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화 시장이라는 괴물을 조종할 수는 없다
게리 챈슬러가 방으로 돌아오자 자리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일어나 손뼉을 쳤다.
“수고하셨습니다.”
“회장님. 최고였습니다.”
“아~ 오늘 깔끔하셨는데요? 지금까지 중에 오늘이 제일 좋았던 것 같습니다.”
게리 챈슬러를 향해 칭찬 일색의 말을 던지자 게리 챈슬러는 비서가 건넨 수건으로 잠시 땀을 닦아내며 말했다.
“그래? 괜찮았어?”
“좋았습니다. 너무 좋아서 말이 안 나올 지경입니다.”
타일러 버드는 호들갑을 떨었다.
게리 챈슬러는 그런 타일러 버드의 모습이 기분 나쁘지 않았던지 웃는 얼굴로 자리에 앉았다.
“자 다들 그렇게 서 있지 말고 앉아서 이야기하세.”
게리 챈슬러의 말에 서 있던 한진영 등은 자리에 앉았다.
타일러 버드는 자리에 앉으면서도 게리 챈슬러를 향해 칭찬을 멈추지 않았다.
“발표회 자리에서 회장님 모습은 눈이 부실 지경이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피부가 좋으십니까? 조명에 피부가 빛이 나서 똑바로 바라보기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하하하. 이 사람.”
게리 챈슬러는 타일러 버드를 향해 재미있다는 듯이 손가락질하고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을 돌아보고 말했다.
“이 친구 원스 파이낸스 이야기를 했다고 이렇게 좋아하는 것 좀 보게. 너무 속 보이는 거 아닌가?”
“왜 안 좋겠습니까? 오늘 같은 자리에서 원스 파이낸스를 회장님께서 말씀하신 덕분에 고객이 늘어날 게 확실하니까요.”
“그건 그래. 아마 오늘부터 꽤 많은 고객이 모일 거야.”
게리 챈슬러는 노아 스미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타일러 버드를 돌아보고 말했다.
“잘 운영해야 하네.”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블랙문 몫은 확실하게 챙겨 드리겠습니다.”
“이 사람아. 내가 내 몫 때문에 그러는 거겠나?”
게리 챈슬러는 타일러 버드의 대답에 핀잔을 줬지만 싫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
겉으로는 아니라고 이야기하지만 어쨌든 블랙문 몫을 잘 챙기는 게 가장 중요한 일이라는 것은 맞는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한진영은 조용히 게리 챈슬러 등을 바라보고 미소 지었다.
오늘 있는 컨벤션 센터의 행사는 블랙문이 주최하는 코인 관련 행사였다.
가상화폐에 대한 이해와 새롭게 출시된 혹은 앞으로 출시될 가상화폐들이 부스를 설치하고 자기들의 코인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자리를 마련한 것이었다.
게리 챈슬러는 이런 행사의 호스트로 참가하여 사람들에게 가상화폐에 대한 이해를 돕는 발표를 온오프라인으로 했다.
“회장님. 현재 집계된 온라인 참여자는 200만 명을 넘었다고 합니다.”
즐겁게 웃고 있던 게리 챈슬러는 릭 앤더슨의 말에 고개를 들어 릭 앤더슨을 바라보고 물었다.
“오늘만 말하는 건가?”
“네. 오늘만…… 그렇습니다.”
게리 챈슬러는 만족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나쁘지 않네.”
게리 챈슬러의 말에 타일러 버드가 화들짝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나쁜 정도가 아니지요. 대단한 겁니다. 1회 행사였다는 걸 생각한다면 다음 2회, 3회에는 1,000만 명 혹은 그 이상도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타일러 버드가 듣고 싶었던 말을 한 것인지 게리 챈슬러는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그러나 한진영은 이들의 행사가 2회, 3회까지 가지 않을 거로 생각했다.
오늘이 마지막이었고, 오히려 지금 눈앞에 있는 사람들 때문에 다른 행사들조차 문을 닫을 위기에 처할 거로 확신했다.
