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기긱.”
시발. 야수회귀 쓰고 싶다. 그것만 있으면 빨래 정도는 일도 아닌데. 추위에도 내성이 생기니까 아예 차가운 물이어도 괜찮았을 것이다.
그래도 야수회귀는 쓸 수가 없었다. 내 쥬지에 또 무슨 문제가 생길지 모르니까.
쓸 때마다 쥬지가 커지다가 나중에는 막 50cm를 넘어서 허리에 사이어인 꼬리처럼 뱅뱅 감고 다녀야 하는 꼴이 될 것 같아서 무섭다.
나는 허리에 쥬지 벨트를 감은 자신을 상상해보고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한창 싸우다가 배빵을 맞거나 했다간 벨트처럼 찬 쥬지가 뚝 하고 중간에서부터 끊어질 것이었다.
─철퍽철퍽철퍽철퍽!!
나는 끔찍한 상상을 털어내기 위해서 빠르게 손을 놀렸다.
빨래를 하기 시작했을 때는 왜 이러고 있어야 하나 생각도 했는데 정작 해 보니까 나쁘지 않았다. 몸을 움직일 때는 잡생각이 안 든다. 다이어트를 한다던 친구 놈이 알바할 때는 배가 고픈 줄 몰라서 좋다고 말하던 것이 떠올랐다.
쭈우욱….
힘을 담아서 판초를 뜨거운 물에 꾹 눌렀다.
촤아악….
첨벙.
그런데 내가 물기를 머금은 판초를 들어올렸을 때, 물이 움직이는 소리가 세숫대야 밖에서도 났다. 나는 한창 빨래를 하다가 눈을 깜빡였다.
“응?”
“꺅?!”
내 목소리에 즉각 반응하는 목소리.
프란체스카였다.
“노, 노노르드씨?! 거기 계세요?!”
“프란체스카 씨? 어어? 혹시 이쪽이 욕실이었습니까?”
들려오는 프란체스카의 목소리에서는 엄청난 당혹스러움이 그대로 전해졌다. 목소리의 출처는 벽에 난 창문이었다.
여관 우물 옆이 욕탕이었나? 건물을 설계할 당시 우물 가까이에 수도관을 설치해야 물을 옮기기 편할 거라고 짐작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그 탓에 나는 졸지에 개씹 변태 엿보기범 새끼로 여겨질 위기였다. 그렇기에 나는 빠르게 설명했다.
“죄송합니다. 우물 옆쪽이 욕실인 줄은 몰랐네요. 여관 주인 아주머니가 저더러 프란체스카 씨 옷을 세탁하라고 하셔서 빨래 중이었거든요.”
“제, 제 옷을요?! 왜요?!”
그러게. 내가 묻고 싶다.
“걱정하지 마세요. 엄한 옷이 아니라 외투 뿐입니다. 제가 옷 세탁은 꽤 잘 하니까 혹시라도 옷이 찢어지거나 상할까 하는 걱정도 접어 두시고요.”
한때 순도 100%의 리얼한 자연 그대로의 노예였던 나다. 빨래 정도는 자주 해 봤다.
‘그러고보면 다나랑 본격적으로 안면을 텄던 것도 빨래 때문이었지.’
내 대학원생 노예 동료 다나.
그 허당 석사님이 실수로 공용 빨랫감에 속옷을 넣어버려서, 이건 또 어떤 뻔뻔한 아줌마가 넣은 팬티야 하고 욕하며 빨래하던 나를 발견한 것이 우리 인연의 시작이었다.
이세계인 치고는 드물게도 양심이 있는 그녀다. 차마 내 탓은 못하겠고, 그렇다고 태연한 척 하기에는 남성경험이 부족했던 모솔 개털머리녀의 아무 말 대잔치는 아직도 기억에 선명했다.
“아뇨, 그게 아니라! 노르드 씨가 제 빨래 같은 거 안 빨아도 된다는 뜻이에요!”
프란체스카의 비명을 닮은 목소리에 추억회상이 끊겼다.
