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74화 〉#4-2. 개입 (9) (74/162)



〈 74화 〉#4-2. 개입 (9)

한 쌍의 어려 보이는 남녀가 침대에 누워 있었다. 같은 이불을 쓰고 있는 성민과 레이아는 아무 것도 입지 않은 나신이었다. 마치 연인이 정사를 나눈 후의 모습 같았으나 둘의 몸 상태는 격렬하게 사랑을 나눴다기엔 너무나도 깨끗했다. 사타구니에 체액의 흔적도 없었고, 피부도   방울 흐른 자국조차 없는 뽀송뽀송한 상태였다.

이제까지 성민이 보였던 행실을 돌이켜보면 굉장히 의외였다. 단순히 가까이 있는 거라면 몰라도, 둘은 천쪼가리 하나 없는 알몸으로 부끄러운 부분까지 전부 밀착해 있었다. 비록 자위로 싸버린지 얼마 안 됐다지만, 한아리를 며칠 내내 쉬지 않고 따먹었던 성민이 고작 그런 이유로 안 할 리는 없었다. 이유는 레이아가 제안하고 성민이 동의한 하나의 '약속'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우웅.


한 차례의 진동. 핸드폰이 울렸고, 글자가 화면에 출력됐다. 발신자를 확인한 성민은 눈살을 찌푸렸다.

"역시. 이 새끼, 계속 보내네."

"안 보낸다곤  했으니까."

"후우…."

"긍정적으로 생각해, 성민아. 한아리의 신변을 계속 확인할 수 있잖아. 아무 소식도 못 듣는 것보단 낫지 않을까?"

"…그래.  말이 맞아."

딱딱하고 거리감이 있었던 둘의 관계는 불과 수십 분만에 완전히 바뀌었다. 일단 서로 말을 편하게 했다. 성민이 레이아에게 먼저 제안한 것이었다. 남은 기간 동안 여자친구처럼 생각할테니,  편하게 하자고. 레이아는 거절할 이유가 없었기에 바로 승낙하고, 고개를 끄덕이자마자 '야.'라고 부르며 그동안 은근히 귀찮았던 딱딱한 말투를 즉시 버렸다. 계속 어린 애들에게 반말을 들었기에 기분이 떨떠름했던 레이아의 작은 뒤끝이었다.

편해도 너무 편하게 말하자 왠지 묘한 기분에 성민은 이름으로 불러달라 요구했고, 그녀에게서 '성민아.'라는 말을 듣자 헤벌쭉 기분 좋은 표정을 지었다. 철없는 소년의 심장은 순진하게 두근거렸다.

또 달라진게 있다면 성민의 신변이었다. 성민은 결국 박민우가 건넨 예쁜 당근을 받아들이기로 했고, 레이아에게 단단히 약속을  다음 구속에서 해방될  있었다. 대신, 이제 박민우에게 함부로 해를 끼치지 못하게 됐다. 소년은 지긋지긋한 수갑을 떼어 내는 순간 상쾌한 신체적 자유를 느꼈으나, 그 대가로 박민우에게 완전히 굴복하면서 보이지 않는 또다른 족쇄를 스스로에게 채웠다. 마치 견공에게 입마개를 씌운 모양새였다.

하지만 기분은 별로 나쁘지 않았다. 아리 누나와의 일은 앞으로 어찌 될지 몰라 막막했지만, 레이아를 얻은 기쁨에 비하면 다른 것들은 사소할 뿐이었다. 비록 일주일도  되는 시한부 연인인 데다가 레이아를 얻은 대가로 자신의 자존심과 양심, 아리 누나와의 의리를 팔아넘기긴 했지만, 그럼에도 충분히 이득을 보는 거래라고 성민은 생각했다. 사막 한복판에서 목이 타 죽을 것 같은 사람에겐 저 먼 곳에서 태양처럼 빛나는 금괴보다 눈앞의 물 한 모금이 더 귀중한 법이다. 지금 그녀가 선사하는 심리적 안정감은 상처 입은 마음을 부드럽게 달래주고 치유하고 있었다.

