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9화 〉59화
그는 조태웅에게 뭔가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났다고 생각했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뭔가 외모에서 조금 빛이 나는 것 같다.
나이도 예전보다 좀 젊어 보였고, 엄청난 미모의 여자헌터와 들어오면서도 굉장히 여유가 있어 보였다.
누가 보더라도 둘 사이에는 모종의 연애감정이 있어 보인다.
혼자 남아서 물끄러미 지켜본 결과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여자 쪽이 더 조태웅에게 더 관심이 있는 것 같았다.
'뭔가 있어.'
그리고 그것은 굉장히 구린 무엇일 것이다.
'역시 인간이라면 버틸 수 없는 법이지.'
그는 누구보다도조태웅이 처한 상황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그 정도로 열심히 했는데도 돌아오는 게 쫄딱 망하는 것뿐이라면 사람이 미칠 수밖에 없다.
그리고 헌터는 일반인보다 훨씬 불법적인 일에 손을 댈 기회가 많았다.
사람이 해까닥 해서 마음을 달리 먹는다면 무슨 일이든 못하겠는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조태웅에게 구린 무언가가 있을 거라고 확신한 그였다.
가만히 두 사람을 지켜보던 그는 더 믿을 수 없는 장면을 목격했다.
지배인과 뭐라고 대화를 나누던 조태웅이 여자 화장실에 들어간 것이다.
화장실은 식당 구석에 있었기 때문에 자신처럼 계속 조태웅을 보고 오늘 있지 않았더라면 아마 그 장면을 알아채기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모든 상황을 놓치지 않고 보았다.
지배인이 지시하여 여자 화장실 앞에 직원에게 수리중이라는 팻말을 놓게 한 것까지.
핸드폰으로 들어 그 모든 장면을 촬영했다.
'너는 내가 보내주마.'
웬일인지 모르겠지만 조태웅과 자신의 인연은 파티를 나온 뒤에도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 전개가 자신에게 결코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조태웅은 정말로 눈에 가시였으니까.
헌터계에 몸을담고 있으면서, 그것도 경력까지 많으면서, 노력으로 뭔가가 될 거라고 생각하다니.
멍청한 것에도 정도가 있어야지.
그런 인간은 보고만 있어도 답답하고 짜증이 난다.
할 수 있는 한 망가뜨려 주겠다고 마음먹은 그였다.
오늘은 여자에게 바람을 맞아 기분이 더 안 좋았고, 이연화의 일을 생각하자 속이 뒤집어졌다.
게다가 미녀 헌터를 식당에 데려온 조태웅이 이번에는 그녀를 따라 여자 화장실로 들어갔지 않은가?
짜증에 짜증을 더하는 일이었지만 반대로 하면 이것은 하늘이 준 기회였다.
그래서 그는 촬영한 동영상을 재빨리 이연화에게 보냈다.
히죽히죽 웃으면서 답장을 기다렸는데, 오래지 않아 그녀에게 메시지가 왔다.
보통 때 안부를 빙자한 데이트 신청을 할 때는 절대로 답장을 보내지 않던 그녀였지만, 이번에는 즉시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다.
그 부분이 짜증났지만 그녀를 조태웅에게서 떼어 놓는다면 자신에게 다시 기회가 돌아올지 몰랐다.
웃는 낯으로 이연화에게 온 메시지를 확인했다.
- 뭐죠? 그래서요?
메시지에서 찬바람이 쌩쌩 날렸다.
혹시 자기가 촬영한동영상에서 조태웅의 얼굴이 제대로 찍히지 않은 건가 싶어서 이동구는 다시 한번 영상을 확인했다.
하지만 의심할 여지 없이 조태웅의 얼굴이 제대로 찍혀 있었다.
그래서 이연화가 이 동영상을 확인하지 않았다고 생각한 그가 다시 메시지를 보냈다.
- 혹시 영상 보셨나요? 조태웅이 여자 화장실로 들어갔는데.
그는 조태웅이 여자와 식사하는 장면도 촬영해 두었다.
엄청난 미녀 헌터와 그가 함께 있는 것이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해서 촬영해 두면 이게 나중에 도움이 될 것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래서 이번에는 그 영상도 같이 보냈다.
이번에는 이연화에게서 더 빨리 답신이 왔다.
- 그래서요?
이동구는 답답함을 느꼈다.
'이 미친년, 진짜로 돌아이가 맞네!'
짜증이 난 그는 이연화와 이야기하는 것을 포기하고 이번에는 다른 방법이 없을까 하고 생각했다.
그러자 떠오르는 이름이 하나 있었다.
김수연.
그녀는 <코리아헌터즈>의 기자였다.
자신의 파티와 인터뷰를 했었고, 조태웅과도 인터뷰를 했던 여자였다.
그는 알고 있었다.
이 김수연이라는 여자가 조태웅과 한 인터뷰, 그리고 그것에 대한 반응을 무척 즐기고 있다는 것을.
그녀라면 조태웅에 대한 새로운 소식을 원할 것이었다.
더구나 예쁜 여자 헌터가 식당에 나타나 그녀를 좇아 화장실로 들어간 구리구리한 일 같은 것은 더더욱.
그래서 그는 김수연에게 전화했다.
신호음이 여러 번 울리고 나서야 상대가 전화를 받았다.
- 여보세요?
"안녕하십니까, 기자님, 저 이동구입니다. 잘 계셨는지요?"
- 이...... 누구요?
