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속의 분노를 해방했다. 내 마음 속 스위트룸에서부터 폭력과 살의로 빚어져 태어난 또 하나의 나, 교수 슬레이어가 포효했다.
─교수를 죽여라!!!
─교수를 죽여라!!!!!!!!!
─이 세상의 모든 교수를 죽여라!!!!!!
“크르르르─!! 못 참겠다 웅녀!!”
나는 뇌수를 비등시키는 분노를 억누르며 주문을 외듯이 속삭였다.
“<구름 소환(Summon Cloud)>!!”
푸쉬이이이─.
내 주변에서 생성된 흰 구름이 안개처럼 동굴의 안으로 스며들어갔다. 그것은 아이돌 콘서트에서 곧잘 일으키는 연기 연출과 비슷했다.
이 마법은 내가 도적놈들의 소굴에 단신으로 쳐들어갈 마음을 먹은 계기 중 하나.
──그 이름도.
“졸렬잎식 미채은신술── 마마무(魔磨霧).”
마마무.
다시 말해서, 악마를 깎는 안개.
<구름 소환>으로 만들어진 고밀도의 수증기는 구름처럼 사람의 시야를 완전히 봉쇄한다. 이 마법 앞에 어중이떠중이들로 채운 수적 우위는 의미가 없다.
물론 안개가 자욱한 동굴에서는 내 시야도 봉쇄된다. 나는 살짝 요령을 부려서 안개로 인한 시야차단을 극복할 수 있지만 말이다.
슈우우우─.
아직 익숙하지 않은 마법이지만 시간을 들이자 농도와 양의 안개가 모였다. 마나가 줄어드는 것이 실시간으로 느껴졌다. 생각보다 훨씬 적은 양이었다.
‘아니면 내 마나통이 많이 늘었던가.’
아무튼 마나에 여유가 있는 것은 좋다.
생성된 안개는 내가 마법을 해제할 때까지 유지된다. 호툴루실이 구름을 조종해서 지력을 회복하는 마법을 사용했던 것처럼 나도 마나가 유지되는 동안은 안개를 조종할 수 있다.
‘공격마법으로는 못 쓰지만.’
안개를 빠르게 움직여서 칼날이나 망치처럼 살상능력을 부여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건 마법 자체의 한계다. 높은 지속력과 조종능력을 가진 수증기에 그 정도 물리력까지 부여하려면 높은 마법실력이 필요하다.
그게 가능하면 거의 노쿨로 유지되는 광역기 아닌가. 좆밥 유사 마법사인 나는 그런 마법이 있어도 절대 못 쓰겠지.
그래도 오늘은 이 정도로 충분하다.
‘시야를 가리고 야수회귀로 팬다.’
퍼펙트 플랜이다.
“닌닌.”
작게 읊조린 나는 한 명의 김치 닌자로 변모하여 도적단의 소굴에 입장했다. 안개는 내 의지를 따라 나를 쫓아왔다.
마법으로 동굴 안을 안개로 가득 채운다? 미련한 짓이다.
‘내가 가는 곳에 따라오는데 필요 이상으로 뽑아서 뭐해.’
내 주변 10미터는 짙은 안개로 가려졌다. 동굴이 좁아서 예상 이상의 범위까지 가려졌다.
이는 호재(好材)였다. 안개의 바깥에 있는 도적들은 내가 뭐하는 새끼인지 알 수 없다. 그것은 인간의 공포감을 자극할 것이다.
인간이 아니라 몬스터라면?
인간이라고 해도 미친 싸이코 살인마라면?
안개 낀 밤의 살인마가 두려운 이유는 그것이었다.
화살을 쏜다 해도 맞추기는 뒤지게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어쩌다 내 몸에 맞아도 야수회귀의 마나 코팅을 뚫는 것은 불가능하다.
‘내 눈에 보이는 건 발 아래만으로 충분해.’
지금 내 시야는 대충 코끼리를 잡아먹은 보아뱀 모양으로 뻥 뚫려 있다. 시야 확보를 위해서 전방 2미터의 바닥 위 공간에는 안개를 깔지 않았다.
나는 이걸 통해서 동굴의 내부 구조를 엿봤다.
이렇게 안 했다면 나도 벽에 부딪히고 넘어지면서 온갖 슬랩스틱 코미디를 펼쳐댈 테니까.