“아, 그렇군요. 불쾌하실 수도 있었겠습니다.”
여성이 별로 안 친한 남자한테 자기 옷가지를 만져져서는 기분이 나쁘거나 부끄러울 것이었다. 짬처리를 시킨 것이 같은 여성인 여관 주인 아줌마여서 그러려니 했었는데.
“그러니까 기분이 안 좋다든가, 그런 이유가 아니라니까요…. 제가 죄송하잖아요….”
“저는 상관 없습니다. 제가 옷에 손대는 것이 싫으시면 그냥 편하게 말씀하셔도 됩니다만, 술도 얻어먹는데 빨래 정도는 해 드리고 싶네요.”
“…으으. 알겠어요. 그럼 부탁드릴게요.”
내가 그렇게 말하자 프란체스카는 결국 허락을 했다. 그러고는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주인 아주머니… 왜 이렇게 짖궂은 장난을….”
말로는 안 하지만 역시 부끄러운 모양이었다.
내가 자리를 옮길까? 그러는 편이 나아 보였다.
창문과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다른 남자가 자기 옷을 빨래하고 있는 거다. 여기 남아 있어도 분위기만 어색해진다. 조금 있다가 옷 수선을 부탁하기도 어려워질 거고.
“저, 저기요. 노르드 씨. 오늘은 무슨 일로 찾아오셨나요?”
그런데 프란체스카 쪽에서 먼저 내게 말을 걸어왔다. 어색해진 분위기를 어떻게든 하려는 의도였다. 나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일어섰다가 다시 앉았다.
“부탁드리고 싶은 일이 생겨서요. 값은 치룰 테니 옷이나 가면을 조금 손 봐 주실 수 있으십니까?”
“네? 어, 아마 할 수는 있을 것 같아요. 예전에 소일거리로 몇 번 만들어 봤거든요.”
옷 만드는 일이 소일거리라고 할 수 있나? 재봉사 일도 쉽게 할 수 있는 게 아닌데. 내 의문을 예상한 것처럼 프란체스카가 말했다.
“저는 어릴 적부터 여러 직장을 전전하면서 살았거든요. 덕분에 잡기(雜技)만 늘었죠.”
“아… 고생이 많으셨겠군요.”
그런 말 말고는 딱히 할 말이 없었다. 남의 고생이나 불행은 뭐라 반응하기도 어려운 화제였다.
“뭘요. 다 지난 일인걸요. 그 시절에는 무슨 일이든 열심히 해서 인정받아 보려고 필사적이었죠. 사실 모험가가 되고 나서도 그렇지만요.”
“예. 그러신 듯 하더군요. 어제에 연이어서 오늘도 의뢰를 나가셨죠? 그것도 그, 꽤 험한 경험을 하셨던 하수도에.”
“네. 저희가 보고한 뒤에 모험가 길드랑 경비대에서 대대적으로 자이언트 로치 소탕을 했다더라구요. 이번에는 그 뒷청소 의뢰였어요.”
“힘드시지는 않습니까? 사실을 말씀드리자면 저는 저저번과 저번 의뢰를 연이어서 한 덕분에 상당히 지쳤거든요.”
하수도에서는 때 아닌 여치떼한테 쫓기고, 당직 느낌으로다가 꿀이나 빨 생각이었던 유적에서는 그린 잼민이들과 네페르티티한테 시달렸다.
도움이 될 줄 알았던 야수회귀조차 오늘 부로 내 쥬지에 버그를 일으키는 악성 바이러스가 돼 버렸고 말이다.
그런데 나랑 똑같이 고생한 프란체스카는 오늘도 아무렇지 않게 일을 나갔다 왔다.
나는 논문을 쓸 예정이었으니까 길드에 얼굴을 비추지 않았던 거였지만, 만약 그런 핑계가 없었어도 일을 나갔을까?
아마, 아마 오늘 하루 정도는 쉬려고 했을 것이다.