전화기 안에서 다소 사람을 짜증나게 하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실 웬만한 사람들은 헌터 앞에서 꿈벅 죽기 마련이다.
헌터의 비위를맞추려고 애를 쓴다.
하지만몇몇 예외가 있기도 한데, 그중 하나가 <코리아 헌터즈> 기자였다.
<코리아헌터즈>는 자타공인 대한민국 최고의 헌터 언론 사이트다.
헌터도 이래저래 언론플레이를 해야 할 일이 많기 때문에, 당연히 <코리아헌터즈>와 헌터들의 관계는 긴밀할 수밖에 없었다.
그 긴밀한 관계는 대형 길드와 클랜에까지 뻗쳐 있고, 그렇다는 것은 결국 등급이 낮고 보잘것없는 파티나 헌터들에게는 꽤나 냉정한 관계가 성립되어 있다는 뜻이었다.
등급이 낮은 헌터와 파티들은 <코리아 헌터즈에> 잘 보이기 위해 애를 썼다.
자신도 그런 헌터계의 생리를 잘 알고 있었고, 이번에 파티를 만든 뒤 인터뷰를 한 것도 알게 모르게 뒤에서 로비를 한 결과였다.
이동구는 김수연의 반응이 짜증났지만 그런 심정을 꾹 누르고 말을 했다.
"전에 인터뷰했던 신생 파티의 파티장입니다."
그제야 전화기 안에서 기계적이고도 심드렁한 반응이 나왔다.
- 아아, 이동구 씨요~
그래도 여전히 이름을 틀린다.
이 여자는 분명 자신을 기억하지 못 하는 게 분명하다고 생각하면서 이동구는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다름이 아니라 조태웅 건으로 연락드렸습니다."
- 네? 조태웅이요?
이번에는 반응이 달랐다.
대번에 관심을 드러내는 김수연이었다.
- 아! 이제 생각났네요! 그때 저랑 같이 인터뷰했던 분이시죠?
"네...... 맞습니다.”
- 그때 조태웅에 대해 안 좋은 쪽으로 말씀하셨었고.
"네, 맞습니다."
- 조태웅 관련 건으로 연락주셨다고요? 이번에는 무슨 일이죠?
김수연은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강하게 조태웅에게 호기심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도 그렇겠지.’
조태웅의 인터뷰는 <코리아 헌터즈> 안에서 쏟아지는 인터뷰 기사 중에서도 넘사벽의 조회수를 자랑했고, 동영상 재생 횟수도 엄청났다.
여러 군데서 그 인터뷰 기사를 재인용했고, <코리아헌터즈> 내부에서 이번 건으로 김수연의 입지가 높아졌을 것은 안 봐도 비디오였다.
신생 파티의 인터뷰 따위와는 비교도 안 되는 화젯거리였던 것이다.
"저한테 놈에 대한 흥미로운 자료가 있습니다."
- 흥미로운 자료요? 그거 조태웅 거 확실하죠?
"물론이죠. 지금 보내드리겠습니다."
이동구는 잠시 전화기에서 얼굴을 떼고 자신이 촬영했던 동영상을 김수연에게 보내주었다.
상대가 그것을 확인하는 동안 조금 시간이 걸렸다.
- 이거 진짜 맞죠!?
김수연의 목소리에서 흥분이 느껴졌다.
"당연히 진짜죠. 제가 지금 그 식당에 있습니다."
- 우와, 진짜 대단한 걸 건지셨네요!
이동구는 기자가 아니었지만, 조태웅에 대해서 자기와 똑같은 심정으로 공감해주는 상대가 나타났다는 것이 기뻤다.
만약 자기가 여자 헌터 페티시가 아니었다면, 다소 떨어지는 외모에도 불구하고 김수연을 유혹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로.
"이걸로 뭘 할 수 있을까요?"
이동구는 흥미진진한 마음으로 물어보았다.
- 할 수 있는 건 많죠. 그래도 이왕이면 좀 크게 만드는 게 낫지 않겠어요?"
정말로 마음이 통하는 여자다.
"제가 어떻게 하면 될까요?"
- 일단은 상황이 어떻게 되어 가는지 지켜봐 주세요. 이왕이면 더 흥미로운 것을 찍어서 보내주시면 좋고요.
"아, 잘 알겠습니다. 그리고 가능하면 저희 파티와 다시 한번 인터뷰를 해주셨으면 하는데......"
- 아, 물론이죠. 조태웅 건만 잘 해 주시면, 인터뷰가 문제겠어요?
김수연은 마지막에 자신이 한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면서 전화를 끊어버렸다.
이런 말을 덧붙이고서.
- 조태웅 잘 좀 지켜봐 주세요. 꼭 좀 부탁드릴게요~~
이동구는 심정이 복잡했다.
자신에 공감하는 상대와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조태웅을 통해서 자신이 인터뷰 부탁을 해야 하다니.
그래도 바꿔 생각하면 일석이조였다.
조태웅도 넘어뜨리고 <코리아헌터즈> 기자와 친분도 쌓을 수 있는.
그는 김수연이 말한 대로 상황을 잘 지켜보기로 했다.
여자 화장실에들어갈 수는 없으니, 일단은 여기 앉아서 지켜보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지만.
"후후후."
그는 어쩌면 오늘 함께 식당에 온 여자 헌터와 일이 잘 풀리지 않은 게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녀와 함께 지금쯤 호텔에 있었을 거니까.
'진짜 나는 난놈이라니까?'
운은 언제나 자신과 함께한다.
그렇게 생각하며 히죽대는 이동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