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1화 마지막 발악
다음 날 오전 매드스톡에서는 지난 CNBC의 인터뷰에 대한 반응이 나왔다.
-흑흑흑. 더는 방송에 나오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흑흑흑.
머치 버치킨스는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흉내 내고는 야구 방망이를 휘둘렀다.
콰쾅!
-하여튼 원숭이 같은 새끼들. 쳐 우는 것도 계집애 같아서 뭐? 방송에 더는 안 나오겠다고? 나오지 마! 이 새끼야!
콰쾅!
머치 버치킨스는 발작하듯이 소리를 지르고 물건을 부쉈다.
매드스톡에서는 더는 주식 이야기는 들리지 않았다.
세이지를 비난하는 것으로 시간을 할애하던 머치 버치킨스는 방송 출연을 지양한다는 소리에 마치 승자라도 되는 것처럼 신난 얼굴로 세이지를 욕하는데 방송 시간을 할애했다.
-너희들이 그럴 줄 알았지. 꽁지 빠지게 도망칠 줄 알았어. 왜 알았냐고? 옐로우 새끼들은 항상 그렇거든. 눈 찢어진 빌어먹을 놈들은 제대로 싸움도 하지 못하고 도망치는 데만 열중하지.
머치 버치킨스는 얼굴 가득 비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그런데 싸웠다고 해도 결과는 똑같았어. 봐라.
툭툭.
머치 버치킨스가 말을 하고 화면을 야구 방망이로 건드렸다.
그곳에는 나스닥 지수가 그려져 있었다.
-어제만해도 2% 가까이 오르던 지수가 이렇게 오늘은 하락하고 있거든. 하락, 상승, 하락. 이건 주식 패턴을 배우지 않은 사람도 알 수 있는 모양 아니냐?
머치 버치킨스는 한심스러운 목소리로 마치 세이지와 한진영에게 말하듯이 이야기했다.
-너희들이 졌어. 그리고 졌는데도 불구하고 승복하지 못하니 너희는 아주 X만 한 놈들이라는 거야. 여기 와서 머리 박고 잘못했습니다 해도 모자랄 판에 이대로 꽁지 빠지라 도망을 쳐? 퉤.
머치 버치킨스는 그대로 스튜디오 바닥에 침을 뱉어 버렸다.
-꺼져 버려. 어디 실력도 없는 것들이 세계 금융의 중심인 뉴욕에 와서 지랄이야? 노숙자에게 찍어보라고 해도 너희들보다 더 잘할 거다. 이 머저리 놈들아.
흥분한 머치 버치킨스는 인종차별부터 시작하여 비하 발언을 서슴없이 내뱉었다.
세이지가 항복 선언을 한 것으로 간주하여 의기양양 대놓고 방송에서 세이지를 욕보인 것이었다.
이런 매드스톡과 다르지만 노벨 경제학상을 탄 룸비니 교수 또한 세이지를 비난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룸비니 교수는 CNBC와의 대담에 나와 시장 상황을 이야기하며 세이지를 비꼬았다.
-지난 금요일 시장에 아주 중요한 지표가 발표되었습니다. 바로 고용지표가 발표된 것이지요. 그동안 주간 신규실업수당 청구 건수만 보았던 우리는 막연하게 고용시장이 얼어붙어 있는 상태라고 짐작만 했을 뿐입니다. 하지만 금요일 지표 발표로 인해 우리는 확실하게 시장이 얼어붙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말을 잠시 멈춘 룸비니 교수는 가지고 온 자료 속의 데이터 내용을 읽어갔다.
-미 노동부는 고용이 70만 명이 감소했다고 발표했습니다. 미국의 신규고용이 감소한 것은 2010년 이후 처음 있는 일입니다. 게다가 한 달 만에 70만 명의 감소는 조사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지요. 문제는 이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이번 고용지표 조사 시점은 지난달 중순까지로 본격적으로 급격히 악화한 고용 상황이 크게 반영되지 않았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즉, 우리가 지난 금요일의 본 지표는 위기의 시작만 보여준 것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죠.
