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76화 〉#4-2. 개입 (11) (76/162)



〈 76화 〉#4-2. 개입 (11)

'불편해….'

정신을 차린 아리는 가장 먼저 이렇게 생각했다. 자신을 이렇게나 함부로 다루는건 얘네들 밖에 없을 것이다.

대충 입고 대충 꾸며도 잔뜩 보정을 받은 슈퍼 모델처럼 스타일이 좋았다. 그러나 이곳에 온 뒤로는 깔끔하게 꾸며진 적도 없었으며, 계속 흐트러지고 엉망이 되기만 했다. 몸단장이라곤 온몸에 말라붙거나 새겨진 온갖 자국들을 지우는데 시간을  쓰는 샤워, 그리고 머리를 빗는 정도가 전부였다. 꼬리뼈까지 내려오는 그녀의 긴 생머리는 요 며칠 내내 스타일이 망가져 있었다.


아랫배, 보지 둔덕, 허벅지 안쪽과 바깥쪽, 엉덩이, 꼬리뼈. 언제부터인지  곳곳에 질 나쁜 낙서가 새겨져 있었다. 음담패설이라던가, 사정한 숫자를 정(正)자로 써놓기도 했고, 철없는 남자애들이 벽에다가 유치하고 질나쁜 낙서를 해놓은 것처럼 대충 그린 음란한 그림이 그려져 있기도 했다. 샤워할 때 꾹꾹 문지르면 지워지는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위든 아래든 구멍 주변부는 특히나 항상 지저분했다. 온갖 체액으로 더럽혀지고 말라붙어서 찝찝했다. 지금도 그랬다. 목보지를 쓰면서 입가에 줄줄 흐른 타액이 말라붙어서 닦아내고 싶었다. 그러나 그렇게  수 없었다. 그녀에게 신체적 자유는 허락되지 않았다. 아리는 상황을 조성한 그 녀석을 떠올렸다.

…박민우. 그 소악마 녀석. 걔가 성민이랑 동갑이라는게 믿기지가 않는다. 그렇게 어린 녀석이 벌써부터 하는 짓이 보통이 아니었다.

아리는 현재 테이블에 눕혀진채 고무 재질의 밴드로 묶여 있었다. 녀석의 말에 의하면 오늘은 목보지만 쓰는 날이란다. 그녀의  구멍 중 목구멍만 허락된 것이었다. 의외라면 의외로 아리의 목보지에 대한 남자들의 평가와 만족도는 높았다. 타고난 음탕한 몸이란다.

사실 새삼스러운 얘기였다. 그녀의 온몸이 그랬다. 타고나지 않은게 없었다. 딱 봐도 특급인 얼굴과 몸매. 부드러우면서도 탄력 있는 피부. 남자에게도 밀리지 않는 엄청난 성욕. 온몸이라고 해도 될만큼 수많은 성감대. 흥분하면 잔뜩 흘러나오는 진득한 애액과 암컷의 페로몬. 언제나 바짝 조여주는 구멍들. 목구멍 역시  수많은 재능  하나였다.


아무튼. 녀석은 목구멍만 쓰는 날이랍시고 아리를 잡아다 테이블에 눕혀서 묶었다. 맞춤 제작이라도  건지 테이블의 크기는 아리의 몸이  누울 정도였고, 높이는 남자들이 자지를 목구멍에 쑤셔박기 딱 좋은 높이였다. 팔다리는 아래로 내려가 각각의 기둥에  묶여 있었으며 거기에 더해서 허리까지 밴드로 구속했다. 자국이 생길 정도로 꽉 조여서 아리는 거의 움직일 수 없는 상태였다.

옷은 단 한 번도 허락된 적이 없었기에 당연히 알몸이었다. 그러나 바깥에 훤히 드러난 보지가 사용되는 일은 없었다. 박민우가 지배하는 공간에서 그의 명령은 절대적이었고, 다들 협조적으로 명령을 따랐다.