성민은 마치 붉은 팔찌처럼 손목에 선명하게 새겨진 수갑 자국을 쓰다듬다가,  안에 있는 귀여운 보라색 덩어리를 만졌다. 따뜻하고 부드럽고 감촉이 좋다. 감히 레이아의 머리를 쓰다듬는건 한 시간 전만 해도 상상도 못했는데. 이렇게 머리만 만져도 마음이 힐링되는 기분이 들었다. 알게 된지 며칠 되지도 않은 애한테 이렇게 깊게 빠질 줄은 상상도 못했다.

여러 변화 중 또 한 가지는 둘의 구도였다. 딱딱한 태도를 버리고 한 명의 여자애로서 행동하는 레이아는 제법 귀여웠다. 이제까지 생각했던 것과는 정반대였다. 몸집도 작아서 팔로 끌어안으면 품 안에 쏙 들어왔다. 성민이 레이아를 끌어안고, 머리를 쓰다듬고, 귀여워한다. 이제까지 레이아에게 있었던 주도권은 둘의 암묵적인 합의에 따라 성민에게로 넘어갔다. 관계가 진전되니 이제까지와는 다른 구도가 펼쳐지는게, 마치 한아리 때와 같았다.


….

'아리 누나….'

갑자기 씁쓸해졌다. 이래도 되는 걸까 싶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성민이 우울의 바다에 잠기기 전에 레이아가 소년을 현실로 잡아 끌어냈다.

"성민아."

"응?"

"이제, 해야지?"

레이아의 말에, 성민이 복잡한 표정을 짓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약 한 시간 전.


성민이 '유혹'에 넘어간 후, 완전히 넘어간 소년이 호응하면서 키스는 격정적으로 변했다. 입을 맞추고 몸을 부비면서 예민한 부위가 은근히 자극되자 흥분한 남녀는 자연스럽게 옷을 벗었다. 파트너의 탄탄한 몸과 단단한 페니스를, 부드러운 피부와 젖가슴과 엉덩이를. 손으로, 몸으로, 입으로 열렬하게 탐했다.


성민은 한아리와는 다르게 품 안에  들어오는 몽글몽글한 여체에, 레이아는 의외로 튼실하고 든든하며 어린 소년의 좋은 향기가 나는 남체에 매력을 느꼈다. 레이아의 유방이 탄탄한 성민의 가슴을 부드럽게 꾹꾹 눌렀고 서로의 유두가 비벼졌으며, 성민의 성난 페니스는 레이아의 아랫배를 슥슥 문질러서 두근거리는 기대감을 선사해줬다. 당장 삽입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분위기였다.

문제는, 성민은 아직 아리를 완전히 버린게 아니라는 것이었다.


성민과 레이아. 둘은 분명 서로에게 매력을 느꼈고, 몇날 며칠을 불태우며 살을 섞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관계가 됐다. 상황만 좋았다면 분명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성민은 박민우의 거미줄에 묶여 고생하는 아리를 떠올리자 차마 레이아를 취할 수 없었다. 혼자만 즐기려는 철없는 자신의 모습을 자각하자  떠내려간 줄 알았던 양심과 의리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나, 분위기를 읽어낸 레이아는 다 이해한다고 부드럽게 말하며 성민의 마음을 최대한 풀어줬다. 당장이라도 배꼽을 맞출 기세였던 둘은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부드럽게 키스하며 침대에 같이 누워 서로의 온기를 즐겼다. 뜨겁게 달아오른 심신과는 달리 심심할 정도로 부드러운 행위. 그래도 나름 플라토닉 러브 같은 느낌을 줘서 어느 정도 위로가 되긴 했다.

성민을 달래주며 곰곰이 생각하던 레이아는  가지 제안을 했다.

박민우의  지시를, 계속 수행하는건 어떻겠냐고.


처음엔 뜬금없는 소리에 싸늘한 표정을 지었던 성민이었으나, 레이아의 말을 듣고는 생각의 시간을 가진  결국 승낙했다. 그녀가 제안한 내용은 이러했다.


나와 하고 싶거든, 언제든 그래도 된다. 말하지 않아도 괜찮다. 자다가도 일어나서 받아주겠다. 하지만 아직 저항감이 있다면, 한아리의 동영상으로 욕망을 풀어라. 나를 사용해서.

