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3화 (23/1,009)

진화론은 역시 병신이다. 다윈 당신은 틀렸어. 여기서는 신들이 칭카라 호이 해가지고 인간을 만든다고. 당신은 멘델이랑 사이 좋게 완두콩이나 까셔.

“끙. 고블린 무리에, 세크메트의 미스릴 모험가라….”

설명을 다 들은 드워프 아재가 인상을 썼다. 하지만 우리랑은 이제 상관이 없는 일이었다. 저들도 뒤지겄다 생각이 들면 알아서 자기 몸 정도는 챙기겠지.

“인수인계는 끝났나 보군요. 이만 가죠, 여러분.”

“끄으응.”

똥 싸는 소리를 내는 드워프 아재와 그 파티를 내버려두고 우리는 길을 떠났다.

아까 전의 채찍질 흔적이 남은 곳이 가까워지자 나와 프란체스카는 저절로 보폭이 빨라졌다. 네페르티티가 아직 숲에 남아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두 번은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뭐 이딴… 이게 채찍으로 한 거라고?”

에스트와 파라곤도 남은 흔적을 보고 우리 둘의 반응이 과민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람은 자기 눈으로 보고, 몸으로 겪어야 깨닫는 생물이었다.

그리하여 파티의 이동속도는 약진 앞으로로 변하였다.

“캬캬샤윽!! (따라가자!!)”

이렇게 속도 중시로 이동했기 때문에, 올 때와는 다르게 고블린들과 마주치기도 했다.

아직도 고블린이 남아 있을 줄은 몰랐다. 네페르티티는 이제 사냥을 멈추고 돌아간 건가? 그런 생각은 들었지만 제발 없었으면 하는 생물은 방심했을 때 갑자기 눈앞에 나타나는 법이었다.

그래서 나는 분기탱천하여 잼민이들의 참교육에 나섰다.

“씨발 꺼져 제발!!!!”

나는 존나 환웅의 아이를 임신한 웅녀처럼 포악하게 힘을 휘둘렀다.

아이를 가진 곰은 야생에서 손꼽히는 맹수다. 떨어지는 낙엽조차 자기 자식을 해치는 흉기로 보이는 시기. 이때의 곰을 상대로는 생리 중인 여성들의 히스테리조차 둘리 옆의 도우너에 불과하다.

그렇기 때문에, 벡터맨 베어가 된 내가 전투에 모든 신경을 집중하자 그 결과는 엄청났다.

서걱!

내 공격은 한 발도 빗나가지 않고 전부 적중했다. 모조리 크리티컬이었다. 몹을 잡을 딜량과 공격을 버틸 탱킹력이 생기니 몸을 놀리는 것이 훨씬 대범해졌던 것이다.

부웅!

왼쪽 고블린의 목을 뚜따하고 검의 궤도를 반대로 돌려 다른 한 놈의 목도 베었다. 목이 없어진 놈 뒤쪽에서 공격 타이밍을 잡는 놈은 발견했지만 넘어갔다.

들어오면 뒤지는 공격의 범위에 발을 딛기 위해서는 완벽한 틈을 잡는 것이 필수였다. 그리고 저 고블린에게 그 각을 캐치해 주기를 바라는 것은 가혹한 처사였다.

“뇌신류 천참만륙!!”

쐐애액!!

퍽! 퍽! 퍽! 퍽!

완력의 상승이 자아낸 최고의 장점은 순전한 위력의 상승에 있었다. 압도적인 완력차! 내가 날린 잽도 상대방에겐 훅보다 더 강하게 느껴질 것이었으니, 속도와 기교를 우선시한 짤짤이로도 살상력은 충분했다.

“갸학!! (아프다!!) 갸학!! (아프다!!)”

내가 펼친 것은 네 번의 칼질이었다. 내리치기, 올려치기, 좌우 베기 1번씩. 잼민이 1년차인 유치원생도 나뭇가지만 들려주면 펼칠 수 있는 초식이다.