바로 한진영이 그렇게 만들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한진영의 생각을 모른 채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한동안 계속 너스레를 떨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렇게 10여 분 동안 이야기를 주고받던 게리 챈슬러는 지금까지 조용히 이야기를 듣기만 하던 한진영을 돌아보고 말했다.
“그러게 자네도 들어오라고 하지 않았나?”
자리에 있던 이들은 일제히 한진영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한진영은 그런 그들의 시선을 받으면서도 여유로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러게 말입니다. 그때 들어오라고 하실 때 들어갔어야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 들어오게.”
게리 챈슬러의 말에 타일러 버드는 마른침을 삼켰다.
세이지가 가진 월스트리트에서 위상을 생각한다면 세이지의 합류는 가상화폐 시장을 크게 뒤흔드는 뉴스가 될 게 분명했다.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컨벤션 센터에 찾은 관람객과 관계자 그리고 온라인을 통해 방송을 본 사람까지 가상화폐와 관련된 사람이라면 모두 원하고 기대했던 일이었다.
게리 챈슬러는 손을 살짝 들어 올리고 말했다.
“자네가 온다면 내 옆자리를 내어주겠네. 우리 둘이 한번 제대로 놀아 보세나.”
노아 스미스는 놀란 눈으로 게리 챈슬러를 바라봤다.
가상화폐 시장에서 게리 챈슬러의 위치는 이미 과거의 모습을 능가했다.
가상화폐에서는 게리 챈슬러는 신이고 절대자이며 선지자였다.
그가 하는 말이라면 믿고 따라야 했고, 그의 말에 토를 달면 안 된다는 인식이 파다하게 퍼져 있었다.
그런 게리 챈슬러의 옆자리를 내어준다는 뜻은 동등한 자격으로 한진영을 받아들이겠다는 이야기였다.
가상화폐 관계자들이 듣는다면 경악할 만한 제안을 게리 챈슬러가 한진영에게 내보인 것이었다.
노아 스미스는 듣지 않아도 다음 말을 알겠다는 표정으로 한진영을 바라봤다.
이런 제안을 거절할 만큼 한진영이 바보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진영의 대답은 전혀 예상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저도 그러고 싶습니다.”
예스도 그렇다고 노도 아닌 애매한 대답을 한진영이 내놓았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명분이 부족합니다.”
“명분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인가?”
“처음 회장님께서 제안했을 때 들어갔다면…… 좋았을 겁니다. 저도 그 생각을 지금도 하고 있습니다.”
한진영의 말에 게리 챈슬러는 당연한 소리라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당시에는 그러지 못했지요. 여러 가지 복잡한 이유가 있어서이지만 지금 와서 그런 이야기를 하면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한진영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게리 챈슬러가 한진영을 똑바로 바라봤다.
이제 참여하지 못하는 명분 이야기를 할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지금이라도 들어가고 싶습니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가격이 너무 올라 있습니다. 대표 코인 가격이 60,000달러가 넘고 알론 코인은 4,000달러가 넘습니다. 여기서 들어가겠다고 하면 투자자들이 저를 가만 놔두려고 하지 않을 겁니다.”
“아~ 그 이야기였나?”
게리 챈슬러는 한진영의 말에 멈췄던 고개를 다시 위아래로 움직였다.
“자네 말이 이해가 가네. 그래. 투자자들이 가만두지 않겠지.”
“그럼 투자자들이 뭐라고 하지 않을 세이지 보유 자산으로 들어오면 되지 않습니까?”
타일러 버드가 이야기를 듣다 끼어들었다.
그에게도 한진영과 세이지의 참여는 중요한 문제였기 때문이다.
타일러 버드의 말에 게리 챈슬러가 한진영을 대신해서 대답했다.
“그래선 안 되지. 세이지 인베스트먼트는 상장사라네. 주주들의 말을 무시할 수 없어. 게다가 그런 식으로 들어온다면 몇 푼 되지 않으니 들어오나 마나 한 거라네. 안 들어오느니만 못해.”
