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88화 〉#4-2. 개입 (23) (88/162)



〈 88화 〉#4-2. 개입 (23)

아리스, 용사, 그리고 레이아.

끝이 다가오는 것을 아는 것은 세 명 뿐이었다.


"무슨 생각해?"

"그냥 멍해."

레이아는 연인처럼 볼에 쪽쪽쪽 입술을 문대며 묻는 성민에게 눈썹을 띄우며 말했다.


이른바 현자 타임이 그녀에게 찾아왔다. 몸은 더 느낄 수 있겠지만, 정신은  차례의 절정을 겪은 뒤 차분해져서 더 이상 쾌락을 원하지 않았다. 아무리 먹을 것을 좋아해도 하루 종일 뭘 먹을 순 없듯이, 여러 번의 오르가즘을 느끼며 표정마저 무너져 헤벌레 했던 레이아는 현재 착 가라앉아 차분한 얼굴이었다.


성민과 레이아. 둘의 속궁합은 최고였다. 아리와 성민의 속궁합은 거의 천생연분 급이었는데, 레이아는 그보다도 더 잘 맞았다.

레이아 입장에선 여러 가지가 맞물린 결과였다. 성민의 정력과 타고난 섹스 능력, 엄청 잘 느끼는 자신의 몸, 둘의 잘 맞는 속궁합, 그리고 [씨받이] 스킬. 그중 그녀가 가장 크게 실감한 것은 씨받이 스킬이었다. 저번 온천 여행에서 저주가 한 단계 강화된 이후, 씨받이 스킬 역시 2레벨로 강화되었다. 그리고 그 강화를, 저주의 상승폭을 레이아는 아주 또렷하고 분명하게 체감했다.

씨받이 스킬은 용사의 여자들 사이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대화 주제이기도 했다. 각자 가진 고유의 저주 스킬들은 직접 느껴보지 못했으니 얘기해도 공감이 잘 되진 않았지만, 씨받이는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스킬이어서 얘기가 많이 나왔다. 다들 하나같이 하는 말이, 정말 무섭다는 것이었다.


각자의 저주가 하나의 완성품이라면, 씨받이 스킬은 연결부를 결합해주는 나사 혹은 부품 사이에 칠해진 윤활제와 같은 역할을 했다. 미라가 바람을 피우는 데에도, 지나가 음탕하게 뒹구는 데에도, 레이아가 용사로는 해결할 수 없는 성욕을 풀기 위해 다른 남자와 몸을 섞는 데에도, 아리스가 남자에게 억지로 당하며 느끼는 데에도 씨받이 스킬의 기여가 결정적이었다. 심지어 주객전도로 씨받이 스킬이 더 쾌감을 주는 경우도 제법 자주 있었다.


지구 생활 초반에, 용사가 아닌 다른 남자와 섹스한다는 여자들의 배덕감을 극복하게 해준 것은, 진실한 사랑 따위가 아니라 씨받이 스킬의 엄청난 쾌감이었다. 여자들은 당장 하복부에서 시작해 등골을 관통하여 정수리까지 꿰뚫고 솟구치는 거대한 쾌감 때문에 다른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그나마 얼추 적응되어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미 네토 플레이를 자연스럽게 하고 있었다. 정신을 차린 후엔 아주 절정 지옥이었다. 씨받이 스킬의 쾌락 뿐만 아니라 각자의 저주 스킬이 주는 쾌감까지 맨정신으로 감당해야 했으니….

스킬창 한자리를 떠억 차지해버린 씨받이 스킬의 효과는 불친절하게도 정확하게 나와 있지 않았다. 그냥 마왕의 강력한 저주라고만 표기되어 있었다. 그러나 여자들은 말이나 글로 효과를 확인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스킬의 효과를 선명하게 느꼈다. 온몸의 피부가 전체적으로 예민해졌고, 성감대는 더더욱 예민해졌으며 체내 사정에 더 큰 쾌감을 느꼈다. 말 그대로 씨받이처럼, 정액이 자궁을 때릴 때마다 마치 절정 버튼이라도 누른 것처럼 거의 대부분 오르가즘을 느꼈다.

