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마법 면에서는 마나 컨트롤이 부족한 것이 원인인 듯 했다. 언젠가 익숙해진 뒤에는 어려운 마법도 사용할 수 있게 되겠지.
“하이고. 의미없다.”
나는 겐트릭에게 받은 마법서를 접으며 중얼거렸다. 만날 목표만 늘고 달성하는 것은 없는 느낌이다. 결국 해야 하는 일은 모험가 랭크 업이랑 논문 쓰기가 전부인데 말이다.
아무튼 밤도 깊었다. 이제 그만 자자.
“만상일체 재가 되어라. <물 생성(Water Creation)>.”
쪼르르르….
나는 하이드로-요실금펌프를 발사해서 모닥불을 껐다.
혹시 몰라 불씨가 남지 않았다는 것까지 확인했다. 불씨가 밭에 옮겨붙어서 한국인의 쥐불놀이 감성을 재현했다가는 RE: 노예에서 재시작하는 이세계 생활이다. 캠핑 도구도 도둑질 당하지 않게 뒷정리를 마치고 텐트로 들어갔다.
“……휴으….”
프랑은 곤히 자는 중이었다. 추운지 몸을 움츠리고 있는 몹습이 안타까웠다.
안타까우니까 따뜻하게 해 줘야지. 나는 모포에 파고들어 프랑을 뒤에서 끌어안았다. 내 손은 그야말로 폭포를 거스르는 연어와 같은 본능으로 프랑의 가슴을 주물렀다.
─딱딱.
이 감촉, 무두질한 가죽 갑옷이 맞습니다.
아이고야, 우리 철저한 여친님. 가죽갑옷을 입고 주무시네. 난 철 갑옷이라서 벗고 자야 하지만 프랑은 그냥 입은 채로 잠을 자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내가 누구냐.
나는 이세계 꼴마초 노르드.
“포기를 모르는 남자지.”
말랑─.
주물주물─.
내 손은 보들보들한 살을 쓰다듬고 주물렀다. 어디냐고? 엉덩이다. 다른 곳은 몰라도 엉덩이는 세이프다. 국제법 상 그렇게 정해져 있다.
말랑말랑─.
주물주물주물─.
“하하흐흐히히후후헤헤.”
웃음이, 웃음이 끊이질 않는닷!
좆도 의미 없는 이세계의 역사를 고찰하는 것보다는 이런 쪽이 내 성미에 맞았다. 내가 고고학자가 아니라 프랑학자였다면 존나 박사를 넘어서 대학 이사장도 먹었을 건데.
노르드 대학 프랑 학과.
학생도 교수도 이사장도 나 하나 뿐인 궁극의 대학이다.
대학원생만 뒤지게 구해서 걔들한테 내 생활비 마련이랑 논문 작성을 죄다 떠넘기고 해-피하게 살아야지.
하지만 즐거움으로 넘쳐나던 마음은 어느 순간부터 회환에 젖어들었다. 이 행복한 꿈은 내일 아침이 밝으면 깨어버리고 말 테니까.
왜 사람은 밥을 먹고 살아야 하는가!
시발 일하기 싫다!
나는 그냥 넓은 집에서 남은 여생을 프랑을 주무르고 프랑한테 조물조물 당하면서 살고 싶은데!
그때였다. 인생의 비극에 한탄하던 나는 괴로워하는 쥬지를 쓰다듬는 손길에 몸을 떨었다. 갑갑한 가죽바지 안에서 괴로워하던 쥬지콘다는 암컷을 만난 발정기 수컷처럼 환희난무를 하였다.
빤─.
품 안을 쳐다보니 프랑이 반달눈을 하고 나를 빤히 쳐다보는 중이었다.
“…나 오늘 씻지도 못했는데. 그래두 만지고 싶어?”
깨워서 죄송합니다. 그치만 도저히 못 참겠다.
애교 부린 대가를 치루는 거라고 생각해 주길 바란다. 프랑이 나쁜 거야. 가만 있어도 야한데 끼까지 부려가며 날 유혹했잖아. 이것은 피치 못할 귀결이었다.
“너한테서는 좋은 냄새밖에 안 나.”
“흥…. 노르는 바보야.”
츄르르릅….
프랑은 뾰루퉁하게 말하면서도 나와 딥한 키스를 나눴다.
양치질을 한 뒤라서 그런지, 약간 화사한 맛이 났다.
“모험가 분들은 집합해주십쇼!!”
