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7화 〉#4-2. 개입 (12)
"…괜찮아?"
성민의 풀죽은 목소리. 레이아는 별말 없이 손가락으로 얼굴을 훑었다. 새하얀 손가락에 찐득한 정액이 묻어났다.
작은 사고였다. 성민은 순간적으로 솟아오른 사정감을 못 참아서 분출해 버렸고, 열심히 손운동을 해주던 레이아의 얼굴에 정액을 뿌려버렸다. 힘차게 솟은 첫 줄기가 뺨을 때렸고, 그 다음 줄기는 아랫 입술에 안착했다. 그 후에도 쇄골과 다리에 묻는 등 그녀를 정액으로 더럽히는 실례를 해버렸다. 대딸을 처음 받아본 것은 아니었지만 시작부터 끝까지 대딸만 받아본건 처음이었고, 슬슬 쌀 것 같아서 세게 해달라고 하자 생각보다 훨씬 격렬하게 흔들어준게 나름 핑계거리였다.
성민은 당황스럽긴 했지만, 속으로는 정액 묻은 레이아의 모습이 은근히 섹시하다고 생각하며 겉으로만 어쩔 줄 모르는 척을 했다. 여자의 얼굴에 싸는 것도 나름 재밌었고, 자기 손을 안 쓰고 끝까지 가는 것도 재밌는 경험이었다.
그런 식으로 일부러 즐겁게 생각하며, 성민은 아리 누나의 동영상을 머릿속에서 잊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동영상의 여운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솔직히 좀 놀랐다. 테이블에 묶여 목구멍만을 범해졌는데, 나중에 가니까 허벅지를 비벼대며 애액을 줄줄 흘려댔다.
정말로 개발된 거야, 누나? 목구멍으로도 그렇게나 느끼는 거야? 모르는 남자의 좆으로?
항상 그랬듯 영상에는 꽤 많은 편집이 들어가 있어서 중간중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기 어려웠다. 사실 애무를 받았을 수도 있지. 손가락으로 마구 쑤셨을 거야. 씹물을 질질 쌀 수밖에 없도록. 그리고는 오해하라고 그걸 싹 다 편집한 거야. 아주 악의적으로! 분명 그렇겠…지?
그 짧은 사이에 혼자만의 세상에 빠져서 불안해진 성민은 저도 모르게 마침 눈에 들어온 레이아의 다리를 턱 붙잡았다. 그러자 떨리던 손이 멈췄다.
공교롭게도, 레이아는 지금 손에 묻어난 정액을 닦으려고 곽티슈 쪽으로 움직이려던 참이었다. 레이아에게 묘한 시선을 받자, 자기 행동을 인식하지 못한 성민이 순진한 눈빛으로 그녀를 마주봤다.
"…혹시, 이걸 먹으라는 거야?"
"응?"
레이아의 오해. 성민은 한 박자 늦게 지금 상황을 인식했다. 마치 자신이 레이아를 못 가게 붙잡은 듯한 구도. 그냥 아리 누나 생각을 하다가 불안해져서 아무 거나 붙잡은 건데…. 근데, 오해 치곤 상황이 좀 재미있었다. 순식간에 눈빛이 바뀐 소년은 짓궂게 권유한다.
"그래 볼래?"
"으음…."
레이아는 은근히 거부감을 표시했으나, 아리와 뒹굴면서 야한 장난이 늘어난 성민은 능글맞게 모른 척했다. 결국 손에 묻은 정액 덩어리를 입가에 가져가면서 레이아의 입이 열리고 혀가 마중나왔다. 하얗고 탱글탱글한 정액 덩어리와, 예쁜 분홍빛 혀가 맞닿기 직전….
찹!
레이아가 기습적으로 손을 뻗어 성민을 스윽 문질렀다. 자연스레 거기 묻어있던 정액도 성민의 몸에 다 묻어 버렸다.
"억! 야, 너!"
"너나 많이 드세요."
어제만 해도 상상도 못했던, 장난기 가득한 레이아의 목소리. 천진난만한 그 미소에 성민은 당황하면서도 저도 모르게 이가 드러나도록 짙게 미소를 지었다.
"요게?"
성민은 자기한테 묻은 정액을 다시 손으로 훑어 덩어리를 쥐었다. 어차피 자기 거여서 그렇게 큰 거부감은 없었다. 위기가 다가오자 레이아는 슬쩍 몸을 뒤로 뺐다.
"흐흐, 다시 돌려줄게. 이리 와."
"싫어!"
때아닌 추격전이 벌어졌다. 며칠 내내 수갑에 묶여있었던 성민은 모처럼 침대를 벗어나 자기 방을 한껏 휘저으며 레이아를 추격했다. 물론 장난이었기에 둘은 웃으면서 한참을 쫓고 쫓겼다. 결국 레이아는 들이밀어진 성민의 손을 혀로 살짝 핥은 후, 입안으로 들어온 정액을 퉤 뱉으며 맛없다고 불평했다.
유치하고 야하고 즐거운 순간을 보낸 둘은 잠시 소강 상태를 맞아, 숨을 고르면서 서로의 얼굴을 보며 가만히 있었다. 자연스럽게 키스가 이어졌다. 혀를 서너번 섞는, 스킨십에 가까운 행위. 이후 마무리로 가볍게 뽀뽀한 후 레이아가 먼저 제안했다.