그리고 만일 내 앞에 도적놈이 나타나더라도──
“새끼들아!! 이 연기는 뭐야!! 불이냐?!”
──이렇게 나만이 볼 수 있다.
안개가 뻥 뚫린 2미터 앞에 사람의 다리가 나타났다. 나는 주먹을 말아쥐고 대쉬하여 다리 위쪽 공간에 주먹을 날렸다.
“──커헉!”
도적 새끼에게는 안개가 걷히며 갑자기 나타난 내 모습에 당황할 틈도 없었다. 내 일권(一拳)은 싸구려 갑옷을 입은 놈의 가슴팍을 주저앉혔다.
─풀썩.
내가 비키자 놈의 시체는 피를 토하며 앞으로 쓰러졌다. 명치에 대고 화약을 터트린 것처럼 갈비뼈가 박살나고 심장까지 박살난 것이다. 살아나는 것은 불가능했다.
나는 손끝에 남은 감촉을 확인하듯이 주먹을 주물거렸다.
‘쉽네.’
도적놈이 허무하게 당한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다리 위쪽 공간에는 안개가 자욱하기 때문에 내 코앞 1미터까지 오지 않고선 시야 확보가 안 된다. 깔때기를 거꾸로 뒤집은 모양으로 안개의 공백지대가 있기 때문이다.
도적놈들 입장에서는 웬 안개가 다가온다 싶더니 1미터 바로 앞에서 원펀맨이 튀어나오는 기분이겠지.
다시 말해서 나는 안개가 유지되는 동안은 모든 적들에게 선빵기습을 가할 수 있다.
고작 도적놈들이 이 공격을 피할 가망은 없다. 이런 기습에 대처하는 것은 운전 중에 옆 차선 틈새에서 튀어나오는 무단횡단충을 피하면서 차에 기스를 내지 않고 정차하는 정도의 기술과 반사신경이 필요하니까.
‘그게 되는 새끼는 모험가나 용병을 하겠지.’
주르륵─.
시체의 입에서 흐르는 피를 피해 옆으로 물러났다. 눈을 훤히 뜨고 쓰러진 도적의 시체를 나는 차갑게 내려다봤다.
나한테는 이것이 첫 살인이었다.
‘생각보다 별 거 없네.’
리얼리티를 추구하는 전쟁영화처럼 호에엥 살인 무서워용 하고 쭈그러드는 일은 없었다. 나중에 이 새끼가 내 꿈에 나와서 지랄을 해댈 것 같지도 않았고 말이다.
살인을 저지르고 PTSD에 시달리는 사람이 있으면,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나 보다. 아마 난 후자에 속하는 거겠지.
묘하게 기분이 더러웠지만 이세계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약간 싸이코 기질이 있어야 한다.
이세계에서 살다 보면 언젠가 손에 피를 묻히는 것이 필연이었다. 14살짜리 시골 소녀도 벼를 베던 낫으로 고블린을 찍어 죽이고 다시 일을 도와주러 돌아가는 세상이니까.
내가 대학에 남아서 얌전하게 살았어도 어느날 갑자기 살인마, 암살자, 몬스터 같은 놈들에게 습격당해서 뒤졌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것을 노예 시절에 유적을 탐사하며 배웠다.
언젠가 손을 피로 더럽히게 되는 것이 필연이라면 그게 오늘이 아니어야 할 이유가 없었다.
굳게 쥔 주먹에서 힘을 뺐다.
이번 싸움에서 나는 손속에 자비를 두지 않을 것이다.
이 새끼들은 사람을 습격해서 죽여대는 놈들이다.
아직 사람을 안 죽인 놈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 놈도 얼마 못 가서 손을 더럽히겠지. 근묵자흑이다. 살인강도랑 어울리는 놈들 중에 멀쩡한 새끼는 없다.
‘살려뒀다간 나중에 복수하려 들지도 몰라.’
정면에서 복수하겠다며 덤벼든다면 뒤지게 패주고 땡이겠지만 살인강도 놈들의 사전에 정정당당이라는 단어는 없다. 뒤에서 음식에 독을 타거나 할 확률이 크다.
나에게만 원한을 품는 게 아니라 프랑한테까지 해악을 끼칠지도 모를 일.
여기서 죽여두는 편이 낫다.
나는 도적놈의 허리춤에서 도끼를 슬쩍했다. 이 쓰레기 놈들의 피를 프랑의 무기에 묻히는 건 에바였으니까.
