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76화 〉76화 (76/92)



〈 76화 〉76화

그가 일컫는 것은 측정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지 절대로 실망하지 말라고 했던자기 말에관한 것이었다.

"너도 내가 했던  기억하지?"
"어휴......"


일방이 너무 자신감에 차 있으면 다른 쪽도 결국 전염이 되기 마련이다.


"이러다 진짜 등급 못 오르면 어떡하냐?"

그렇게 말하는 박동오도 점점 기대가 되는 얼굴이었다.

과거와 달리 단 10분 만에 나온 결과표로 들고 직원이 나왔다.


그의 표정은 업무시간 동안의 다른 일반적인 공무원들처럼 무표정이었기 때문에 그것만 보아서는 결과가 어떻게 나왔는지 짐작하기 어려웠다.

담담한 얼굴로 공무원이 말했다.

"축하드립니다."
"나이스!!!"

기뻐하며 두 주먹을 불끈 쥔 것은 내가 아니라 박동오였다.


"내가 말했잖아."
"어휴~  자식. 기다려. 나 일차 내고 테니까."
"방금 출근한 놈이 무슨 일차를 낸다는 거야? 아깝잖아."
"바보.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거다. 그래서 내가 평소에 일차  쓰고 열심히 일  거야."

딱히 공감이 가는 말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함께 기뻐할 사람이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었다.

물론  이런 소식을 기뻐해 줄 사람은  있었다.


내가 최근에 영입한 네 명의 여자 헌터들.

그녀들은 내가 등급이 올랐다는 소식을 자기 일처럼 기뻐해 줄 것이 틀림없었다.

정말 인생이 이렇게도 달라질 수 있는 거구나.


물론 일반적이지는 않다.

누가 나처럼 이런 이세계에 오갈 수 있는 능력을 얻어 등급이 오르겠는가?


#


아직 오전 시간이었지만 박동오는 내게 술을 마시자고 이끌었다.

그는 이 시간에도 술을 마실 수 있는 가게를 알고 있었다.


그도 그럴 수밖에, 헌터 관리소에서 공무원으로 일하면, 그것도어느 정도 직급이 있는 공무원이라면 헌터를 접대하는 일이 많았다.

현대 사회에서 헌터는 그야말로 걸어 다니는 권력이었기 때문에, 그들이 원하는 거라면 뭐든지 들어줘야만 했다.

그래서 연락만 하면 언제든지 술을 마실  있는 가게도  군데 알고 있는 그였다.


나는 물론 접대 목적은 아니었고, 박동오가 나를 위로하는 차원에서 이런 곳에서 대낮부터 술을 마신 적이 몇  있었다.


그는 공무원이었기 때문에 헌터 접대 명분으로 쓸 수 있는 카드가 있었다.

오늘도 그것을 꺼내려고 하는 그를 내가 만류했다.

"야, 너 그거  핑계 메꾸려면 힘들잖아."
"괜찮아~ 내가 한두 번 하냐?"
"이 비리공무원 같으니."
"나 정도면 약과지, 알면서 그래?"
"오늘은 내가 살 테니까 그건 넣어 둬."
"야, 그래도 그렇지. 친구가 좋은 일이 생겼는데 내가 사야지."
"네 돈도 아니면서 생색내지 말고, 그 카드로 마시면 마음껏 마시지도 못하잖아. 내가 쏠게."
"진짜?"


아마 예전과 같았다면 박동오는 내가 술을 산다는 것을 급구 말렸을 것이다.


왜냐면 내가 돈을 못 번다는 것을 뻔히 알고 있으니까.

하지만 그는 최근 내가 엄청난 기세로 게이트 공략을 했다는 걸 알고 있었고, 어쨌거나 그로 인한 수입이 상당하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허리띠 풀고 마시자."
"좋~~지!"

원래 술이라면 꿈뻑 죽는 박동오였다.

지방간이 있을 게 틀림 없어 보이는 그의 체구가 염려스럽기는 했지만, 그의 말마따나 이런 날 안 마시면 언제 또 마시겠는가?


너는 박동오와 함께 유흥가가 밀집한 지역으로 갔다.

박동오가 미리 연락한 지하 업소는 우리 때문에 아침부터 문을 열었다.

