서 이야기 들어.”

한진영은 맞은 편에 있는 의자를 턱짓으로 가리키고 설명했다.

“이사회는 사실 거수기나 마찬가지야. 어느 회사, 어느 이사회든 간에 사외이사가 오너를 견제하는 곳은 찾아보려야 찾아볼 수가 없어.”

“제 말이 그겁니다.”

“그런데 그렇다고 만약의 경우를 준비하지 않는다면 나중에 일이 터졌을 때 막을 방도가 없어.”

“만약의 사태요?”

조지훈은 전혀 생각하지 못한 말에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한진영은 당황스러울 정도의 말을 꺼내 놓고도 평온한 상태를 유지한 채로 계속 이야기했다.

“우리 쪽이 넷, 우리를 견제하는 쪽이 셋. 누가 봐도 투표를 한다면 이기는 구성이야. 하지만 만약 우리 쪽에서 배신자가 나온다면 어떻게 될까?”

“배신자라니요? 최 전무님은 사장님과 회사 설립 전부터 함께 한 사이이고 나 대표나 홍 대표 모두 충직한 사람들 아닙니까?”

“그렇지. 나는 그렇게 믿고 있지. 자네도 그렇게 믿고 있고…… 그렇지만 그건 모르는 일이야.”

한진영은 마치 무언가를 알고 있는다는 듯이 이야기했다.

“설마 셋 중에 누군가가 딴맘을 먹고 있는 걸 아신 겁니까?”

“하하하하. 오버하지 마. 그런 거 아니야.”

바짝 긴장한 표정의 조지훈을 향해 손을 흔들고는 다리를 꼬았다.

비스듬하게 앉은 한진영은 팔을 한쪽에 걸친 채로 이야기했다.

“그들이 딴맘을 먹은 걸 알아채서 그런 건 아니야.”

“그러면 왜 그런 말씀을 하신 겁니까?”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야 하니까.”

최석영 등이 배신한 것은 아니라고 말하면서 만약의 경우를 대비한다고 이야기하는 한진영이 조지훈은 이상하게만 보였다.

조지훈의 생각에는 앞뒤가 맞지 않는 이야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사람은 몰라도 한진영은 만약의 사태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바로 이사회의 농간에 회사가 한진영의 손아귀에서 넘어가며 무너져 내렸었기 때문이다.

‘절대 그럴 일이 없다고 생각했을 때 꼭 일이 벌어지고는 하지.’

한진영은 이번에는 그런 일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이번만큼은 회사 성장에 정신이 팔려 허술한 틈을 놓치고 갈 수는 없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안전판은 1차, 2차, 3차 무수히 만들어도 모자라지 않아. 성우가 비록 다른 회사 사람이지만 오히려 그 점이 사외이사로 놓기에 더 좋아. 반대할 이유가 하나 사라지는 거니까. 그리고 교수와 같이 학계에 있는 사람으로 나머지 두 명을 꾸린다면 이사회에 딴지를 걸 사람은 없어.”

한진영의 설명에 조지훈은 더는 의문을 가지지 않았다.

지금 그가 할 일은 의문이 아니라 한진영이 만든 설계도에 따라 이사회진을 구성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알겠습니다. 바로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순서대로 해. 우선순위를 정해서 거기에 맞춰서 차근차근 진행하면 될 거야. 바쁘다고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진행하다가는 일이 꼬이는 법이니까.”

“네. 알겠습니다.”

“우리가 지금 진행하고 있는 일이 많아. 게다가 아직 이곳의 자리가 제대로 잡히지 않은 상태에서 진행하는 것이기에 놓치고 넘어가는 것들이 생길 수 있어. 그런 것이 생기지 않도록 주의해.”

“명심하겠습니다.”

조지훈은 한진영의 주의에 큰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러나 한진영의 주의와 조지훈이 신경 쓰는 상황에서도 예기치 못한 곳에서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

시작은 코인이 폭발적으로 상승하는 바람에 일어난 일이었다.

코인의 폭발적인 상승은 미국에서만 국한되어 일어나는 일은 아니었다.

전 세계적인 현상으로 오히려 아시아 그중에서도 대한민국의 코인 시장에 대한 폭발적인 상승은 놀랄만한 모습이었다.

거래 대금의 상승은 인상적인 수준으로 성장했다.