룸비니 교수는 보고 있던 서류에서 시선을 올려 카메라를 응시한 채 말했다.
-그런데도 시장을 희망적으로 보는 곳이 있다는 것에 놀라울 따름입니다. 그리고 그런 곳이 시장 참여자들에게 노골적으로 매수를 권하고 있다는 것에 아찔한 기분을 느꼈습니다. 사람은 자기가 한 말에 책임을 질 줄 알아야 하는데 그들이 어떻게 책임을 질 수 있을지 의구심만 듭니다. 그런 곳이 왜 뉴욕이 있는 것인지 저는 두려울 따름입니다.
룸비니 교수는 세이지라는 이름을 직접 불러 지칭하지 않았을 뿐이지 지금 이야기하는 곳이 어디인지 알 수 있게 말했다.
그리고 뉴욕에 있어서는 안 될 곳으로 평가하며 세이지의 존재 자체를 부정했다.
룸비니 같은 명성이 높은 교수가 세이지를 비난하자 뒤를 이어 여러 사람이 주말 동안 세이지를 비난하는 데 동참했다.
-동양에서 온 한낱 자그마한 회사가 어떻게 시장을 제대로 보겠습니까?
-브릿지랜드를 어떻게 품었는지 모르지만 소화하지 못한다는 데 제가 지금까지 쌓아온 경력을 걸겠습니다. 조만간 브릿지랜드도 세이지와 함께 파산 절차에 들어갈 겁니다.
-시장은 이제 1차 하락에 불과합니다. 앞으로 2차, 3차 계속 빠져나갈 텐데 겨우 저점에서 조금 반등했다고 매수 사인을 주다니요. 세이지는 미친 회사임이 분명합니다.
눈치를 보던 이들이 모두 금요일의 고용지표를 보고 확신했다.
그리고 세이지가 물러나는 것에 세이지 또한 자신이 없어 물러나는 거로 생각했다.
-세이지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멍청한 회사입니다. 그들이 주장하는 유가 시장의 몰락과 증시의 상승은 서로 반대되는 상황입니다. 어떻게 유가가 몰락하는데 주가 상승이 나온단 말입니까? 그들은 현실 세계가 아닌 다른 세상의 이야기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세이지의 모든 주장을 허상으로 만들어 갔다.
상승세가 비록 꺾였지만, 저점에서 10%가 상승한 모습에도 마치 전저점을 깨러 가는 모습이라는 확신한 모습으로 세이지의 주장을 반박했다.
주말 동안 세이지는 거짓말쟁이였으며 세이지를 물어뜯는 사람은 사기꾼에게서 일반 투자자를 지키는 정의로운 사람처럼 비쳤다.
그러나 이런 모습도 주말까지만이었다.
***
월요일 아침 장이 시작하기 전인 오전 8시 뉴욕주는 일요일인 전날과 토요일인 전전날의 사망자 수를 발표했다.
토요일은 630명, 일요일은 594명으로 사망자 수가 증가세를 보이던 모습에서 둔화로 바뀐 것이었다.
뉴욕주의 발표가 나온 지 10분 만에 미 대통령은 기자회견을 열어 “좋은 징조일 수 있다. 몇몇 좋은 일들이 뉴욕에서 일어나고 있다”며 “우리는 터널 끝에서 빛을 보기 시작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럽에서도 사망자 수가 감소하는 추세를 보인다는 발표가 뒤를 이었다.
이탈리아와 스페인, 프랑스 등 유럽 내 코로나19 집중 발병 국가에서도 사망자는 점차 감소하고 있다는 발표를 EU 질병관리국에서 발표한 것이었다.
시장은 들썩였다.
이제 코로나19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기대에 시장은 금요일 나왔던 고용지표를 모두 잊어버리고 말았다.
장이 열리자 이런 기대가 현실로 나타났다.
다우존스30 산업평균지수는 전 거래일 대비 1,024포인트 4.87% 상승 출발했다.
