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1화 (61/1,009)

“째액 쯰짹. (인간들을 찾아줘.)”

빵조각을 떼서 새에게 내밀었다. 그 놈은 눈치를 보다가 날아들어와 내 팔에 내려왔다.

가까이서 보니까 생각보다 크다. 근데 이 섹무새 새끼 왜 이렇게 발톱을 세게 쥐고 지랄이지.

“쩩쩩쩩! 쩩쩩쩩! (맛있어! 맛있어!)”

호밀빵 조각을 맛본 새대가리는 곧바로 커다란 빵덩이로 고개가 돌아갔다.

아주 시발 지능이 낮은 티를 내대는군. 나는 빵을 허리 뒤로 빼 돌리고 작게 으르렁댔다.

“쯔쯔짹쯱 찍짹짹. (부탁을 들어주면 줄게.)”

“째액 쯰째? (인간 찾기?)”

“짹. 찌짹쯔쯔 쯧짹. (응. 인간이 많이 모인 곳.)”

“쩨엑 쨋짹! (저쪽!)”

새가 부리로 사르가디스가 온 방향을 가리켰다. 거기 말고 새대가리련아.

“쯰쯕짹 짹쯕쯕? 쯰째짹짹 쯕 찍짹짹. (다른 곳은 몰라? 찾아 오면 이것도 줄게.)”

배팅에 걸 보수를 높이기 위해서 가방에서 다른 빵덩이도 꺼냈다.

이렇게 쓰려고 1쿠퍼에 파는 뒤지게 큰 빵을 3등분해 왔다. 이 놈들의 위장으로는 며칠을 먹을 양일 것이었다.

“쨋쯔쩩! (찾아 볼게!)”

새는 신바람이 나서는 내 팔을 박차고 날아갔다.

의욕이 넘치는 것은 좋지만 저 새끼가 도적 소굴을 찾아서 다시 내 곁으로 올 거라고는 생각 않는다. 앞으로도 주변을 돌아다닐 생각이니까.

‘시발. 팔에 새 발자국 그대로 남았네.’

피를 마시는 새는 가장 오래 살고, 빵을 마시는 새는 가장 좆 같이 구나 보다.

나는 옷에 묻은 흙을 대충 털어내고 티르시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솔직히 이제부터 사정을 설명하자니 벌써부터 앞길이 막막했다.

그런데 의외로 목도리를 걷어내린 티르시는 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서! 방금 거 설마 <동물 회화(Animal Conversation)> 마법인가요?!”

시발 동물 회화 마법은 또 뭐지. 대충 키타이 문화의 신비로운 주술이라고 구라 깔 생각이었는데.

모르겠다. 그냥 그런 걸로 하자.

나는 이제부터 비스트 마스터인 드루이드 노루다.

“비… 비슷합니다.”

“그랬군요! <동물 회화>를 쓰실 수 있다면 도적들의 소굴을 찾는 것도 간단하겠어요! 이 산의 모든 동물이 증인이 되어 줄 테니까요!”

얼타는 내 표정은 가면으로 가려져 있었기에 티르시는 혼자 결론을 내렸다. 과정은 틀렸는데 결론만 맞았으니 대답하기 곤란했다.

티르시의 예상대로다.

노예 시절에 유적 탐사로 야영할 때였나. 장작을 모으려고 돌아다니다가 길을 잃었던 나는 이 방법을 통해서 야영지로 복귀할 수 있었다.

‘빵 한조각이면 네비게이션이 되니까 편했었지.’

그 이후로 몇 번 사용하다가 고용한 모험가들에게 들키기도 했지만, 대충 ‘신대륙 키타이의 언빌리버블☆매직’이라고 구라까니 다들 속아넘어갔다.

이세계인들은 키타이에 이상한 환상을 품은 사람이 많다. 지구도 근대화 전까지는 황인종들은 초능력자라고 믿었던 서양인이 흔했던 것처럼.

녹스의 십계에 ‘중국인을 등장시키면 절대 안 된다’가 있는 것이 당시 서양인들은 중국인을 오리엔탈 매지션으로 여겼기 때문이라는 사실은 유명하다.

