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7화 (27/1,009)

1. 내 쥬지에 걸린 상태이상을 해결하기.

2. 야수회귀의 원리와 유래를 알아내기.

-----------존나 넘사벽-----------

3. 새로 발견된 유적을 소재로 논문 쓰기.

4. 모험가 등급을 브론즈 클래스로 올리기.

‘대충 이런 셈인가.’

기분 같아서는 1의 위에다가 ‘0. 예르나를 찾아서 조지기’를 써 놓고 싶었지만 참았다.

─영국의 교수 크라피카는 말했다.

가장 두려운 것은 죽음이 아니라, 이 분노가 풍화되어버리지 않을까 하는 것이라고.

나도 그의 말에 동감이었다. 분노와 증오의 잦은 해방은 정작 중요한 순간에서의 폭발력을 감퇴시켰다.

금딸을 해야지 사정량이 늘어나고 담배나 술을 끊어야만 저축이 가능한 것과 같다. 하찮은 곳에서 매번 그 좆프년을 씹어대면서 나의 증오를 낭비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

감정이란 마모되는 자원이다.

예르나와 마주한 순간, 내 안에 어중간한 분노만 남아 있어서는 안 된다.

그때야말로 1달을 집에서만 보내게 한 사냥개를 정원에 풀어놓는 것처럼 내 모든 리비도를 해방하여 미친 놈처럼 끼에에엑!! 해야만 했다.

“그것이 사이다니까.”

끄덕.

목표를 설정한 나는 침대 위에 올려놓은 옷가지를 걸쳤다. 따로 구해놓은 검은 로브와 가면이었다.

펄럭─!

이 옷가지는 오는 길에 옷가게에 들러서 구매한 물건이다. 마법사 길드처럼 학력부심을 부려대는 놈들을 상대로는 어느 정도 풍격을 가진 지위여야 존중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예를 들어─ 카르미네 대학 출신의 고고학 석사처럼.

“흐흐흐.”

내 손 위에서 한 번도 쓴 적 없는 카르미네 대학 졸업패&고고학 석사 자격증이 반짝였다. 두 개 다 고급진 브로치처럼 생긴 간이신분증이었다.

‘신분이 들킬 염려는 없어.’

이 뱃지는 이세계에서도 드문, 마법이 걸린 아이템이다.

용도나 효과는 현대 문명의 신용카드나 신분증과 비슷했다. 어지간한 공공기관이나 큰 집단에서는 이 뱃지만으로도 신분의 진위를 판별받을 수 있었다.

아우둠라 길드의 아딱이 모험가 노르드가 석사 출신 고고학자라는 사실을 숨기기에는 딱 좋았다. 어쩌다 잃어버려도 원격으로 기능을 정지하는 것이 가능하니 안심이다.

마법사 길드에서 나한테 가면을 벗으란 얘기는 하지 않을 것이었다. 고고학자는 유물을 다루는 직업이고, 값비싼 유물을 노리는 사람은 언제나 어디에나 존나 많았다.

신분을 숨겨야 하는 고고학자는 흔하다. 브로치를 통해서도 개인의 신상까지는 알 수 없다.

그래서 나는 마법사 길드 사람들이 나더러 가면을 벗으라고 하지 않을 거라고 확신했다. 사실 브로치에 신분확인 기능이 부여된 것도 고고학자의 신변 보호를 위해서였으니까.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로브가 까만 것도 있어서 좀 박쥐 같은 이미지였다.

그래도 얼굴에 쓴 가면은 곰 모양이다. 나의 우상이자 대영웅인 벡터맨 베어를 향한 리스펙트를 나타낸 셈이었다.

이 가면에 목소리 변조 효과까지 붙어 있다면 좋았겠지만 딱히 없어도 상관은 없었다.

“벡터-목소리 깔기.”

나는 의식하여 섹시하고 허스키한 보이스를 냈다. 평소보다 낮은 목소리였다.