일어나서 세수하고 씻고 아침밥을 먹었더니 어제처럼 비서 노예가 사람들을 불렀다.
나랑 프랑은 이빨만 빠르게 닦고 집합장소로 갔다.
“어제랑은 다를 일로 몰래 빠져나갔다가 걸리지 말고 열심히 일해 달라는 주인님의 분부사항입니다. 수확하는 분들은 줄 서서 낫을 받아 가십시오.”
그렇게 도구를 받아서 일터로 출발했다.
이런 나날이 대충 이틀 정도 더 이어졌다. 나는 하루 종일 일을 하고 밤에는 텐트에서 마법의 연습을 하거나 논문에 쓸 논리전개를 정리하거나 했다.
‘시발. 내가 농부인지 모험가인지 고고학자인지 헷갈리네.’
이걸 정말로 몬스터 퇴치 실적으로 쳐 주는 건지 궁금해지기 시작했을 때였다.
“노르. 슬슬 돌아가지 않을래?”
3일째의 점심을 먹던 도중에 프랑이 그렇게 말했다.
나는 그 이유가 뭔지 알았다. 가져온 식량이 바닥난 것도 원인이었지만, 더 큰 원인은 다른 것이었다.
“벌써 3일이나 못 씻었더니 너무 찝찝해….”
프랑은 약간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
해수 퇴치 의뢰를 가장한 농노 단기체험은 샤워하기가 어려웠다. 목욕탕은 사르가디스에 있는데 일이 끝날 시간에는 성문이 닫혀버리니까.
3일 동안 프랑은 내가 하이드로-요실금펌프와 타오르는 손길로 만든 온수에 수건을 적셔서 몸을 닦았다. 텐트 안에서 말이다.
모험가라는 직업이 원래 자주 못 씻기 마련인 직종이라지만 눈앞에 목욕탕이 있는 도시가 보이는데 이러고 있으려니 현타가 올 법도 했다.
“나도 그 얘기 하려 했었어.”
건조식을 꾸역꾸역 먹으면서 그렇게 대답했다. 나는 청결함을 중시하는 사람이지만 3일 정도 못 씻어도 크게 힘들지는 않았다.
근데 자기한테서 냄새가 날까 봐 무섭다면서 프랑이 나를 피하려고 한다.
나까지 돌아가고 싶어진 것은 그래서였다. 처음으로 프랑한테서 스킨십을 거절당한 거였기에 심적으로 많이 힘들다. 존나 내 삶의 이유를 절반 이상 뺏긴 기분이다.
가슴만 못 만지고 땡이 아니다. 여기 오고서는 섹스도 못하고 있다. 밤 밖에 시간이 없는데 혹시 해수라도 나왔다가는 헐레벌떡 옷을 입고 난리를 피우는 추태를 보이게 될 테니 말이다.
적이 나타나서 싸워야 되는 타이밍에 웬 연놈들이 바지춤을 주섬주섬 거리고 있다? 나 같으면 싸우기 전에 그 새끼들한테 검집부터 던졌다.
‘거기다 뒷처리도 힘들고.’
내 사정량을 생각해 봐라. 1번만 싸도 무슨 오줌보처럼 콸콸 쏟아지는데 그거 뒷처리하기가 어디 쉬운가? 텐트에서 정액 냄새가 풀풀 풍기는 것도 존나 에바인 일이다.
“돌아가자. 뭣하면 가서 씻고 다시 와도 될 테니까.”
그래서 나는 3일 째 되는 날 점심을 다 먹고 비서 노예를 찾아갔다.
“아저씨. 저희 내일 돌아갈게요.”
비서 노예 아저씨는 그렇게만 말하고 사라졌는데, 그 뒤에 일을 시작하려 했더니만 갑자기 호툴루실이 나타났다.
“들었다. 내일 돌아가겠다고?”
“예? 그런데요.”
농장주가 말을 걸길래 나는 이때다 싶어서 일을 멈췄다. 숙련된 월급 루팡은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
“네 덕분에 일이 빨리 끝날 것 같았는데 아쉽군. 뭔가 문제라도 있었나?”
“아뇨 뭐, 문제랄 건 없구요.”
이제 보니까 우리가 돌아간다는 소식을 듣고 남아줬으면 해서 온 것이었다.
하긴 내가 일을 오죽 잘 했던가. 과장 하나 안 보태고 나 혼자 3일만에 운동장 2, 3개 분은 수확했다. 프랑도 힘 세고 성실하니까 일은 엄청 잘 했을 것이고. 그야 존나 바짓가랑이를 붙잡아서라도 말리러 오겠지.
