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화 〉16화
파티 등록을 마친 나는 사무실을 마련하고 필요한 집기를 사는 일을 했다.
그 사이 한두 번 C급 게이트에 들어가서 사냥을 했는데, 예전과 버는 돈의 단위가 달라진 만큼 더 나은 수준의 사무실을 꾸릴 수 있었다.
빈 사무실에 앉은 나는 노트북을 켰다.
“하아아......”
현실은 역시 냉혹하다는 걸까?
파티 등록을 마친 뒤 바로 파티원 모집 공고를 올렸건만, 신청자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래도 10년 전에는 헌터 일을 하는 동안 만들었던 인맥으로 어떻게 파티를 만들고 굴릴 수 있었는데, 지금은 완전히 제로부터 시작하는 느낌이었다.
‘하긴, 누가 들어오겠어.’
C급에 C종 서포터가 파티장으로 있는 곳인데.
헌터들을 탓할 수만도 없는 일이었다. 이 바닥에는 정말 다양한 인간군상들이 있으니까.
신입 헌터들을 속여서 업계 상식으로는 있을 수 없는 가입비를 받고 잠적한다든가, 여자 헌터들에게 성희롱을 한다든가 하는 쓰레기들이 넘쳐나는 업계였다.
그런 정보들이 웬만큼 공유되는 만큼 믿을 수 없는 곳에는 헌터들이 잘 지원하려고 하지 않는다.
나는 양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이거 절대 안 되겠는데.’
임무는 한 달 안에 나를 제외한 네 명의 헌터를 모집하라는 것이었다.
대충 생각은 딜러 둘, 힐러 하나, 탱커 하나를 모집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상황이 이렇게 되자 어떻게든 구색을 맞출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거라도 할 수 있으면 다행이지.’
고민하던 나는 문득 얼마 전에 <코리아헌터즈>에서 받은 쪽지를 떠올렸다.
‘나를 인터뷰하고 싶다고 했지?’
솔직히 지금은 그 사이트에 대한 감정이 썩 좋지 않았지만, 어쨌거나 <코리아헌터즈>는 가입된사람들의 숫자가 어마어마한 초대형 사이트다.
아무리 작은인터뷰라도 올라가기만 하면 몇천 조회 수 이상은 나올 터였다.
‘거기서 파티를 개업했다는 사실을알리면......’
확실히 홍보가 될 것이다.
지금은 개인의 감정을 앞세울 때가 아니었다.
15년간 겪어보아서 알지만, 이 바닥은 냉혹한 세계이니까. 어떤 의미에서는 사회의 일반적인 통념조차 무시되는 정글에 가까웠다.
‘이것도 기회이지.’
15년간 한 번도 해보지 못했던 <코리아헌터즈>와의 인터뷰.
그 요청이 지금 타이밍에 들어온 것도 어떤 의미에서는 기회일 수 있었다.
나는 <코리아 헌터즈>에 접속하여 기자에게 온 쪽지에 답장을 보냈다.
#
인터뷰는 신장개업한 내 사무실에서 진행되었다.
당연히 내 목적은 파티 사무소를 개업했다는 사실을 알리는 것이었으므로 장소를 이곳으로 정했다.
시간에 맞추어 여기 찾아온 것은 여기자 한 명과 카메라기자 한 명이었다.
여기자는 사이트 동영상 이곳저곳에서 가끔 보았던 기자였다.
꽤 예쁜 용모이지만 실제로 보니 약간 인상이 얄밉고 몸짓에 허세가 배어있었다.
파티장 일을 오래 하다 보면 이런 유형의 사람을 많이 만나게 되므로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누추한 곳까지 와주셔서감사합니다.”
“아, 네......”
누추한 곳이라고 겸양을 떨면 ‘아닙니다.’라는 대답이 먼저 나와야 하는 것 아닌가? 흥.
나름대로 신경 써서 꾸민 사무실인데.
“차 가져오겠습니다. 뭘로 드릴까요? 커피? 녹차?”
“아니요. 저희가 좀 바빠서요. 얼른 진행하고 끝내기로 하죠.”
김수연 기자는 대충 소파에 앉아서 다리를 꼬았다.
“네......”
카메라는 즉시 돌아갔다.
“안녕하세요, 조태웅 헌터님.”
“안녕하십니까.”
“오늘 굳이 이곳으로 저희를 오라고 하신 이유가 있나요? 이곳은 어디인가요?”