이걸로 내 변장은 완전무결해졌다. 이제 더 이상 아무도 나를 모험가 노르드라고 생각하지 못 할 것이었다!

“크흐흐. 이걸로 완벽하군. 크흐흐흐… 흐?”

그렇게 클클 거리던 나는 불현듯 커다란 문제를 깨달았다.

“크흐흐흐흐흐. 이 시발. 옷 살 때 얼굴 까고 샀었네.”

존나 그딴 미련한 짓을 하다니. 내가 아무리 경황이 없었다지만 이건 너무 병신 같은 실패였다.

이래서야 마법사 길드가 이 로브를 조금만 조사해도 내 맨 얼굴에 도달할 것이었다. 그냥 옷가게에 가서 이런 로브를 사 간 사람이 있냐고 물어보기만 해도 됐다.

검은 머리 검은 눈의 모험가는 이 사르가디스에 존나 나밖에 없을 테니까!

커다래진 고추가 덜렁거리는 것을 신경을 쓰느라고 이런 당연한 것도 깨닫지 못했다.

허벅지에 툭툭 부딪히는 좆방망이가 죽도록 거슬려서 어디 생각에 집중을 할 수가 있었어야지. 대장간에 갈 때는 눈치를 못 채서 괜찮았었는데.

─투욱.

나는 로브랑 가면을 벗어서 침대에 던져버렸다. 저 옷을 입고 마법사 길드에 가는 짓거리는 포기해야만 했다.

코스튬을 새로 사야 하나? 그래도 옷가게에서 산 물건은 추적당하기도 쉬울 듯 해서 입기가 저어되었다. 애초에 가게에서 얼굴을 드러내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시발 홈메이드로 슈트를 만들어 입을 수도 없는 노릇인데.

그딴 건 손재주가 좋은 사람한테나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이번에는 가면까지 손 봐야 되니까 보통 솜씨로는 어림도 없었다.

나는 평생 옷을 만들거나 수선해 본 적이 없다. 고등학교 기술/가정 시간이 마지막이다.

그런 솜씨로 멀쩡한 옷을 만들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 미친 짓이었다. 난생 처음 만든 옷이 멀쩡한 꼬라지로 완성되려면 존나 태어날 때부터 만능 치트키급의 손재주를 가지고 태어나야 되겠지.

“─아.”

그래. 예를 들면.

대장장이 종족인 드워프들처럼 말이다.

사람의 신체는 사용하지 않을 수록 퇴화된다.

이건 꼭 근육에 한정된 이야기가 아니다. 좌우로 분리되어 있는 뇌도 평소에 사용하지 않았다가는 기능이 저하된다. 나이를 먹고서부터는 사칙연산도 버벅이는 사람들처럼.

그래서 시발 나도 프란체스카가 묵는다는 여관의 이름을 까먹었다.

이게 다 모험가가 되고 나서 머리 쓸 일이 줄어서 그렇다. 절대 내가 멍청해서가 아니다.

아무튼 바로 어제 들었던 이름인데도 뭐시기의 아이들이라는 것밖에 기억이 안 났다. 시발 서태지와 아이들도 아니고 여관 이름이 뭐 그따위야.

어쩔 수 없이 도르카한테 가서 물어봤다.

“뭔 여관? 너 여관 옮기게? 서운하게 이러기야?”

“옛다. 3일치 숙박비. 오다 주웠다.”

“아마 ‘무타라트의 아이들’일 걸.”

자본주의 앞에 이중인격급 태세변환을 하는 도르카 덕분에 나는 프란체스카가 묵는 여관에 도착했다.

등에 멘 가방에는 아까 산 검은 로브랑 가면을 넣어뒀다. 수상한 가방을 메고 다닌 새끼가 있었다는 목격증언을 남기지 않기 위해서 당장 의뢰를 나갈 것처럼 보이도록 이것저것 잡다한 장비도 챙겨뒀다.