한진영은 게리 챈슬러의 말 중 마지막이 핵심이라고 생각했다.
타일러 버드의 말처럼 생색만 내기 위해 들어오는 건 게리 챈슬러도 탐탁지 않다는 것을 돌려 말한 것이었다.
타일러 버드 또한 게리 챈슬러의 뜻을 알아들었다.
그는 살짝 고개 숙여 자기가 너무 성급했음을 사과했다.
게리 챈슬러는 타일러 버드에게 괜찮다는 뜻으로 손을 들어 보이고는 한진영에게 말했다.
“그럼 어떻게 할 생각인가?”
“방법은 두 가지라고 생각합니다. SEC에서 ETF를 승인해 주거나 들어갈 만큼 충분히 가격이 떨어지는 것. 그 두 가지 중 하나만 만족해도 저는 들어가 볼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SEC와 가격.”
게리 챈슬러는 짧은 신음을 내뱉었다.
“SEC보다는 차라리 가격이 떨어지는 편이 빠르겠구먼.”
“그건 안 됩니다.”
타일러 버드가 다급히 게리 챈슬러의 말을 막았다.
가격이 떨어지면 안 된다는 본심이 자기도 모르게 나온 것이었다.
타일러 버드는 자기 목소리가 너무 컸음을 깨닫고 즉시 게리 챈슬러에게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목소리가 너무 컸습니다.”
“아니야. 자네 마음을 이해해. 가격이 떨어지는 것은 나도 원하는 게 아니니까. 나는 단지 가능성을 얘기했을 뿐이야. SEC 승인은…… 그만큼 어려운 일이니까.”
게리 챈슬러의 목소리가 가라앉아 있었다.
그가 생각하기에도 SEC 승인은 요원해 보이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한진영은 방에 들어올 때 비해 가라앉은 게리 챈슬러를 향해 이야기했다.
“그래도 되기만 하다면 SEC 승인은 새로운 시대를 여는 기폭제가 되지 않겠습니까?”
“가능만 한다면…… 자네 말대로 새로운 시대가 열리는 일이기는 하지.”
“네. 그래서 저는 직원들과 약속했습니다. ETF가 승인만 된다면 본격적으로 투자에 나서겠다고 말입니다.”
“그게 정말인가? 직원들에게 약속까지 했어?”
게리 챈슬러의 눈이 커졌다.
타일러 버드와 노아 스미스도 게리 챈슬러만큼이나 놀라고 있었다.
가상화폐에 전혀 관심이 없는 것 같았던 한진영이 직원들과 약속까지 했다는 사실이 새롭게 보였기 때문이다.
“세이지 내에서도 가상화폐에 투자하자는 말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저라고 하더라도 주주를 비롯한 투자자들을 무시하고 독단적으로 일을 진행할 수 없어 기준을 정했습니다. SEC의 승인. 그것만 된다면 투자자와 주주를 설득하는 것은 문제가 없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통과만 된다면 본격적으로 투자를 하자고 이야기했고, 그것을 염두에 두고 현재 포트폴리오를 조정하는 중입니다.”
“아~ 현재 포트폴리오를 조정하는 데 그런 의미도 있었던 겁니까?”
타일러 버드가 놀란 표정으로 한진영에게 물었다.
세이지의 포트폴리오 조정은 투자자들 사이에 큰 화제였다.
수백억 달러를 넘는 물량이 나올 때마다 시장을 휘청이게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정리 이유를 궁금해했다.
그리고 정리한 금액이 어디로 흘러갈지에 대해서도 깊은 관심을 보이는 중이었다.
그렇게 정리한 돈이 가상화폐로 들어갈 준비 중이라는 말에 타일러 버드의 얼굴이 살짝 상기됐다.
한번 들어오면 100억 달러는 우습게 들어올 자금이었기에 시장을 들썩이게 만들기에 충분했기 때문이다.
