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55화 〉#4-1. 아리스, 한 아리 (16) (55/162)



〈 55화 〉#4-1. 아리스, 한 아리 (16)

쏴아아.

미지근한 수온이 아침 공기로 인해 차가워진 몸을 따뜻하게 덮었고, 복잡했던 머릿속은 반대로 시원하게 식혀줬다. 아리는 화장실이  개나 있는 널찍한 단독주택의 반대쪽 욕실에서 샤워를 하며 정신을 가다듬었다.



"으음…. 어지러워…."

여전히 약 기운이 좀 남아있어서 머리가 멍했다. 이유 모를 충동으로 마나를 운용하여 수면제의 기운을 차단하지 않고 오히려 몸에 깊숙히 받아들였는데, 덕분에 마나의 힘까지 듬뿍 받은 수면제가 몸을 완전히 풀어 놓았다. 어젯밤 보였던 나른하게 늘어진 태도는 전혀 연기가 아니었다.

'뭘까.'

아리는 저 반대편에 있는 어리고 순진한 남자애를 떠올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와 동시에 보랏빛의 마나, 레이아의 마나를 느낀 어제의 그 순간이 떠올랐다.


….



큐피드.


레이아의 마나를 통해 마법을 시전한 것은 다름 아닌 아리를 관음하는 용사의 또다른 눈이었다. 큐피드가 찍은 영상은 레이아의 선별을 한 번 거쳐가므로, 레이아의 눈이라고 하는게 더 옳은 표현이겠지.



아리는 뛰어난 검사인 만큼 다른 여자들보다 감각이 예민했다. 그래서 큐피드에 가장 적응하지 못했고, 적응을 위해 평소에 마나 사용도 자제해가면서 일부러 외면해왔다. 큐피드는 항상 안정화마법과 은폐장 마법을 활성화하고 있어서, 눈으로 볼 수도 없고 움직이는 기척을 읽을 수도 없다. 마나를 이끌어내서 탐지해야 하기 때문에, 아리는 일부러 찾지 않는 이상 큐피드를 감지할 수 없었다.



그러니 큐피드가 갑자기 발정 마법을 사용하는 것에 놀라서 흠칫할 수밖에 없었다. 레이아가큐피드를 배치해주며 말하기를, 큐피드는 기록이 주요 목적이기 때문에 사생활에 개입할 일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성민에게 사용된 발정 마법.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건가.



여자들은 아주 진작부터 다른 사람의 '플레이'에 간섭하지 않기로 암묵적인 합의를 했다. 용사도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런데 이번에 그 합의가 깨졌다. 게다가 합의를  것이 레이아이니 당황스러울 수밖에.

바로 화가 나거나 하진 않았다. 아리는 예전부터 레이아의 침착함과 이성적인 면모, 그러면서도 깊은 배려심이 있는 따뜻한 마음씨를 아주 좋아했다. 후방 지원형 참모라고나 할까. 그녀는 파티에 반드시 있어야 할 포지션을 맡고 있었다. 가장 마지막에 합류했지만,예전부터 가장 신뢰했고, 지금도 굳게 믿고 있다. …물론, 가장 신뢰한다는 말은 여자들 중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모든 여자들은 당연히 용사를 절대적 0순위로 두고 있다.

아무튼…. 지금 상황이 당황스럽긴 하지만, 아리는 뭔가 이유가 있을 것이라 확신하며 일단은 가만히 있기로 했다. 자신이 알고 있는 레이아라면, 어떻게든….


끼익, 끽, 끽.

습기로 가득찬 욕실의 거울에서 뽀득거리는 소리가 났다. 고개를 드니 김이 잔뜩 서린 거울에 마치 손으로 글씨를 쓰는 것처럼 글자가 새겨지고 있었다. 레이아의 작은 마법이었다.

[알 수 없는 오작동.]

"아…."

그럼 그렇지. 아리는 저도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수긍했다.



[죄송합니다.]

"아냐, 아냐."

레이아의 진솔한 사과에 아리가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워낙 복잡한 기계이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레이아가 그걸 얼마나 열심히 만들었는지 잘 알고 있었고, 쓸데 없는 말로 그녀의 자존심을 깎아낼 생각은 털끝만큼도 없었다.