나는 그것을 짐승의 힘으로 재현했다. 그리즐리 베어(초록색)의 칼춤 다큐멘터리에 부엽토 위에 시산혈해가 흩날렸다. 핏물소리가 내 검무에 박수갈채를 보내주었다.

철퍽! 철퍽!

쥬르르륵.

10마리의 고블린들은 몇 분도 되지 않아 모조리 도살당해 숲의 거름이 되었다. 사람을 해치는 그린 잼민이가 자연에 보탬이 되다니 무척 경사스러운 일이었다.

“우와…. 각 잡고 싸우니까 완전 장난 아니네.”

전투에 끼지도 못했던 에스트가 말했다. 싸우기 위해서 쥔 단창은 고블린 한 마리 찌르지 못하고 그녀의 등으로 시무룩하게 되돌아갔다.

“예. 솔직히 저도 놀랐습니다.”

처음 야수회귀를 사용했을 때와는 달리 침착함을 유지하고 싸우자 정말 장난이 아니었다. 이게 장난이면 자고 있는 사람의 머리를 바리깡으로 싹싹 미는 것도 장난일 것이다.

시발 내 어설픈 검술로도 이런 위력이라니!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전투 중에 느껴진 내 체감이었다. 마치 나보다 훨씬 뛰어난 고수들이 싸우는 방식을 엿 본 것만 같았다.

네페르티티라는 거물을 본 것으로 눈이 높아진 덕분일까. 야수회귀 수준의 힘을 가진 모험가들이 어떻게 싸우고 생각하는지 감이 왔다.

뛰어난 힘을 가진 전사들은 자신이 공격에 맞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적이 공격이나 반격을 시도해도 그걸 뚫고 들어가서 상대의 목을 쓱싹할 자신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게 당연한 소리 같은데, 사실은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내가 지금 그 경지의 전투를 잠시 엿볼 수 있었던 것은 고블린이 몬스터 중에선 아래에서 세는 편이 빠른 좆밥이고, 내가 그 놈들의 공격에 전혀 당하지 않을 것임을 확신했던 덕분이다.

만약 이것이 내 목숨을 위협할 상대였더라도 내가 지금과 같은 냉정함 보일 수 있었을까? 아마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 자신감을 자기와 비슷하거나 더 강한 상대로도 발휘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게 제대로 된 전사와 힘 쎈 좆밥을 구분 짓는 최대의 요소라는 생각이 들었다.

“훌륭한 전투였소이다. 당신은 이제 몬스터 퇴치 의뢰를 할 기회만 생기면 금방 아이언 클래스를 벗어나겠군.”

파라곤이 그린 잼민이 믹스쥬스들에게 안식을 비는 굿바이 기도를 한 뒤에 말했다.

“어디 다친 곳은 없소? 치료해 주겠소.”

“음, 없습니다.”

맞기 전에 죄다 반갈죽을 내 놓았으니 다칠 수가 없었다.

그건 그렇고 결국 끝까지 이 땡중 새끼 힐은 받아보지를 못 했네. 이제 더 이상 몬스터랑 싸우느라 다칠 일도 없었다. 벌써 숲 바깥으로 사르가디스의 성벽이 보이기 시작했으니까.

나는 동료들과 함께 집으로 돌아가는 귀로에 올랐다.

해는 한참 전에 서쪽으로 기울었다. 푸른 하늘의 지평선이 토치로다가 불로 조진 것처럼 빨갛게 달아오르는 중이었다. 시발 고기 먹고 싶게 만드네.

통잔 잔액을 생각하면서 하늘을 올려다 봤다. 하늘에는 뿌옇게 흐린 달이 떴다. 이세계의 달은 존나게 컸고, 그래서 이런 노을녁에도 잘 보였다.

돼지 뱃살처럼 통통하게 살찐 반달이었다.

“아이언 클래스 모험가 4인. 확인되었소. 지나가시오.”

언제나처럼 내 트라우마를 스위치 ON 해주는 경비병의 신분증 확인 절차를 걸치고 우리는 사르가디스로 돌아왔다.