게리 챈슬러도 기대하기는 마찬가지였다.
“SEC에서 승인만 받으면 들어오겠다는 건가?”
“그것만 된다면 투자자와 주주를 설득하기에 충분할 거로 생각됩니다. 가격이 내려가도 가능한 이야기이기는 하고요.”
한진영은 은근한 목소리로 두 번째 방법도 이야기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가격이 떨어지는 것은 이미 진입한 사람들에게는 가혹한 일이니 그걸 기대할 수는 없겠지요. 저는 SEC가 지금이라도 승인을 해주면 당장 들어갈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래? SEC 승인이 명분이 된다는 말인가?”
게리 챈슬러는 한진영의 말에 턱을 쓰다듬었다.
타일러 버드는 그런 게리 챈슬러를 향해 입을 달싹였다.
당장에라도 묻고 싶은 것이 많은 듯한 얼굴의 타일러 버드였다.
그러나 생각 중인 게리 챈슬러의 모습에 조용히 생각이 끝나길 입을 다문 채로 기다렸다.
세이지가 가상화폐 시장에 진입할 명분을 이야기한 이후 게리 챈슬러는 계속 같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무슨 생각을 하는 듯한 모습의 게리 챈슬러로 인해 대화는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그럼 다음에 또 보세나.”
한진영은 다음 스케줄이 있다는 말을 남긴 채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게리 챈슬러를 향해 다음 강연 자리에 기회가 된다면 또 오겠다는 말을 남긴 채로 방을 나왔다.
컨벤션 센터는 게리 챈슬러의 강연이 끝났음에도 열기가 가라앉지 않았다.
오히려 가상화폐의 미래를 이야기한 게리 챈슬러의 강연이 막 끝나서 그런 것인지 열기는 더욱 뜨거워져 있었다.
미래 먹거리이자 미래 산업혁명의 중심에 서 있는 가상화폐를 찾기 위해 사람들은 컨벤션 센터를 돌아다니고 있었던 것이었다.
“대단하네.”
홀로 나온 덕분에 조금 전 컨벤션 센터에 들어왔을 때와 달리 주목을 받지 않았다.
그래서 한진영은 컨벤션 센터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조금 더 자세히 살필 수 있었다.
“회장님.”
조지훈은 한진영을 조심스럽게 불렀다.
“혹시 챈슬러 명예회장이 SEC를 압박하여 ETF를 승인하게 만드는 것 아닙니까?”
주변을 살피던 한진영은 조지훈의 말에 고개를 돌렸다.
조지훈은 자기를 향한 한진영의 시선을 느끼고는 조금 전 방안에서 있었던 대화를 떠올리며 말했다.
“그들의 모습을 보니 우리를 애타게 원하는 모습 같았습니다.”
“그렇겠지. 자네도 그러지 않았나? 지금 가상화폐 가격이 오르는 것에 비해 남는 것이 없는 상황이라고 말이야.”
한진영의 말에 조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진영의 말대로 얼마 전 가상화폐 분야를 보고하며 한진영에게 했던 말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리의 자금이 더욱 절실할 거야. 지금 상황에서는 상승에 대한 에너지를 모두 소진한 상태니까. 길게는 3,000달러, 짧게 봐도 10,000달러에서 60,000달러까지 쉬지 않고 달려온 시장이야. 에너지가 소진될 만해.”
“그걸 아시면서 우리가 들어갈 방법을 알려주신 겁니까? 우리가 가진 에너지를 빨아먹겠다고 눈에 불을 켜고 있는데요?”
조지훈이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한진영을 바라봤다.
숨겨도 모자랄 판에 상대에게 세이지를 끌어들일 방법을 알려줬으니 저들이 무슨 일이 있어도 방법을 해결할 거로 보였기 때문이다.
“알려줘야지 그들이 해낼 테니까.”