“어서옵쇼~. 숙박하실 손님이신가?”

여관 주인은 펑퍼짐하게 생긴 아주머니였다. 나는 인사를 해 오는 그녀에게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아뇨. 잠깐 아는 사람을 보러 왔는데요. 혹시 이 여관에 묵는 프란체스카 양이라고 아십니까?”

“프랑을? 뉘시길래?”

수상한 사람을 보는 눈이 되는 아주머니. 인종차별이 아예 몸이 밴 사람이다.

프랑이라는 이름은 프란체스카의 애칭인가. 굴리면 데굴데굴 굴러갈 것 같은 이름이 그녀에게 참 잘 어울렸다.

그나저나 애칭으로 불릴 정도라니, 프란체스카는 여관 주인이랑도 사이가 좋은 듯 했다. 나랑 도르카 만큼은 아니겠지만.

“같이 일한 모험가입니다. 그분한테 용무가 있어서요.”

“용무? 무슨 용무길래 숙소까지 왔대?”

“다음에 술 한 잔 하자고 하길래 와 봤습니다. 개인적으로 물어보고 싶은 것도 있고요.”

진짜 목적은 로브랑 가면의 커스텀이었지만 그걸 말하는 병신짓은 하지 않았다. 근데 이 아지매 표정이 왜 썩어가는 것이지? 칭챙춍 새끼가 내 여관에서 술을 마신다니까 빡이 쳐버린 것인가?

“술을 마시자고 했다고? 그 애가?”

“예. 그런데요. 혹시 제가 모르는 문제가 있습니까?”

어쩌면 프란체스카가 아직 미성년인 건가? 키는 작더라도 얼굴만 놓고 보면 무난하게 20대 여성으로 보였는데?

“그런 게 아냐. 걔는 술 한두 잔이면 뻗는 애라고.”

실화냐? 드워프 유전자는 어따 팔아먹었길래 하프 드워프가 술 몇 잔 마셨다고 꽐라가 돼.

역시 프란체스카는 하프 인간이 아니라 하프 엘프였나.

드워프 반 엘프 반의 신인류 프란체스카.

내가 아는 이세계 우생학을 정면에서 엿 멕이는 유전자 배합이었다. 인간 외에는 같은 인류종끼리도 아이를 만들진 못한다고 배웠는데.

프란체스카의 신변이 걱정되기 시작한다. 이 사실이 밝혀지는 날에는 존나 이세계 포스트 다윈이 되고자 하는 생물학자들이 그녀를 잡아가서 해부하려 들 것이었다.

“흐으으음. 그래? 그 아이가?”

내가 드워프들이 간에 알코올 분해효소가 많은 건지, 그게 아니면 알코올을 흡수하지 않고 직빵으로 배출하는 건지 생물학적 관점에서 고찰하고 있을 때였다. 여관 주인이 내 행색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이봐 당신.”

“프랑은 이제 고작 21살이야. 나이야 성인이지만 혼자서 낯선 땅에서 살아가기에는 버거운 나이지.”

아줌마가 나한테 이런 얘기를 하는 저의는 모르겠지만, 나는 대충 다 안다는 시늉을 했다. 아줌마 아저씨들의 맥락 없는 이야기 방식에는 이미 익숙하니까.

“기댈 곳도 없이 늘 외롭고 힘들 텐데도 저렇게 열심히 열심히 살고 있는 거라고. 알겠니?”

뭔가 나한테 훈계라도 하는 분위기였다. 근데 시발 지금 하시는 말씀 저한테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 같은데요.

“자세한 사정까지는 몰랐습니다만… 프란체스카 씨가 좋은 분이라는 건 알고 있습니다.”

“그래, 알고 있으면 됐어.”

팔짱을 낀 여관 아주머니는 내 대답에 흡족한 것처럼 끄덕거리더니 여관 안을 가리켰다.