명령에 의해 철저히 외면된 보지는 현재 구멍 입구가 벌어진 채로 물을 줄줄 흘리며 뻐끔거리고 있었다. 누가 보면 질내사정만 안했을 뿐이지 한참을 쑤셔박은 것으로 착각할 정도였다. 아리가 그렇게나 흥분한 이유는 하루 종일 목구멍으로만 쑤셔졌기 때문이었다.

아니, 여기로도 느낄  있는 거야? 목구멍으로 처음 흥분감을 느꼈을때 아리는 크게 당황했다. 사실  과거에 애널을 뚫렸을 때도 비슷한 생각을 했었다. 자지를 넣는 구멍이 아닌데도 쾌감이 느껴지는 것에 엄청 혼란스러워 했던 웃지 못할 기억도 있었다. 그런 경험도 있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목구멍은 괴롭기만 하지 않을까 싶었다. 물론 괴롭긴 했다. 조교 받으면서 적응하는 과정에서 헛구역질도 수없이 했고, 그때 흘린 눈물과 침이 얼마나 많았던지.


그러나, 적응이 좀 된 현재에는 그 맛을 어느 정도 알 것 같았다. 물론 아래쪽 구멍처럼 성감대가 마구 자극되어 미칠 듯이 느끼는건 아니었지만, 여러 흥분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섞여서 커다란 쾌감 덩어리가 되는 느낌이었다. 핵심은 심리적인, 그리고 수동적인 쾌감이었다. 커다란 이물질에 대해 거부 반응을 일으키는 예민한 목구멍이 온순하게 길들여져서 자지를 받아들이는 것은, 마치 도구가 된 듯한 기분이 들어서 묘하게 짜릿했다. 남자 쪽의 신음이라던가, 콧속으로 가득 들어오는 수컷 냄새도 꽤나 큰 요소였으며 목구멍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생생히 느끼는게 이질적이었다. 목구멍 안에서 타액과 쿠퍼액, 정액이 다 구분되는게 신기했다.


목구멍을 생전 처음 써보는건 아니었다. 그러나 제대로 해본 적은 없었고, 이렇게 하루 종일 사용되니 감회가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

'슬슬 풀어주면 안 되나?'

 하루가  지났기에, 슬슬 끝날 때가 됐다.  묶여 있어서 사지가 뻐근했고, 몸이 굉장히 찌뿌둥했다. 목도 마르고 이제 그만 씻고 싶었다. 계속 한 자세로만 묶여 있으려니 슬슬 답답해서 기분도 안 좋아지려 하고 있었다. 마나 유저였기에 그나마 이 정도로 점잖은 것이지, 일반 사람이었으면 날뛰다가 진이 빠져서 반쯤 기절했을 것이다. 박민우가 하는 플레이는 마치 이래도 버틸 수 있겠냐고 물어보는 것 같았고, 절대 봐주는 기색이 없었다.


끼이익.


문이 열렸다. 세상이 거꾸로 보이는 아리는 그쪽을 보며 이번에 보이는 것이 털이 수북한 남자 다리가아니길 바라고 있었다. 또 목보지에 박겠다면… 뭐 어쩔 수 없겠지만.


"아."

다행히도, 이번엔 다른 다리였다. 까만 스타킹을 신은 여자의 날씬한 다리가 보였다. 박민우의 비서였다. 그녀는 가끔씩 들어와서 아리의 얼굴을 물티슈나 젖은 수건 등으로 닦아주고 주변을 정리했었다. 그러나 이번엔 아무 것도 들고 있지 않았다. 아리의 안색이 모처럼 밝아졌다.

탁. 탁. 탁. 탁. 탁.

아리의 사지와 허리를 꽉 조이던 밴드가 하나씩 풀렸다. 버클을 눌러 해제하는 소리가 이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움직여도 된다는 말은 없었지만, 아리는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왼쪽 다리의 구속이 풀리자 몸을 일으켰다. 뒤집어진 세상이 똑바로 돌아오니 이제야  살 것 같았다.


