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화 〉#3. 사랑의 증표 (5)
결과부터 말하자면 섹스는 하지 않았다. 발딱 선 물건과 앞에 있는 모델 같은 아리의 나신, 그리고 뒤따라오는 탐스러운 네 개의 여체. 그 자리에서 당장 박아주고 싶은 충동이 들었으나, 그 틈을 비집고 들어온 이성이 호소했다. 지금 하면 끝이 없을 거라고. 정확했다.
그런 분위기에서 섹스하면 다섯 명 모두를 만족시켜야 하는데, 그러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대충 싸고 [씨받이]를 터트려 자지러지게 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그건 또 레이아에게 불공평하다. 그렇다고 다들 정성들여 하자니 한두시간으로는 모자랄게 분명했다. 그래서 보류로 결론내렸다. 남자로서 힘든 결정이었지만, 한 순간의 충동으로 살기엔 하렘 생활이 제법 빡빡했다. 새삼 네토 플레이로 여자들을 밖으로 돌리는게 은근히 편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네토 좋아.
찰칵.
사진 찍는 소리. 핸드폰 화면에 예쁘게 유카타를 차려입은 다섯 명의 여자가 출력된다. 미라, 지나, 레이아, 아리, 델렌이 모여 예쁜 옷을 입고 포즈를 취하니 그림이 정말 좋았다. 숙소 주변의 자연 경관이 제법 좋아서 나와서 사진을 찍자고 했는데, 그게 아주좋은 판단이었다.
각각 입은 유카타도 일부러 노린 건지, 그녀들의 머리색과 같은 색이었다. 미라는 레몬빛 밝은 노랑색 유카타를 입었고, 지나는 연두색, 레이아는 보라색, 아리는 남색, 델렌은 황금색 유카타를 입었다. 무늬도 꽃무늬, 물방울 무늬, 단풍 무늬 등 모두가 각자 달랐다. 거기에 더해 지나와 레이아는 일반적인 유카타가 아니라 하얗고 예쁜 다리를 훤히 드러내는 미니 유카타를 입었다. 저런 것도 구비해놓다니, 참 바람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반인이었다면 날씨도 쌀쌀한데 춥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겠지만, 그녀들은 일반인이 아니니까 괜찮다.
"오빠, 오빠도 찍자."
"그래요. 찍어드릴 테니까 와요."
여자들이 손짓한다. 개인 소장용이라 딱히 사진에 나올 생각은 없었으나, 여자들 입장에선 가장 중요한 사람이 안 찍히는 셈이다.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착하고 배려심 넘치는 아리가 교대하기 위해 이쪽으로 향한다. 그러던 중, 낯선 남자들이 이쪽을 지나간다.
"허허, 유토 군. 참 좋은 료칸입니다. 마음에 드는 군요."
"아하하… 그렇군요. 다행입니다."
"한 가지 아쉬운게 있다면, 저희만… 즉 남자끼리만 왔다는 점이겠죠. 이렇게 좋은 곳에선 여자와 함께해야 즐거움이 배가 되는데 말입니다."
"아아…. 여자라면 내일 일정에 있긴 합니다만…."
네 명의 남자가 천천히 걸으며 얘기를 나눈다. 세 명의 아저씨와 한 명의 젊은 청년으로 이루어진 묘한 조합은 딱 봐도 비즈니스, 접대의 느낌이 났다. 유토라고 불린 청년이 중년 남성들을 대하는 태도는 단순히 연장자를 대하는게 아닌, 상관이나 그 이상의 비즈니스적으로 중요한 인물을 대하는 태도였다. 중년 남성들은 사회에서 나름 한 자리 차지하는 인물들인지, 행동이나 분위기에서 여유나 자신감 같은 것이 묻어난다. 그러면서도 거들먹거리지는 않아서 거만하다기보단 자기 수준에 맞게 행동하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흠.'
중년 남성들을 훑어보니 나이 때문에 배는 나왔지만 허벅지가 튼실한게 기모노 밖으로도 보일 정도였고, 아랫춤이 묵직했다. 말로만 허세를 부리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도 여자를 제법 밝히는 남자임이 분명했다. 제법 자신감이 있어 보이는 분위기는 사회적 지위뿐만 아니라 우월한 남성적 능력도 밑천이 된 것 같았다.
"헤에."
