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7화 〉67화
그녀의 까무잡잡하고 탄탄한 다리는 남자의 자지를 언제나 일으키고 사정의 욕구를 일으킬 만했다.
그런 그녀가 수 페이지에 걸쳐 노트에 가득 자지와 보지 그림을 그리며 흥분하고 있었다니.
현실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세계 만세!
세린은 괴로운 얼굴로 말을 이었다.
“그곳은 도를 넘은 자들이 가는 종착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도를 넘었다고?”
나는 여전히 정보가 부족함을 느꼈다.
어떤 식으로 도를 넘었다는 걸까?
이곳에도 법률이 있어서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이 특정한 장소로 떨어지는 걸까?
하지만 이어지는 세린의 설명은 내 예상과는 좀 달랐다.
그녀가 말한 ‘도를 넘었다’는 것이 그야말로 적절한 표현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가질 수 없으면 더 가지고 싶어지는 법이지요.”
마치 도를 논하는 현자처럼입을 뗀 세린이 계속 말했다.
“보통은 손에 넣을 가능성이 0%인 것은 완전히 포기하게 마련입니다. 더구나 그것이 기억도 안 날 만큼 오래된 역사라면 더더욱 그렇게 되는 법이죠. 하지만 인간의 본능은 아무래도 거스리기 어려운 측면이 있지요.”
세린의 말은 다소 빙빙 도는 느낌이 있었지만 이것은 그녀의 성격에 기인한 바이므로 나는 별로 다그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그녀의 말투나 그 말의 내용이 불길하다는 인상만 계속 받을 뿐이었다.
“남자님도 아시다시피 이곳에는 남자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성욕은 존재하지요.”
왠지 앞서 걷고 있는 칸나의 등이 움찔한것 같았다.
‘본능을 거스르기 어렵다는 것은 그 뜻인가?’
여기서 언급되는 본능이란 어렴풋이 짐작한 대로 성욕인 모양이었다.
확실히 그런 측면이 있지.
여자도 남자가 그런 것처럼 성욕을 가지고 있다.
남자가 없는 세상에서 그것을 풀 방법은 전무하다고 보아야겠지.
물론 김소희가 몸소 보여준 대로 동성끼리 그것을 즐기는 방법도 있지만 일반적이지는 않다.
이세계 여자들 전부가 그런 식으로 성욕을 푸는 그림은 좀처럼 그려지지 않았다.
특히 지금 대화를 나누고 있는 세린이 누군가와 가위치기를 하는 장면은 상상하기 어렵다.
물론 진짜 그런 장면이 펼쳐진다면 레어함이 더해져 정말로 자극적이겠지만.
나는 언젠가 꼭 차은아와 세린의 ‘조건’이 충족되기를 바랐다.
그렇다면 다소 억지로라도 그녀들의 가위치기를 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것이......”
아무래도 말하기 어렵다는 듯 세린이 도리질을 쳤다.
하지만 단호하고 믿음직한 성격의 그녀답게 곧 결심을 하고 말을 이었다.
“몬스터 쪽에는 있지요.”
“음......”
나는 대번에 그 말의 뜻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있을 것이다, 아마.
몬스터에게도 성별이.
그리고 성욕을 주체하지 못하고 도를 넘은 여자들이 택하는 최종 선택지가 무엇일지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 여자들이 그곳에......”
“네. 인간과 몬스터의 교합은 저희 세상에서 금기입니다. 그래서 그녀들은 이곳에서의 삶을 포기하고 그곳으로 간 것이지요. 인간계와 몬스터가 사는 땅, 그 경계에 있는 곳입니다. 그곳에는 추악한성욕밖에 남은 것이없습니다.”
‘확실히......’
왜 이렇게 세린이 이 화제에 대해 말하기를 어려워한 것인지 알 수 있었다.
나라도 그랬을 것이다.
상상만 해도 끔찍하니까.
성욕에 사로잡힌 나머지 인간이기를 포기했다는 것은.
그런데 왜 ‘그곳’과 ‘이동구’가 연결이 되는 걸까?
칸나는 왜 이동구를 거기 데려가야겠다고생각한 거지?
“그곳에 떨어뜨리면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지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세린이 말했다.
“아......”
그렇구나.
나는 그림이 그려졌다.
다소 유쾌하지 않지만, 나는 절대로 그런 상황에 처하고 싶지 않지만.
성욕에 눈이 멀어 인간이기를 포기한 여자들이, 남자를 보게 되면 어떻게 될까?
그는 어떤 처지에 놓이는 걸까?
나는 검은 천에 꽁꽁 묶인 이동구가 새삼 측은하게 보였다.
‘그래도 그건 아니지.’
나는 놈이 내게 한 행동들을 떠올려보았다.
파티에 있을 때 분탕질을 쳤던 것, <코리아헌터즈>에서악의적인 인터뷰를 한 것, 나와 차은아가 함께 있는 장면을 지켜보다가 화장실에까지 따라 들어오려고 한 것.
무엇보다 ‘쓰레기 게이트’에서 그는 나를 죽일 듯이 덤벼들었다.
당연히 나와 달리 놈은 나를 죽이는데 전혀 망설이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바뀌어야지.’
사는 세상이 달라진 만큼 내 마음가짐도 달라져야 한다.
이동구가 내 힘으로 갱생시키기 어려운 놈이라는 건 이미 확인했다.
그렇다면 외부의 힘을 빌려야하지 않겠는가?
“거기서 다시 나올 수는 있어?”