S&P500 지수와 나스닥 지수도 각각 118포인트 4.75%, 355포인트 4.82% 상승하여 시작했다.
시장은 하루 만에 모든 게 바뀌어 버렸다.
금방이라도 전저점을 깰 것처럼 난리를 쳤던 언론은 침묵으로 시간을 보냈다.
5% 가까이 상승하여 시작한 지수의 움직임에 세이지를 사기꾼으로 몰아갔던 투자사들의 전문가들은 모두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버렸다.
오직 매드스톡만이 주말 동안 주장했던 태도를 고수했다.
-사망자가 줄었다고 했는데 기껏 줄어들었다는 수치가 겨우 40명이야. 40명. 이 정도 하락은 주말 효과에 불과하다고. 내일 봐봐. 오늘 몇 명이 죽었는지. 오늘까지도 줄고 내일도 줄어야 그래야 제대로 줄어든 거라고. 이건…… 믿을 수 있는 지표가 아니야.
아침에 나온 발표를 부정하는 것으로 매드스톡은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그런 매드스톡도 점심 무렵 나온 발표에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러시아 국부펀드인 직접투자펀드 RDIF의 대표가 CNBC와의 인터뷰에서 “러시아와 사우디가 감산 합의에 아주 아주 가까워졌다”고 밝힌 것이었다.
CNBC는 소식통을 통해 조만간 OPEC 회원국과 비OPEC 산유국 간의 화상회의가 조만간 개최될 것이고, 이곳에서 감산 문제가 논의 될 것으로 관측된다고 발표했다.
코로나19에 이어 시장을 짓눌렀던 원유까지 해결책이 보이는 듯하자 시장은 더욱 힘차게 위로 뻗어갔다.
5%에 근접하여 시작했던 3대 지수는 7%가 넘는 상승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지난 상승 때 맞고 떨어져 내렸던 곳까지 기어코 장악하는 모습을 보였다.
“나스닥 기준 종가 7,913 마감됐습니다. 장 막판 살짝 밀리는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크게 무너지는 모습을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이대로 8,000선을 회복할 것이 확실시되는 상황입니다.”
홍대민의 보고에 레이 젠슨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자리를 비웠던 시간 동안 세이지를 중심으로 일어났던 일에 레이 젠슨은 화를 참지 못했다.
당장에라도 세이지를 비난했던 투자사에 공식적으로 항의를 할 준비를 하려고까지 했다.
그리고 매드스톡의 행위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인 한진영을 혼내기도 했다.
정글에서 생존하는 법을 제대로 가르쳐주지 않았다며 이번에 제대로 가르쳐 줄 테니 잘 보라는 말과 함께 조지훈과 비서실 직원들을 일요일 저녁 들들 볶았었다.
아침부터 법률팀은 물론이고 뉴욕의 최고 로펌과 만남을 진행하려던 레이 젠슨은 단번에 바뀐 상황에 모든 일정을 취소했다.
법적 절차를 통해 입을 꿰매려 한 게 무색하게 느껴지게 모든 이들의 입이 닫혀 버리고 말았기 때문이다.
한진영은 어이가 없다는 레이 젠슨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
“제가 말씀드렸지요? 지수가 오르면 모두 다 조용해질 거라고 말입니다.”
“그래. 자네 말대로 지수가 오르면 다 조용해질 놈들이기는 했는데…… 뭐가 하루 만에 이렇게 됐어?”
“이제부터입니다.”
“이제부터라니?”
한진영은 앞에 서 있는 홍대민의 뒤로 보이는 차트를 바라보고 말했다.
“여기서 숨도 안 쉬고 계속 오른다면 더 재미있는 모습이 펼쳐질 겁니다.”
“자네가 말한…… 세이지를 비난했던 사람들이 모두 시장에서 사라져 버린다는 상황?”
“네. 그리고 앞으로 우리가 하는 말에 사람들은 더 귀를 기울이게 될 겁니다. 겸사겸사 고객도 늘어날 테고요.”
“그러기야 그렇지. 여기서 계속 오른다면…….”