여자들도 은근히 흘끔거리는 것이 분위기가 묘했다. 미라와 레이아는 그럼 그렇지 라고 말하듯이 씨익 웃으면서 이쪽을 본다. 미라는 그렇다치고, 레이아가 저러니까 기분이 이상하다. 이제까지 쭉 인형 같았다가, 지금은 음흉한 아저씨처럼 능글맞은 미소를 지으니 적응이 안된다. 물론 마음에 드는 변화이긴 하다. 이제까지 많이 아껴줬던 레이아가 스스로 남자들에게 안기는 상상을 하니… 상상만으로도 아랫도리에 힘이 빡 들어갔다.
묘한 기류가 흘렀다. 남자들, 특히 아저씨들은 진작에 여자들 쪽을 흘끔거리는 상태였고 여자들도 은근히 시선을 의식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그런 분위기가 이어질 즈음, 지나가 교묘한 타이밍에 나섰다.
"저기, 실례지만 사진 좀 찍어주실 수 있나요?"
남자들 중 유일한 청년인 유토에게 다가가서 묻는다. 유토는 눈치를 보다가 일행의 허락을 받은 후 고개를 끄덕였다. 용사의 핸드폰을 받아들고 사진 찍을 자세를 잡자 용사와 여자들이 포즈를 잡았다.
"하나, 둘, 셋."
찰칵.
"감사합니다!"
지나가 밝게 웃으며 유토와 아저씨들에게 감사 인사를 건넨다. 다른 여자들도 자연스럽게 눈인사를 한다. 남자들도 마찬가지로 인사를 하면서 대놓고 여자들을 훑었다. 아무리 점잖은 사람이라 해도 남자인 이상, 암컷에게 반응하는 수컷인 이상 눈이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한껏 여유를 부리던 이들이었으나 보면 볼수록 아름다운 여자들에게 완전히 매료되어 그 자태를 멍하니 감상하고 있었다. 얼굴 뿐만 아니라 델렌이나 아리의 봉긋한 가슴, 지나와 레이아가 시원하게 드러낸 예쁜 다리에도 끈적한 시선이 머물었다.
아까 자기들끼리 나누던 대화로 보아 접대도 제법 받으면서 나름 급이 되는 여자들을 많이겪어본 것 같은데, 그럼에도 정신을 못 차리는 걸 보니 흐뭇하기도 했다. 하나하나가 어딜 가도 주인공인데, 다섯이 모여 있으니 그림이 아름답다 못해 비현실적인 수준이었다.
"헤헤, 너무 뚫어져라 보시니 부끄럽네요."
지나가 훤히 드러난 맨다리를 비비적 꼬며 멋쩍게 웃었다. 당연히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겠지만, 겉모습만큼은 부끄러움 타는 소녀와 같아서 남자들이 민망한 웃음을 짓는다.
"하, 하하하! 너무 아름다우셔서 그만 넋을 잃었군요. 죄송합니다."
유독 피부가 흰 중년 남성이 껄껄 웃으며 말했다. 사회 생활을 할 만큼 하면서 맘에도 없는 소리 역시 많이 했겠지만, 방금 한 말은 진심일 것이다. 다른 남자들도 민망했는지 껄껄 여자들의 외모를 한껏 칭찬했다.
지금 보니 중년 사내 세 명은 피부색이 극단적으로 달랐다. 왼쪽은 완전히 누런 피부로 아시아인 치고도 색이 강했고, 가운데는 백인의 피라도 받았는지 흰둥이 소리를 듣는 여자들 만큼이나 새하얀 피부였다. 오른쪽은 반대로 밤색에 가까운 새까만 피부였다. 약간 떨어져서 눈치를 보는 유토의 피부는 약간 밝은 톤의 살구색이었다.
"그나저나, 실례가 안 된다면 질문을 하나만 해도 되겠습니까."
"네. 너무 개인적인 것만 아니면 괜찮아요."
지나가 자기 가슴을 양 팔로 가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끼 부리는 것 하나 만큼은 나머지 넷을 다 합친 것보다 더하다. 사실 생각해보면 끼를 부리는게 특이한 것이었다. 다들 가만히 있어도 남자가 수두룩하게 꼬이는데 끼 부리기는 커녕 뭔가를 할 틈조차 없을 것이다. 지나의 앙큼한 여우짓에 얼굴이 빨개진 흰 피부의 아저씨가 물었다.