"샤워할래?"
"같이?"
"싫어? 싫음 말고."
"아니. 하자."
"그래. 내가 시중들어줄게."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는데. 성민은 분명 그렇게 말하려 했으나, 왠지 싫지 않아서 조용히 눈치를 봤다. 레이아가 자긴 괜찮으니 거절할 필요 없다고 하자, 소년은 기분 좋은 표정으로 소녀의 손을 잡고 함께 움직였다.
….
쏴아아.
타다닥 쏟아지는 물소리, 화장실 슬리퍼를 직직 끄는 소리, 거품 묻은 샤워볼을 문지르는 소리. 소근거리는 작은 목소리가 화장실 안을 맴돌며 울렸고, 중간중간 작은 웃음 소리가 밖으로 새어나왔다.
마치 연인과 좋은 시간을 보내는 듯한 분위기였다.
혼자 했으면 20분 안에 끝났을 샤워는, 두 배인 40분이 넘도록 끝나지 않았다.
…
끼이익.
문을 조심스레 닫는 소리. 레이아는, 모처럼 샤워하고 상쾌한 기분을 느낀 성민을 잠재웠고, 20분 정도 후에 밖으로 나왔다.
타이밍 좋게, 화장실에서 나오던 민성과 마주쳤다.
"엇, 미안."
"아뇨, 뭐."
레이아는 샤워한 후에도 옷을 입지 않았고, 지금은 수건으로 앞쪽만 가리고 있는 상태였다. 촉촉히 젖은 팔다리나 어깨, 쇄골, 옆구리와 골반 라인이 전부 노골적으로 드러나 있었다. 그녀가 수건을 잡고 있는 손을 놓는다면, 그나마 가려졌던 부분도 전부 드러날게 뻔했다. 에로 사진처럼 아슬아슬한 수위였다. 하지만 부끄러워하는건 민성이었고, 당당한건 레이아였다.
"그나저나, 우리 얘기좀 할까요?"
"어? 어어…. 무슨 얘긴진 모르겠는데, 옷은 입는게 어때."
"시원해서 딱 기분 좋은데. 전 괜찮으니 그냥 해요. 민성 님 방에서 얘기하죠."
"아니, 내가 안 괜찮…."
레이아는 민성의 말을 무시하며 한쪽 손으로 앞장서라고 손짓했다. 민성이 머뭇거리자 레이아가 '제가 앞에서 갈까요?'라고 씨익 웃으며 농담을 했다. 차마 농담으로 받아들일 수 없었던 민성은 숙맥처럼 굳은 표정으로 앞만 보며 자기 방으로 향했다.
….
민성이 쓰고 있는 2층의 작은 방은 빈방이어서 창고로 쓰던 곳이었다. 요 며칠간 그는 이곳에 이불만 깔고 조용히 지내고 있었다. 2층짜리 단독주택은 평소보다 사람이 많은 지금도 여전히 널찍했기에, 가장 구석진 곳에 있는 이 방은 무슨 일이 일어나도 모를 곳이었다.
침대도 뭣도 없었고 바닥에 편하게 앉을 상황도 아니었기에, 민성은 선 채로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고 있었다.레이아가 씨익 웃으며 다가가자 민성은 장난기 가득한 그 행동을 알면서도 뒷걸음질 칠 수밖에 없었다.
"민성 님? 얘기하자니까요?"
"하아…. 일단, 억지로 존댓말 할 필욘 없어. 성민이한테 하는 것처럼 편하게 말해."
"죄송하지만 싫은데요. 성민이랑은 연인처럼 지내기로 했으니 편하게 부르는 거니까요. 그리고 처음보다 훨씬 말 편하게 하고 있으니 신경쓰지 마세요."
"그러냐…."
생각해보면 다나까로 끝나던 딱딱한 존대가 아니었다. 오히려요자를 붙이며 존대를 하긴 하는데, 그녀의 표정과 분위기와 말투가 훨씬 편해 보여서 그렇게 존댓말 같이 느껴지지도 않았다.
"그래서, 애인도 아닌 나한테 이러는 이유가 뭐야."
"흐음."
레이아는 그저 빙긋 웃을 뿐, 말이 없었다.
성민도 그렇고 민성도 그렇고, 둘 다 어린 것치곤 절제와 인내를 할 줄 알았다. 일부러 자신을 외면하는 것은 숙맥이어서 마냥 부끄러워서 그런게 아니라, 친구의 여자를 건드리고 싶지 않다는 멋진 의리였다. 녀석들보다 나이가 많음에도 발정난 것처럼 지저분하게 구는 어른들을 많이 본 레이아는 자연스레 두 소년에게 흥미와 호감을 느꼈다.
레이아의 얼굴에 은은한 미소가 어리고, 거기에 은근한 눈웃음까지 더해지자, 흘끗 얼굴을 보았던 민성이 당황하며 다시 눈을 돌렸다. 요망한 계집애. 맨살에 수건만 앞쪽에 걸치고 있었기에, 어떤 행동을 해도 요염하게만 보였다. 싱긋 호선을 그리던 연분홍빛 입술이 열리며 부드러운 미성을 내보낸다.
"그때 민성 님도 밖에서 다 들으셨겠죠? 저와 관련된 모든 전말을."
"아…. 네가 성민이를 위로하는 역할이라는거?"
"후후. 사실 그거, 거짓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