“그러니까요. 그들이 SEC를 압박하여 ETF를 승인하게 만들기라도 한다면 우리는 꼼짝없이 가상화폐 시장에 들어가야 하는 것 아닙니까? 60,000달러를 뚫어버린 상황에…… 제가 투자운용을 잘 모른다고 하지만 대표 코인 60,000달러 자리는 절대 들어가면 안 되는 자리라는 것쯤은 저도 알고 있습니다.”
한진영은 컨벤션 센터를 가로지르던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자기를 따라오는 조지훈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제법이야.”
“회장님.”
“그런데 생각해 봐.”
한진영은 조지훈의 머리를 가볍게 손가락으로 두드리고 몸을 돌려 다시 걸어 나갔다.
컨벤션 센터의 수많은 사람은 한진영과 조지훈 등에는 눈길도 주지 않은 채 움직이는 중이었다.
한진영은 사람의 물결을 거슬러 나가며 말했다.
“나라고 그걸 몰랐을까?”
조지훈은 한진영이 몰랐을 거로 생각하지 않았다.
자기가 생각해 낼 정도라면 한진영 또한 알고 있을 게 분명했다.
“그런데도 이야기한 거라면 뭘 거 같아?”
한진영의 말에 잠시 한진영의 말대로 생각을 한 조지훈은 컨벤션 센터 밖에 나오고 나서야 한진영을 향해 입을 열었다.
“SEC 이야기가 아니라 두 번째 방법을 그들이 선택하게 만들기 위해…….”
“그렇지.”
한진영은 자신이 없어져 갈수록 목소리가 줄어든 조지훈에게 잘했다고 큰 소리로 말하고는 어깨를 두드렸다.
“그래. 그거야.”
“두 번째…… 그러니까 가격이 낮아지면 들어가겠다는 것을 선택하기 위해 그 이야기를 꺼낸 거라는 말씀입니까?”
한진영은 복잡하기만 한 컨벤션 센터 안쪽의 상황과 달리 조금은 한가한 모습의 컨벤션 센터 밖을 천천히 거닐며 말했다.
“SEC는 죽어도 ETF를 승인하지 않을 거야. 게리 챈슬러가 아니라 게리 챈슬러의 할아버지가 오더라도 말이지.”
“그런가요?”
“그래. 그걸 승인하는 순간 SEC가 가상화폐를 인정하게 되는 거고, 그렇게 둑의 한쪽이 무너지면 달러라는 철옹성이 무너지게 될 테니까. 절대 SEC는 ETF를 승인하지 않아.”
확신에 가까운 말을 건넨 한진영에게 조지훈은 외투를 건넸다.
한진영은 조지훈이 펼쳐 보인 외투에 손을 끼워 넣으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들이 우리를 끌어들이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건 가격이 떨어지는 것뿐이야. 그리고 그들도 신규 자금이 진입하기에 가격이 너무 높다는 거에 동의하고 있어. 그래서 가격을 떨어뜨릴 거야.”
한진영은 찬바람을 맞으며 잠시 눈을 감았다.
앞으로 벌어질 일을 이미지 트레이닝을 통해 미리 머릿속에서 그린 후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가격을 떨어뜨리는 게 아니라 떨어지는 가격을 묵과하는 거지. 그리고 적당히 가격이 떨어지면 우리를 끌어드리려는 게 그들의 계획일 거야. 하지만 사건은 언제나 ‘적당히’라는 생각하는 순간 덮쳐오기 마련이야. 자기들이 가격을 결정한다고 생각하겠지만 시장이라는 괴물을 조종할 수는 없는 법이니까.”
한진영은 눈을 뜨고 이제 알겠냐는 듯한 시선으로 조지훈을 바라봤다.
그러나 조지훈은 여전히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한진영은 그런 조지훈의 모습에 크게 웃고는 멈춰 선 차에 올라탔다.
한진영과 조지훈을 태운 차는 광란의 열기가 들끓고 있는 컨벤션 센터를 떠났다.
애드벌룬에 펄럭이는 게리 챈슬러의 사진이 떠나는 한진영을 처량하게 바라보는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