‘이번에도 쿵푸 마스터 김치 닌자 강북호의 갬성을 살려서 무협 풍의 대사라도 읊어줄 생각이었는데.’

아무튼 넘어갔으니 됐다. 내가 가면 아래에서 안도하자 티르시는 웃으며 말을 이었다.

“평소에도 <동물 회화>가 성공한 동물들과의 싱크로를 위해서 이 산에 자주 찾아오셨나 보네요.”

“예? 뭐, 뭐 그렇겠죠?”

“후후. 감탄이 나올 따름이에요. 이 산의 동물들과 사전에 친화력을 높여 놨으니, 적어도 이곳 일대에서 아서의 정보망을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없겠어요.”

뎃?

<동물 회화> 마법은 사전 준비가 필요한 마법인가? 우리 이세계 파파고는 그런 귀찮은 과정 없어도 되는데?

시발. 역시 내 번역능력이 다른 마법이랑 약간 다르기는 하구나.

‘아는 척 떠들지 않기를 잘 했다.’

키타이의 마법 술식을 알려달라거나 하면 잡아떼기도 힘들었을 테니까 말이다.

“그나저나 몰라 뵀어요. 아서는 고고학만이 아니라 마법에도 높은 소양을 가지셨군요?”

그렇게 말하며 티르시는 눈을 반짝거리며 빛냈다.

“야수회귀 마법을 사용할 수 있었던 것도 그 덕분일까요?”

이건 약간 그거다. 중학생이 서울대생을 보는 듯한 눈빛… 은 조금 의미 전달이 안 되니까, 프로게이머를 보는 잼민이 같은 시선이라고 해 두자.

부담을 느낀 나는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크흠. 다른 마법은 몰라도 동물 회화를 비롯해서 일부 마법에는 제가 일가견이 있는 편이죠. 아무튼 마저 이동합시다. 다른 동물에게도 부탁을 해야 하니까요.”

“네! 다른 아이들은 어떤 동물들인가요?”

“그… 직접 보시면 알 겁니다. 하하하!”

그리하여 우리는 산을 돌아다니며 동물들이 보이는 족족 회유를 시도했다.

“찍쯔쯔 찍쯱? (호두 머글래?)”

“찌익!! (내!!)”

“시이이. 시시이익! (닭고기 드싈?)”

“시잇?? 샷 시샤아? (머임?? 너 리저드맨임?)”

“그르르르!! 컹컹!! (인간!! 먹는닷!!)”

“캥. (아 시발아 좀.)”

야생화가 완료된 승냥이가 개기는 걸 걷어차서 쫓아내는 해프닝은 있었지만 대체적으로 원만하게 합의를 보았다.

마스터 드루이드의 짬을 얕보지 마시라. 대가리에 먹기&죽이기밖에 없는 마물들 빼고는 보통 대화가 통한다. 문화나 사고방식이 많이 달라서 실패할 때도 많지만 말이다.

그런 짓을 몇십 분 정도 반복했을 때, 드디어 원하던 답을 내뱉는 동물이 나타났다.

“끽 끼이이이 끼끽! (인간 무리 있다!)”

솔개 비슷한 날카로운 조류였다. 그놈은 닭고기에 정신이 팔려가지고는 말했다.

“끽 끼끽 끄이이이이, 끼이잇!! (인간 있는 동굴, 저쪽!!)”

“끼이오의이이잇. (안내해.)”

“끽끼 끼에에에에엑!! (인간들, 따라와라!!)”

닭고기를 한 웅큼 던져주고 안내를 시켰다. 따라오는 티르시가 허망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대, 대체 몇 마리나 테이밍을 하신 거에요?”

“영수증 봐야 압니다.”

눈에 띄는 동물들한테는 닥치는대로 시전 중이니까 나도 잘 모른다.

참고로 들개가 덤벼든 것을 티르시는 테이밍이 풀렸다는 식으로 이해했던 듯 하다. 역시 때때로 똑똑한 사람이 오히려 속이기 쉽다니까.

“끽!! (인간!!)”

─파사삭!

솔개의 안내를 따라간 곳에서 우리는 어느 좁다란 동굴을 발견했다.

