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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9화 〉#6. 미라의 여행 (4) (129/162)



〈 129화 〉#6. 미라의 여행 (4)

'좀 당황스럽군.'

막판에 밀당을 했기에 어느 정도 토라질 줄은 알았지만, 생각보다 더 냉랭한 미라의 분위기에 회장 역시 조금 당황했다. 그러나 노련한 그는 오늘은 날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여전히 그녀 앞에선 허허 훗는 여유로운 모습을 보였다. 아쉽긴 하지만 미라를 꼭 따먹어야 하는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고, 대주겠다면야 감사히 먹겠지만 굳이 이쪽에서 저자세로나갈 생각은 없었다.

회장이 오늘 처음 본 미라에게 성적으로 접근한 이유는 지나의 허락과 권유 때문이었다. 걔(미라)한테 뭔 짓을 해도 괜찮으니 재주 좋으면 한 번 따먹어 보라는 꽤나 도발적인 말투에 넘어갔고, 결국 실패하긴 했지만 팬티 위로 보지를 만지기까지 했으니 적어도 절반의 성공은 한 셈이다. 그는 차라리 그때 그냥 벗겼으면 진짜 먹을 수도 있었겠다고 생각했다.

딱히 간절한 마음은 없어서 붙잡지 않았다. 다만, 미라가 지나에게 자기 얘기를 나쁘게 할까봐 불안하다는 생각은 했다. 용사와 여자들의 정체를 모르는 회장의 시선에서 미라는 몸만 컸지 아직 한참 어린 여자애였으니까.

사실 둘의 나이는 몇  차이  나지만, 회장은 꽤나 노안이고 미라는 꽤나 동안이어서 겉보기엔 각각 20대 초반 아가씨와 최소 40대는 되는 아저씨였고, 회장은 당연히 미라를 한참 어린 애송이로 착각했다. 미라가 실제로는 자기와 말을 놓아도 될 정도의 또래고, 심지어 같은 종족도 아니고, 수백만이 죽어나간 대전쟁의 주연 중 한명이고, 수백 수천의 인간과 마족을 사살한 베테랑 궁수임을 알면… 아무리 침착한 회장이어도 소스라치게 놀라겠지.

'괜찮겠지.'

아무튼, 찝찝하긴 하지만 지나가   마디에 휘둘릴 리가 없다고 믿었기에 그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지나는 겉보기엔 밝고 가벼워 보이지만, 실제론 꽤나 냉정한 성격과 묵직한 심지를 가졌다. 그녀와 그저 섹스만 하는 다른 남자들이면 몰라도, 지나와 함께 여러 계절을 보냈던 회장은 그녀의 진면목을 잘 알고 있었다. 지나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에 회장은 마음이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또각, 또각.


이쪽으로 다가오는 앵클부츠의 굽소리에 회장이 눈을 돌렸다. 여전히 무표정한 미라가 어느새 코앞까지 다가왔다.

휴게소 화장실에서 십 분 정도 있다가 나온 그녀는 여전히 도도한 분위기로 매력을 한껏 풍기고 있었다. 여자들이 흔히 하듯이 화장을 고치고 나온 걸수도 있겠지만 회장의 눈에는 차이점이 보이지 않았다. 일단 그녀가 화장기가 별로 없는 얼굴인 데다가, 본판이 워낙 예쁘다보니 오히려 화장을 해도 묻힐 것 같은 느낌도 있었다.

보지 않고도 확신할  있는건, 미라가 지나와 마찬가지로 화장기가 별로 없는게 훨씬 낫다는 점이었다. 이미 조각한 것처럼 완성된 완벽한 얼굴이었기에 얼굴에 무슨 짓을 한다고 더 예뻐지기가 어려워 보였다. 과한 꾸밈이 오히려 외모를 망칠  같았다.


실제로 미라는 다소 평범하고 수수한 차림새만으로도 시선을 끌어모으고 있었다. 베이지색 트렌치 코트, 코트에 가려진 미니스커트, 무릎부터 보이는 검은색 스타킹, 앵클 부츠. 그리고 귀걸이 등의 흔한 액세서리. 특이한 것 하나 없는, 길 가다 흔히 볼 수 있는 여자들의 무난한 패션이었다.

차이점이 있다면 색이 자연스러운면서도 화려한 레몬빛 금발 포니테일, 보기 드문 에메랄드빛 눈동자, 코트로도 가려지지 않는 좋은 비율, 그리고 동서양의 장점만딱 가져온 혼혈 느낌을 주는 환상적인 얼굴.

그 차이점이 얼마나 큰지는 사람들의 시선에서 충분히  수 있겠지. 모르는척 은근슬쩍 보는 남자들은 물론이고, 같은 여자들 마저도 와 하는 표정으로 미라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다. 몇몇 사람들은 핸드폰을 꺼내서 찍기도 한다. 자기가 모르는 연예인인가보다 하고 찍는 건지, 아니면 그냥 예뻐서 찍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평일 낮의 휴게소여서 사람들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는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회장은 미라에게 시선이 모이면서, 그녀와 가까이 있는 자신에게도 슬쩍슬쩍 시선이 닿자불편함을 느꼈다. 미라는 이런 시선과 반응이 익숙해서 그런지 태연해 보였지만, 평범한 사람들은 뜬금없이 시선이 모이는 지금 같은 상황에서 대체로 당황한다. 지나는 워낙 실내파, 집순이 스타일이어서 이럴 일이 없었고, 때문에 내성이 없는 회장 역시 심적으로 동요하고 있었다. 그래도 다행히 겉으로는 별 생각 없는  할만한 여유는 있었다.