레이 젠슨은 한진영의 말을 반신반의하며 차트를 바라봤다.
도끼로 찍어내듯 빠져버린 차트의 모양을 V자로 단숨에 오른다는 것이 상상이 잘 안 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진영이 말한 것은 V자 반등이 아니었다.
V자 반등을 넘어 아득히 먼 곳으로 날아가는 상황을 한진영은 얘기한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 상황에서 상상할 수 있는 최선은 V자 반등이었기에 레이 젠슨은 V자 반등을 머리에 그리며 어떻게 다시 9,000을 넘어 10,000에 접근한다는 것인지 상상할 뿐이었다.
***
미국 대통령이 터널의 끝이 보인다는 표현은 호들갑이 아니었다는 것이 시간이 흐를수록 빠르게 증명됐다.
뉴욕주의 코로나19 사망자와 신규 입원환자 수가 계속 줄어들었던 것이었다.
투자자들 사이에선 미국 내 최대 확진 지역인 뉴욕주에서 코로나19 사망자와 신규 입원환자 수가 줄자 ‘정점에 가까워지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희망 섞인 관측까지 나왔다.
그리고 이런 희망이 헛되지 않다는 이야기가 공식 자리에서 나왔다.
뉴욕주 주지사가 브리핑 자리에서 “터널 끝에서 엄청난 빛이 보이고 있다”며 대통령의 말과 같은 말을 하며 기대감을 높였다.
미국의 사업체와 점포의 휴점 및 학교 휴교 등 셧다운 조치가 수주 내 해결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이제 사람들은 점차 정상적인 생활로의 복귀를 기대하기 시작했다.
이런 기대는 증시에 그대로 전해졌다.
나스닥이 8,000을 눈앞에 둔 시점에서 8,000 돌파를 시도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시장은 정상적인 생화로 복귀가 된다면 그동안 가지 못했던 여행과 하지 못했던 모임을 하겠다며 기대감을 높였다.
그리고 이런 기대감은 그대로 주식시장에 전해져 여행과 항공 그리고 소비재들 주식을 밀어 올렸다.
나스닥은 8,000은 물론이고 8,100마저 훌쩍 뛰어넘은 8,129로 장을 시작했다.
8,000 돌파라는 지상 최대의 과제가 성공하자 순식간에 시장으로 물량이 들어와 8,100마저도 뛰어넘는 괴력을 보인 것이었다.
그러나 8,000선을 한 번에 장악하는 것은 용납하지 못한다는 듯이 악재 뉴스가 나와 시장을 다시 8,000 아래로 짓눌렀다.
-내가 그랬지? 코로나는 끝난 게 아니야.
화면 속의 머치 버치킨스의 목소리가 들렸다.
화면을 바라보던 조지훈은 한진영을 향해 화면 속 머치 버치킨스 이야기를 건넸다.
“힘이 많이 빠져 있네요.”
“그래도 참 열심이지 않아?”
“네. 그 말씀이 딱 맞는 표현 같습니다. 정말 열심이기는 합니다.”
조지훈은 한진영의 평가가 적절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화면으로 다시 시선을 돌렸다.
머치 버치킨스를 오랫동안 지켜본 사람이라면 바로 느껴질 만큼 그의 목소리에는 힘이 빠져 있었다.
며칠 전처럼 길길이 날뛰던 모습도 더는 보이지 않았다.
그럴 만도 한 것이 그의 주장을 이제 믿고 따르는 추종자는 이제 더는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머치 버치킨스는 세이지를 비난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돌아가기에는 너무 먼 곳으로 와버린 것이었다.
-다들 뉴저지 사망자 수 봤어? 하루 최다인 231명의 사망자가 나왔어. 터널 끝이 보인다고? 다 개소리야. 다 헛소리라고. 아직 끝이 나지 않았어.
평소의 머치 버치킨스라면 이쯤에서 무언가를 때려 부숴야 했다.
그래야 그다운 모습이고, 그래야 매드스톡이라는 프로그램에 맞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머치 버치킨스는 그럴 힘도 없다는 듯이 야구 방망이에 의지하여 이야기할 뿐이었다.