"아가씨들 출근했어?"

박동오의 물음에 여사장이 핀잔을 주며 말했다.


"이 시간에 깨어 있는 아가씨가 있겠어요? 그냥 나랑만 마셔요. 아마 가장 빨리 나오는 애도 3시간은 있어야 출근할 거예요."
"그래? 그럼 어쩔  없지."


박동오는 아쉬운 얼굴이었지만 나는 전혀 아쉽지 않았다.

이 업소에서 가장 예쁜 아가씨를 본다고 해도 내가 영입한 어떤 헌터보다 예쁘지 않을 테니까.
"이분이세요? 오늘 좋은 일 있으셨다는 분?"
"응~  친군데 오늘 B급 헌터 됐잖아."

B급 헌터면 그래도 헌터 피라미드에서 중간은 차지하는 위치다.

워낙 숫자가 많아서 그렇지, 일반적으로 괜찮은 헌터라고 하면 B급부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A급부터는 그야말로 상류층, 귀족 대접을 받았다.


"어머~ 그러시구나! 앞으로  부탁드려요, 헌터님~"

젊은 여사장은 콧소리를 내며 내 팔짱을 끼었지만 나는 그것이 전혀 반갑지 않았다.


어제 총  명의 멋진 여자들과 섹스를 했던지라 평범하게 예쁜 일반인을 상대로는 전혀 감흥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보다  친구 좀 챙겨주세요. 엄청 외로운 놈이니까."
"응?"


박동오가 놀라며 의심스러운 표정을지었다.


"너 혹시 여자친구 생겼냐? 그러고 보면 살도빠지고 얼굴도 더 젊어진 것 같고...... 흥! 배신자."


박동오는 여자친구도 없이 일만 죽어라고 하며 나이를 먹는 중이었다.


사회적 지위가 웬만큼 있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결혼을 할 수 있겠지만 어쩐지 그런 쪽으로는 별로 관심이 없는 듯했다.


그런 이유로 여자를 합석시켜 술을 마시는 오늘 같은 일이 그로서는 상당한 낙일 터였다.


예전 같았으면 나도 크게 다르지 않은기분이었겠지만 지금은 사정이 바뀌었다.

그걸 모르는 박동오는 배신감을 느끼는 것 같고.


"이제 B급 헌터다 그거지? 흥! 나는 어차피 여자한테 인기 없는 중년 남자다!"
"에이~ 과장님~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세요. 뭐 하면 제가 여자친구 한 명 소개시켜 드릴까요?"
"그러지말고 네가 내 여자친구 하는 건 어때?"
"그건 싫고요."
"뭐? 하하하!"
"호호호호!"

그렇게 가게에 들어가려는 찰나, 나는 골목 저쪽에서 심상치 않은 반응을 포착했다.


여자 두 명이 팔짱을 끼고 술집에 들어가려는 중이었는데, 멀리서 느끼기에도  둘은 헌터였다.

원래라면 내가 크게 관심을 갖지 않아도 될 장면이다.

동성애 커플 같은데, 그렇다면 더더욱 내 관심사가 아니었다.


하지만 언뜻 스치는 둘 중 하나의 모습이 누군가와 닮았다고 생각되었다.


어디서 보았나 하고 생각했더니 바로 어제 ‘쓰레기 게이트’가 있는 컨테이너에서 만난 남자가 내게 보내 준 김수연을 몰락시킬 소스 자료에서였다.


김수연의 여자친구.

'이런 우연이......'


하긴 김수연의 여자친구는 상당한  도착자라고 했었다.


자료를보니 김수연 몰래 바람을 밥 먹듯이 피우는 모양이었다.

그것 때문에 김수연이 많이 골머리를 썩고 있고.

그나저나 아침부터 저렇게 다른 여자랑 팔짱을 끼고 술집에 들어가다니, 아주 조금이지만 김수연에게 동정심이 일었다.


"먼저 들어갈래? 나 잠깐만."
"화장실이라면 안에 있어요~"
"아니요. 아는 사람이 지나가서 인사하고 오려고요."
"그래요 그럼. 빨리 오셔야 되요?"
"빨리 와라."

나를 두고 박동오와 여사장이 하하 호호 거리면서 가게로 들어갔다.