아리는 그렇게 생각을 마무리 지으며 진득하게 몸에 쏟아지는 기분 좋은 물줄기를 음미했다.

….

쏴아아….


일부러 오래 했던 샤워가 끝날 때 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오작동이라지만, 너무 기막힌 우연이 아닌가.


일어난 사실만 객관적으로 나열해보면, 결국 일련의 사건들은 자신과 성민의 섹스를 며칠 앞당기는 결과를 낳았다.

수면제를 일부러 받아들인건 갑자기 수면 플레이가 매력적으로 느껴져서 충동적으로 벌인 일이었다. 그런데 참 기가 막히게도, 그렇게 결정하고 약을 받아들이기 위해 마나를 운용하여 여러 겹으로 이루어진 마나의 보호 체계를 해방하자마자 발정 마법이 시전되었다.

당황한 마음에 일단은 자신이 삼켰다. 입으로 먹었다는게 아니라, 비유적인표현이다.

녀석이 당장 자신을 덮쳐들면 상황도 애매하고 나중에 정신을 차렸을 때의 후폭풍 등등 여러모로 서로 곤란해지니까. 이제까지 살살 굴려서 재미있게 놀았는데 마법으로 인한 강간이라는 마무리는  그랬다. 그래서 삼킨 마법을 한 번 다듬어서, 확 발정이 나는게 아니라 조금씩 몸이 달아올라서 참다 참다 결국 덮치도록 만들었다. 마법에는 문외한이지만 마나 운용 능력은 최고 수준이니 이 정도는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모든게  풀려서 나름 해피 엔딩.


….



"흐음…."

'우연이… 아닐 지도?'

불현듯 드는 예리한 추측. 그러나 이어지는 생각은 전혀 진지한 것이 아니었다.



'으음, 사랑의 여신이라도 오셨나? 힝, 오실 거면 정인이랑 잘 때 오시지.'

그런 낙천적인 생각을 하던 중에, 그새를 못 참고 슬금슬금 욕실로 다가오는 기척이 느껴졌다.


"후훗."

아리는 저도 모르게 작게 웃으며, 문의 잠금을 조용히 풀고 아무 것도 모르는 척 물줄기를 맞았다.


성민과 아리는 한동안 신혼부부처럼 지냈다. 격렬한 밤을 보내면서 아리의 침대 시트가 다 젖어버려서 빨아야만했는데, 성민은 여분 시트가 없다며 자기 침대에서 자라고 했다. 성민의 침대는 더블 사이즈였기에 언뜻 들으면 상식적인 말이긴 했다. 음흉하게 실실 웃는 얼굴만 아니었어도 말이다.


아리는 저도 모르게 반박하려고 튀어나오는 말주머니를 덩어리째 되삼키며 별말 없이 성민과 같이 자기 시작했다. 성민의 입장에서 아리는 몸도 마음도 허락한 하나의 탐스러운 과일이었고, 이제는 손만 뻗으면 닿는 그녀를 오감으로 느끼며 진득하게 탐했다.

침실, 복도, 욕실, 거실, 주방….집의 모든 곳이 성민의 영역이었고, 아리는 녀석을 피할 곳이 없었다. 정면에서, 옆에서, 뒤에서. 갑작스레, 혹은 분위기 잡고 천천히. 아리가 허락해서, 혹은 하지 않았음에도.

성민은 마치 모든 경우의 수를 다 채우기라도 하듯, 거의 모든 방식으로 아리를 탐했다. 처음엔 조심스레 다루던 성민은 아리가 의외로 순종적인 성향을 보이자조금씩 본색을 드러냈는데, 일단 금기처럼 여겨졌던 수면간을 다시 했다.

성민 만큼이나 쾌감에 얼룩진 시간을 보내던 아리는, 그 순간 기특한 성민에게 진심으로 키스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마나 유저인 아리는 하루에 두세 시간만 쪽잠을 자도  잔 것처럼 개운했다. 거의 평생을 그렇게 살아온 아리는 성민의 집에 머물면서 하루의 3분의 1 가까이를 잠자는, 정확히는 자는 척을 해야 하는 일반인의 삶에 적응하기 힘들었다.