“들어와. 프랑은 저녁이 되기 전에는 안 돌아온다고 하고 나갔으니까, 갈 곳이 없으면 안에서 기다리렴.”

“일하러 나간 겁니까?”

“오늘이 여관비를 내는 날이었거든.”

셋집살이들의 비애는 어딜 가나 똑같구만. 어제 막 그 빡센 의뢰를 끝낸 참인데 또 먹고 살려고 일을 나간 그녀의 고된 인생에 가슴이 찡해졌다.

드워프가 튼튼하다고는 해도 모험가 일은 빡세다. 아이언 클래스일 때는 하루 벌어서 하루 사는 삶이라서 더욱 그런 경향이 있었다. 부디 몸이 상하지 않을 정도로만 일해주기를 바라는 것이, 같이 사선을 넘은 동료로서의 바람이었다.

나는 여관 밖의 시계탑을 내다봤다. 오후 5시였다. 저녁에 돌아온다고 했으니까 그렇게 오래는 안 걸릴 듯 했다.

“기다리죠 뭐.”

”잘 생각했어. 아니면 먼저 한 잔 하고 있을래?“

“언제 올지도 모르는데 혼자 취해 있기는 좀 그렇네요.”

“어머. 매너 있네. 젊을 적부터 매너 있는 남자는 보기 드문데 말이야.”

“위트도 있습니다. 만능 엔터테이너라서.”

적당한 대답을 던져주고 구석자리에 앉았다. 영업에 방해가 되면 안 되니까. 화폐제도가 소액결제가 불가능한 구조만 아니었어도 뭔가 마실 걸 시켰을 텐데.

보통 상인이나 주민들끼리는 밀가루처럼 저렴하고 그램 단위로 가격이 정해지는 물건을 화폐 대신 썼다. 말하자면 물물교환 같은 것이다.

나야 시발 밀가루를 포대로 사 놓고 관리할 능력이 없으니 못 하는 방식이지만.

그러다보니까 돈이 새어나가는 속도가 어마어마하다. 지금 나는 의뢰 보수를 저축하기는 고사하고 모아둔 돈을 깎아가며 사는 처지였다. 일을 성실하게 나가지 않고 매일 외식+숙박비로 탕진해서 그렇다.

‘브론즈 이상… 늦어도 실버 클래스를 달 무렵에는 집을 구해 두던지 해야겠어.’

지금 당장 집을 구하는 것은 무모하다.

아이언~브론즈 클래스의 모험가는 만만한 상대다.

아딱이인 내가 집을 사거나 하면서 돈이 많은 티를 냈다가는 큰일난다. 몇몇 놈들은 빈집을 털어가는 걸로 그치지 않고 나를 노려서 지갑을 털어가려 들지도 모를 일이었다.

돈만 많고 실력은 모자란 아딱이 모험가.

이세계 빈곤층들에게는 눈을 딱 감고 뒤통수를 후려갈겨서 지갑을 쌔벼가고 싶어지는 워드일 것이다.

나중에 덜미를 잡혀 체포당하든 말든, 뒤가 없는 삶을 사는 이들에게는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똑같지 않겠는가.

그렇게 창밖을 보며 시간을 죽이고 있으려니 금방 6시가 넘어갔다.

내가 기다리던 사람이 나타난 것은 그때였다.

활짝 열린 여관문에서 프란체스카가 나타났다. 딴생각을 하고 있던 나였지만 그녀의 등장은 한눈에 알아차렸다. 그 160cm는 될까 모를 작은 키와 회색의 로브는 못 알아보는 것이 도리어 어려울 것이다.

“프란체스카 씨.”

“어? 노르드 씨?”

내가 말을 걸자 프란체스카가 놀라면서 후드를 벗었다. 나는 가방으 테이블 옆에 둔 채로 그쪽으로 걸어갔다.

“어? 아, 잠깐만요! 이리 오지 마세요!”

