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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1화 〉91화 (91/92)



〈 91화 〉91화

쓰레기 게이트 안에서 보내 시간이 길었기 때문에 사무실에 도착하자 최슬비와 만나기로 한 5시에 가까워졌다.
시간이 오버 되지 않은 게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까?
최슬비의 면접이 잘 마무리된다면 오늘 하루는 정말 성공적인 하루가 될 것 같았다.

나는 노트북을 켜 놓은 상태로 최슬비를 기다렸다.
노트북으로  일은 인터넷 쇼핑.

사무실에 커피머신으로 하나 들어 놓으려고 마음 먹었기 때문에 괜찮은 게 있나 살펴보았다.

원래라면 나는 커피머신을 샀는데 큰돈을 들이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돈을 많이 벌어서 그런지 싼 물건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왕이면 좋은 걸로.'

좋은 원두가 있으니까 좋은 커피머신을 사서 커피를 마셔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커피머신을 사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지금 살고 있는 집에서  큰 집으로 이사 가는 거겠지만.

'생각한 김에 아파트 시세나 좀 볼까?'

커피머신을 쇼핑하던 나는 관심을 돌려서 요즘 아파트 가격이 얼마나 하는지 알아보았다.

'이놈의 집값은 떨어지질 않네.'

나는 큰 집으로 이사 가야겠다는 희망을 오랫동안 접고 있었다.

그보다는 하루하루 헌터 사무실을 운영하는 것이 훨씬 중요했으니까.
하지만 파티의 운영은 날이 갈수록 나빠져 갔었다.

불과 얼마 되지 않은 일을 떠올리는 것인데 마치 아주 오래전 일처럼 느껴졌다.

하루 만에25억이 넘는 돈을 벌다니.

앞으로도 늘 이런 행운이 있지는 않을 것이다.

동시에 내게는 포부가 있었다.

처음 헌터가 되어서 밤낮으로 전술 연구를 하던 때도 같은 포부를 품었었다.

최고의 클랜을 운영하며 달에 몇 번씩 S급 게이트를 공략하는 것.
그렇게 되면 하루에 몇   버는 것은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그런 클랜은 전세계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로 적고, 그들이 보유한 자산은 계산이 불가능할 정도니까.
실시간으로 계속 늘어나니까 세어봤자 의미가 없다.

예전 같았으면아예 꿈도 꾸지 못 했을 펜트하우스 시세를 검색하면서 나는 시간을 잊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똑똑, 노크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

퍼뜩 정신을 차리고 시간을 보니 오후 다섯 시였다.
 시간에 맞춰서 노크 소리가 난 것이다.

"네~ 들어오세요~"

나는 문 밖에 서 있는 것이 최슬비라고 확신하고 그렇게 말했다.

"안녕하세요."

나는 문을 열고 들어온 여자를 보고 혹시 내가 아직도 이계에 있나 하는 착각을 했다.
왜냐면 방금 들어온 여자가  금발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단순히 금발이라기보다는 약간 붉은 빛이 도는 세련된 머리카락을 하고 있었다.
그것만봤으면 머리카락을 염색한 것이겠거니 하고 단순하게 생각했겠지만, 그녀의 눈동자 색깔도 평범한 한국인과 달랐다.

녹색 빛이 도는 파란색.

외국인 특유의 것이다.

'이름이 분명 최슬비였는데.'

들어올 때 인사도 한국어로 "안녕하세요."라고 능숙하게 말했다.

"왜 그러세요?"

내가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자 여자가 물얶다.

"최슬비 씨 맞으신가요?"
"네, 제가 최슬비예요."

여자가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머리카락 색깔과 눈동자 색깔만 외국인 같은 것이 아니라, 그녀는 피지컬도 무척 좋았다.

말 그대로 오늘 게이트 안에서도 보았던 제시의 피지컬과 비슷한 느낌이다.
그녀도 세린 다음으로 이계 여자 중에서 가장 시원시원한 몸매를 가지고 있으니까.

"아~"

최슬비가 내가 자신을 그렇게 빤히 쳐다보는 이유를 알겠다는 듯 말했다.

"제가 외국인으로 오해를 많이 받아요. 할아버지가 독일분이시고, 어렸을 때 오랫동안 외국에서 살기도 했거든요. 그보다는 머리카락 색깔과 눈동자 색깔 때문에 오해를 많이 받아요. 이건 원래 그랬던 게 아니라 각성하고 나서 바뀐 거예요. 이런 경우가 흔하지는 않다는데, 저도 잘 모르겠네요."

그녀는 쑥스럽다는  웃었다.

"아, 그러시군요."

이쯤 되자 빤히 쳐다본 내가 미안해졌다.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익숙해서 괜찮습니다. 파티장님은 면접을 보시는 입장이니까  당황스러우셨을 것 같아요."
"하하하."

최슬비는 짧은 반바지를 입고 있었다.
굳이 각선을 드러내려고 한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우면서도 패셔너블한 옷차림으로 보였다.
일반적으로 헌터의 면접은 복장의 규정이 엄격하지 않다.

직업이 직업인 만큼 오히려 자기 개성을 드러내고 하는 경우가 많았다.

입고 있는 상의도 그렇고 최슬비의 옷은 대체로 피부를 많이 드러내고 있었다.
머리카락 색깔과 눈동자 색깔, 그리고 전체적인 분위기는 백인 여자 느낌이 많이 났지만, 피부는 그렇게 하얀 편도 아니었다.