적응할 이유도 느끼지 못한 아리는 그동안 수면시간을 8시간으로 잡고 절반은 잠, 절반은 명상으로 시간을 때웠다. 성민과 몸을 섞기 전까진 안 그래도 매우 단조로운 일상이었기에, 이틀이 지나자 명상 시간이 자위 시간으로 바뀌어 있었다. 지루하기도 하고 몸이 달아올라서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아리는 성격만 점잖을 뿐, 누구 못지 않은 음란함을 내면 깊숙히 품고 있었다. 저주가 강화되고 [씨받이] 스킬이 강화되면서,  그래도 음란했던 몸이 더더욱 육체의 쾌감을 요구했다. 마치 걸신 들린 것처럼 끊임없이 쾌락을 내놓으라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듯한 몸 때문에, 아리는 섹스든 자위든 어떤 방식으로든 몸과 마음을 자극해야만 했다. 그나마 마왕을 토벌할 정도로 강인해서 일상 생활이 가능한 것이지, 일반인이었으면 희석되지 않은 미약의 원액을 먹은 것처럼 미쳐 날뛰었을 것이다.

어쨌든, 그래서 아리는 여러 가지 이유로 과도한 수면 시간을 아깝다고 생각했다. 차라리 자위로 시간을 보내는게 낫다는 생각을 하며, 성민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수없이 자위하며 몇번이고 몇변이고 숨죽인 채로 절정에 도달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수면의 매력을 느끼기 시작했다. 마나까지 운용해서 수면제를 받아들인 그날 이후, 아리는 몸에 남아있는 강화된 수면제의 기운을 일부러 몰아내지 않고 몸에 잔류시켰다. 점점 약효가 떨어지기는 해도, 며칠 동안은 수면제를 먹은 것처럼 하루에 일곱 시간 이상을 푹 잠들었다. 누가 깨워야만 일어날 수 있는, 그런 무방비하고 위험한 상태로.


'은근히 중독성이 강해….'

아리는 잘 벼려진 자신의 몸을 무방비하게 내놓는 것에 짜릿함을 느꼈다. 바로 옆에, 입으로 후 불면 바람이 닿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 하루 종일 자신을 범하려는 생각만 하는 발정난 수컷을 두고 깊게 잠드는 것은… 정말 생각지도 못한 재미였다. 어느 세상을 가던 최고의 검사자리를 차지할 정도로 강한 자신이, 새끼 손가락으로도 찍어 누를  있는 남자애한테 언제 범해질지 모른다는 긴장감으로 두근거리는 나날들. 아리는 이런 생활이 조금씩 마음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외강내유] 스킬 때문인지, 아니면 그냥 본래 성향인 건지. 즉 타고난 건지, 아니면 개발된 건지. 사실 이제와서 따지는 것도 무의미했고, 아리는 그저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 없이 남자가 따먹고 싶어하면 따먹혀야 하는 상황에 조건 반사적으로 흥분했다. 생각만 해도 심장이 두근거리고 가랑이가 미끌미끌해졌다.


….


찔꺽, 찔꺽, 찔꺽….

"아아…."

그리고 마침내. 깊게 잠들었던 아리는 자신의 몸을 조금씩 깨우는 어떤 감각을 느끼며, 잠결에 깊은 신음을 흘렸다. 정신이 들어 보니 몸은 공기의 흐름마저 자극으로 느껴질 정도로 달아올라 있었고, 쾌감으로 인해 호흡이 가빴다.


눈을 뜨니 성민이 자신의 다리를 벌려서, 다리 사이를 손가락으로 마구 쑤시고 있었다. 이미 물을 줄줄 흘리고 있는 자신의 보지에 감응이라도된 건지, 아리는 순식간에 달뜬 얼굴로 저도 모르게 미소지었다.


….

그날 이후, 성민은 마치 하나의 벽을 더 뚫어낸 것처럼 노골적으로 변했다. 겪어보니 아리는 뻔뻔할 정도로 당당하게 밀어붙이는걸 더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 깨달음은 성민에게 추진제를 달아줬다. 성민은 이제, 마치 자신의 떳떳한 권리를 누리는 것처럼 아리를 마구 따먹었다. 여전히 꼬박꼬박 존대해주고 존중해줬지만, 섹스할 때만큼은 자기가 주인인 것처럼 뻔뻔하게 굴었다. 둘은 하루의대부분을 섹스로 보냈고, 그러므로 둘의 관계는 사실상 역전되었다.