-국제유가가…… 연이어 급락하고 있어. 증시의 발목을 잡고 있는데 주식시장이 어떻게 올라가겠냐고?
분명 세이지가 유가의 하락을 이야기했다는 것을 머치 버치킨스도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주식시장이 오르지 않는 이유를 설명하는데 유가만 한 것이 없기에 세이지가 했던 말을 애써 무시하고 유가 이야기를 꺼낸 것이었다.
한진영은 버벅이는 머치 버치킨스를 보고 웃으며 조지훈에게 말했다.
“그래서? 엑슨모빌에서 만나자고 했다고?”
“네.”
방송을 보기 전 엑슨모빌 이야기를 나눴던 한진영과 조지훈이었다.
그러나 한진영이 방송을 보기 위해 잠시 이야기를 멈췄었다.
한진영은 충분히 매드스톡 방송을 봤다고 느낀 건지 다시 엑슨모빌 이야기를 꺼내며 조지훈에게 말했다.
“이유는 말하지 않고?”
“네. 그저 얼굴이나 한번 보자는 뜻으로 나 사장에게 연락이 왔다고 했습니다.”
조지훈은 세이지 인베스트먼트에서 온 보고를 이야기하며 조용히 한진영의 지시를 기다렸다.
한진영은 마치 연락이 올 것을 알았다는 듯이 웃고는 손을 들어 흔들었다.
“그냥 알았다는 말만 하고 언제 만날지 언질을 주지 말라고 해.”
“만나자는 말에 동의만 하라는 거군요.”
“그래. 그리고 지금 바빠서 당장 만나기 어려우니 우리 쪽에서 연락한다고 기다리라고 해.”
한진영은 지시하고는 잠시 턱을 손가락으로 긁었다.
조지훈은 한진영이 무언가 고민할 때의 모습이라는 것을 알고 잠시 한진영이 생각을 마치기를 기다렸다.
한동안 생각을 하던 한진영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조지훈을 돌아봤다.
“그래. 어차피 거래해야 하는 입장에서 관계를 망칠 필요는 없으니까 엑슨모빌 측이 납득할 수 있는 상황을 보여주는 게 좋겠다. 나 사장한테 마스크 회사 매각 건 발표하라고 해. 그리고 서울에 연락해서 아버지와 오소마스크로 접근하는 언론 차단하고 재단설립과 관련된 기자회견 준비하라고 해.”
“원래 조금 더 시간을 가지고 진행하려고 하셨던 일 아닙니까? 바로 재단설립까지 발표해도 괜찮을까요?”
조지훈이 원래 계획을 틀어 진행하는 것이 세이지에 도움이 되는지 의문이 든다는 얼굴로 한진영에게 물었다.
한진영이 원래 계획을 튼 것이 세이지가 아닌 엑슨모빌을 위해서라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한진영도 그런 조지훈의 생각을 읽은 것인지 괜찮다는 말투로 조지훈에게 말했다.
“우리 입장에서는 시간을 가지고 하나하나 풀어가는 편이 좋기는 해. 좋은 일을 하는 것이니만큼 한 번에 오픈해서 김이 빠지게 연출하기보다는 하나하나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편이 우리 명성을 위하는 일이기는 하지.”
“맞습니다.”
“하지만 괜찮아. 명성보다 더 중요한 걸 위해선 그런 것쯤은 포기할 수 있어.”
“더 중요한 거요?”
“그래. 내가 명성보다 뭘 더 중요하게 생각하겠어?”
“명성보다 라면…… 돈 말씀입니까?”
“그래. 재단은 명성과 관련된 일이지만 엑슨모빌은 돈과 관련된 일이야. 그러니 엑슨모빌 쪽을 더 신경 써야지.”
한진영은 말을 마치고 입가에 가득 미소를 띠고는 화면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말을 하면 할수록 기운이 빠지는 머치 버치킨스가 이제는 생떼처럼 느껴지는 말로 마지막 발악을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