“저는 괜찮아요. 드워프의 피가 흘러서 그런가, 몸이 힘든 편이 마음이 힘든 것보다 훨씬 낫거든요. 하루 푹 자고 일어나면 괜찮아 지구요.”
“흐흐.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저보다 훨씬 건강하고 튼튼하신데요? 금방 브론즈 클래스 다시는 거 아니에요?”
“헤헤. 그럼 좋겠네요.”
첨벙─.
프란체스카가 욕조에서 몸을 움직였는지 물소리가 났다. 그녀는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요. 나중에 실버 클래스가 된 다음에는 아우둠라 길드의 조합원이 되려구요.”
아니 하필이면 왜 골라도 그런 직업, 그런 길드를?
나는 저절로 좆소둠라의 좆소함을 떠올렸다. 모험가 길드 접수원은 장래성과 고용안정성은 어쨌든 업무 난이도는 헬 그 자체로 짐작되는 지옥 기업이다. 하청을 막 부려먹는 기업들 중에서 자기 직원들을 잘 대우해주는 곳을 거의 못 봤다.
그래서 아연실색을 하며 이렇게 묻게 되었다.
“저기, 그 뭐시냐. 기왕 하시는 거 손재주나 그런 재능을 살리는 방향으로 가시는 편이 낫지 않을까요?”
드워프는 장인의 종족이라고도 불린다. 천부적인 능력이 물건을 제작하는데 적합하기 때문이다.
물체의 온도를 간파하는 눈과 섬세하고 재빠른 손놀림은 대장장이에 걸맞다. 인내심과 터프함까지 있으니 거의 뭐 내츄럴 본 블랙스미스다.
그밖에도 어떤 업계에서든 손재주를 활용하는 일에는 몹시 포텐셜이 높다. 마법에 대한 적성도 인간이랑 비슷하다. 내가 있던 카르미네 대학의 특수 장비는 90% 이상이 드워프들의 작품일 만큼.
그러니까 굳이 모험가 길드 접수원을 고를 필요는 없지 않을까. 그런 의미를 담은 질문이었다.
“…장인 업계는 연줄이 없는 사람을 싫어하더라구요.”
내 말에 프란체스카는 물장구 소리를 내며 대답했다.
“고향을 나오고 10년 가까이 타지를 전전했지만 어딜 가도 외지인 딱지가 붙었죠. 재봉사들도 대장장이들도 저를 잡일 잘 하는 일꾼으로 다뤘지, 도제(徒弟)들처럼 기술을 가르쳐 주지는 않았어요.”
“…출신 차별이군요. 브리타니아에는 외지인에게 배타적인 지역이 많죠.”
“네. 그런가 봐요. 사실 어디라도 똑같겠지만요.”
“이해합니다. 저도 겪어본 바가 있어서.”
나는 주제넘게도 프란체스카가 가여워졌다. 그녀가 취직하고자 하는 직장을 좆소다 손절각이다 하면서 욕해왔던 내가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해버리고 말았다.
왜냐하면 우리는 존나 동병상련 그 자체였으니까.
프란체스카는 오늘 만난 대장간의 그 돌팔이 새끼처럼 양심을 말아먹은 쓰레기 이세계인들에게 시달리며 살아왔다.
그리고 나는 이 망할 이세계에 던져져서 지은 바 죄 없이 노예 형을 치르고, 3년을 들여 짠 논문도 닌자 당했다.
고향땅을 벗어나 흘러들어온 타지에서 누군가에게 혹사 당하며 살아가는 이방인들. 그게 바로 우리였다.
“후후. 그래서 이번에는 길드 조합원에 도전하는 거에요. 또 실패해버린다고 해도, 이렇게 열심히 하다가 보면 언젠가는 새로운 고향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면서요.”
“도전하는 인생은 아름다운 법이죠. 응원하겠습니다.”
“고마워요.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까 힘이 나네요.”
현실적인 면에서 보면 내 응원은 프란체스카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작은 위로 한마디와 웃음은 고된 삶을 살아가는 사람에게 큰 위안이 된다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었다.