회장의 속이 복잡하건 말건, 무심한 표정을 짓던 미라가 무심하게 입을 열어 말한다.

"화난 거 아냐."

"…네?"

슬슬  불편한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하던 회장은 미라가 뜬금없이 꺼낸 말에 멍청한 말투로 되물었다. 미라는 여전히 새침한 얼굴로, 눈동자를 굴리며 시선을 피하다가 다시금 회장을 똑바로 보며 말했다.

"화난 거 아니라고. 그냥… 그런 상황이 처음이어서 당황한 거야. 계속 입 다물고 있던거, 불편했다면 사과할게. 악의는 없었어."

"아, 아닙니다. 전혀 아무 생각도 없었습니다. 따지고 보면 장난친 제 잘못이죠."

"으음, 그럼 된 거지? 차 타자. 너무 보는 눈이 많아."

회장은 미라의 누그러진 태도와 사과에 놀라긴 했지만, 그보다도 미라가 자신과 같은 생각을 했다는 데에 반가움을 느끼고는 그녀와 함께 차로 돌아갔다.

부우우웅….

평범한 배나온 아저씨인 회장과 연예인으로 착각할만큼 예쁜 미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둘의 관계를 궁금해하던 사람들은 그들이 택시에 타는 모습을 보고는 납득했다는 표정을 지으며 멍하니 떠나가는 택시의 뒷모습을 보았다.





그로부터 10분 전.

"하아."

볼일 볼 생각은 없는 건지, 코트만 벗은 채로 휴게소의 화장실 변기에 앉은 미라는 한숨을  내쉬었다.

"바보야."

스스로를 꾸짖으며 후회하는 표정을 짓는다.

 나쁘지 않았던 분위기를 괜히 싸하게 만들었다. 회장은 지나와 좋은 사이고, 자신을 목적지까지 데려다주는 수고를 하고 있으며, 심지어 섹스 쪽에 꽤나 실력이 있어 보였다. 하기야, 성욕과 섹스의 화신인 지나가 괜히 그를 회장이라고 부르겠는가. 그런 사람과 섹스를 한다면… 오르가즘은 기본이겠지. 엄청난 경험을  수도 있었다.


…괜한 짓을 했다.

미라는 여자들 중에서도 살짝 동떨어진 축에 속했다. 저주도 저주지만, 노는 물이 다르다. 다른 여자들은 평범한 일대일 정상위 섹스는 심심하다고 생각할 정도로 수위 높게 논다. 뒷구멍, 돌림빵, 난교는 기본이고 목구멍 섹스, 앞뒤 동시에, 앞뒤와 입으로 동시에, 수갑이나 목줄도 차고… 말로 다 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짓들을 일상적으로 한다. 물론 여자들마다 각자 다르긴 하지만, 아무튼 미라는 유독 건전(?)한 수위로 놀았다. 따지고 보면 그녀의 스킬은 순애에 가까운 장르니까. 그나마 수위 높게 놀았던게 애널 섹스 정도이니, 다른 여자들 눈에 미라는 귀여운 수준이었다.


이십대 초반으로 보이는 미라와 연애할만한 상대는 그 또래의 젊고 괜찮게 생긴 남자애들이 대부분이었고, 나이가 많다고 해봤자 삼십대의 젊은 남자였다. 사실 회장도 삼십대긴 하지만, 겉보기로는 한참 더 나이 먹어 보이는 아저씨였다.

미라는 그래서 다소 평범하고 정석적인 연애와 섹스를 경험했다. 젊은 연인들의 구도가 보통 그렇지만, 미라는 특히나 예뻤기에 더더욱 남자들이 모시듯이 떠받들었고, 섹스 역시 함부로 하지 않고 최대한 평범하고 미라가 즐길 수 있는 쪽으로 진행했다. 미라도 그런 적절한 수위를 좋아해서 딱히 센 요구를 하지 않았다.


용사와 놀 때는 좀 찐하게 놀기도 했지만, 용사와 다른 남자들은 엄연히 다른 케이스였다. 비록 바람기 스킬 때문에 다른 남자에게 실제로 애정을 느낀다 한들 용사는 완전히 다른 레벨의 남자였다. 사귀면 좋고, 헤어지면 어쩔  없는 다른 남자들과 달리 용사는 자기 목숨보다 소중한 존재로서, 관계가 조금 서먹해지는 것만으로도 하루 종일 눈물이 펑펑 쏟아져 나올 정도로 엄청난 애정의 대상이다. 그래서 다른 남자에게 마음을 주는 미라 역시 용사와 다른 남자들을 완전히 분리해서 생각한다. 그런 미라의 관점에서 생각해 보면, 미라는 '남자'와 찐하게 놀아본 적이 딱히 없었다.


그래서 저도 모르게 회장을 밀어낸 것이다. 실제로 밀어내진 않았지만, 차에서 계속 말없이 무표정으로 있는건 저리 가라고확 밀쳐낸 것이나 다름없으니….

눈앞에 차려진 밥상을 엎어버렸다. 하고 싶다고 말만 하면, 숟가락만 딱 얹으면 되는데… 그 숟가락을 집어 던졌다. 바보처럼. 이제까지와는 다른, 완전히 새로운 경험을 하자고. 나를 바꾸자고 마음 먹은지 얼마나 됐다고!

'다신 그러지 말자.'

미라는 다시금 결심했다.

이번엔 망쳤지만, 다음엔 그러지 않을 거야.

다시 기회가 생기면… 생기면….


그냥  딱 감고 보지 대주자.


"으음…. 으…."

보지… 대준다…. 말하기만 해도 꽤나 노골적인 단어. 미라는 그 단어를 생각만 했음에도 민망한지 헛기침을 했다.

…역시 아직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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