요컨대 섹스가 내키지 않으면 대딸이나 그 이상의 유사 성행위를 해주겠다는 제안이었다.  이렇게까지 하냐고 물어보려다가, 그녀의 역할을 상기한 성민은 결국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이것도 나름 몸을 섞는 행위고, 레이아라는 자위 도구를 사용해서 아리 누나를 보고 사정하는 셈이니 좀 이상하긴 하지만 괜찮은 생각인  같았다.

'아무리 그래도, 솔직히  이상하긴 해.'

하지만 이상하지 않은게 어딨겠는가. 대딸 쳐줄테니 다른 여자의 섹스 동영상을 보고 즐기라는 레이아도 이상하고, 그런 레이아를 여친처럼 생각하고 좋아하는 자신도 이상하고, 그냥 이딴 상황이 만들어진 세상 자체가 이상했다.  같이 이상하다 보니까, 알고 보니 이상한 짓이 정상인게 아닐까 싶었다. 엉뚱한 생각을 하던 성민은 술을 마시지 않았음에도 술에 취한 듯한 어지러운 기분이 들었다. 슬슬 뱅뱅 돌기만 하는 어지러운 생각을 그만두고 싶었다.


….

상념에서 벗어난 성민의 눈에 들어온 것은, 어느새 배를 깔고 누운 채로 다리 사이의 페니스 가까이에 얼굴을 들이민 레이아였다. 그녀는 태연한 얼굴로 핸드폰을 하다가 시선을 느끼자 내려놓고는 고개만 들어서 성민과 눈을 마주쳤다.

"아, 우리 자세가 좀 이상한가."

자신이 너무 과하게 의욕적으로 보였다고 생각한 레이아는 자리를 옮겨서 침대 헤드에 등을 기대고 앉은 성민의 왼쪽에 자리잡았다. 오른손잡이인 성민을 최대한 방해하지 않는 위치였다.


"하고 싶으면 말해. 일단은 손으로 해줄게."

"…응. 해줘."

그 말에 성민은 바로 요구했다. 좋은 음식 냄새가 식욕을 자극하는 것처럼, 레이아의 감미로운 여자 향기로 인해 성욕이 올라왔다. 아리와 떨어진지 그리 오래 지나진 않았지만, 몸으로 느낀 시간은 굉장히 길었고, 정말 오랜만에 여자가 성욕을 풀어주는 것처럼 느껴져서 페니스가 순식간에 아플 정도로 발기했다. 빨리 만져달라는 듯이 꺼떡이는 흉흉한 자지를 보던 레이아가 침을 삼킨 뒤 말했다.


"영상 봐. 나는 없다고 생각하고."

"알았어. 미안해."

"아냐. 미안할 거 없어. 이런 식으로 한 발짝씩 나가는 거야."

레이아도 성민도 모두 알고 있었다.  정도로 관계가 진전된 상태라면, 단순히 대딸만 쳐주는 선에서 둘의 진도가 끝날 리 없었다. 아예 아무런 관계도 갖지 않았다면 모를까, 서로가 서로의 피부를 더듬고 설육을 탐하고 진한 살내음까지 맡았으니, 둘의 성기가 만나는 날은 그리 멀지 않으리라.


마치 과일 껍질을 벗겨내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대딸부터 시작한다. 레이아는 서두르지 않았다. 이번에는 여기까지만 해주겠지만, 다음에는 수위가 더 높아질 것이다. 소년의 요구에 의해서. 미래가 훤히 보였기에 조급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레이아…."

"쉿…. 괜찮다니까. 난 이제 조용히 할테니 느긋하게 '자위'하면서 좋은 시간 보내."

성민을 부드럽게 달래준 레이아는 그의 시야의 사각지대에 자리잡고는, 보기만 해도 튼실한 페니스를 살짝 쥐었다. 소년은 페니스와 더불어 온몸을 한 차례 움찔거렸으나, 이내 진정하며 이제까지 해왔던 것처럼 동영상을 틀고 집중했다.


이제까지와 다른 점은 그저 양손이 자유롭다는 점과, 동영상을 보는 눈동자가  개라는 점 뿐이다. 그렇게 생각하기 위해 노력했다.

꿀꺽.

성민은 저도 모르게 침을 삼키며, 새로운 동영상 속으로 빠져들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