파수는 없다. 하지만 입구 쪽에는 어설프게 흙으로 덮은 흔적이 보였다. 인간의 짓이다. 아마 출입하면서 생긴 발자국을 지우려고 했던 게 아닐까.

입구에 파수가 없는 것은 들키지 않기 위해서겠지. 경비를 서는 놈이 있다면 멀리서도 눈에 띄고, 목격담이 흐르면 위치가 발각될 테니까.

티르시가 완드를 굳게 쥐면서 속삭였다.

“찾았군요.”

틀림없이 저기가 도적의 소굴이다.

우리는 일단 뒤로 물러났다. 먹을 걸 달라고 지랄해대는 솔개한테는 뼈가 붙은 고기를 던져줘서 닥치게 했다.

“돌입할까요?”

수풀에 몸을 숨긴 티르시가 물었다. 나는 대답하기 전에 솔개에게 닭고기를 더 던져주었다.

“끽 끼엑 끼이이엑? (인간은 몇 명?)”

“끼엣. (몰라.)”

고개 갸웃거리지 마라. 열 뻗치니까.

이딴 새끼들이 킹룡들의 후손이라니 믿어지질 않는다. 이 세상 어딘가에 있을 공룡들이 쟤처럼 아몰랑 거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환상이 깨지는 기분이다.

“끼이익. 껙 끼끽. (그래도 인간. 뒤에도 있어.)”

“…껙? (…뒤?)”

“끼이잇. (저쪽.)”

뼈를 발라내며 솔개가 울어댔다. 예상밖의 추가 정보였다. 나와 티르시는 들키지 않게 빙 돌아서 솔개를 따라갔다.

“끼이이엑! (여기!)”

“끼이끼낌. (조용히.)”

우리는 울어대는 솔개를 조용히 시키며 솔개가 가리킨 곳을 조사했다.

─파사삭.

수풀로 보였던 것은 위장이었다. 도둑놈의 새끼들. 튈 때를 대비해서 도주로까지 만들어 놨군.

“어쩌실래요?”

다시 근처에 숨은 우리는 작전을 설계했다. 아까 발견한 곳으로 뚫고 들어가도 안에 있던 도적 놈들은 이쪽으로 튈 것이었다.

인질도 있다고 하니 완전 섬멸을 위해서는 한쪽이 입구를 막고 있는 수밖에.

그렇게 생각한 우리가 작전 내용을 공유하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우리 옆쪽의 수풀에서 나뭇가지를 밟는 소리가 났다.

우리는 눈빛을 교환하고 숨는 위치를 바꾸었다. 부주의한 발소리를 내며 다가오는 인기척이 둘.

“아오 씹. 존나 피곤하네.”

“이래서 다들 식량 사러 가길 싫어하는군요. 심장 떨리지, 오르락내리락 피곤하지.”

나타난 것은 어딜 어떻게 봐도 도적처럼 생긴 놈들이었다. 두 놈의 사내 새끼다.

머리에는 클라라의 대장간에서 봤던 돌팔이 새끼처럼 두건을 감고 있다. 이세계에서 두건은 씹새끼의 상징인가?

“흐흐. 그래도 이제 여자들 좀 맛 볼 수 있겠지?”

“이번주 중으로 거래 끝나고 거점 옮길 거랩니다. 그, 뭐라더라? 미스릴 클래스 모험가년이 사는 곳에서 장사하기 싫대셨나?”

“지랄. 계집년이 무서워서 도적질은 어떻게 해.”

“큭큭. 보스한테 이릅니다?”

“그랬다간 니도 뒤져 새끼야.”

그 놈들은 떠들면서 이쪽으로 다가왔다.

집이 가까워져서 마음이 풀어졌는지 대화 내용으로 지들 신분을 밝히느라 바쁜 병신들. 이 새끼들은 100% 도적이 맞다.

─끄덕.

티르시와 나는 제스처로 합의를 보았다.

기습은 선빵이 필승이지만 이번에는 보내기로 했다. 소굴 코앞에서 소란을 일으켰다가 들켰다간 일만 귀찮아진다.