코인 시장에서의 거래대금은 빠르게 아시아 최고를 넘어 세계 최고로 치솟았고, 세계 시장이 한국 시장의 코인 거래를 보며 자국의 가격을 맞추는 상황에 이르고 말았다.

코인에서만큼은 대한민국이 전 세계의 시장을 끌고 간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이렇게 폭발적인 성장을 이루자 코인 관련 업체들이 대한민국을 주시하기 시작했다.

대한민국 내에서도 코인이 만들어졌으며 거래하기 위해 전 세계 거래소로 투자자들이 뻗어나간 것이었다.

코인 거래소의 세계 1등은 누가 뭐래도 코인 그라운드라고 볼 수 있었다.

하루 거래대금이 20억 달러에 이르며 거래되는 코인 또한 다른 곳들보다 많은 모습을 보였다.

코인 투자자들은 자국의 거래소보다 더 많은 코인 종류에 관심을 보였고 유동성이 풍부한 코인 그라운드에서 거래하기를 원했다.

대한민국의 코인 투자자들은 코인 그라운드에 가입하는 방법 등을 공유하며 코인 그라운드로 찾아 들어갔다.

대한민국의 투자자들이 코인 그라운드로 몰려들자 코인 그라운드의 거래량은 더욱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대한민국 내에서 움직이던 유동성까지 빨아들이며 하루 거래대금 30억 달러를 향해 무섭게 달려 나간 것이었다.

코인 그라운드는 지금의 상황을 놓치지 않으려 했다.

미국 내에서만 이루어지던 마케팅을 대한민국에까지 넓혀가 코인 투자자들을 빨아들이려 한 것이었다.

아직 태동기에 불과한 답답한 대한민국의 거래소에서 거래하지 말고 모든 면에서 앞서있는 코인 그라운드에서 거래하라는 광고가 대한민국 광고시장에 펼치며 사람들을 유혹했다.

그리고 그들은 이런 광고 속에 자기들과 대한민국의 관계가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알렸다.

한진영은 조지훈이 구해온 한국의 신문을 내려다보고 헛웃음을 터트렸다.

“이것들…….”

“어떻게 할까요? 정식으로 코인 그라운드에 항의라도 할까요?”

조지훈은 한진영의 안색을 살피고는 한진영이 바라보고 있는 신문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는 신문 전면광고를 통해 코인 그라운드와 세이지증권의 관계를 자랑하는 사진이 떠 있었다.

“자세히도 썼네.”

한진영은 코인 그라운드의 성장에 세이지증권 특히 한진영의 도움이 컸다는 광고를 보며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분위기는 어때?”

한진영은 광고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조지훈을 향해 물었다.

“광고 덕분인지 아니면 기존 거래소에 불만을 품고 있어서 그런 것인지 코인 그라운드의 한국 내 트래픽이 큰 폭으로 증가했다는 발표가 나오고 있습니다.”

“골치 아프네.”

한진영은 신문을 덮고 조지훈을 올려다봤다.

조지훈은 한진영의 시선에 고개 숙여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주의하라고 말씀하신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이런 일이 일어났습니다. 저의 불찰입니다.”

“아니야. 이런 거 가지고 자책하지 마. 이번 건은 정말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을 일이니까. 문제는…….”

한진영은 광고를 손가락으로 두드리며 말했다.

“내가 지금 미국에 있다는 거야. 자네도 나와 함께 있고…… 저쪽에서 대처할 사람이 마땅치가 않아. 홍 대표는 지금 물량 빼는 데 온 신경을 다 쏟는 중이잖아.”

“지수가 2,500까지 올라오며 펀드 볼륨이 너무 커졌다고는 했습니다. 쓸어 담을 때야 거래량이 폭발하여 물건을 담는 데 문제가 없었는데 지금은 거래량이 준 상태라 자칫 우리가 물량을 쏟아냈다가는 시장에 충격을 줄 수도 있다고 조심하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니까.”

한진영은 깊은 한숨을 내쉬고 다시 시선을 광고 쪽으로 돌렸다.

그리고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우선은 지켜보자. 지금 우리가 뭐 어떻게 할 상황이 아니니까. 사람들의 반응이 나왔을 때 움직이는 것으로 하고…… 신문이나 방송에 광고가 실리는 것만 막아봐. 이미 늦었지만 더 펴지는 것만큼은 막아야지.”

“네. 알겠습니다. 바로 조치하도록 하겠습니다.”