저녁노을이 지는 성벽 앞 거리.

내가 묵는 여관과 아우둠라 모험가 길드로 이어지는 곳에서 우리는 헤어지기 전의 상의를 나눴다.

“고블린 송곳니는 어쩔래?”

에스트가 말했다. 나는 그 판매금을 N빵을 할지 말지를 물어보는 건 줄 알았는데, 거기에 응한 프란체스카의 대답은 내 예상과는 조금 달랐다.

“길드에 팔죠. 가격 차이도 별로 안 나잖아요.”

“양이 고작 이만큼인데 안 사 주지 않을까?”

“무슨 뜻이오? 10개만 넘어도 매입해 주는 것 아니었소?”

“사제 아저씨, 어디 가서 그런 세상 물정 모르는 소리 하고 다니지 마. 주머니 가득 채워가도 좀 더 모아서 팔러 오라는 티를 팍팍 낸다고.”

존나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모르겠다. 그냥 닥치고 있자.

대충 적은 수량은 매입을 안 해 준다는 취지의 대화 같다. 이 세상은 골렘을 잡아서 거기 붙은 꽃만 떼 가도 아아니 이것은?! 하고 사주는 RPG 게임과는 다르니까.

아마 길드들은 고블린 이빨 같은 싸구려 물품은 대량으로 매입하는 것으로만 쇼부를 본 모양.

인형에 눈 붙이기 알바가 딸랑 10개만 붙여서 가져가면 일을 왜 이따위로 하냐고 욕 먹는 거랑 비슷했다.

“마법사 길드에 팔래? 헐값밖에 못 받겠지만.”

“악랄한 상술이네요. 길드에서 안 사주는 걸 아니까 급처분하려는 사람들한테서 돈을 갈취한다니.”

“아무래도 다른 방법은 없는가 보군요.”

“나는 그렇게 해도 상관 없소.”

상의한 결과 고블린 이빨은 급처를 때리기로 했다. 게임에서 아바타 사재기를 해 대는 놈들에게 팔듯이 마법사 길드에 처분을 하기로 정한 것이었다.

“그러면─ 누가 연금술 길드에 가져가서 팔래?”

그 말에는 대답하는 사람이 없었다. 이건 나도 왜인지 알 수 있었다. 자기가 하자니 귀찮고 남한테 맡기기에는 먹튀가 염려되는 것이었다.

금액이 적은 것도 먹튀의 위험성을 높이는 요소였다.

─절그럭.

송곳니는 작은 주머니조차 다 못 채우는 양이었다.

우리가 갈무리한 고블린 송곳니는 동굴에서 잡은 놈들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숲에서는 네페르티티 때문에 매드맥스 개장수 트럭한테 쫓기는 동네 똥개처럼 튀느라 바빠서 따로 챙길 시간이 없었다.

저걸 N빵하면 인당 1쿠퍼나 나올까 모르겠다.

1쿠퍼. 누구 하나가 마음 먹고 낼름하고는 배 째라며 벌러덩 드러누워도, 그 새끼 배에 칼을 뽑아서 쑤셔주기에는 영 망설여질 금액이다.

“…나한테 맡기시오. 난 정식으로 교회에 속한 풍요신의 사제이니 당신들한테서 도망칠 염려는 안 해도 되잖소? 나중에 교회로 받으러 오면 어떻소이까.”

“괜찮은데? 이 아저씨한테 맡길까?”

“저 땡중한테요? 돈 가지러 교회에 갔다가 1시간 넘게 풍요신님 교리나 듣고 올 것 같은데요.”

“아니 어떻게 알았소?”

21세기 코리안 개독 새끼들이 그러고 다니니까 알지. 음료무료시식 아줌마들에게 시달리던 나에게 이세계의 전도법은 미온수처럼 밋밋하다. 너흰 아직 준비가 안 됐다.

“쳇. 백날 이러고 있어도 답은 안 나오는 법이지. 이걸로 결정하자고.”