나는 김수연의 여자친구, 박은혜가 다른 여자와 함께 들어간 가게 쪽으로 갔다.

뭘 어떻게 하려는 것은 아니었지만 일단은 이렇게 마주친 것도 엄청난 우연이라고 할 수 있으니까.

이 기회를 허투루 하지 않기 위해서 뭐라도단서를 잡아볼 생각이었다.


하지만 나는 가게에 입구부터 저지당했다.


"죄송합니다. 이곳은 여성전용이라서요."
"아......"

거기까지는 미처 생각  했다.

과연 언뜻 보이는 가게 안은 오로지 여자들만 있었다.


'어떻게 하지?'


나는 자주 있지 않을  뻔한 이 기회를 어떻게 살릴지 잠시 서서 생각했다.


문득 어제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김소희가 엘린에게가위치기를 하던 모습.

그녀는 꿈을 꾸고 있다고 생각하고  행동이었지만, 그것을 보고 나는 한 가지 강한 의혹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바로 김소희가 양성애자가 아닐까 하는 것.


나는 핸드폰을 꺼내어 그녀에게 연락했다.

- 아! 파티장님!

김소희는 반갑게 전화를 받았다.


“어제는 잘 들어갔어?”
- 네, 제가 폐를 많이 끼쳤습니다. 사실 방금까지 죽은 듯이 잠만 잤어요. 파티장님 집에서 엄청 기분 좋은 꿈을 꿨었는데, 잠자리가 달라서 그런지 제 집에서는 그런 꿈을 꿀 수가 없네요.
“혹시 나랑 그거 하는 꿈이었어?”
- 네?그걸 어떻게아셨어요?
“하하. 진짜야?”

농담인 듯 모르는 척했지만, 그녀가 꾸었다는 꿈의 내용을 나는 전부 알고 있었다.

그것은 꿈이 아니라 진짜였으니까.


그 꿈에 대한 내용을 그녀와 나눌 예정이었다.

“그 꿈에 너랑 나 둘만 있었어?”
- 네?


김소희는 예상 밖의 질문을 받았다는 듯 머뭇거렸다.

 솔직하게 말을 했다.

- 사실 한  더 있었어요...... 그게, 여자였는데......
“너처럼 귀여운 여자?”
- 헉! 그걸 어떻게......


김소희의 순진한 반응이 귀여웠다.

“그것도 진짜야? 하하. 재미있네.”
네......
“그렇다면 말이지.”


나는 본론을 꺼냈다.

“꿈에 여자가 나와서 그걸 했다면 혹시 너......”
......

아무리 솔직한 김소희라도 그런 것까지 다 말하기는 좀 부끄러운 모양이었다.

시간을 지체하는 것은 좋지 않으니 나는 직접 물어보았다.

“여자랑도 섹스하니?”

너무 직접적인 화법이 아닌가 싶기도 했지만 달리 어떻게 물어보아야 할지  수 없었다.

- 아...... 원래는  그랬는데요. 남자가 더 좋기는 한데, 그게 가끔은...... 그...... 항상 밥만 먹으면 질리잖아요? 중식도 먹고 양식도 먹고 그래야......

김소희가 말하는 내용은 횡설수설이었지만 요지는 전달되었다.

“그렇구나. 소희 너는 양성애자였구나.”
네......
“그래서 부탁할  있는데.”
- 네?

보통 사람이라면 대화의 흐름이 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 챌 것이다.

왜냐면 내가 질문한 것이나 결국 도달한 내용이 마치 양성애자라는 사실을 다 알고 말한 것처럼 보일 것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원래 순수한 성격인 데다 내게 높은 호감도까지 가지고 있는 김소희는 그런 의심을 전혀 하지 않았다.

내가 부탁할 있다는 말에 어투를 바꾸어 씩씩하게 말했다.


말씀하십시오.

나는 일단 그녀에게 이곳으로 나오라고 말을 했다.


그녀는 거리 이름을 이야기하자 즉시 알아들었다.

- 아, 거기 말이죠?
“여기 레즈비언 바가 있는데 알고 있니?”
당연히 알죠~  거기 단골......이 아니라 알고 있습니다.
“다행이네. 일단 여기 와서 이야기하자.”
- 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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