조지훈이 대답하기는 했지만 한진영은 크게 기대하지는 않았다.

돈이 오가는 시장에서는 이야기를 막을 수는 없는 법이었다.

그런데 하물며 지금 가장 핫한 시장에서 이야기를 퍼지지 않게 막는다는 것은 하늘을 손바닥으로 가리겠다는 말과 같은 것이었다.

한진영은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없어 지시를 내린 것이었다.

한진영이 광고 하나에 크게 신경을 쓰는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었다.

바로 대한민국에서 코인에 대한 시각이 부정적으로 흘러가는 중이기 때문이다.

코인을 투자하는 대부분 사람은 코인에 대한 미래보다는 당장 돈이 도는 시장이기에 들어오는 사람들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그러다 보니 시장이 혼탁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코인끼리도 서로 내부에서 경쟁하며 피로감을 쌓았다.

코인이라는 전체 시장의 유동성을 가지고 적게는 수십 개에서 많게는 수백 개의 코인끼리 유동성 나누어 먹기를 해야 했기에 서로 간에 경쟁 관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이런 내부에서의 경쟁 관계는 점차 퍼져나가 외부와도 부딪치기 시작했다.

타 시장의 유동성을 끌고 오기 위해 코인 시장을 장밋빛으로 포장했고 코인을 투자하지 않는 사람들을 잘 모르는 사람이라며 비하하기까지 했다.

그러다 보니 타 시장의 투자자들은 코인 투자자들을 고운 눈으로 바라보지 않았다.

코인 시장 외에는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 만드는 코인 투자자들의 행동에 눈살을 찌푸리기 일쑤였다.

결국 코인은 시장에서 밉상으로 찍히고 말았다.

게다가 딱히 미래가치가 당장은 보이지 않는 상황에 코인은 사기로 바라보는 시선도 나타날 지경이었다.

이렇듯 부정적으로만 흘러가는 코인 시장에 세이지증권이 코인과 함께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다.

코인 그라운드의 광고가 더는 실리지 않았지만 이미 시장은 코인 그라운드와 세이지증권을 같은 선상에서 바라보기 시작했다.

***

코인 시장은 시간이 갈수록 더욱 커졌다.

전세계 하루 거래대금이 100억 달러 이상이 될 거라는 이야기가 전해질 정도였다.

마이너 중의 마이너에 소수만이 거래하던 시장에서 지금은 주류 세계를 위협하는 수준까지 올라온 것이었다.

방송도 더는 이런 코인을 그냥 두고만 보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 코인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과 희망적인 시각이 공존하고 있기에 방송사는 그들을 초청하여 토론하는 자리를 열었다.

-코인이 가치가 있는 것은 비단 코인 투자자들만의 생각이 아닙니다. 투자시장의 강자이자 아시아를 넘어 미국 본토에 진출하려는 세이지증권도 관심 있게 바라보고 있는 시장입니다.

코인에 관한 토론이 이루어지는 방송에서 드디어 세이지증권의 이름이 거론됐다.

투자자들 사이에서 많이 이야기되는 것이지만 이렇게 전파를 통해 직접적으로 거론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혹시 교수님께서는 세이지증권의 펀드에 가입하지 않으셨습니까?

코인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코인 관계자는 부정적인 쪽에 앉아있는 경제학 교수를 향해 질문을 던졌다.

경제학 교수는 생각하지 못한 질문에 잠시 머뭇거렸다.

코인 관계자는 그런 교수의 모습에 약점을 찾았다는 듯이 다시 질문을 던졌다.

-분명 제가 알고 있기로는 교수님께서 세이지증권의 펀드를 극찬하셨었습니다. 아닌가요?

-그렇긴 합니다.

교수는 코인 관계자의 질문에 맞는다며 시인했다.

세이지증권에 호의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는 것은 이미 공공연한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코인 관계자는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리고는 교수를 향해 물었다.

-교수님께서는 시장을 가장 명확하게 바라보는 곳이 세이지증권이라고 하셨었습니다. 그것도 맞습니까?

-맞습니다.

-시장을 명확하게 바라보는 세이지증권이 시장이 성숙기에 들어가기 전 그러니까 이제 막 태동하는 시점에 투자했다는 것은 아십니까?

-이야기 들어서 저도 알고 있습니다.

코인 관계자는 여기까지 교수가 인정하자 더는 들을 것도 없다는 듯이 고개를 돌려 진행자를 바라보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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