몸이 예민해졌다는 말은 언뜻 들으면 별 것 아닌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으나, 직접 체감하는 여자들 입장에선 엄청난 변화였다. 유두나 음핵처럼 노골적인 성감대가 아니더라도 오르가즘에 다다를 정도로 쾌감을 느낀다. 미라의 경우 귓볼 쪽이 예민했는데, 씨받이 2레벨인 지금은 귓볼을 지긋이 빨아주는 것만으로도 애액으로 물총을 쏠 정도로 엄청나게 느낀다.

물론 여자는 여자였기에 취향에 맞는 어느 정도의 분위기와 심리적 흥분감이 필요하긴 했지만, 일반인 여자들에 비하면 일상 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엄청 느끼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렇게나 예민해진 레이아를 성민이 자극하고 있었다.  다 발가벗고 있었기에 걸릴 것이 없었다.


"할래?"

"으음…."

찔꺽, 찔꺽.

레이아에게 밀착해 있었던 성민이 부드러운 손놀림으로 손가락 하나를 보지에 집어넣었다. 아기가 오물거리는 것처럼 손가락을 삼키고 맛보는 그녀의 보지에서 순식간에 물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분명 착 가라앉아 있었던 레이아는 어느새 높아진 목소리로 여자애의 귀엽고 달콤한 신음을 흘렸다.

"너 진짜 엄청 느끼는구나."

"하으, 그래서, 싫어?"

"아니. 진짜 좋아. 사랑스러워."

얕게 헐떡이던 레이아는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씹질에 저도 모르게 다리를 조금  벌렸다. 본능적인 행동을 자각하고는 흠칫하는 레이아를 보며 성민이 씨익 웃었다.

"흐응…."

'이건….'

분명 착 가라앉아 있었는데.   이렇게 느끼는 거야.

질퍽, 쯔걱, 쯔걱, 쯔걱!

"흐읏!"

"헤헤, 기분 좋아?"

레이아는 마치 잿더미에서 불씨가 살아난 것처럼 가슴 속에서 퍼져나가기 시작한 열기를 느끼며 당황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아서 당분간은 섹스할 기분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손가락으로 장난질을 몇  하니 순식간에 몸이 동했다.

저주를 받기 전이었다면 설령 상대가 용사였다 해도 섹스할 기분은 별로 들지 않았을 것이다. 심지어 씨받이 스킬을 가지고 있었을 때에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그녀는 다시금 강화된 저주의 효력을 느끼면서, 결국 성민에게   깊숙한 곳까지 전부 허락해줬다.

….

….

….

"하아, 하아…."

"후욱, 후…. 진짜, 더는… 못하겠다…."

"하아,  하면, 사람이… 아니겠지…."

"흐어…. 후우, 이미 나는 내가 짐승처럼 느껴져."

그 말에 레이아가 의외라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 알고 있었구나?"

"…쓰읍. 내가 먼저 말하긴 했지만 어째 기분이 이상한데."

"흥."

가볍게 코웃음치는 레이아가 귀여웠는지 성민은 지친 와중에도 흐뭇하게 웃었다.

 며칠간 둘은 정말 미친 것처럼 섹스했다. 정말 말 그대로  먹는 시간과 자는 시간을 제외하곤 거의 전부 섹스만 했다. 둘의 섹스 횟수는 성민-아리의 횟수를 진작에 뛰어넘었다.

성민의 정력도 정력이지만, 레이아 역시 만만치 않았다. 항상 살짝 튕기는 듯한 태도를 보이지만, 막상 섹스에서 느끼는 오르가즘 횟수는 성민보다 레이아가 더 많았다. 며칠 내내 몸을 섞으면서 그녀가 얼마나 잘 느끼는지를 체감한 성민은 한편으론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남자보다 더한 성욕의 화신 같은 그녀가 지금처럼 튕기지 않고 자기 성욕을 채우려고 먼저 달려들기 시작하면 진심으로 무서울 것 같았다. 그 정도의 성욕과 감도를 갖고 산다면 일상 생활이 가능할지 진지하게 의문이 들기도 했다.

"……."

"……."

잠깐의 휴식 동안 둘은 서로를 마주보며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대부분은 성민이 얘기하고 레이아가 들어주는 구도였다. 그의 부모님조차도 귀찮아 할만큼 내용 없이 길기만 한 대화였지만, 성민은 서로의 얼굴을 보고 실없는 얘기를 하다가 이따금 피식 웃는게 좋았는지 계속 대화를 이어갔다. 레이아는 여느 때처럼 성민이 뭘 하든 받아줬다.