근데 뭔 시발 무기가 야만전사 도끼처럼 생겼다냐. 존나 산적들 무기답구만.
“아오!! 병신들아!! 이 안개 대체 뭐냐고!!”
“제이콥 이 새끼는 보러 간다더니 왜 안 와?!”
안개가 퍼져가는 것을 깨달은 도적들이 난리를 쳐댔다. 자욱한 안개 때문에 동료들 얼굴도 안 보이니 존나 무섭고 당황스럽겠지.
자연현상을 조종한다는 것은 이토록 강력한 것이었다.
드루이드라고 하면 다들 풀쪼가리나 만지고 역병이나 퍼트리는 이미지를 떠올리는데, 진짜 자연의 힘은 하늘에 있다.
폭풍과 천둥도 자연의 일부.
자연을 다루는 드루이드란 곧 신의 힘을 다루는 자였다.
그러므로 오늘밤 이 동굴에서 열릴 살육의 밤은── 내가 하늘을 대신해서 내리는 천벌이었다.
나는 양날 도끼를 장비하고 존나게 뛰었다. 도적놈들 발이 멈춘 곳으로 맹 대쉬를 하여 그 새끼들이 소리칠 틈도 없이 후려쳤다.
“일단 한 곳에 모여서── 시발 무슨, 게헥!!”
“대, 대체 뭐가 일어나는, 부기익!!”
도끼 면(面)으로 안면을 박살내 즉사시켰다. 팔꿈치로 명치를 갈기고 빈손으로는 명치에 어퍼컷을 날렸다. 대충 힘을 빼고 쳐도도적놈들의 몸은 곰에게 나데나데를 당한 토끼처럼 부숴졌다. 스트리폼을 때리는 것 같다.
─퍽! 우지끈! 퍼서석!
“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허어어어어어억!!!”
집에서 편하게 쉬던 와중에 기습을 당하자 도적 놈들은 통제가 완전히 무너져버렸다.
앞은 안 보이는데 자꾸 뭐가 부숴지는 소리가 나면서 동료들이 하나씩 입을 다물어대는 것이다. 공포 앞에서 인간의 이타심과 우정은 쉽게 망가지고 말았다.
“모, 모여!! 이리 모여서 싸우라고!!”
“씨발!!”
통솔력 있는 놈 하나가 그리 외치자 몇 놈이 벽을 등지고 모였다. 나는 다리의 움직임으로 그것을 간파하고서 근처의 돌을 집어들었다.
묵직한 짱돌을 몇 번 던졌다 받고서 힘껏 투척했다.
목표는 안개로 가려진 도적 놈의 명치였다.
─뻐억!
“게흑!!”
메이저리거의 강속구는 살인적인 위력을 가진다고 들었다. 야구장을 끝에서 끝으로 가로지르며 날아갈 정도니까 그럴 만 하다.
인간의 힘으로도 그럴진대 마나와 야수회귀의 이중 보정을 받는 나의 강속구는 어떻겠는가. 가죽갑옷 위로 작렬한 묵직한 살인짱돌에 도적 하나가 즉사했다.
“히이이이익!!”
“뭐야!! 대체 뭐냐고!!”
─부웅! 부웅!
공포에 젖은 놈 중 하나가 마구잡이로 검을 휘둘러댔다.
놈들의 입장에서는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나더니 옆의 동료가 쓰러져버린 것이었다. 자기 몸도 제대로 안 보일 정도로 짙은 안개 속에서 그것은 맹렬한 공포를 낳았다.
나는 다른 짱돌을 집어들고는 공포영화의 국룰을 따라서 벡터-목소리 깔기를 사용했다.
“UkuooooRrrrrroooooo…!! (섹스…!!)”
“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내 번역능력은 몬스터의 말도 사용할 수 있다. 트롤들의 언어로 한 마디 내뱉어주자 도적놈들이 기겁을 했다.
“IiiiiiiiaaSyAzuDooooo!!! (모두 잠수 준비!!!)”
“어디야!!! 어디냐고오오아!!! 끼아아아아아아아악!!!!”
“까아아아아아아악!! 제바아아아알!!!!!!!!!”
짐승들과 몬스터들의 말은 성조가 중요하다. 누가 들어도 ‘인간이 흉내내는 소리’와 ‘몬스터가 내는 소리’는 큰 차이가 있다.