"후우."

"좋으십니까."

"…."

비서의 고저 없는 말투. 그녀와 친해질 이유가 없었기에, 아리는 차갑게 침묵했다. 특별히 원망하거나 그런 건 아니었고, 아리스의 성격이 원래 그랬다. 친한 사람이나 친해지고 싶은 사람에겐 천사가 따로 없었지만, 친해지고 싶지 않은 사람에겐 얼음 벽을 세우며 냉기를 풀풀 날렸다.

현역 시절엔 외날검을 잘 다루는 멋진 모습과 차가운 분위기가  어우러져서 그런 성격이 오히려 매력 포인트로 작용해 여자들에게 특히 인기가 많았는데, 지구에 오니 반대가 됐다. 지구에선 칼을 일이 없어서인지, 남자들은 그녀를 무서워하지 않고 다가와서 찝쩍거렸다. 그 이후엔 [외강내유] 스킬이 발동되어, 견고했던 얼음 벽이 산산히 부서진다. 지구의 '한아리'는 남자들에겐 그저 '좀 튕기는 쉬운 여자'일 뿐이었다.

반대로 여자들은 수컷을 죄다 몰고 다니는 암컷인 아리스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고, 그녀 역시 얼음 벽을 쳤기에 좋은 관계가 될 일이거의 없었다. 칼이 필요 없는 좋은 세상에 오니, 최고의 검객이자 여자들의 동경의 대상이었던 아리스는 이젠 동성에게 질투와 경계를 받는 적대 관계가 됐다. 가끔씩은 그게 씁쓸했지만, 별로 신경 쓰진 않았다. 어두운 과거를 가진 아리스는 기본적으로 인간 관계를 냉소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 인간의 본성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물론 용사와 다른 네 명의 여자들은 예외로 두고, 진심으로 사랑한다.


"답답하셨을 텐데, 잘 참으셨습니다."

비서가 말했다. 항상 무시를 당하는데도 계속 말을 거는게 보통 낯짝은 아니었다. 아리는 그녀만 유독 무시하는게 아니라, '플레이'에서 어쩔 수 없이 말을 하게 되는걸 제외하면 말수 자체가 거의 없었다. 성격과는 별개로 그게 상황에 맞는 처사였기 때문이다. 사실상 납치된 여자가 범인과 공범들에게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그리고 애초에 정상적인 대화를 할 수 있는 상황도 얼마 없었다.


그런 그녀였지만, 비서에게서 옷가지를 받아들게 되자 입을 열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게 뭐지?"

"옷입니다."

"장난하지 말고."

비서는 눈썹을 띄우며 놀리듯이 침묵하는 뒤끝을 보인 뒤에야 설명을 했다.


"박민우 님의 지시입니다. 깨끗이 씻고 몸단장을 한 다음, 이 옷을 입으라고 하십니다."

"어디 나가는 건가."

대답을 바라고 한 말은 아니었고, 비서 역시 말이 없었다. 아리는 마침 씻고 싶었기에 선뜻 지시를 받아들였다. 별장에서 그녀의 단독 행동은 허가되지 않았기에 한쪽 팔은 비서에게, 반대쪽 팔은 뒤따라 들어온 다른 여자에게 붙들려 이동했다. 기다리던 샤워였기에, 딱히 지치지도 않은 아리는 팔짱을 낀  사람에게 끌려가는게 아니라 같이 걸어가는 것처럼 협조적으로 움직였다.


이제는 자신을 조준하는 여러 개의 카메라 렌즈가 익숙해졌다. 보이지 않는 큐피드의 시선에 내성이 생긴 것도 있었고.

생각해보니 관음하는게 한두명이 아니었다. 용사님, 성민, 그리고 이걸 찍는 박민우쪽 관계자. 최소 세 명이네.

"후."

웃음인지 뭔지 모를 짧은 콧소리. 아리는 기분을 짐작할 수 없는 오묘한 표정과 분위기로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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