에스트는 그렇게 말하면서 1쿠퍼 동전을 꺼냈다. 에스트는 그것을 손가락으로 튕겼다가 손등으로 받았다.

“앞뒤를 골라서 마지막 1명이 남을 때까지 가는 거야.”

가위바위보도 없는 이세계에서는 흔한 내기 방법이었다. 나도 월급을 받기 시작한 이후로는 다나와 곧잘 이걸로 술값 내기를 했었다.

“그렇게 하죠.”

“네. 나쁘지 않네요.”

“음.”

“불만이 없어서 좋네. 그럼 나는 앞면에 걸게. 그림이 그려진 쪽이 뒷면이야.”

에스트가 말에 우리는 각자 앞뒷면을 정했다. 프란체스카 딱 한 사람만이 뒷면에 걸었다.

“그럼 던진다.”

팽그르르─.

착!

에스트가 동전을 날렸다가 붙잡았다. 나한테는 운 좋게 그것이 어느 방향에서 손등에 착지했는지 보였다. 모두의 이목이 모이자 에스트가 손등의 동전을 공개했다.

내 눈에 보인 그대로, 앞면이었다. 에스트가 활짝 웃었다.

“네~ 파티장 당첨~! 다음에 돈 받으러 갈게? 얼마 정도 나올지 대충 감 잡히니까 괜히 삥땅치지 말고!”

“아으으….”

모 아니면 도의 도박에서 실패한 프란체스카가 울상을 지으면서 주머니를 챙겼다.

잡템 처리를 끝낸 우리는 아우둠라 길드로 이동했다.

“프란체스카님 파티 4분. 여기 성공보수입니다.”

차르르륵─.

접수원이 동전을 10쿠퍼씩 4개로 소분해서 접수처 테이블에 올려놨다. 여기는 일회용 봉투도 없는 세상이라서 금전 지불도 늘 이런 식이다.

“저기, 보고 드릴 일이 있는데요.”

프란체스카는 거기에 더해서 이번 유적 경비 의뢰에서 발생한 변수들을 설명했다. 고블린의 증식과 네페르티티에 대한 이야기다.

내 추측은 빼고 팩트와 목격정보만 전했다. 나중에 트집 잡힐 일은 없는 편이 제일이니까.

“고블린의 증식이요?! 세상에! 정말 고생 많으셨겠군요!”

남자 직원은 그렇게 쌩난리를 피워놓고는 추가 보수로 딱 4쿠퍼를 더 내놓았다. 모험가는 시발 사람 새끼가 할 짓이 아닌 게 맞다.

이틀을 그 개지랄을 떨고 받은 일당이 고작 11쿠퍼라니. 참 언제 봐도 미개하기 짝이 없는 세상이다. 내 인권은 존나 어디에 있는 걸까. 카르미네 대학에 두고 왔나?

아니지 시발. 거기서도 노예질이나 하다가 논문 닌자 당했었지. 내 인권은 아마 세상 어디에도 없나 보다.

아무튼 우리는 각자 보수를 챙겨 지갑에 넣었다. 이제 헤어질 시간이었다.

“자, 끝! 난 갈게. 다음에 또 의뢰 생기면 같이 하자고.”

에스트는 그렇게만 말하고 떠났다. 알바하고 퇴근하는 것처럼 산뜻한 이별이었다.

“다치면 풍요신님의 교회에 오십시오. 저렴한 가격에 치유해 드리겠소이다.”

파라곤도 돌아가기 전에 이세계식 성호를 긋고서 말했다. 할인해 준다는 뜻이 아니라 지들 치료비가 제일 저렴하니까 오라는 뜻이었다.

“노르드 씨. 오늘은 정말 고생 많으셨어요. 저번 하수도 때보다 더요.”

마지막까지 곁에 남은 프란체스카가 말했다.

“솔직히 활약만 놓고 보면 노르드 씨가 저보다 더 파티장 같았어요. 정말 신세 많이 졌습니다.”