둘은 슬슬 눈이 감기는지 점점 말수가 적어졌고, 마지막엔 서로 밀착해서 끌어안고 잠들었다.

….


삼십분 쯤 후,  안엔 잠든 성민의 고른 숨소리만 남았다.

깊게 잠든 성민과는 다르게, 레이아는 처음부터 잠들지 않았다. 자는 척을 했을 뿐.

잠시 눈을 뜬 레이아는 성민이 푹 잠든 것을 확인한 후, 그의 포옹을 풀고 핸드폰으로 톡을 보냈다.

….

잠시 후, 방문이 조용히 열렸다.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 민성이었다. 그의 표정은 여전히 살짝 일그러져 있었으나, 레이아에게 뒤통수를 맞았을때보단 훨씬 누그러진 얼굴이었다. 감정이 무뎌졌다기보단 피할 수 없는 상황 때문에 체념한 기색이었다.


"왜 불렀어."

"샤워나 좀 하려고요."

"샤워?"

네가 씻는데 왜 날 부르냐. 그렇게 말하는 듯한 눈빛에, 레이아는 흐응 하고 콧소리를 내며 고개를 살짝 옆으로 기울였다. 얄미운 제스쳐에 민성이 잠시 표정 관리를 하지 못했으나, 결국 한숨을 푹 내쉬었다.


"씻겨줘요."

그렇게 말하고 손을 내미는 레이아. 민성은 어쩔 수 없이 그녀를 공주님 안기로 안아들었다. 아무 것도 입지 않은 레이아의 다리 사이에서 식지않은 따뜻한 정액이 새어나와 바닥에 투두둑 떨어졌다. 아무리 친한 친구의 것이라고 해도 다른 남자의 정액에 본능적으로 거부감을 느낀 민성은 얼굴을 찌푸렸지만 딱히 다른 행동을 하진 않았다. 처음 겪는 일도 아니었으므로.


끼익.

욕실 문이 열렸고, 레이아는 욕조를 가리켰다.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옮긴 민성은 언제 받았는지 욕조에 따뜻한 물이 가득 차있고, 그 위로 뜨끈한 수증기가 모락모락 올라오는 광경을 보고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분명 하루 종일 떡치느라 방 밖으로 거의 나오지 못했을 텐데.

"샤워하고 같이 들어가자."

민성의 품에서 내려 자기 발로 선 레이아가 그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몸매와 비율, 피부까지 모두 끝내주지만 키는 좀 작아서 자연스레 그녀를 한참 내려다보는 민성은 레이아의 눈가에 살짝 그려진 눈웃음이나  아래에 보이는, 봐도 봐도 질리지 않는 젖가슴을 볼 수밖에 없었다.

두근두근두근.


성민을 속이고, 자신에게도 엿을 먹인 여자. 박민우 같은 절대악 까지는 아니어도 소악마 쯤은 충분히 되는 년. 존나게 여우 같은 계집애.

눈이 가려진 것이나 다름없는 성민에 비해 비교적 많은 것을 알고 있는 민성은 레이아를 곱게  수가 없었다. 그러나 남자인 탓에, 그리고 성격이 성숙하다고는 해도 몸은 어린 소년인 탓에 예쁜 여자에게 끌릴 수밖에 없었다. 망가에서 흔히 쓰이는, '입으론 그렇게 말해도 몸은 솔직하군.' 이라는 대사가 딱 어울렸다.

불가항력으로 민성의 바지가 부풀어오른다. 레이아의 시선이 그곳으로 향하자 민성이 민망한지 고개를 돌렸다.


"옷 벗고 와요."

욕하고 경멸하기엔, 너무나도 달콤한 유혹. 말 그대로, 악마적이었다.


"……."

스륵, 스르륵.


민성은 말없이 문 밖에서 옷을 벗었다. 바깥 공기를 쐬게 된 소년의 풋풋한 자지는, 여자를 꿰뚫기 위해 흉흉한 크기와 단단한 밀도를 구축하며 기대감에 펄떡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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