“노르드 씨는 꿈이 있나요?”
그때 프란체스카가 즐거운 목소리로 물었다. 나는 그 말에 빨래하던 손을 멈췄다.
“꿈 말입니까?”
내 꿈이라.
그야 내 꿈이라면 시발 말할 것도 없이 지구로 돌아가는 방법을 찾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점은 설명하기도 힘들고 내 학위나 과거가 발각될 염려도 있다.
프란체스카를 믿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가벼운 대화의 화제로는 적합하지 않았다. 알고 싶지도 않았던 남의 비밀을 알아봤자 괜한 부담감만 느껴지는 법이다.
“흠….”
“아, 대답하기 싫으신데 억지로 말하실 필요는 없어요.”
“아뇨. 꿈이라고 하기는 뭣하지만 목표라면 있습니다.”
집에 돌아가는 방법을 찾는 것 말고도 여럿 있다.
당면의 목표는 쥬지 불법패치 초기화가 최우선이다.
근데 이건 시발 원래 목표보다 말하기 곤란한 일이다. 쥬지가 커진 것도 말하기 뭣한데 그걸 원래대로 돌리고 싶다니 내가 생각해도 존나 웃기는 목표였다.
그럼 달리 뭐가 있을까.
힘을 길러서 강해지고 모험가로서 등급을 올리는 것도 목표이기는 하다.
근데 이것도 질문에 대한 대답은 안 된다. 모험가들은 대부분 승급을 하고 싶어하니까. 이딴 대답은 존나 직업이 뭐냐고 물어봤는데 돈을 버는 일을 하고 있다고 대답하는 거나 마찬가지다.
“그래요? 어떤 꿈인데요?”
프란체스카가 기대된다는 듯이 물었다. 요 며칠 사이 같이 일 했기 때문일까? 나는 그녀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쉽게 짐작이 갔다.
“그렇군요. 제 당면의 목표는….”
내가 지구로 돌아가기 위해서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
그것은 모순적이게도─
“일부다처입니다.”
─여러 명의 아내를 얻는 것이었다.
하렘.
그밖에 다른 표현으로는 일부다처제. 21세기 지구에서는 남성의 성적 판타지에 불과한 행위다.
다만 이세계에서는 별로 불법이 아니다.
내 경험 상, 이 세상의 성 관념은 지구보다 개방적이었다. 여자들이 헤프다는 뜻이 아니다. 순결에 대한 존중과 배려는 여기에도 있다.
오히려 남자들 중에서도 바이킹 놈들은 뒤질 때까지 동정인 것을 자랑으로 여긴다. 시발 미친 새끼들.
아무튼 여기서 말하는 개방적인 성 관념이란 이런 뜻이다.
이쪽 세상에서는 일부다처제만 있는 것이 아니다. 반대의 케이스인 일처다부제─ 다시 말해서 여자 한 사람이 남편 여럿을 데리고 사는 경우도 있다. 나는 이딴 독선적인 결혼문화가 남녀와 무관하게 버젓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크나큰 충격을 먹었다.
‘시발 하렘이고 역하렘이고 이게 다 뭐시당가?’
존나 눈앞이 까마득해지는 현실이었지만, 나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이 티어충 새끼들의 세상은 능력자가 많은 것을 독점하는 것을 윤리적으로도 허용하는 세계니까.
그도 그럴게, 이곳은 개인의 무력이 때로는 국가보다 높아지는 경우조차 있는 세계다.
인류의 문명이 제대로 정착하기 이전부터 약육강식과 강자존의 문화가 퍼져도 이상할 게 없는 것이다.
존나 쎈 원시인 하나가 자길 부족장으로 지칭하며 여자들을 죄다 임신시키는 이기적인 행보를 보여도, 그 놈한테 거슬렀다가는 대가리 뚜껑이 똑 따일 테니까.