손까지 내밀면서 내 접근을 거부하는 프란체스카. 그래서 나는 걷다가 말고 어색한 자세로 멈춰버렸다.

저렇게 질색을 하는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혹시 술 한 잔 하자는 얘기는 그녀에게는 함께 해서 더러웠고 다시는 만나지 말자는 뜻이었던 걸까?

“저, 저 오늘 하수도에 의뢰하러 갔다 왔어요!”

프란체스카는 그리 외치면서 급하게 물러섰다. 문 뒤에서 불어온 바람이 회색 로브를 스치고 내 콧등에 부딪혔다. 한때 질리도록 맡아본 적 있는 하수도의 냄새였다.

오늘의 그녀는 하수도에서 온 색채였다.

내 머리 한가득 하수도에서의 추억이 떠올랐다.

커다란 겹눈 아래에서 주댕이가 가로로 벌어지는─ 이세계 그레이트 빅 여치들과의 타노시한 추억이 말이다.

PTSD, ON.

젊을 적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은 개소리에 불과하지만, 고통의 역치(閾値)가 높은 편이 더 강한 정신력을 형성한다는 점인 사실인 모양이었다.

그러니까 나한테는 지옥의 트라우마를 남겼던 하수도 정찰 의뢰를, 프란체스카는 ‘살면서 겪은 싫은 기억 중 하나’로 치부할 수 있었던 거겠지.

나로서는 당분간 꼴도 보기 싫은 하수도에 또 일을 하러 갔었다니. 그녀의 정신력에 감복할 따름이다.

“구와아아아아아아악….”

“흐이이이이이이이이….”

하지만 여자로서 악취를 풀풀 풍기는 모습을 목격당한 프란체스카와, PTSD가 재발한 나는 여관에서 지리멸렬한 추태를 보이고 말았다.

“둘이서 뭐하는 거야?”

여관주인 아줌마는 가게 입구에서 소란을 피워대는 우리를 보며 한숨을 쉬었다.

“프랑. 욕실을 빌려줄 테니까 가서 씻으렴.”

“네, 네! 감사합니다! 노르드 씨,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프란체스카는 급하게 여관 안쪽으로 달려갔다. 이쪽 여관은 욕실 서비스도 있나? 아니, 이 아줌마네 욕실을 빌려준 건 거겠지.

“그리고 당신은 프랑 친구랬지? 그러면 이 아이 옷이나 세탁해 줘. 기다리는 동안 할 일도 없잖아.”

존나 이상하기 짝이 없는 논리였는데, 여치들과의 랑데뷰를 떠올리느라 정신력이 소진된 나는 거부하지도 못하고 그 아줌마가 시키는대로 끌려갔다.

─철퍽철퍽.

그래서 한창 빨래 중인 나였다.

“으, 차가워.”

계절은 추수가 가까운 가을이다. 지하수를 퍼오는 우물물이 차갑게 식는 시기. 빨래하기는 영 좋지 않은 계절이었다.

빨랫감으로 받은 것은 프란체스카가 애용하는 회색의 로브였다. 그밖의 속옷이나 내의는 전혀 없다. 당초부터 이상한 기대를 한 적은 없지만 현타가 밀려오는 것은 피치 못 할 일이었다.

“여기 아궁이에서 뗀 물 가져왔수다.”

“아, 고맙습니다.”

주인 아줌마의 남편 분이 데운 물을 가져와 줘서 그나마 살았다. 개뜨겁게 팔팔 끓는 물이었다. 이걸 그대로 써서 빨래를 했다가는 다 끝날 때 쯤에는 내 손에서 우러나온 육수가 옷에 스며들 것이었다.

그래서 데운 물을 찬 우물물과 타서 온도를 맞췄다. 이쪽 세상에서 세밀한 물조절은 이런 식으로 했다.

촤아악─.

빨래 비누로 판초를 이곳저곳 벅벅 문질렀다. 옷에 밴 악취는 쉽게 빠지지 않아서 꽤 힘들었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