“그냥 가져온 식량도 다 떨어졌고 제 동료가 씻지 못해서 힘들어 해서요.”
“일이 힘들어서는 아니고?”
존나 그걸 대놓고 물어보네. 눈치가 없는 건지, 압박을 하는 건지. 느낌 상으로는 전자다. 호툴루실은 남한테 꼽을 주는 성격으로는 안 보였다.
예르나도 원래는 그랬었다. 마지막에 내 논문에 홀려서 도둑질을 했지만 평소에는 내가 아는 교수들 중에서는 좋은 년이 맞았다. 이미 나한테 ‘좆프’ 해 버린 이상 뒤져도 용서할 마음은 없지만 말이다.
“내가 식량을 제공하지. 목욕이 가능한 곳도 알려주겠다. 그럼 계속 일해줄 수 있나?”
공짜 밥이랑 샤워를 제공해 준다고?
“어… 동료랑 상의해 볼게요.”
“네 동료는 그 드워프였지? 지금 가자. 따라 와라.”
시발 존나 강압적이시네. 노예들이랑 사는 놈이라 그런지 군대처럼 군다. 그래도 일 안 하고 돈 벌 찬스라서 밍기적 거리면서 따라갔다.
“얘기가 그렇게 됐다. 너희 둘이서 상의해 봐라.”
일하다 불려온 프랑은 후드를 벗고 눈을 깜빡였다. 그녀는 내 옆에 붙어서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노르, 어쩔래?”
“조건 좀 따져보고. 밥이랍시고 꿀꿀이 죽을 내놓고 씻을 곳이라고 마굿간에 들여보낼지도 모름. 프랑 너는?”
“목욕할 수 있다는 곳이 멀쩡하면 며칠 더 일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
우리는 그렇게 의견을 주고받고 호툴루실에게 정확하게 어떤 걸 제공해 주는 건지 물어봤다.
“식사는 점심은 샌드위치, 저녁은 고기를 포함한 스프 재료와 빵이다. 원한다면 저녁은 조리해서 제공해도 좋다. 목욕은 근처 숲에 계곡이 있다. 여기서 30분 정도 걸리는 거리다.”
우리 질문에 호툴루실은 막힘없이 대답했다. 무뚝뚝한 말투이기는 한데 조건 자체는 괜찮아 보였다. 어지간히 우리가 남아 있기를 바라는 듯 했다.
나랑 프랑은 다시 상의를 거친 끝에 결론을 내렸다.
“…우선 내일 하루만 더 일해 볼게요.”
“그렇게 해라. 좋은 대답을 기대하지.”
그리고 그 날 저녁.
우리는 팔뚝만한 칠면조 훈제를 ‘스프 재료’라고 받았다.
“노르. 수확이 끝날 때까지 여기에 있을래?”
“내일부터는 수확 속도를 좀 늦춰볼게.”
우리는 존나 맛있는 칠면조 고기에 낚여서 며칠을 더 묵기로 했다. 시발 처음부터 달라고 해 볼 걸 그랬다.
“프랑. 이번에는 내가 요리해 볼게. 잘 봐. 내가 사나이의 요리를 보여준다.”
“후후. 노르는 다음에 해 줘. 오늘은 내가 할 테니까.”
나는 존나 의욕만만하게 선언했으나 프랑은 웃으며 내가 요리하려는 것을 만류했다.
그게 마치 어린 아들이 부엌에서 도와준다고 깝치는 것을 만류하는 젊은 어머니 같은 시선이어서 조금 억울했는데, 완성된 요리를 먹고 나는 아가리를 싸물었다.
‘프랑 앞에서 밥 하겠다고 깝치지 말자.’
가방에서 무슨 조미료 같은 것을 가져와서 넣은 게 다인데 말도 안 되게 맛있더라.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요리에 넣는 특제 소스나 조미료를 만들어두는 사람은 요리를 진짜로 잘 하는 사람이다. 멸치 가루라든지 고추장 다대기 같은 거 말이다.
프랑도 그랬다. 버섯이랑 소금이랑 허브를 말리고 갈아서 만든 가루라는데 거의 이세계 다시다 수준의 존맛이었다.
저런 요리 솜씨를 가진 프랑이 내가 만든 맛없는 요리를 맛있다면서 먹어줄 거라고 생각하니, 미안해서라도 나는 요리 못 하겠다.
그렇게 3일째의 밤이 지났다.