카메라가 사무실을 쭉 훑었다.
의도야 어찌 되었든 나는 그 질문이 반가웠다. 개인적인 인터뷰 목적을 밝힐 절호의 찬스이기 때문에.
나는 만면에 뿌듯한 표정을 지은 채 대답했다.
“제 사무실입니다.”
“개인 사무실이요?”
“아니요. 얼마 전에 파티를 등록했거든요. 지금파티원을 모집 중입니다.”
“아......”
김수연 기자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뭔가 불길했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원래 헌터들을 상대하는 기자는 웬만큼 기가 세야 할 테니까.
“전에도 파티장을 하셨었죠?”
오올, 이 여자 그걸 알고 왔구나. 역시 인터뷰는 사전조사가 기본인가 보다.
“네, 10년 동안 파티를 운영했습니다.”
“결국 지난 달에 폐업을 하셨고요. 그런데 한 달 만에 다시 사무실을 열다니, 정말 빠르시네요.”
“운이 좋았습니다.”
“운이라......”
김수연이상체를 내밀었다.
“운이 아니라 그냥 열심히 하신 것 아닌가요? 사실 이게 인터뷰 주제이기도 한데, 지난 한 달간 게이트에 정말 많이 들어가셨습니다. D급 게이트에는 일주일에 네다섯 번, 그리고 최근에는 C급 게이트까지 들어가셨는데요. 상식적으로는 있을 수가 없는 일이라 헌터들 사이에서 화제입니다. 어떻게 이 일이 가능한 거죠?”
“물리적으로는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다만 몸관리를 위해 자제하는 것이죠. 아시다시피 헌터의 체력과 마나는 일정 기간 회복을 필요로 하니까요.”
“그걸 무시하고라도 열심히 하셔야 할 이유가 있으셨나요?”
“제가 하고 싶은 일이니까요.”
“네?”
“파티를 운영하는 것은 제가 정말로 하고 싶고 좋아하는일입니다. 그것을 그만두었을 때 굉장한 좌절감을 느꼈습니다. 그대로 포기하느니 다시 한번도전해보자 생각한 것이죠.”
“아...... 듣던 것과 같군요.”
“네?”
“얼마 전에 조태웅 헌터님 파티에서 탈퇴한 멤버들이 파티를 만든 사실은 알고 계신가요?”
“아, 네. 얘기들었습니다.”
“그분들은 조태웅 헌터님의 파티 운영 방식에 불만이 많으셨던 것 같더라고요. 특히 열정만 앞세우는 꼬......”
“꼰대요. 네, 저도 그 인터뷰 봤습니다.”
“인터뷰 보셨다면 이야기가 빠르겠네요. 그분들의 그런 얘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와, 이거 보통이 아니네.
괜히 내게 인터뷰 요청을 한 게 아니었다.
가장 조회 수를 많이 뽑을 수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싸움 붙이는 것이니까.
헌터들 간의 갈등을 조장해 치고받고 싸우게 만드는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런 것들이 좋게 보이지 않아 관심을 갖지 않았었지만, <코리아헌터즈>의 대부분 인기 동영상은 그런 것이 주제였다.
‘제대로 물 생각이구나.’
한 달간 게이트에 집중적으로 들어가 돈을 번 헌터라는 것도 화제거리일진대, 거기에 신생 파티와 싸움까지 붙일 수 있다면.
나는 정신 바짝 차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여자는 나를 철저하게 물어뜯으려고 온 것이니까.
“저는 그분들 생각을 십분 존중합니다. 당연히 나이 차이가 많이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의견 차이가 있을 수 있죠. 저는 <슈퍼스타즈>가 앞으로 승승장구하길 바랍니다.”
“그런데 말이죠.”
김수연이 입가에 비웃음을 띠었다.
“굳이 파티장을 고집하셔야 할 이유가 있나요? 누가 봐도 C급, C종 서포터면 파티를 꾸리기에는 부적합하지 않나 여겨지는데요. 혹시 이번에도 순진한 신입 헌터들을 희생양을 만드는 거 아니냐...... 이런 의견이 있어서 질문드립니다.”
그런 의견은 나는 본 적이 없다.
애초에 내가 파티를 꾸린 사실을 아는 사람은 없으니까.
나는 표정을 무너뜨리지 않으려고 애쓰며 대답했다.
“희생양이라니요. 저는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애초에 파티에 들어오는 것은 헌터님들의 결정사항입니다. 저는 그냥 제안만 드리는 거죠.”