달그락, 달그락.


여느 때와 같은 식사 시간도 꽤나 달라졌다. 예전처럼 식탁에 마주 앉는 일은 거의 없었다. 둘은 대체로 연인처럼 옆에 앉았다. 한 번은 성민이 자기 무릎에 앉혔는데, 아리의 키가 큰 탓에 생각했던 그림은 나오지 않았다. 물론 그만큼 만질 곳이 많아서, 아리는 평소보다  시달렸지만.

또  번은 웬일로 예전처럼 마주 앉혔는데, 역시나 시커먼 속내가 있었다. 그나마 입고 있었던 얇고 작은 돌핀 팬츠를 벗으라 하고, 맞은편에서 발가락으로 얇은 팬티 위를 슬슬 문질러대며 희롱한 것이다. 나중엔 그 팬티마저 벗게 했다. 꼭 한 해보고 싶었단다.


그래도 밥 먹는 시간인지라 성민도 본론으로 들어가진 않았고, 적당히 애무와 성적 긴장감을 주고 받는 선에서 끝냈다. 하루를 꽉 채워서 아리를 따먹는 성민의 입장에선 이런 시간도 나름의 간질간질한 재미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식사 시간이 아니지.'

성민은 뻔뻔한 얼굴로 싱크대에서 설거지를 하는 아리의 뒤로 향했다. 그리고, 박았다.


"흐으읏!"

….

"헉, 헉, 헉…."

"흐읏, 아응…."

성민의 행동엔 거침이 없었다. 아리가 얼마나 음란한지는, 단 하루만에 알아챌 수 있었다. 그녀가 소위 발정이 났다고도 표현하는, 한창때의 소년과 맞먹는 성욕을 가졌다는 사실을 성민은 알게 됐다. 한 꺼풀 벗겨낸 아리는 성민에게 있어 잘 차려진 밥상이었다.

척, 척, 척, 척….


서두르지도 않았다. 여유를 가진 성민은 천천히 아리의 속살을 가르며 예민한 스팟을 쿡쿡 찔러댔다. 그곳을 귀두로 문지를 때마다 생선처럼 몸을 펄떡였고, 애교를 부리는 것처럼콧소리 가득한 신음을 내뱉었다. 아리의 보지는 마르지 않는 샘처럼, 언제나 성민을 촉촉히 젖은 채로 환영했다.

성민은 아리를 괴롭힐 만큼 여유로우면서도 자기 성욕에 충실했다. 싸고 싶으면 싸고 싶은 곳에 쌌다. 역시 대부분은 체내 사정이었다. 질 안에 그대로 싸주거나, 아니면 입으로 삼키게 했다. 물론 둘 다 말할 것도 없이 엄청난 쾌감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니 아리는 차라리 입에 싸달라고 했다.  안에 싸면 나중에 흘러나와서 항상 허벅지 안쪽이 끈적하고 찝찝하단다. 그 말을 들은 이후로 질내사정의 비율이 폭발적으로 상승했다. 물론 아리의 핀잔도 그만큼 상승하긴 했지만, 귀여운 수준이었다.

이번에도 안에 싸야지. 성민은 그런 생각을 하며 아리에게 말을 건넸다.

"후욱, 누나…."

"으, 으응?"

아리는 대답인지 신음인지 모를 야릇한 목소리로 답했다. 성민은 계속 허리를 흔들며 물었다.

"그냥 아예 다 벗고 지낼까요?"

"흐응, 읏, 에?"

"어차피 하루 종일 벗겨지잖아요. 네?"

"읏, 읏, 응, 응…."

"흐흐흐, 그거 대답이죠?"

아리는 아니라는 듯이 고개를 내저었으나 의미 없었다. 성민이 의사를 묻는다는건 사실상 정해진 대답을 요구하는 것에 가까웠다. 존중하는 의미에서 물어봤지만, 대답은 내가 원하는 것을 해라. 이런 뜻에 가까웠다. 물론아리가 진심으로 의사를 표한다면 얘기가 달랐겠지만, 그럴 일은 없었다.

"그럼 앞으로 뭐 입는거 금지예요?"

"읏, 으응, 흣…."

아리는 이번에도 대답인지 신음인지 모를 소리를 내는게 전부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