“노르. 일어나. 나랑 같이 씻으러 갈 거라면서.”
평소보다 일찍 일어난 프랑이 나를 깨웠다. 나는 언제나처럼 프랑보다 늦게 눈을 떠서 마법으로 물을 만들고 세수부터 했다.
“흐아아아암….”
동틀 녘의 어둡고 푸른 하늘을 보니 하품을 쩍쩍 나왔다.
“졸리면 그냥 자고 있지 그랬어.”
프랑이 내 눈곱을 떼어주면서 말했다. 나는 고개를 돌려서 그 과보호 느낌 가득한 배려심을 사양하면서 대답했다.
“나도 씻어야지. 아무리 땀을 안 흘렸다고 해도 안 씻은지 3일이나 됐어.”
“그건 그렇지만.”
내가 안 씻으면 프랑이 씻어도 의미가 없다. 내 몸에서 냄새가 나는데 프랑을 만지작대는 것도 좀 그러니까. 대충 어깨를 돌려서 몸부터 풀었다.
“씻고 와도 아침 집합에 늦지는 않겠지?”
“30분 거리라고 하니까, 씻는 시간 포함해서 대충 해 뜨기 전까지는 올 수 있을 거야.”
“과연. 다시 말해서… 씻는 것 말고 다른 것도 하려면 서둘러야 한다는 소리네?”
“어? 으, 응. 그렇… 겠지?”
프랑은 내가 하려는 말을 알아듣고 버벅거렸다. 나는 장난기가 동하는 것을 느끼며 프랑을 냉큼 안아들었다.
─번쩍!
품에 공주님처럼 쏙 들어온 프랑이 당황해서 외쳤다. 씨익 웃어주고서 야수회귀를 발동했다. 녹색의 마나가 몸을 뒤덮고 일렁거렸다.
“흐흐. 이러는 편이 빠르니까. 우리 프랑, 너무 가벼워서 뭐 안고 있는 것 같지도 않네.”
“그, 그래도 노르가 힘들잖아. 게다가 수확일 하다가 야수회귀 풀리면 어떡해.”
“어떡하긴? 맛있는 공짜 식사를 먹는 날이 늘어나겠지.”
호툴루실한테도 말했지만 풀리든 말든 일에는 별 지장이 없었다. 나는 품 안의 프랑에게 뺨을 비비면서 속삭였다.
“후드 쓰고 꽉 붙잡아. 꼬마기관차 노르드 출발이야!!”
“못 말린다니까.”
프랑이 내 목에 팔을 둘렀다. 가까워진 프랑의 입술에 키스를 하고 힘차게 내달렸다.
“꺄악!”
약간 즐거운 기미가 섞인 비명이었다. 야수회귀의 효과를 더한 나의 달리기 속도는 전동 킥보드보다 빨랐다.
프랑의 가슴으로 아래쪽이 완전히 막혀서 발치가 안 보였기 때문에 약간 주의해야 했다. 그래도 넘어지는 일 없이 숲의 안쪽에 있는 계곡에 도착했다.
콸콸콸콸─.
작은 계곡이었다. 약간 휴양지 느낌이 나는 것이, 여름에 여기 와서 피서를 보내도 괜찮을 듯하다. 수영복 입은 프랑도 보고 싶고.
우리 여친님은 뭘 입어도 존나 야하고 예쁠 테니까 남들이 못 보게 우리끼리만 가야 한다.
“물이 좀 차다.”
계곡물에 손을 담궈본 프랑이 중얼거렸다. 나도 쪼그려서 물에 손을 담궈봤다.
“어우 씨. 장난 아니네.”
약간 냉탕 느낌. 오래 잠겼다 나와서 물기 제대로 안 털면 감기 걸리겠다. 돌아가서 모닥불을 쬘 시간이 있으려나.
“프랑. 우리 바구니 가져온 거 줘 볼래?”
“여기 있어. 마법으로 데우려고?”
“응. 뜨신 물이 있어야 쓰겠다.”
바구니를 받아서 물을 받고 앞에 두었다. 그리고 집중해서 마나를 모아 주문을 외웠다.
“<타오르는 손길(Burning Hand)>.”
화르르륵─.
이틀 동안 연습해서 마법의 사용법은 조금 익숙해졌다. 걍 ‘제일 뜨겁게’랑 ‘제일 안 뜨겁게’의 이중일택 정도지만 물을 데울 때 온도조절은 필요 없다.
“사나이 요리는 언제나 강불!!”
치이이이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