파스슥….

도적놈들은 계속 떠들어대며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비밀 통로가 아니라 지름길이었나. 아니면 멍청한 새끼들이라서 만들어 놓고 대충 돌려쓰는 걸지도 모른다. 방화문을 비상구로 쓰는 놈들은 지구에서도 흔했으니까. 저게 다 안전 불감증인 것이다.

“──저 놈들, 도주 계획을 구상 중이군요.”

도적들이 없어지고 몇 분 지나서 우리는 말문을 열었다.

“네. 정확히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빠른 시일 내로 일을 해결해야 될 이유가 생겼네요.”

“저는 당장 돌입하는 게 낫다고 봅니다.”

나는 입구를 쳐다보며 말했다.

“저들이 말한 거래 상대라는 건 장물아비나 그런 놈들이겠죠. 저희 논문도 물론 중요하지만 만약 잡혀갔다는 인질이 살아있고, 그 사람들도 저 놈들한테는 거래 대상이라면──.”

“──오늘이 마지막 기회일 수 있다는 거죠? 마침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

완드를 집어든 티르시는 후드와 목도리 사이로 동굴 틈을 노려보았다.

“양측 입구에서 동시에 진입할까요?”

“저 없이도 몸을 지킬 수 있으시겠습니까?”

“요즘 따라 곤란한 일이 많아서 마법을 몇 개 배워뒀어요. 발동하고 이동이 가능한 실드 마법이 있으니 미리 걸어두면 돼요.”

티르시는 완드를 움켜쥐고 몇 가지 마법을 영창했다.

마법 중 하나는 산들바람을 일으키며 내게도 뻗어왔다. 그 바람이 몸을 투과하자 체중이 가벼워졌다.

“이건?”

“<산들바람 걸음(Breeze Walk)>. 움직임을 빠르게 만들어 주는 마법이에요. 유지시간은 고작 1시간이지만요.”

“고작이라뇨. 충분합니다. 큰 보탬이 되겠어요.”

마법의 효과인지 몸이 가벼웠다. 발을 굴려보자 발소리도 거의 안 날 정도였다.

“제가 반대편에서 돌입하죠. 작전은 아까 짰던대로 하겠습니다. 아시겠죠?”

“네. 안에서 봬요, 아서.”

“그럽시다, 애시. 솔개 너도 수고했다. 여기 보수 받아라.”

“끼에에에에에에엑!! (밥!!)”

나는 솔개에게 남은 닭다리를 훽 던져주고 반대편으로 이동했다. 크게 돌아서 처음 발견한 입구로 돌아간 것이다.

샤샤샥─.

입구 앞에 섰다. 가방을 벗고 근처의 수풀로 감춰 숨겼다. 동굴 입구에는 변함없이 파수가 안 보였다.

그게 저 놈들의 실수다.

‘멍청한 새끼들.’

파수를 세웠다면 그 놈들이 싸우는 소리를 듣고 도주를 꾀할 수도 있었을 것을. 대가리가 딸리는 놈들이 부족한 지능을 짜내어 낸 결과물은 언제나 개판인 것이었다.

법치를 준수하며 살아간 이들은 실수를 해도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지만── 살인강도 놈들은 해당이 없다.

이세계에서 범죄를 일으키는 도적을 살인하는 건 죄가 되지 않았다.

인권의식이 부족해서? 반대다. ‘사람’의 권리를 존중하기 위해서 쓰레기 새끼들의 권리를 챙겨주지 않는 것이다.

브리타니아는 세금을 안 내는 자를 사람 취급하지 않는다.

세금을 내기 위해서 스스로를 팔아(自賣) 노예가 되는 이들도 있다. 그런데도 빈민층과 그 암흑진화인 살인강도 놈들은 세금도 안 내고 치안을 어지럽힌다.

내가 범죄형 도적들을 ‘인간형 잡몹’이라고 칭한 것은 그래서였다.

그딴 놈들이 감히 나를 이 먼 곳까지 행차하게 만들어?

“크르르르르.”

나는 짐승 같은 소리를 흘리며 증오를 일으켰다.

“트라우마(Trauma)── 온(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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