평균보다 밝지만 갈색 빛이 많이 돌았다.

몸이 길쭉길쭉한 데다 어깨가 넓고 허벅지가 탄탄한 편이라 피부색과 어우러져 건강미가 물씬 풍겼다.

꼬르륵-

그때 예상치 못한 소리가 났다.

 소리는 내 배에서 난 것이었다.

사실 컨테이너 안에서 간식을 먹긴 했지만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말할 순 없었다.
오늘 내가 게이트에 들어가서 한 일을 생각하면  정도로 에너지 보충이 충분했다고 보기 어려우니까.

"어머."

최슬비가 놀라서 물었다.

"파티장님 혹시 배고프세요?"
"아, 네...... 오늘 일정이 바빠서 점심을 제대로  먹었거든요."
"그러시구나. 어떡해요,  때문에."
"아닙니다. 이왕 이렇게  거 같이 식사라도 하러 가시는 게 어떠세요?"
"식사요?"
"바쁘시면 안 그러셔도 되고요. 면접 결과는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합격이에요."
"아......"

최슬비는 내가 한 말에 놀랐다가 꾸벅 허리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사실 꼭 파티장님에 파티에 들어가고 싶었어요. 뭐라고 해야 할까? 운명에 끌림을 느꼈거든요."

뭔가 표현도 이국적으로 했다.
따지고 보면 그것이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운명의 끌림.

사실은 내 기이한 능력에 의해 시스템의 영향을 받은 것이었지만.

그녀는 내가 이계에서 만난 제시와 동화되어 있고, 나는 제시와 섹스를 해서 호감도를 100%로 올려놓았다.
이미 정수도 흡수했고.

그녀가 내게 운명의 끌림을 느끼지 않을 리가 없었다.

"저 오늘  바빠요. 같이 식사하러 가요, 파티장님. 파티에 넣어주셔서 감사하다는 의미로 저녁은 제가 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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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그래도 새 파티원에게 식사를 사도록 하는 것은 좀 아닌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왠지 최슬비에게는 그런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다른 여자애들처럼 편하게 근처의 식당으로 가자는 말이 안 나올 만큼 고급스러운 느낌이 있었다, 최슬비는.

첫인상에서 외국인 같다는 인상이 너무 강한 나머지 부잣집 딸내미 같다는 생각까지는 하지 못 했다.

하지만 나란히 서서 걷다보니 확실히 보통 집안의 평범한 여자 같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핏 보이는 입고 있는 옷의 브랜드라든지 들고 있는 가방도 명품이었다.

거기에 타고  차도......

“파티장님, 어떻게 하시겠어요? 제 차로 가실까요?”

사실 나는 아직 자가용이 없었다.
파티를 운영하는 사람이 자가용도 없다는 것은 조금 그랬지만, 어쨌든 나는 그 정도로 금전적 사정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살아왔었다.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지만, 지난 한 달 간도 퀘스트 달성을 위해 달린 것이라 돈을 모아 자동차를 사야지 하는 생각까지는 하지못 했다.

“그럴까요?”

자동차가 없다는 말까지는 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아서 나는 얼결에 그러자고 말을 했다.

빌딩 지하에 주차되어 있는 최슬비의 자동차는 슈퍼카였다.
어떤 자동차를 모느냐 하는 것에 남녀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보통 여자라면  타지 않는 페라이였다.
최슬비의 자동차는.

그것도 노란색과 녹색이 섞인, 평범하지 않은 도색으로 치장된 자동차였다.
최슬비가  옆에 서자 그 이상  어울릴 수 없다는 생각이 들 만큼 잘 어울렸다.

 그대로 명품 자동차에 명품 여자였다.

‘왜 이런 여자가......’

내 파티에 지원한 거지?

물론 최슬비의 자연스러운 의도로 내 파티에 지원했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시스템에 의해 선택을 받았다고 하는 것이 오히려 맞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이런 여자이니 함부로 내가 어디로 가자고 말하기도 뭐 했다.
웬만한 곳이라면 최슬비의 성에 차지 않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파티장님, 고기 좋아하세요?”
“물론이죠. 그 얘길 하니까 엄청 먹고 싶어지네요.”
“호호호. 오늘은 제가 모실게요. 소고기 맛있는 가게를 알거든요.”

의외로 취향이 소박할지 모른다고 생각했던  짧은 기대는 최슬비가 운전해서 도착한 식당 앞에서 와장창 무너졌다.

겉보기에도 고급스럽기 그지없는 으리으리한 한옥 건물에는 식당 간판도 걸려있지 않았다.

심지어 한복을 입은 직원이 나와서 “오랜만에 오셨네요, 아가씨.” 하고 최슬비에게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아가씨라는 말을 듣자 최슬비의 출신이 더 궁금해졌다.
모든 손님에게 다 아가씨라는 말을 하지는 않을 것 같았으니까.

그렇게 직원의 안내로 방으로 걸어가던 중에 문득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야, 최슬비!”

뒤를 돌아보자 예쁘기는 하지만 사나운 인상이라 왠지 정이 가지 않는 여자 한 명이 서 있었다.

“오랜만이다?”

그녀를 보는 최슬비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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