이것도 대충 쥬지 선택설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인류가 아직 우가우가 거리던 시절에는 한 사람의 개인이 엄청난 힘을 가지고 침략한 부족의 모든 여자를 아내로 들였다는 기록도 보이고.
무려 총합 98명. 존나 개쩌는 원시인도 다 있군 그래.
아무튼 이건 실제로 야생에서도 자주 보이는 형태다.
야생동물은 우수한 수컷 하나가 여러 암컷을 거느린다. 사자부터 고릴라까지 많은 동물들이 이런 특징을 공유한다.
이렇듯 강한 자가 많은 것을 얻는 문화는 이 세상을 티어충들의 천국으로 바꾸었다. 여기 인간 새끼들은 아직도 동물의 왕국을 찍는 중이라는 소리다.
일부다처제도 그 영향 중 하나였다.
부모의 자질은 어느 정도 자식에게도 유전되고, 솔직히 권력자들은 남자든 여자든 처첩을 많이 들이고 싶어하니까.
근데 까놓고 말해서─ 이세계의 이딴 막장스러운 행태는 나랑 별 관계가 없었다.
나는 언젠가 공간이동 기술을 개발해서 내 고향 21세기 지구로로 돌아갈 사람이다.
이 세상을 떠나는 것이 목적인 내가 가족을 꾸린다니? 그건 존나 무책임하고 무례한 행위였다. 한나라 전설의 씹새끼 유방처럼 데프프프 자식은 또 낳으면 되는데스 하고 지구로 런 해버릴 수도 없는 것이니까 말이다.
그러므로 내 지구인으로서의 상식을 자극하는 저 문화도, 관심만 꺼 버린다면 나랑 그다지 상관이 없는 남일이었다.
아니, 남일인 줄 알았다.
─야. 너는 노예에서 해방되면 결혼할 거냐?
내가 카르미네 대학에 있던 시절, 어느 좆 같은 장기 프로젝트가 하나 끝났을 때였다. 우리 둘만 남은 술자리에서 다나가 그렇게 물었다.
─아뇨? 결혼은 딱히 생각 없는데요.
그때 아직 노예였던 나는 존댓말을 써 가면서 그렇게 대답을 했었다. 나는 예전부터 이루고 싶었던 꿈─지구 귀환─이 있어서, 그걸 이루기 전까지는 결혼할 생각이 없다고 말이다.
─이 새끼 이거 아직도 세상 물정을 모르네.
겸사겸사 내 꿈에 대한 설명까지 마쳤더니만 다나는 술을 마시면서 한숨을 쉬었다.
─니가 말한 그 꿈을 이루려면 말이야. 너는 결혼을 해야 돼. 그것도 가능하면 아내를 여럿 들여서.
─예?
놀랍게도 현실이 그랬다.
─네가 꿈을 이룰 정도의 능력을 쌓은 순간부터… 아니 지금 네 능력만으로도 어지간한 귀족들이 탐내기에는 충분해. 넌 여러 귀족들한테 노려지는 인재라고.
─좋은 거 아닙니까?
─아니 등신아. 노린다는 말이 뭔 뜻인지 모르지? 변방에서밖에 힘 못 쓰는 빈약한 귀족들이 자기 딸내미랑 너를 억지로 결혼시킬 거라는 뜻이라고.
─허미.
약탈혼! 그 끔찍한 몽골식 납치강간의 이세계판 변주곡의 희생양으로 내가 노려질 거라고? 나는 다나의 말에 넋이 나가 버리고 말았다.
─혼자서 연구할 생각은 꿈 깨. 연구비는 어디서 날 거야? 누군가가 네 연구를 후원해준다는 말은 네 능력을 인정한다는 뜻이야. 너 예르나 교수님한테 찝적대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르지?
─저도 교수님처럼 거절하고 다니면 되지 않습니까?
─글쎄. 네 나이가 지금 26이랬나? 그러면 교수님처럼 후원 없이 입지를 확립하는데 30년 쓴다 치고, 나이 56살에 박사 달고 랩실 하나 얻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