“상식적으로 조태웅 헌터님 파티에 수준 높은 헌터가 들어올 것 같지는 않고...... 그렇다면 신입 헌터들이 들어오게 된다는 말인데, 그들은 정보가 적고 어떻게든 경험을 쌓고자 하는 약자들입니다. 그들이 만약 조태웅 헌터님의 강압적인 파티 운영 방식 때문에 피해를 본다면......”
“이것 보세요.”
나는 더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상대는 애초에 나를 죽이려고 온 사람이었다.
포커페이스로 참아낸다는 것은 웬만큼 지위가 있는 있는 헌터나 길드에서 할 수 있는 일이다.
이대로 가면 나는 완전히 죽어버린다.
내가 망하면 책임질 사람은 아무도 없다.
“말씀을 왜 그렇게 하십니까? 의견이라는 것은 양쪽 모두의 것을 들어봐야 하는 것 아닌가요? 이동구가 그렇게 말하면 진실이 되는 건가요? 기자님이 저와 함께 게이트에 들어가 보셨나요?”
“워, 워. 흥분을 좀 가라앉히시구요. 저는 그냥 정황만 두고 말씀드리는 것뿐입니다. 그리고 이 부분도 좀 궁금한데요.”
이수연 기자는 다리를 반대로 꼬며 입가에 더 진한 웃음을머금었다.
“헌터님이 지난 한 달간 진행한 게이트 공략은 대부분 혼자서 한 것이었습니다. 하루아침에 능력이 진일보한 게 아니라면 어색한 일이 아닌가요? 여기에 대해서도 의혹이 작지 않습니다.”
물론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이 인터뷰에서 내 능력을 밝힌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아니, 내 능력은 회귀한 것이라 앞으로도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제 공략은 모두 절차대로 진행되었습니다. 일단 게이트에 들어가면 꼼수는 있을 수 없습니다.”
“혹시 등급이 오르신 건가요?”
이수연의 표정을 보자니 내가 폐업 후 등급 검사를 했고, 결과가 바뀌지 않았다는 사실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등급은 오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제 능력은 이전과 같지 않습니다. 그 정도만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흐음......”
이수연은 웃음을 머금은 채 나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나는 그 표정과 흐름에서 완전히 덫에 걸렸음을 느꼈다.
“잘 알겠습니다.”
인터뷰가 마무리되었다.
내가 새로 파티를 꾸렸다는 사실을 밝히기는 했지만, 득보다 실이 더 많은 인터뷰였다.
기자가돌아간 뒤에 현자 타임이 와서 멍하게 앉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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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무실에서 혼술을 마셨다.
홀짝홀짝 술을 들이켜며 생각에 잠겨 있었더니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도 어둑어둑해졌다.
이번 인터뷰로 깨달았다.
이 바닥에서 나는 여전히 ㅈ밥이라는 사실을.
갑자기 놀라운 능력을 얻어 돈도 벌고 스킬도 얻었지만, 이 사회는 아직 나를 조롱거리로 삼고 있었다.
‘씨발......’
내 머릿속에 이동구와 이수연 기자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지난 15년간 겪었던 거지 같은 일들이 새삼 떠올랐다.
그런 것들을 인내한 것은 내가 스스로 ㅈ밥이라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구체적으로 그렇게 여기지 않았어도 무의식 속에서는 알고 있었다.
내가 B급 헌터가 되더라도 올라갈 수 있는, 그리고 누릴 수 있는 한계선이 분명하게 존재했다.
A급, S급 헌터들의 삶은 마치 구름 위의 그것처럼 나와는 무관하다고 생각했었다.
“씨발!”
나는 손안에 들고 있던 글라스 안의 소주를 한 번에 들이켰다.
‘이렇게 살면 안돼!’
480위 파티의 파티장에게, 그리고 기자 나부랭이한테 조롱이나 당하는 삶을 살아서는 안 된다.
나는 더이상 그렇게 살지 않아도 되는 능력을 얻었다.
내 머릿속에 번쩍 영감이 떠올랐다.
아직 정하지 않은 파티명.
거기에 내가 살게 될 새로운 삶을 투영해 넣으리라.
“온리갓......”
나는 황홀한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것을 내 새로운 파티의 이름으로 정해버렸다.
“흐흐흐.” 웃으면서 관리소에 메일을 보냈다.
이때는 이 일이 이불킥을 하게 될 사건으로 번지게 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