“파티장이라고 해서 일을 더 해야 하는 건 아니잖습니까. 결국 윗선에서 적당히 짜서 던져주는 건데.”

나는 허리를 숙이는 프란체스카를 만류했다. 브론즈도 아니고 아딱이는 다들 거기서 거기다. 접수원들이 심도 깊은 토론 끝에 파티장을 정할 거라고는 생각하기 힘들었다.

─걍 시발 얘 시킵시다. 그보다 오늘 저녁 뭘로 할래요?

아마 대충 이런 식이겠지.

“헤헤. 아무튼 그냥 고맙다구요.”

프란체스카가 웃으면서 그렇게 말했다.

새삼 생각하지만 그녀는 잘 웃는 드워프였다. 처음에는 쭈뼛대면서 눈치를 봤었는데 말이다. 같이 일을 하느라 우리 사이가 꽤 친해진 모양이었다.

“저는 도시 3번가에 있는 무타라트의 아이들이라는 여관에 묵고 있어요. 다음에 오시면 술이라도 한 잔 사드릴게요.”

“술 좋죠. 안 마신지 꽤 됐네요.”

무려 일주일 이상이나 못 마셨으니 꽤 된 게 맞다. 석사 시절에는 매주 1번 이상은 마셨다. 그래야 멘탈 포인트가 회복되는 느낌이었으니까.

“무타라트의 아이들 맞죠? 조만간 가 볼게요.”

“네! 제가 없으면 여관 주인 아주머니한테 말씀 드리고 가시면 될 거에요!”

프란체스카는 진심으로 권했던 모양이었다. 솔직히 나는 나중에 밥 한 끼 하자는 말처럼 대충 인삿말인 줄 알았다. 이쪽 세상에는 그런 인삿말이 없나? 카르미네 대학에서는 따로 못 들어본 것 같기도 하다.

아무튼 우리는 이번에도 그런 식으로 사이 좋게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이번 의뢰 최대의 수확은 원시주술 ‘야수회귀’이었지만, 그것 외에도 승급에 혜택도 받았다. 부디 올해 안에 브론즈 클래스가 될 수 있기를.

“그래도 아직 갈 길이 머네.”

생각해 보니까 석사도 아직 동장급이다. 여관에 돌아가면 논문이나 써 놔야지.

글이라는 것은 생각났을 때 바로바로 쓰지 않으면 어영부영 뒤로 미뤄지는 법이었다.

나는 다음날 점심에 일어났다.

“좋은 점심. 아침밥은 1쿠퍼다.”

“아 시발, 깜빡했네.”

“크크크크.”

어젯밤 나는 목욕탕에 들렀다가 여관으로 돌아와 논문을 쓰고 잠들었다. 카페인도 없이 버틴 끝에 침대에 들어가 기절해버렸기 때문에 아침밥을 먹어야지 하는 생각은 전혀 떠올리지 못했다.

‘이래서 외식을 하면 안 된다니까.’

남들은 20쿠퍼로 1달은 버티는데 나는 벌써 염병할 30쿠퍼는 쓴 것 같다.

매일 쉬는 날 없이 3쿠퍼짜리 일당을 계속 뛰는 아딱이들의 고충을 알겠다. 이러니까 걔네들이 잠자다가 칼에 찔릴 걸 각오하고 1, 2쿠퍼짜리 여관에서 사는 것이다.

‘아니면 내가 금전관리 능력이 없나?’

아마 그런 것도 같다.

이게 외지인의 서러움이었다. 고정된 수입도 없고 집도 없으니 돈이 계속 나가는 것이다. 내일부터는 밥도 적당히 빵 같은 거라도 사 와서 방에 두고 먹어야지. 돈이 벌리기는 커녕 줄기만 하는 꼴이 아주 끔찍했다.

나는 시발시발 거리면서 계단을 내려왔다. 어째 아침부터 평소보다 허리께가 무거운 것이 저혈압 기미가 좀 있는 것 같았다. 피곤해서 아침에 쥬지도 안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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