"혹시 연예인이십니까?"
"아뇨. 헤, 그렇게 보여요?"
"오오, 그렇군요. 다들 외모가 빛이 나는 것처럼 아름다우셔서 잠시 착각을 했습니다."
질문과 대답, 그리고 외모 찬양. 그런 식의 대화가 몇 번 오갔다. 그들은 주로 살가운 태도의 지나와 대화를 나누면서, 여자들이 딱히 직업 없이 인생을 즐기며 사는 백수들이란 것과, 용사가 매니저나 짐꾼이 아니라 여자들보다 위에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같은 남자로서 정말 부럽습니다. 이렇게나 아름다운 분들과 함께하는건 돈이나 능력만으로는 불가능하죠. 커다란 행운을 누리시는 겁니다. 하하하…."
"그렇죠. 저는 분명 행운아 입니다."
대화가 오가다가 이쪽에도 말이 왔다. 적당히 받아주면서 슬슬 본론으로 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가장 가까이 있는 레이아를 끌어당겼다. 그리고는 목덜미 쪽으로 손을 넣어 옷깃과 브래지어를 헤치고 맨가슴을 주물렀다. 남자들의 시야에선 옷 속에서 꿈틀거리는 손이 보일 것이다. 레이아는 딱히 저항하지 않고 부끄러워 하듯이 고개를 살짝 숙인 채 가슴을 주무르는 손길을 받아낸 후, 손이 빠져나가자 흐트러진 속옷과 옷매무새를 정돈했다.
"어… 허허허…."
떠들석하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이쪽의 대담한 스킨쉽에 놀라면서도, 그것을 마치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레이아와 여자들을 보며 눈에 이채를 띤다. 머리가 굴러간다면 냄새를 맡았겠지. 조금 더 서비스해주자는 생각에 이번엔 앞에서 끼를 부리던 지나를 이끌었다. 지금 보니 둘 다 맨다리였군. 너는 아래를 해줄게.
"으응…."
입술만 맞닿는 가벼운 버드 키스를 한 번 해주고, 손을 아래로 내려 뽀얀 허벅지 뒤편을 주무른다. 다릿살이 이지러지며, 주무르는 손길에 맞게 모양이 변한다. 촉촉하고 부드럽군. 그렇게 주물러준 후 손을 올리자 손끝에 얇은 팬티가 걸렸다. 이걸 어떻게 한다? 잠시 고민하다가 그 위로 엉덩이를 주물렀다. 지금 당장 본방을 할 생각은 없었다. 이렇게 줄타기를 하듯 아슬아슬한 수위가 남자들을 안달나게 만들 것이다.
"으음, 흠…."
지나가 신음을 참듯이 막힌 소리를 내며 앞쪽으로 손을 모으고 다리를 배배 꼬았다. 엉덩이를 주무르는 모습은 남자들에게 제대로 보이지 않겠지만, 맨다리가 훤히 드러나는 미니 유카타를 입은 탓에 어디를 주무르는지 쉽게 유추가 가능하다. 네 명의 사내들이 하나같이 우두커니 서서 이쪽을, 지나의 하반신 쪽을 집중해서 보는게 재밌었다. 남자로서 당연히 이해하는 부분이다. 적당히 주무르다가 손을 뺀 후 옷 위로 엉덩이를 찰싹 때려주자 지나가 부끄럽다는 듯이 손으로 얼굴을 감싼다. 말 그대로 여우 그 자체였다. 지나의 연두색 머리를 쓰다듬으며 아까 했던 말에 첨언한다.
"이런 것도 받아주는 미인이 다섯이나 있으니, 저는 정말로 행운아지요."
"허, 허허허… 놀랍습니다. 하하하…."
남자들이 복잡한 표정을 짓는다. 말도 안되게 아름다운 여자들이 뭐가 아쉬워서 이러나 싶기도 하고, 눈앞에서 벌어진 음란한 쇼를 본 탓에 몸에 반응이 오면서도, 한편으로는 환상으로 남기고 싶었던 여자들의 치부를 보며 이유 모를 씁쓸함도 느꼈을 것이다.
육체의 흥분과 내심 복잡한 감정이 얽혀 분위기가 살짝 가라앉았다. 상관없었다. 그들은 곧, 자신에게 찾아온 커다란 행운에 감사할 테니까. 행운아는, 내가 아니라 당신들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