번역능력으로 발해지는 몬스터의 언어는 당연히 ‘100% 완벽한 몬스터의 소리’가 된다.
인간의 성대 구조 때문에 느낌은 조금 다르겠지만── 한치 앞도 안 보이는 안개 속에서 괴물의 소리가 들리는데 그걸 구분할 여력이 있을까?
“POhhuhH!! NiiiiiiiaAAnnn!! (네!! 선장님!!)”
“튀어어어어어억!!! 여기서 튀라고오오오옷옷!!!!”
“숨을 데!! 숨을 데가 없어어어어억악!!!!!”
“EffsssU SsssaA!! (잘 안 들려~요!!)”
“야 이 개새끼들아아악!! 니들은 자존심도 없냐아악!!”
“자존심이고 개지랄이고 여기서 뒤질 수는 없다고오오!!”
“Uuu Wuuawu!!! (우~ 와우!!!)”
공포에 사로잡힌 놈들은 무기도 버리고 도망쳤다. 도적의 이름에 어울리는 빠른 도망솜씨였지만──.
‘──「느려」.’
티르시의 마법까지 받은 내 발보다는 느렸다.
─타타탓!!
나는 도망치는 놈들을 모조리 쫓아가 쓰러트렸다. 내 시야를 벗어난 놈들도 발소리를 내며 도망쳐대니 위치가 거의 다 파악이 됐다.
강화된 오감은 이럴 때도 편리했다. 벽 문제만 아니었으면 아예 나까지 포함해서 안개로 덮었어도 적의 위치는 모조리 간파가 됐을 것이다.
─휘익!
투쾅─!!
“커허어어억…!!"
구석에 숨어 있던 놈까지 몸통을 갈겨서 끝장냈다.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나를 쳐다보는 도적. 나는 친절한 목소리로 저승 가는 길에 축복을 내려주었다.
“Tthxee, Tthx. (병신.)”
“끄르르르륵….”
안개 속 몬스터의 정체가 나라는 것을 안 도적은 피거품을 물며 절명했다.
이 새끼로 끝이었는지 주변에는 숨 소리 하나 안 들렸다. 확인사살까지 끝났으므로 이쪽에 있는 놈들은 모조리 몰살을 해 버렸던 것이다.
도끼 좆도 쓸모 없었네. 아무튼 나중에 경비대랑 같이 와서 시체 치우고 도적 새끼들 장비도 다 벗겨다가 팔아먹어야지.
이 씨발 귀염둥이 새끼들 도적 주제에 장비 충실한 것 좀 봐라. 얼굴은 씹산적 새끼처럼 생겨먹어 놓고는 전부 돈덩이잖아.
고블린들이랑은 달리 이 놈들은 장비템과 도난품이라는 값비싼 드랍템이 존재하는 것이었다.
얘들 장비까지 몽땅 벗겨서 팔아먹고 나중에 운송 길드의 보수까지 받으면 벼락부자 되게 생겼다.
피 묻은 돈이니까 이 새끼들 장비 판매금은 따로 저축해 두고 월급 모아둔 거랑 운송 길드 보수로 프랑이랑 회중시계나 사러 가야지.
─쿵쿵쿵쿵.
첫 살인에 따른 공포와 흥분으로 심장이 거칠게 뛰었다. 피 묻지 않은 손을 들어 성호를 그었지만 딱히 효과는 없었다.
그래서 프랑의 가슴을 상상하며 주무르는 시늉을 했다.
─주물주물.
프랑의 말랑말랑한 감촉을 떠올리자 심장고동이 평상시로 돌아왔다. 효과 존나 확실하구만. 역시 이러는 편이 나 답다.
“주여. 우리는 공작을 보는 듯한 눈빛으로 당신을 본다(Lord, we look upon you as one would a peacock).”
가슴을 진정시킨 나는 안개의 강을 건너며 성경의 구절을 암송했다.
만신을 경배하는 시를 읊자 마음이 채워졌다. 내 안에 남은 지구의 추억이 정신전 충격으로부터 나를 지켰다. 한국인은 춤과 노래와 시조의 민족이니까.
“그것은 기대와 갈앙과 공포와 비슷한, 그 끝을 알 수 없는 것으로 장식되어 있다(A look that borders on anticipation, adoration, and something akin to neverending terror).”
혈향이 휘도는 동굴에서 나는 나 자신의 오리진(origin)을 상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