“네,가능은 합니다만, 이미 그곳에 떨어졌던 인간은 전과 같은 사람이 아닐 겁니다.”
“그럼 됐어.”
이동구를 개과천선시키기에는 그곳이야말로 적당한 곳일지 모른다.
개과천선이 안 되면 계속 그곳에 내버려두면 된다.
이동구는 성욕이 강한 놈이다.
놈이 여자 헌터에 집착하는 것을 나는 진즉부터 알고 있었다.
놈도 성욕을 아낌 없이 푸는 기회가 될 것이다.
물론 나라면 도를 넘은 여자들이 최후에 이르게 된다는 그곳에 절대로 떨어지고 싶지 않지만.
‘그러게 왜 까불었냐, 동구야.’
버르장머리없이 형한테.
나는 그를 금단의 영역에 떨군다는 찜찜함을 거두었다.
앞으로도 종종 이런 일이 생길지 모른다.
아니, 반드시 생기겠지.
그것도 많이.
흙수저였던 헌터가 인생역전을 하는 것이 순탄하기만 할 리가 없다.
적들이 그런 것처럼 나도 필요하다면 인간성을 버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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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의 구조는 현실과는 많이 달랐다.
기본적으로 몬스터 서식 지역과 인간이 거주하는 지역이 구분되어 있었다.
우리는 빠르게 인간의 거주지역을 벗어났다.
단순한 형태의, 도저히 부유하다고 할 수 없는 형태의 집들이 드문드문 펼쳐져 있는 주거지역은 흡사 암울한 배경의 디스토피아 소설을 연상케했다.
이런 지하에서, 몬스터들과 인접한 상태로 살아간다는 것은 확실히 유토피아보다는 디스토피아에 가까울 터였다.
이곳에서 ‘남자’의 존재는 무척 특별하다.
따라서 눈에 띄면 대단히 귀찮은 일이 벌어질 터였다.
다행인 점은 이곳의 시간이 밤에 해당되어서 대부분 사람들의 활동이 정지된 시점이라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칸나처럼집안에서개인적인 시간들을 보내고 있었다.
현실에서처럼 유흥이라는 개념이 많지 않은 곳이라 밤에 쓸데없이 돌아다니고 하는일은 없는 모양이었다.
적어도 내가 받은 인상은 그러했다.
우리 세 사람은 저마다 능력자이고, 최근 꽤 성장했기 때문에 빠른 속도로 장시간 달린다고 해도 크게 체력적인 부담은 없었다.
칸나는 남자 한 명을 어깨에 짊어진 상태인 데도 아무렇지 않게 잘 달렸다.
역시 저렇게 건강한 각선은 쉽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무시무시한 배경 설명이 있는 장소라서 혹시 엄청 멀지는 않을까 생각했지만 그런 우려와는 달리 30분쯤 이동을 하여 도착했다.
멀리서 등골이 오싹하게 하는 희한한 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과거 사람들이 빠져죽었다는 호수에서 깊은 새벽에 들려올 법한 소리였다.
처음에는 흐느끼는 소리 같다고 느꼈지만, 점차그것이 신음에 가깝다는 것을 깨달았다.
당연히 그러하리라.
세린의 설명을 듣자하니 그곳은 정도(正道)를 벗어난 여자들이 이르는 곳이라고 하니까.
더 기분 나쁜 것은 인간 여자가 내는 듯한 그 신음에 섞여 몬스터들의 끌끌대는 소리가 들린다는 것이었다.
놈들도 쾌감이 뻗쳐 뱃속 깊은 곳으로부터 만족성을 발하는 것 같은데 그것이 알고 들으려고 하니까 무척 듣기 괴로웠다.
나는 무척 한 가지 생각이 떠올라 세린에게 물었다.
“그러면 거기 몬스터들도 많이 있는거 아니야?”
“그렇죠.”
세린은 떠올리기 괴롭다는 얼굴로 말했다.
그러고 보니 얘는 어떻게 거기를 알고 있다고 했었지?
그 대답은 그녀를 통해 즉시 들을 수 있었다.
“검사의 수련과정 중에 그곳에 있는 몬스터들을 죽이는 것이 있습니다.”
“아......” 처음에는 ‘그렇구나.’ 하고 생각없이 납득하려다가 그런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왜?”
“만족에 취해 기가 빨린 몬스터들은 상대하기 쉽기 때문이죠. 놈들은 초보 검사에게 훌륭한 연습 상대가 됩니다. 하지만 그것을 위해서......”
“안 보면 좋았을 법한 것들을 봐야했겠구나.”
“네...... 하지만 그것은 정신을 단련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그런 취지도 있는 것이지요.”
“음.”
검사의 수련 과정은 빡센 모양이었다.
적어도 왠지 집에서 자지 그림이나 그리고 있는 칸나보다는 어려운 과정을 거치고 있는것 같았다.
그런 일을 겪으면서 성장했기 때문에 세린이 다른 여자애들보다 더 믿음직한 것일까?
물론 그렇다기보다는 그녀 자체가 지닌 개인성의 영향이 더 크겠지만.
나는 수련 과정의 검사들에게 금단의 영역에 있는 몬스터들을 사냥하게 하는 것이 단순히 수련 목적만 있는 것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놈들이 인간의 거주지역까지 흘러들게 된다면, 인간과 교접하는 것에 맛들인 놈들이 몰래 스며든다면 끔찍한 일이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나는 묻기는 조금 꺼림칙하지만 호기심이 생겨서 세린에게 물어보았다.
그것은 앞으로 이동구의 안위에 관련된 문제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